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한북정맥 죽엽산을 찾아서

林 山 2015. 10. 17. 14:57

화창한 가을 주말을 맞아 한북정맥 죽엽산(竹葉山, 615.8m)을 찾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죽엽산은 운악산과 불곡산 임꺽정봉, 노고산, 대모산에 이어 다섯 번째 찾은 한북정맥의 산이다.     


한북정맥 죽엽산


포천과 철원을 연결하는 국도 87호선을 따라 고장촌삼거리와 신내촌교를 지나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 마을 앞 국도변에서 죽엽산을 바라보았다. 죽엽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산세도 순해 보였다. 북동쪽에는 고장산(선녀봉, 325m) 뒤로 한북정맥 국사봉(546.9m)이 솟아 있었다. 한북정맥은 국사봉에서 큰넓고개와 작은넓고개, 571m봉, 히미기고개, 삼각점(600.6m)을 넘어 죽엽산으로 이어진다. 


죽엽산은 경기도 포천시(抱川市) 소홀읍(蘇屹邑)의 동쪽, 내촌면(內村面)의 서쪽, 가산면(加山面)의 남쪽 경계선에 솟아 있는 육산(肉山)이다. 원래 이름은 주엽산(注葉山)이었다. '지명총람' 등 일제강점기 이후에 나온 지도부터 죽엽산(竹葉山)으로 바뀌었다. 산의 형세가 대나무 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지도에는 대부분 주엽산(注葉山)이라 되어 있으나, '1872년지방지도'에는 주엽산(舟葉山), '해동지도'에는 주업산(注業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죽엽산은 남릉 끝자락의 운악산(雲岳山, 279m) 기슭에 조선 세조(世祖)와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의 묘인 광릉(光陵)이 있어 수백 년 동안 엄격한 관리와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원시림 같은 숲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소나무와 잣나무 숲이 울창하다. 산의 대부분은 광릉임업시험림이 차지하고 있다. 운악산 서쪽 기슭에는 중부임업시험장이 있고, 그 남서쪽에는 소리봉(536.9m)과 용암산(물푸레봉, 476.9m) 시험림이 있어 수령 400여 년 이상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죽엽산 동쪽으로는 왕숙천이 비스듬히 흘러 남쪽으로 흐르고, 서북쪽에는 고모저수지가 있다. 죽엽산 북쪽 수계는 포천천으로 모여 영평천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한탄강이 된다. 남서쪽 수계는 봉선사천을 거쳐 왕숙천으로 합류한다.


고모저수지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죽엽산


고모저수지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고모산  


한북정맥 비득재


진목리를 떠나 한북정맥 비득재(비둘기재, 鳩峴, 254m)로 향했다. 소흘읍 고모리에는 고모저수지를 중심으로 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었다. 고모저수지에서는 죽엽산과 고모산(古毛山, 일명 노고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죽엽산과 고모산 사이에 있는 비득재는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와 직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고개의 형세가 비둘기가 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비득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득재는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다. 북쪽의 철원 방면에서 한강으로 진출하려 할 때 비득재는 왕숙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다. 백제는 고모산 정상에 테뫼식 고모리산성(古毛里山城, 일명 노고산성, 老姑山城, 경기도기념물 제185호)을 쌓아 북쪽의 적을 방비하였다. 고모리산성의 둘레는 1,207m(내성 967m, 외성 240m)이고, 성안 시설물은 문지 1개소, 건물터 7개소(내성 6, 외성 1), 우물터 1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성안에서는 경질무문토기와 3~5세기 백제 토기들이 주로 출토되었다. 


고모리산성의 북벽에서는 북동쪽 고모저수지 방향으로 멀리 포천평야 일대와 군내면 구읍리 청성산(283m)의 반월산성까지 조망된다. 따라서, 고모리산성은 남진세력이 이 일대를 확보하지 못하고 한강 방면으로 진출하였을 때 그 배후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지명의 유사성을 근거로 고모리산성을 광개토대왕비와 중원고구려비 비문에 보이는 고모루성(古牟婁城)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지금까지 고모루성은 충남의 덕산(德山)이나 충북 음성(陰城)의 옛 산성에 비정되어 왔다. 


한북정맥 죽엽산


한북정맥 고모산


경고문


비득재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잘 단장된 가족묘에 이르자 죽엽산 정상부가 바라보였다. 한북정맥 위로 고압송전선이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다가 고압선 철탑을 만났다. 철탑 뒤로 고모산이 바라보였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슬연구소장 명의로 '이 지역은 자연환경보전림(시험림)으로 연중 입산통제 구역으로 지정된 산림보호구역입니다. 무단입산 등 불법행위 시에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 규정에 의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라고 쓴 살벌한 경고문이 곳곳에서 한북정맥을 차단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토를 사랑하기에 대간과 정맥을 순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차단해서야 되겠는가! 이들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죽엽산 임도


죽엽산 소나무숲


산부추꽃


산부추꽃


한북정맥 마룻금과 산기슭에는 굵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적송은 언제 봐도 정겨웠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임도를 만났다. 임도 벼랑에는 홍자색 산부추꽃이 피어 있었다. 


죽엽산 단풍


죽엽산 단풍 터널


죽엽산 정상부 주능선에 올라서자 붉게 물든 단풍이 더러 눈에 띄었다. 죽엽산에는 단풍이 아직 일렀다. 단풍은 어쩌면 나뭇잎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한북정맥 죽엽산 정상부


죽엽산 정상


죽엽산 정상에서 필자


주능선의 620m봉에서는 죽엽산 정상이 금방이었다. 산마루에는 그 흔한 표지석 하나도 없었다. '죽엽산 601m'라고 쓴 표지판만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달랑 걸려 있었다. 


백두대간의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진 한북정맥은 화천의 백암산(白巖山, 1,179m)과 철원의 적근산(赤根山, 1,071m), 말고개(馬峴, 568m), 대성산(大成山, 1,174m), 수피령(水皮嶺, 780m), 촛대봉(1,010m), 복주산(伏主山, 1,152m), 광덕산(廣德山, 1,046m), 백운산(白雲山, 904m), 도마봉(道馬峰, 883m), 국망봉(國望峰, 1,168m), 개이빨봉(犬齒峰, 1,110m), 민둥산(1,023m), 강씨봉(姜氏峰, 830m), 청계산(淸溪山, 849m), 원통산(圓通山, 567m), 운악산(雲岳山, 937.5m), 수원산(水源山, 710m)을 지나 국사봉(國師峰, 547m)에 이른 다음 큰넓고개와 작은넓고개를 넘어 죽엽산(竹葉山, 622m)으로 이어진다. 


죽엽산을 떠난 한북정맥은 비득재를 넘어 고모산(古毛山,386m), 불곡산(佛谷山) 임꺽정봉(林巨正峰, 449.5m), 대모산(大母山, 212.9m), 호명산(虎鳴山, 425m), 한강봉(漢江峰, 474m), 챌봉(遮日峰, 518m), 사패산(賜牌山, 552m), 도봉산(道峰山, 740m), 상장봉(上將峰, 543m), 노고산(老姑山, 487m), 현달산(峴達山, 139m), 고봉산(高峰山, 206m), 장명산(長命山, 102m)을 지나 한강 하구에 이른다. 죽엽산 정상에 서서 백두대간 한북정맥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꼈다. 


죽엽산 잣나무숲


죽엽산 동쪽 기슭에는 잣나무숲이 빽빽하게 들어차 았었다. 쭉쭉 뻗어올라간 잣나무들에서 지사(志士)들의 곧은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저 잣나무의 기상을 본받아 우리나라를 부정부패가 사라진 바른 나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듫었다. 한갓 나무도 저리 바르게 설 수 있지 않는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사람이 저 나무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571m봉까지 갔다가 다시 죽엽산 정상으로 돌아와 비득재 하산길에 올랐다. 산행 과정에서 한북정맥 순례자 두 명을 만났다. 새벽 2시에 운악산을 떠난 사람과 큰넓고개에서 시작한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도반(道伴)이라고 했다. 도반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비득재로 내려와 귀로에 올랐다.         


2015.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