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백두대간 탄항산(炭項山, 月項蔘峰, 856m)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미륵대원사지(彌勒大院寺址, 사적 제317호)를 둘러본 다음 바로 옆에 있는 세계사(世界寺)를 찾았다. 세계사는 미륵리 안말에서 미륵하생과 용화삼회의 미륵정토(彌勒淨土)를 꿈꾸던 고려 전기의 사찰 대원사(彌勒寺) 터에 세워진 절이다.
미륵대원사지
세계사 안심당
안심당 편액
세계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ㄱ자 건물인 안심당(安心堂)을 만난다. 안심당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딸 덕주공주(德周公主)와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공주는 월악산(月岳山)에 덕주사(德周寺)를 짓고 남쪽을 바라보도록 마애불(磨崖佛)을 만들고, 태자는 석굴사원을 짓고 미륵불상과 오층석탑을 세워 북쪽의 덕주사 마애불을 바라보게 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이 석굴사원을 창건했다는 전설도 있다. 전설은 대원사가 신라 말기에 창건되었음을 시사한다.
미륵대원지 발굴 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3년금당개개와)’, '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명창3년대원사주지승원명)', ‘彌勒堂(미륵당)’, ‘彌勒堂草(미륵당초)’,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었다. 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왓장, 고려 초기의 수막새와 암막새, 치미(鴟尾), 구마도와(驅馬圖瓦), 맹호도와(猛虎圖瓦), 사자석상, 용두석, 금동귀면, 청동신장, 금동소탑옥개 등도 나왔다.
'명창(明昌)'은 금(金)나라의 연호로 '명창 3년'은 서기 1192년(고려 명종 22)에 해당한다. 명문와를 통해서 이 사지에 있던 절의 이름이 대원사였으며, 고려 명종 22년에 원명(元明) 등이 금당(金堂)의 기와를 새로 얹는 등 중수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대원사가 미륵불을 주불로 모시는 사찰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1192년 금당을 중수한 대원사는 1254년(고려 고종 41) 제6차 려몽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려말선초에 중건되었다. 대원사는 1592년 조일전쟁(임진왜란)의 병화로 또 다시 불에 타버린 뒤 18세기경에 중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1936년의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당우들이 매몰되면서 대원사는 폐사가 되었다.
1960년 미륵대원사지에 작은 요사를 짓고 세계사라고 불렀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세계사를 미륵세계사(彌勒世界寺)라고도 한다. 최근 대웅전 복원 계획이 심의 통과되어 시공을 기다리고 있다. 산신각 앞 바위 위에 올려진 지름 1.5m의 공깃돌은 이곳에 주둔했던 고구려군의 온달장군이 부하들과 더불어 놀이를 할 때 사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미륵대원사지에는 현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 보물 제96호), 오층석탑(五層石塔, 보물 제95호), 삼층석탑(三層石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석등(石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사각석등(四角石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15호), 귀부(龜趺,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석조보살의좌상(石造菩薩倚坐像,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 불두(佛頭, 충주시 향토유적 제9호) 등의 석조문화재가 있다. 그밖에 연화문 당간지주(蓮花紋幢竿支柱), 불상대좌(佛像臺座)도 있다. 석조여래입상과 오층석탑 등의 문화재로 보아 당시 이곳에는 대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사 대웅전
대웅전 법당
석가모니삼존불좌상
요사채 바로 위에 있는 가건물이 대웅전(大雄殿)이다. 건물 정면에는 '대웅전 후불탱화 신중탱화 불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웅전 법당에는 석가모니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삼존불좌상 뒤에는 영산회상도가 후불탱화로 걸려 있다.
지장보살좌상
신중탱화
석가모니삼존불좌상 동쪽 불단에는 지장보살좌상과 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그 동쪽 벽에는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신중탱화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좌우상하에 팔부신장(八部神將)과 십이지신장(十二支神將) 등 신장만을 도성화하므로 신장탱화(神將幀畫)라고도 한다.
범종
대웅전 입구에는 목제 종틀에 작은 범종이 걸려 있다. 범종 걸이를 몸체로 여의주를 입에 문 용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조각되어 있다. 다소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세계사 산신각
대웅전 바로 위에 있는 작은 가건물이 산신각이다. 산신각 문 옆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산신각 주련이나 음미하고 가자.
靈山昔日如來囑(영산석일여래촉)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威振江山度衆生(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 떨치며 중생 제도하시네
이 주련은 석문의범(釋門儀範) 산왕단(山王壇) 예경문(禮敬文)의 일부이다. 원전은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 선사(禪師)가 펴낸 범패집 작법귀감(作法龜鑑) 산신청(山神請)이다. 산신각 주련은 두 구절로도 뜻이 충분하지만 보통은 두 구절이 더 있다.
萬里白雲靑嶂裏(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친 흰구름과 푸른 산 속에서
雲車鶴駕任閒情(운거학가임한정) 구름 수레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작법귀감의 산신청 탄백(歎白)은 '靈山昔日如來囑 位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嶂裏 雲車鶴駕任閒情'이다. 세계사 산신각 주련의 두 번째 구절 첫째 자 '威'와 원전의 '位'만 다를 뿐이다.
미래불인 미륵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미륵세계사를 떠나다. 천지개벽 미륵하생이 필요한 세상이다.
201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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