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성북동 산책'에서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길상사(吉祥寺)였다.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길상사는 도심의 숲 속에 자리잡고 있어 서울 시민들에게 조용하고 아늑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삼각산 길상사 일주문
1960~70년 성북구에는 성북동의 대원각(大苑覺)과 삼청각(三淸閣), 우이동의 선운각(仙雲閣) 등 우리나라 최고의 3대 요정이 있었다. 1972년 성북동에 문을 연 삼청각은 1970~80년대 밤정치, 요정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여당과 야당 고위정치인들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제4공화국 유신독재 정권 시절 밤정치, 요정정치의 상징이 바로 삼청각이었다. 박정희도 궁정동 비밀요정 외에 삼청각에도 드나들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67년 문을 연 선운각(仙雲閣)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내연녀 장정이가 운영했던 고급요정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후광으로 선운각도 정관계와 재계의 실력자들이 드나들면서 밤정치, 요정정치의 산실로 떠올랐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 마포구 절두산 근처 강변로에서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 타고 있던 미모의 여인이 머리와 가슴에 충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다리에 총을 맞고 부상한 운전사는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이었다. 암살된 여인은 다름아닌 26세의 정인숙으로 선운각에 다니던 접대부였다. 정인숙의 수트케이스에는 당대의 권력자 26명의 명함과 전화번호가 들어 있었다. 정인숙에게는 당시 3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권력자 누구의 자식이라는 등 말들이 많았다. 추악하고 더러운 요정정치의 일면이 정인숙 암살사건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1951년에 문을 연 고급요정 대원각은 김영한(金英韓)이 운영했다. 대원각도 1970~90년대 권력자들이 미녀들을 끼고 술판을 벌이면서 흥청망청 요정정치를 벌였던 밤무대였다. 하지만 김영한은 말년에 '무소유(無所有)'로 유명한 송광사 승려 법정(法頂)에게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오늘날의 길상사가 탄생했다. 1995년 6월 13일 대원각은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는 사찰명을 길상사로 바꾸었다. 길상사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법정은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길상사에 주석하였다.
길상사 극락전
김영한은 시인 백석(白石)이 사랑한 여인으로도 유명하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백석이 진향(眞香)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김영한은 불교에 귀의한 뒤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김영한은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백석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백석과 김영한은 끝내 결혼을 하지 못했다. 백석 집안에서 김영한의 신분이 기생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기간은 고작 3년 뿐이지만 백석에 대한 김영한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은 계속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석이 쓴 시 중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백석이 김영한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이다.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는 바로 김영한을 가리킨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존고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상사에서 필자
백석에 대한 김영한의 사랑은 대원각을 법정에게 시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1985년부터 싯가 천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기로 결심한 김영한은 10여년 동안 끈질기게 법정을 설득하여 마침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세인들은 천억 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영한은 단 한 마디로 '천억 원의 돈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 합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영한이 얼마나 백석을 깊고 넓고 크게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길상사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있다.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한 극락전은 길상사의 주불전이다. 길상사에 본부를 둔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는 해마다 5월 봉축법회와 함께 장애인이나 결식아동, 해외아동, 탈북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음악회를 연다.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길상사 극락전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1970~90년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미녀들을 옆에 끼고 기생들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극락전에서 주지육림의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당시 그들에게는 바로 여기가 극락세계였을 것이다. 권력과 돈, 미녀와 고량진미가 넘쳐났을 테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주지육림의 술판으로 흥청대던 극락전이 지금은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정토 극락전으로 바꼈으니 세월이 참 무상도 하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6.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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