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충주 장병산, 엄정산을 찾아서

林 山 2015. 11. 27. 11:11

장병산 푸른 송백 우리의 기백/기개도 드높은 진리의 터전/슬기로운 이 학원에 몸 맘 닦아서/찬란한 우리 문화 더욱 빛내리/마음에 고향 우리의 학원/신명 건아 영원히 빛내리.(신명중학교 교가, 우범성 작사, 나운영 작곡)


내가 충주시(忠州市) 엄정면(嚴政面)에 있는 사립 신명중학교(新明中學校)에 다닐 때 월요일 아침 조회 때마다 부르곤 했던 교가이다. 그때는 장병산(帳屛山, 408.8m)이 어디에 있는 산인지도 모르고, 막연히 학교 뒤에 있는 야산인 줄로만 알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나서 엄정면 신만리(新萬里) 족동 바람맞이골에 있는 대한불교해동종(大韓佛敎海東宗) 신흥사(新興寺)를 찾아왔다가 이 절 뒷산이 바로 교가에 나오는 장병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엄정면 추평저수지에서 바라본 장병산-엄정산 능선


추평리 직동마을에서 바라본 엄정산


신만리 족동마을에서 바라본 장병산


장병산은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槐東里)와 신만리(新萬里), 추평리(楸坪里)에 걸쳐 있는 높이 408.8m의 산이다. 엄정산(嚴政山, 505m)은 장병산 북동쪽 능선으로 700m 정도 떨어져 있는 산으로 추평리와 산척면(山尺面) 송강리(松江里)의 경계를 이룬다. 두 산은 천등지맥(天登支脈)의 오청산(五靑山, 655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지능선에 솟아 있다. 


징병산은 산세가 마을을 감싸고 병풍을 두른 듯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해발 고도는 낮은 산이지만 원곡천(院谷川)이 흐르는 평야지대에 인접해 있어 산세가 매우 가파르고 험한 편이다. 장병산 남서쪽에는 붉은바위, 남동쪽에는 병풍바위가 있다. 남쪽 산 중턱에는 1890년에 창건된 신흥사가 있다. 장병산에서는 엄정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인근의 산군도 잘 조망된다. 



신흥사


신흥사 석가모니불입상


신흥사에서 바라본 천등산


신흥사에서 바라본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신흥사에서 바라본 인등산, 지등산, 계명산


장병산은 신흥사 삼성각 뒤쪽으로 해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장병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짧은 코스다. 신흥사 석가모니불입상이 세워진 곳은 전망이 매우 좋다. 여기서는 엄정면 일대는 물론 남쪽으로 세고개 너머 산척면 소재지까지 보인다. 산척면 소재지 뒤로 용천산(龍天山, 293.3m), 그 뒤로 충주의 진산 계명산(鷄鳴山, 774m)이 솟아 있다. 남동쪽으로는 충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천등산(天登山, 807m)과 인등산(人登山, 667m), 지등산(地登山, 535m)으로 이어지는 천등지맥(天登支脈)이 뻗어간다. 천등산과 인등산 사이로 머리만 내민 면위산(免危山, 釜山, 780m)도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보련산(寶蓮山, 764m)이 솟아 있다. 


장병산 정상부


장병산 능선에서 바라본 추평리와 원곡리, 유봉리 일대 


장병산 정상


장병산 정상 표지석


장병산 정상에서 필자


신흥사에서 5분 정도 걸었을까? 장병산 주능선 안부에 올라섰다. 서부능선의 전망대와 장병산 사이의 안부로 올라서자 추평리(楸坪里)와 원곡리(院谷里), 유봉리(柳峰里)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부 북사면은 산판(山坂)을 해서 이발 기계로 머리를 밀듯이 숲을 모조리 베어냈다. 372m봉 북쪽으로 천등지맥의 시루봉(695.4m)과 옥녀봉(玉女峰, 714.4m), 옥녀봉에서 녹재 건너 갈기봉(553m)과 갈미봉(602.1m)을 지나 남쪽으로 빌미산(352.2m)까지 뻗어내린 능선이 탑평뜰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안부에서 5분 정도 걸려 장병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정상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대는 키가 큰 너무들로 인해 신흥사보다도 조망이 좋지 않았다.    


엄정산 정상


엄정산 정상 표지석


엄정산 정상에서 필자


장병산에서 465m봉을 지나 엄정산까지는 700m 거리 밖에 안되고 경사도 완만했다. 하지만 숲이 우거져 있어 전망은 매우 좋지 않았다. 엄정산은 명산의 조건인 산세와 조망이 다소 부족한 산이었다. 엄정산에서 465m봉, 장병산을 되밟아 신흥사로 내려왔다. 


신명중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교가 가사는 '장병산'을 제외하고는 까맣게 다 잊어버렸다. 오로지 '장병산'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훗날 반드시 찾아가리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었을까?    


2015.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