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 불탄일(佛誕日)을 맞아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경기도 이천시 수산리 노성산(老星山) 대한불교조동종(大韓佛敎曹洞宗) 원경사(圓鏡寺)를 찾았다. 원경사는 조동종으로 옮기기 전에는 태고종에 속했었다. 원경사 진입로는 불탄일 봉축행사에 참석하려는 불자들과 차량들로 몹시 붐볐다.
노성산
노성산 원경사 일주문
원경사 천왕문
노성산시민공원에서 원경사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천왕문(天王門)이 나타난다. 원경사는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20년 박주성(朴周成)이 옛 절터에서 석상을 발견하고, 절을 지어 모시면서 사명을 원경사라고 하였다. 종각 아래에는 약수터가 있다. 유물로는 석상 1기가 전한다.
원경사 약사여래좌상
천왕문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이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불국토인 동방유리광세계(東方琉璃光世界)에 머물고 있는 부처라고 알려져 있다. 여래(如來)와 불(佛)은 같은 말이다.
원경사 전경
원경사 사사자칠층석탑
사사자칠층석탑에 봉안된 석상
원경사 사사자칠층석탑(四獅子七層石塔)이 있는 마당에는 불자들의 소원을 비는 연등이 줄을 지어 달려 있었다. 사사자석탑이란 네 마리의 사자 석상이 탑의 기단부를 이루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는 탑을 말한다. 이런 형태의 석탑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 보물 제94호), 홍천괘석리사사자석탑 (洪川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 보물 제540호), 함안주리사지사사자석탑(咸安主吏寺址獅子石塔, 경남유형문화재 제8호) 등이 유명하다. 남한에서는 희귀한 석탑으로 국보나 보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승려 임혜봉이 정리한 '이천불교문화(이천불교연합회, 1997)'에는 '대웅전 아랫뜰에는 기단 위에 사자 네 마리가 떠받들고 있는 7층석탑이 있다. 조각 수법으로 볼 때 해방 이후에 조성된 석탑은 아니다. 1980년대 말 정복두 보살님이 전라도 지방에서 모셔온 석탑인데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짐작하고 있다. 우아하고 정교한 사자상과 탑 모양으로 볼 때 보다 정밀한 조사를 하여 원래 건립된 자리와 연혁을 밝혀낼 경우 보물급의 문화재로서 손색이 없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사사자칠층석탑은 원래 이 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전라도 지방에서 옮겨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사자칠층석탑에 대해 승려 임혜봉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짐작하고 있다'면서 '보물급 문화재로서 손색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순우는 '아직 문화재를 감별하는 안목이 부족하여 단언할 수는 없으되, 이 석탑의 지정가치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일제강점기 내지 해방 이후에 석물공장에서 만들어진 싸구려 모조품(좋게 말하면 재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까닭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현경사 사사자칠층석탑을 모조품이라고 보는 이유로 이순우는 '약간 고색(古色)의 분위기가 나지만 이는 인위적인 고색처리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고, 비록 외양은 번듯한 듯해도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기교는 차라리 우스꽝스럽기조차하다.'고 하면서 '사자의 모양을 보건대 각각의 사자가 아무런 차별성 없이 하나의 틀에 맞춰 쪼아낸 듯 동일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놓여 있는 사사자석탑의 상륜부를 살펴보면, 그 앞에 따로 놓여 있는 쌍사자석등이 상륜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있는 쌍사자석등이 법주사의 그것이나 중흥산성의 그것을 본떠 대량생산한 복제품이란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걸로만 봐도 석탑이나 석등이나 모두가 어슬픈 석물공장의 작품이란 것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칠층석탑 앞에는 1920년 박주성이 옛 절터에서 발견했다는 작은 석상이 봉안되어 있다. 상반신만 있는 이 석상은 불상이 아니라 무덤 앞이나 좌우에 나란히 세우는 동자석으로 보인다. 동자석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터를 지키는 지신이다. 석상의 눈은 크고 동그랗게 강조되어 있고, 두 손은 맞잡고 있다. 손에는 망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을 들고 있을 것이다. 물건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두 눈을 크게 부릅뜬 것은 망자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원경사 대웅전
원경사 미륵불입상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본존불로 모신 대웅전(大雄殿)에는 불공을 드리려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웅전 바로 뒤편 미륵불입상에도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대웅전의 앞쪽 기둥 네 곳에는 주련(柱聯)을 써서 걸어 놓았다. 주련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은 뜻을 가슴에 새겼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의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계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여래는 모두가 다 한 몸이시라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크나큰 원력은 구름처럼 다함이 없으니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드넓은 깨우침의 바다 끝없이 아득하여라
원경사 설법전
설법전(說法殿)에서는 불탄일 봉축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법당에 들어가지 못한 불자들은 문밖에서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었다.
원경사를 떠나면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이 땅에 오신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힌두교식 윤회사상을 거부하고 만인평등을 주장한 혁명가였다. 힌두교식 윤회사상은 왕족과 귀족 등 특권층을 위한 카스트제도를 존속시키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참제자는 어떤 불자일까? 만인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불자야말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참제자가 아닐까? 지금 세상은 너무나 불평등하다. 불자들이 저마다 미륵불이 되어 썩은 세상을 갈아엎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할 때다.
2016.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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