바다가 없는 지역에서 살다 보니 가끔은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풍경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남해 설흘산( 雪屹山, 481.7m)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석 연휴를 맞아 설흘산을 향해 떠났다.
남해대교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다가 경남 하동군(河東郡) 금남면(金南面) 노량리(露梁里)와 남해군(南海郡) 설천면(雪川面) 노량리(露梁里) 사이의 노량해협(露梁海峽)에 놓인 남해대교(南海大橋)를 건넜다. 노량해협은 노량해전(露梁海戰)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인 1598년(선조 31) 11월 18일부터 19일 이틀 사이에 이순신(李舜臣), 진린(陳璘) 장군이 이끄는 조명(朝明) 연합함대는 이곳에서 왜군 함대를 크게 격파했다. 이순신은 19일 오전 노량해전에서 패하고 관음포(觀音浦) 앞바다인 이락파(李落波)로 도주하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 こにしゆきなが) 군(軍)의 함대를 추격하던 중 조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노량해전의 패전으로 순천 왜교(倭橋)에 발이 묶여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남해도 남쪽으로 우회 퇴각하여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 しまづよしひろ) 군과 함께 부산에 집결한 뒤 일본으로 철수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남해군 고현면(古縣面) 차면리 이락파가 바라보이는 관음포에는 이순신 장군을 배향한 이락사(李落祠, 사적 제232호)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인 이항권(李恒權)이 1832년(순조 32) 이곳에 제단과 비석, 비각을 세우고 이락사라고 했다. '이(李)'는 '이순신', '락(落)'은 '죽다', '파(波)'는 '바다'라는 뜻이다. 이락사 경내에는 '대성운해(大星殞海, 큰 별이 바다에 지다)'라고 쓴 묘비각(廟碑閣)과 순조 때 홍석주(洪奭周)가 세운 유허비, 1973년에 세운 사적비가 있다.
남면 임포리에서 바라본 칼바위능선
님해군 남면 임포리 임포마을에서는 동쪽의 설흘산에서 매봉(鷹峰山, 412.7m), 칼바위능선을 지나 서쪽의 선구리 150m봉에 이르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임포리 너른 들판에는 벼들이 황금빛을 띠기 시작하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고구마꽃
남면 선구리 엘니도리조트펜션 앞 길가 밭에는 고구마꽃이 피어 있었다. 고구마꽃은 어쩌다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다. 그래서, 고구마꽃을 보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다. 고구마는 메꽃과의 한해살이 뿌리채소라서 꽃 모양도 나팔꽃과 비슷하다.
선구항과 항촌항
선구보건진료소 마당에 차를 세워 두고 산행을 시작했다. 선구리 버스정류장에서는 선구항과 몽돌해변, 그리고 건너편의 항촌항으로 이어진 작고 아담한 만(灣)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구마을 팽나무 보호수
사촌해수욕장
선구마을에서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사촌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등산로 입구에서 팽나무 보호수를 만났다. 수령은 대략 360년 정도였다. 팽나무 그늘 밑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대나무 대롱의 위와 아래를 팽나무 열매로 막고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서 손으로 탁 치면 아래쪽의 팽나무 열매가 멀리 날아간다. 아이들의 장난감 일명 팽총이다. 팽총을 쏘면 '팽~!' 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팽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팽나무는 오래 살고, 크게 자라서 예로부터 느티나무와 함께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다.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기에 바닷가 방풍림으로도 많이 심었다. 또, 성장속도가 빠르고 공기 정화 기능이 우수하여 가로수나 정원수로도 많이 이용되어 왔다.
팽나무의 새순은 봄에 따서 나물로 먹는다. 열매는 단맛이 나서 먹을 수 있고, 식용유를 짜기도 한다. 사찰에서는 팽나무의 잎을 단풍나무의 잎과 함께 감로차를 우려내는 주요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의학에서 팽나무의 잔가지를 박유지(朴楡枝), 껍질을 박유피(樸楡皮) 또는 박수피(朴樹皮), 잎을 박수엽(朴樹葉)이라고 한다. 팽나무에 들어 있는 스카톨, 인돌 등의 성분은 진통의 효능이 있어 종기를 치료한다. 박유피와 박수엽은 월경부조나 폐농양 치료에 사용한다. 잎에서 나오는 즙은 부종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 박유지는 피를 잘 돌게 하는 효능이 있어 요통이나 관절염, 습진과 종기를 다스린다. 박유지를 달여서 먹거나 소주에 담가 약술로 먹기도 한다.
팽나무 목재는 비중이 낮아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잘 갈라지지 않아 건물이나 가구, 악기 등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느티나무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옛날에는 팽나무를 통째로 파서 마상이라는 통나무배를 만들기도 하였다. 논에 물을 퍼 넣을 때 사용했던 용두레도 팽나무로 만들었다. 팽나무 껍질은 섬유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촌항
설흘산 등산로 들머리에서는 사촌항과 해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사촌항 바다 건너편으로 여수와 돌산도가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잔잔한 바다 물결 위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굴
등산로 들머리를 벗어나자 곧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조금 올라가자 설흘산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동굴이 나타났다. 무슨 굉장한 동굴인지 알았는데 직접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연동굴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광산 개발 목적으로 파다가 중단한 동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층꽃나무꽃
능선을 따라서 연한 자주색 꽃이 핀 층꽃나무들의 군락지가 자주 눈에 띄었다. 층꽃나무는 내가 살고 있는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이었다. 새로운 식물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층꽃나무는 마편초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우리나라의 제주, 경남, 전남 등 남해안이나 섬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나무의 밑부분만 목질이고, 윗부분은 겨울에 말라 죽어서 풀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래서 층꽃풀이라고도 부른다. 유사종으로 흰층꽃나무가 있다.
돌담
능선을 따라서 낮으막하게 쌓은 돌담을 만났다. 산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안내판이 없는 것을 보면 산성의 유적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곳에 왜 돌담을 쌓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구절초꽃
햇볕도 들지 않는 응달에 하얀 구절초꽃이 외로이 피어 있었다. 구절초(九節草)라는 이름은 아홉 번 꺾어지는 풀 또는 음력 9월 9일에 채취한 것이 좋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구절초는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구절초 말린 것을 한약명 선모초(仙母草)라고 하는데, 주로 부인과 질환에 많이 쓴다. 구절초엿을 고아서 약으로 쓰기도 한다. 남자가 장복하면 양기(陽氣)가 쇠약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임포리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임포리
울창한 숲길을 벗어나자 전망이 탁 트이면서 임포리 일대와 여수만(麗水灣)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사촌항을 안고 있는 시리봉(145m) 뒤로는 고동산(360m)과 망기산(340m)이 나란히 솟아 있었다. 고동산과 망기봉 동쪽 능선은 장등산(長登山. 353m)을 지나 도성산(道城山, 305.2m)으로 뻗어가고, 서쪽 능선은 호두산(126m)으로 뻗어내려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호두산 동남쪽에는 독산(51m)이 앉아 있고, 독산 앞바다에는 바위섬인 삼여가 파도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고동산-장등산 능선 너머로 천황산(天皇山, 392m)이 머리만 보이고, 그 뒤로 망운산(望雲山, 786m)이 솟아 있었다.
칼바위능선의 암봉
칼바위능선의 암릉지대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선구항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선구항과 항촌항
칼바위능선에서 바라본 항촌항
칼바위능선의 암봉
칼바위능선
암봉들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칼바위능선이 시작됐다. 칼바위능선은 칼등처럼 좁고 가파른 암릉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칼바위능선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아니면 이 산에 칼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칼바위능선으로 오르면서 지도에 표기된 옥녀봉(玉女峰, 171m)과 낙뇌산(落雷山, 257m)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이름을 붙일 만한 산봉우리가 없었다. 누군가 종이에 산이름을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것이 있기는 했다. 옥녀봉은 거의 동네마다 있는 산이름이고, 낙뇌산은 벼락이 자주 떨어지는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인 듯했다.
준암벽 구간(semi ridge)을 만났다. 처음에는 겁이 좀 났지만 막상 암릉에 붙어보니 오를 만했다. 이 구간은 암벽 등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다소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자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준암벽 구간을 오른 보람은 있었다. 암릉을 통과하여 암봉에 올라서자 남해와 여수 사이 여수만 일대의 풍경이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칼바위능선 남쪽 해안에는 선구항과 항촌항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남해 바다 건너편에는 여수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돌산도, 금오도, 연도에 이르는 다도해의 풍경이 아스라이 바라다보였다. 바다는 가을 햇살 세례를 받아 온통 은빛 윤슬로 빛나고 있었다. 남해의 고요하고 정적인 풍경에 압도된 나머지 일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 느껴졌다. 바다 위를 오가는 화물선과 어선들조차도 정적인 풍경에 동화된 듯했다.
칼바위능선
칼바위능선의 암봉
칼바위능선의 암봉
칼바위능선의 암봉
칼바위능선의 암봉
매봉(응봉)
칼바위
칼바위능선의 위험 구간에는 쇠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칼바위능선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칼바위능선의 마지막 암봉 뒤로 매봉(鷹峰, 472.7m)과 설흘산이 솟아 있었다. 마지막 암봉은 지도에 표기된 운산(雲山, 422m)일 듯 싶었다.
매봉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산기슭을 내려가다가 문득 곧추선 장검처럼 보이는 바위를 발견했다. 나는 이 바위에 칼바위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칼바위로 말미암아 칼바위능선은 이제 제 이름의 근거를 갖추게 된 셈이었다.
매봉 정상
매봉 정상에서 필자
매봉에서 바라본 설흘산
드디어 매봉에 올랐다. 매봉 바로 앞에서 설흘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매봉 정상의 돌탑 앞에는 '응봉산 472m'라고 새긴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매봉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육조능선은 가천 다랭이마을로 이어진다.
매봉은 대개 매가 많이 사는 산봉우리에 붙는 이름이다. 옛날 한반도에는 매가 많이 살았다. 그래서 매봉도 거의 지역마다 있는 흔한 산이름이다.
매봉을 한자로 표기하면 '매 응(鷹)'을 써서 응봉(鷹峰)이 된다. 따라서 응봉은 그 자체로 완전한 산이름이다. '응봉+산'의 '봉'과 '산'은 동의어를 반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봉+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역전(驛前)+앞'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말이다. 나는 매봉이라는 이름이 좋다.
기송(奇松)
미역취꽃
쑥부쟁이꽃
최종 목적지인 설흘산을 향해 매봉을 떠났다. 능선길에서 산행기에 등장하는 기송(奇松)을 만났다. 소나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기송이라고 하기엔 2% 부족했다.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겠다. 길섶에 핀 미역취와 쑥부쟁이가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쑥부쟁이가 없는 가을은 가을이라고 할 수 없다.
설흘산 봉수대
설흘산 정상 표지석
설흘산 정상에서 필자
설흘산 서쪽 산기슭은 가파른 암릉지대라서 등산로가 북쪽으로 돈 다음 동쪽의 망산(望山, 406.9m)을 거쳐 정상에 오르도록 되어 있었다. 설흘산 정상에는 2007년에 복원된 봉수대(경상남도기념물 제248호)가 있었다. 봉수대 출입문 위에는 설흘산 정상 표지석이 올려져 있었다.
설흘산 봉수대에서는 동쪽의 앵강만과 서쪽의 여수만은 물론 남쪽의 대양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이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남해 금산과 대방산 봉수대, 나아가 경남 사천과 전남 여수 등지에 알기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복원된 봉수대는 자연암반에 원형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그보다 작게 원형으로 담을 쌓아 그 안에서 봉화를 피울 수 있게 했다. 설흘산 봉수대는 해돋이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설흘산에서 바라본 매봉
설흘산에서 바라본 가천 다랭이마을
설흘산에서 바라본 가천 다랭이마을
설흘산 남릉
설흘산 정상에서 지나온 매봉을 돌아보았다.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볼 때마다 어떻게 저 먼 길을 걸어왔을까 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나면 작은 고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매봉 육조능선과 설흘산 남릉 사이의 해안에는 가천 다랭이마을(명승 제15호)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국 윈난성(雲南省) 웬양(元陽)의 띠띠엔(梯田)과는 비교 불가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다. 설흘산 남릉을 따라서 가천 다랭이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다랭이마을에는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이 있다.
설흘산에서 바라본 금산과 노도
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앵강만(鶯江灣) 건너 금산(錦山, 705m)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금산을 중심으로 서쪽과 남서쪽에는 대오막등(399m)과 대구청산(大九靑山, 371m), 천황산(287m), 오막등(228.8m), 짤룩아치산(221m), 산불암산(219.8m), 진등산(186m), 갓등(143.2m) 등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앉아 있었다. 진등산 앞바다에는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의 작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 유배 생활을 했던 노도(櫓島)가 떠 있었다. 노도에는 김만중이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허묘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설흘산에서 바라본 호구산과 송등산
북쪽 바로 앞에는 도성산이 내려다보이고, 도성산 동쪽 해안에는 남면 홍현리 중촌마을과 동촌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촌마을 해안에서 돌담을 쌓아 만든 원시적 어로시설인 석방렴(石防簾)을 발견했다.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하는 석벙렴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연안에서 멸치나 고등어, 새우, 전어를 비롯해서 작은 잡어들을 잡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남면 당항리 청룡산(101m) 남쪽 해안은 두곡해수욕장이고, 흰색 건물은 남해비치호텔이었다. 청룡산 뒤에는 송등산(松登山, 617m), 그 뒤에는 호구산(虎丘山, 619m)이 솟아 있었다. 송등산 능선은 각각 북쪽의 괴음산(604.2m), 서쪽의 귀비산(貴妃山, 495.5m)으로 이어진다.
설흘산에서 바라본 호구산과 송등산, 망운산
설흘산에서 바라본 장등산과 망운산
고동산에서 망기산을 지나 동쪽 장등산으로 이어진 능선은 세 개의 지능선으로 갈라진다. 북쪽 지능선은 중산(288m)과 재양봉(161.9m), 북동쪽 지능선은 재양산(275m), 남동쪽 지능선은 도성산으로 각각 뻗어간다. 중산 뒤에는 천황산, 천황산 뒤에는 망운산이 솟아 있었다.
어느덧 해가 서쪽 바다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는 산길 나그네도 설흘산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홍현리 중촌마을에서 바라본 설흘산
설흘산에서 망산을 지나 북동쪽 홍현리로 뻗어내린 능선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설흘산 북동능선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했다. 선등자의 표지기를 길잡이로 삼아 산을 내려갔다. 표지기가 없었다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을 것이다. 깊고 큰 산에서는 표지기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오래전 눈이 허리까지 빠지는 지리산 성삼재-정령치 구간 야간등반에서 실제로 표지기의 도움을 받아 위험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
홍현리 중촌마을로 내려오니 저녁 때가 다 되었다. 버스가 다니는 노선과 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택시를 불러 타고 출발지인 선구마을로 돌아왔다.
평산항 회집의 자연산 생선회
돌아오는 길에 남면 평산리 평산항에 들렀다. 좀 전에 택시 기사가 평산항에 있는 횟집들이 자연산 생선이면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고 일러준 곳이었다. 평산항에는 횟집이 갈매기횟집, 어촌계에서 운영한다는 해녀횟집, 청아횟집, 동광횟집, 평산횟집 등이 있었다.
중간에 있는 횟집에 들어가서 7만원짜리 농어회를 주문했다. 가늘고 길쭉하게 길이로 썬 생선회가 접시에 담겨서 나왔다. 배가 너무나 고팠던 나머지 우선 생선회 몇 점을 깻잎에 싸서 정신없이 먹었다. 하지만 시장기가 가시자 생선회에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할 수 없이 생선회를 반 이상 남긴 채 횟집을 나왔다. 나중에 생각하니 접시에는 농어 외에 다른 생선회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기대를 하고 평산항을 찾았는데 조금은 실망이었다. 다음에 남해에 또 오게 되면 다른 횟집으로 가리라.
한밤중에 차를 몰아 귀로에 오르다.
2015.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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