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山)이 좋아도 너무 좋다.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산으로 난 길을 걷는 것도 좋아한다. 산에서 만나는 풀과 나무, 날짐승과 들짐승은 언제나 반갑다. 산마루에 오르는 것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사바에 두고 온 내 모습을 관(觀)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때는 티벳과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준령들을 헤매고 다니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천산 산맥도 가보고 싶고, 아메리카 대륙의 록키, 애팔래치아, 안데스 산맥도 가보고 싶다. 유럽의 알프스, 타트라, 베티코, 피레네, 아펜니노, 핀두스 산맥도 가보고 싶고, 영국의 페나인 산맥도 가보고 싶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산맥도 가보고 싶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산맥들보다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나는 2001년 5월 12일부터 60일 동안 지리산에서 설악산 북쪽 진부령까지 640km에 이르는 남한의 백두대간을 순례한 바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허가만 해준다면 진부령에서 떠나 향로봉 휴전선을 통과하여 금강산과 개마고원을 지나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순례를 완주하고 싶다. 나의 백두대간 순례가 남북 간 화해와 통일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 서울우유동남부낙농지원센터 앞에서 바라본 마국산
산을 만나는 것도 하나의 인연이 아닌가 싶다. 저번에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 노성산에 올랐을 때 말머리바위를 본 적이 있다. 노성산 말머리바위에 얽힌 전설은 마국산, 설성산과도 관련이 있었다.
전설은 이렇다. 이천의 노성산과 마국산, 설성산 사이에 천리마가 나타나자 이 세 산에 주둔하던 장수들이 서로 차지하려 다툼을 벌였다. 장수들은 결투를 해서 이기는 순서대로 각각 말의 머리, 몸통, 꼬리를 차지하기로 했다. 결투 결과 노성산 장수가 일등, 마국산 장수가 2등, 설성산 장수가 3등이었다. 약속대로 노성산 장수가 말의 머리, 마국산 장수가 몸통, 설성산 장수가 꼬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이다.
말머리바위는 노성산에 올랐을 때 본 적이 있다. 이번에는 전설 속의 말몸통바위도 찾아볼 겸 해서 마국산(馬國山, 441.3m)에 오르기로 했다. 말바위 외에도 마국산 산자락에는 굴바위, 병풍바위, 구모바위 등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마국산은 이천시 모가면과 설성면, 안성시 일죽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마국산의 북쪽으로 423.4m봉-262.9m봉-251.7m봉-242m봉-264.8m봉 등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이어진 능선의 끝에 마오산(270.6m)이 솟아 있다. 두 산은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마국산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 '오음산(五音山)은 부 남쪽 25리 되는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국산은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지리지나 지도에 등장하는 오음산의 다른 이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 조에는 '안양사(安養寺)가 오음산에 있다.'고 했지만, 폐사된 지 오래되어 지금은 그 위치조차 알 수 없다. '해동지도(海東地圖)'와 '1872년 지방지도'에는 오음산 동쪽 가까운 곳에 마옥사(磨玉寺)라는 사찰이 표기되어 있다. 오음산의 다른 이름인 마옥산(磨玉山), 마곡산(磨谷山)은 마옥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산명은 마옥산-마곡산-마국산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시대까지 마국산 산마루에 흑마상(黑馬像)이 세워져 있었는데, 백성들이 그 앞에서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해방 뒤 마국산 산마루에 헬기장을 닦을 때 토마용(土馬俑)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마국산 남동쪽에는 큰바래기산(414.1m)이 솟아 있다.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큰바래기산 남동쪽 기슭에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묘가 있다.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던 영창대군은 광해군(光海君)의 이복동생이다. 선조는 8명의 부인에게서 아들 14명과 딸 11명을 두었다. 광해군보다 31살이나 어렸던 영창대군은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영창대군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광해군도 대내적으로는 대동법 등 개혁과 민생안정책을 실시하고, 대외적으로는 실리주의에 입각한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했지만 결국 인조를 앞세운 서인들의 쿠데타로 쫓겨나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제주도에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분명한 것은 광해군의 지지세력이었던 대북(大北)은 소수파였고, 인조를 앞세운 서인(西人)은 다수파였다는 것이다. 대명의리론(大明義理論)에 따른 친명배금(親明排金) 사대주의자들이었던 서인들은 광해군을 배은망덕과 폐모살제(廢母殺弟)의 폭군으로 몰아 실각시켰던 것이다.
마국산 용광사
마국산 용광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용광사는 마국산에서 254.9m봉과 236.6m봉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중턱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이천시 모가면 서경리이다.
용광사 진경 스님에게 예를 표하고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했다. 진경 스님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나 진묵대사(震默大師)의 기풍이 풍기는 스님이었다. 진경스님은 1960년 고창의 선운사에서 출가하여 2년 뒤 당대의 고승 만암 종헌(曼庵宗憲) 대종사(大宗師)의 상좌(上佐) 마일화 스님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1973년에는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 방장(方丈) 수산 지종(壽山知宗) 대종사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이후 조용히 불도에 정진하고자 마국산에 들어와 용광사에 주석(住席)한 지 어언 40여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대동지리지'의 작가 박성현은 진경 스님에 대해 '승속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자유분방하게 살고 계신다.'면서 '이웃집 아저씨처럼 진묵대사(震默大師)를 놓고 비교할 만한 고승임은 틀림없건만 의식과 절차 그리고 제도권의 틀 속에서만 살아오신 분들은 스님의 깊은 법력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평하고 있다.
진묵대사는 조선시대 청허 휴정(淸虛休靜)대사의 전법 제자이며, 술 잘 마시고 무애행(無碍行) 잘 하기로 유명한 승려이다. 당시의 세인들은 그를 석가모니불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존경했다. 진묵대사는 유가의 선비들과도 잘 어울렸다고 한다. 선비들과의 시회(詩會)에서 진묵대사가 지었다고 하는 칠언절구 한시가 전해 온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으며 산을 베개 삼아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빛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이요 바닷물은 술통이라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해 일어나 한바탕 신바람나게 춤을 추고 나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 기슭에 걸릴까 그게 걱정일세
진묵대사의 호탕한 기풍이 잘 나타나 있는 한시다. 술을 곡차라고 하는 말도 진묵대사로부터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少太山) 대종사도 진묵대사를 불보살의 경지에 오른 당대의 고승대덕이라고 평가했다.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湖作樽(월촉운병호작준)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劫嫌長袖掛磨鈺(겁혐장유괘마옥)
이 칠언절구는 진경 스님이 진묵대사의 한시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진묵대사의 한시 중 두 번째 구의 '海'를 '湖', 마지막 구의 '崑崙'을 '磨鈺'으로 세 글자만 바꿨다. '磨鈺'은 용광사가 있는 마옥산(마국산)이다. 진경 스님의 호방하고 걸림이 없는 기풍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진경 스님의 궁극적인 지향점도 짐작할 수 있다.
'海->湖', '崑崙(7,160m)->磨鈺(441.3m)'으로 의미를 보다 축소한 것은 진묵대사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되며. 동시에 진경 스님의 겸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원래 '湖'는 '湖水'였으나 글자 수와 운이 맞지 않아 필자가 임의로 뺐다.
동향으로 앉아 있는 용광사 대웅전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아담한 전각이었다. 대웅전의 전면 네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을 음미하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주련의 글귀들 하나하나에는 불교 철학의 정수가 들어 있다.
佛身普邊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부처님의 몸은 시방세계에 가득하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과거 현세 미래 삼세여래 일체가 같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광대한 서원은 구름처럼 다함이 없고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드넓은 깨달음 바다 끝없이 아득하네
마국산
누리장나무
산길은 용광사 뒤로 나 있다. 주능선으로 올라서면 해발고도 200m 안팎의 산길이 이어진다. 능선의 경사도 완만해서 산책하는 느낌이다. 236.6m봉과 254.9m봉을 지나 마국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설성면 송곡리, 대죽리와 모가면 산내리의 경계선이다. 주능선에는 숲이 우거져 있어 전망은 좋지 않다.
254.9m봉을 지나면 수천 평 규모의 밭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안양사(安養寺) 터나 '해동지도(海東地圖)'와 '1872년 지방지도'에 표기된 마옥사(磨玉寺) 터가 아닐까 추정된다. 밭에는 고구마를 심어 놓아다. 여기서는 마국산 정상이 바라보인다.
마침 산기슭에는 누리장나무꽃이 한창 피고 있었다. 누리장나무의 줄기와 잎에서는 역한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누리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구린내나무 또는 개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에 꽃이 필 때는 은은한 백합향이 난다.
누리장나무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다. 잎이 갓 피었을 때 따서 삶아 먹거나 소금으로 간을 하여 튀겨 먹기도 한다. 누린내가 나는 냄새 성분은 휘발성이 강하여 금방 날아간다. 꽃이 예쁘고 열매가 특이해서 정원수로도 심는다. 열매는 푸른 쥐색을 내는 색소는 염료와 식품첨가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누리장나무의 가지와 잎을 말린 것을 한약명으로 취오동(臭梧桐)이라고 한다. 본초학에서 취오동은 거풍습약(祛風濕藥) 중 서근활락약(舒筋活絡藥)으로 분류된다. 거풍습(祛風濕), 강혈압(降血壓), 지통(止痛)의 효능이 있어 풍습비통(風濕痺痛), 반신불수, 사지마비, 류마티스 관절염, 고혈압, 편두통, 이질, 학질, 치창(痔瘡), 옹저창개(癰疽瘡疥) 등을 치료한다. 치창이나 옹저창개에는 외부(外敷)한다. 민간에서는 누리장나무의 잔가지와 뿌리를 말려서 기침이나 감창(疳瘡) 등의 피부병에 이용하기도 한다.
마국산 정상
마국산 정상 표지석
마국산 정상에서 필자
마국산에서 바라본 노성산
마국산에서 바라본 대덕산
패랭이꽃
마국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동쪽으로 노성산(老星山, 310m)과 물구리산, 북서쪽으로는 대덕산(大德山, 308.5m)이 보인다. 대덕산 동쪽 기슭은 온통 골프장이 차지하고 있다. 정상에는 정상에는 '마국산 해발 445m' 표지석과 '오운봉(五雲峰)' 표지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쪽 풀섶에는 '마옥산' 표지석도 있다. '오운봉'은 아마도 '오음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상에는 패랭이꽃 화원이 펼쳐져 있었다. 패랭이꽃은 내가 좋아하는 토종 야생화 중 하나이다. 정말 귀엽고 예쁜 꽃이다. 작고 가녀린 꽃은 이 땅의 민초들처럼 애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척박한 땅을 이겨내고 짙붉은 색으로 피어나는 꽃은 강인함의 상징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조선시대 역졸, 보부상 등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喪制)가 썼던 댓개비를 엮어 만든 갓을 패랭이라고 한다. 갓이 패랭이꽃을 닮은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패랭이꽃(China pink)의 학명은 Dianthus chinensis L.로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 북서부와 동북부, 몽골, 러시아 동북부, 카자흐스탄에 분포한다. 중부 유럽 일부 지역에도 귀화했다. 패랭이꽃을 달리 석죽화(石竹花), 대란(大蘭), 산구맥(山瞿麥)이라고도 한다.
속명 디안투스(Dianth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쥬피터(Jupiter, 목성)를 뜻하는 디오스(dios)와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다.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e)는 패랭이꽃을 분류할 때 태양으로부터 다섯 번째에 있으면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목성을 상상했던 것 같다. 특히 꽃 내부의 홍자색 띠를 보고 목성의 띠를 연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패랭이꽃의 줄기는 곧추서고, 키는 30~50cm 정도까지 자란다. 잎은 선형 또는 피침형으로 마주난다. 꽃은 6~10월에 줄기 또는 가지 끝에서 1~3개씩 짙은 붉은색으로 핀다. 꽃잎은 5장인데, 끝이 여러 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2개다. 열매는 삭과이다.
패랭이꽃은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한다. 카네이션(Dianthus repens Willd.)은 패랭이꽃을 개량한 원예종이다. 패랭이꽃과 비슷한 종류에 술패랭이꽃(Dianthus longicalyx Miq.)과 구름패랭이꽃(Dianthus superbus L. var. alpestris Nakai)이 있다. 이들은 패랭이꽃보다 꽃잎이 잘고 깊게 갈라져서 장식용 술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다. 패랭이꽃은 대륙성, 술패랭이꽃과 구름패랭이꽃은 해양성 분포 경향을 보인다.
패랭이꽃을 일본에서는 なでしこ(撫子, 나데시꼬)라고 한다. '가장 일본스런 여성'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술패랭이꽃을 '7대 가을꽃' あきのななくさ(秋の七草)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사철패랭이꽃(Dianthus semperflorens)은 일년내내 꽃이 핀다. 사철패랭이꽃을 일본에서는 とこなつ(常夏, 도코나쓰)라고 한다. 꽃이 계속 피기 때문에 항상 여름이라는 뜻이다.
패랭이꽃과 술패랭이꽃의 지상부를 말린 것을 한약명 구맥(瞿麥)이라고 한다. 구맥은 본초학에서 이수삼습약(利水滲濕藥) 중 이뇨통림약(利尿通淋藥)에 속한다. 성질은 차고 독성이 없으며, 맛은 쓰다. 이수통림(利水通淋), 파혈통경(破血通經)의 효능이 있어 열림(熱淋, 방광염, 요도염), 혈림(血淋, 혈뇨), 석림(石淋, 요로결석), 소변불통, 배뇨통, 월경폐지 등을 치료한다. 구맥은 한마디로 이뇨제와 소염제라고 할 수 있다.
신라 때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을 집대성해 놓은 '동문선(東文選)' 정습명(鄭襲明, ?∼1151)의 '석죽화(石竹花)'란 제목의 한시가 실려 있다. 정습명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선조이다.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세인들이 홍모란을 좋아하여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정원에 한가득히 심어 두지만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그 누가 알리오, 거친 벌판에도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또한 예쁜 꽃포기가 있는 줄을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빛은 마을 연못 달에 스며들고
香傳隴樹風(향전롱수풍) 향은 언덕 나무 바람에 풍겨오네.
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땅이 궁벽해서 귀공자가 적으니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고운 자태를 촌노에게 붙이누나
마국산 용학사
마국산 말몸통바위
마국산 말몸통바위
마국산 말몸통바위
전설 속의 마국산 말몸통바위는 이천시 모가면 송곡리 송곡천 최상류 중턱골 초입의 용학사(龍鶴寺)에 있다. 지도에는 말바위라고 표기되어 있고, 지역민들도 말바위라고 부른다. 용학사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지역민은 송곡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말바위로 소풍을 오곤 했다고 한다. 소풍을 오면 말바위에 올라가 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말몸통바위 왼쪽 엉덩이 부위에는 미륵불상을 세워 놓았다. 마애불은 아닌 것 같고 바위에 홈을 파고 불상을 따로 만들어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구전되고 있는 전설은 하나의 무형 문화재라고 볼 수 있다. 말바위처럼 전설이 깃든 바위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성산의 말머리바위와 마국산의 말몸통바위는 찾았으니 이제는 설성산 말꼬리바위만 남았다. 다음에는 설성산으로 전설 속의 말꼬리바위를 찾아서 떠나 보련다. 장습명의 '석죽화'를 음미하면서 마국산을 떠나다.
2016.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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