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이천 설성산성을 찾아서

林 山 2016. 9. 29. 14:11

설성산(雪城山, 291m)은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과 장호원읍의 경계에 있다. 설성산은 '여지도서' 등 여러 고지도들에서도 확인되는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산(城山)은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다.'고 한 기록이 있고, 특히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읍주산(邑主山) 설성산'이라고 하였다. 설성산이 조선시대 음죽현의 주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 성지 항목에는 설성산 정상에 설성(雪城)이 표기되어 있다. '해동지도', '조선지도', '팔도군현지도', '비변사방안지도', '1872년지방지도' 등에도 산성이 표기되어 있다. 산 이름도 설성이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설성산성(雪城山城)은 1984년 9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선읍리에서 바라본 설성산


설성산 동북방에 접한 장호원읍 선읍리는 옛 음죽현의 오문(午門, 남문)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음죽읍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음죽현을 설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설성산성 동문지


설성산성 동쪽 성벽


설성산성 동쪽 성벽


설성지 연못터


설성산성지


설성산성 성벽


폐광산


설성산성지


설성산성 서문지


설성산성은 설성산 봉우리와 동쪽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이다. ‘설성’이라는 이름은 성을 쌓을 자리로만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 있어 그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았으며, 계곡을 둘러싼 능선을 따라 성의 자취가 분명하게 남아 있어 성 전체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 폭은 5m, 높이는 4∼5m이다. 성벽은 바깥을 향해 경사지게 쌓고, 안쪽으로 돌을 메우는 방식으로 매우 견고하게 쌓았다. 성벽은 대부분 돌로 쌓았지만 동쪽 능선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곳도 있다. 


성 안에는 평탄한 곳이 많아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설성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건물터에서는 기와조각과 토기조각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는 여러 시기의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성 안에는 도랑을 판 흔적도 있다. 성의 동쪽과 서쪽, 북쪽에는 문터의 흔적이 있다. 동문지는 현재 성벽을 보수하였다. 


설성산성은 신라 내물왕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하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다.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았다는 설도 있으나 축성 방법이나 출토 유물을 고려할 때 고구려에 이어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에 쌓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설성산 정상


필자


설성산에서 바라본 장호원읍 북서부 일대


설성산에서 바라본 장호원읍


설성산에서 바라본 노성산과 마국산


설성산에서 바라본 설성면 북동부 일대


설성산은 해발고도가 291m 밖에 안되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주변 지역이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정상부에서 북쪽으로는 이천시와 설봉산, 멀리 여주 지역까지 조망된다. 동쪽으로는 장호원 일대, 남쪽으로는 음성 지역 일대도 한눈에 바라보인다. 옛날에는 설성산성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설성산 신흥사


북문지에서 바라본 설성산 정상


설성산성 북문지 바로 밑에는 신흥사가 있다.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사찰에 소장된 전설기(傳說記)에 의하면 신라 내물왕 때 설성을 축조한 한 장군을 위해 절을 창건하고 설성사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527년(법흥왕 14)이므로 연대에 대한 신빙성이 별로 없다. 


이 절은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며, 오랫동안 폐사된 채 내려오다가 1700년대말에 중창하였고, 1918년에 3창하였다. 1944년에 수해로 유실된 것을 주지 해송(海松)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우는 극락보전과 나한전, 산신각, 요사채 2동 등이 있다. 절 동쪽에는 마애지장보살상(磨崖地藏菩薩像)이 있다. 절 하단 밭가에는 옛 설성사 폐사지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남아 있으며, 탑재(塔材) 및 와편(瓦片)도 출토되고 있다. 마애지장보살상 측면에 '지장보살'이라는 한글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장보살상은 전체 높이 117㎝에 원형 두광(圓形頭光)이 있고 두 손은 합장하고 있다.


설성산 기슭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 초입에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利川善邑里立像石佛, 이천시 향토유적 제10호)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대좌, 불신, 불두, 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조성한 뒤 연결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각 부분은 선읍리 마을 앞 시냇가와 논바닥에 흩어져 묻혀 있었는데 1978년 여름 장마로 흙이 씻기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자 마을 앞 마당에 옮겨 두었다가 신흥사 주지 월선 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 입상석불의 존재는 적어도 고려시대 초 이전에 선읍리 마을에 사찰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2016.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