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양군(潭陽郡) 봉산면(鳳山面) 제월리(齊月里) 제월봉(霽月峰, 제봉산)에 있는 기촌(企村)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俛仰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을 찾았다. 정자 입구에는 '俛仰亭(면앙정)'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면앙정으로 오르는 계단길은 다소 가파른 편이었다.
제월봉
면앙정은 영산강(榮山江)과 오례천(五禮川) 일대의 드넓은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월봉 끝자락 언덕 위에 동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제월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 북송(北宋)의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인물됨을 평한 '여광풍제월(如光風霽月)'의 그 '제월(霽月,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영산강 건너 서북쪽에는 병풍산(屛風山, 용구산, 822m)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전라남도 5대명산 중 하나인 추월산(秋月山, 731m)이 아스라이 보인다.
면앙정 표지석
면앙정 설경
죽록들에서 바라본 불태산과 삼인산, 병풍산
면앙정에서 바라본 병풍산과 삼인산
면앙정에서 바라본 추월산
오례천 상류
오례천 하류
면앙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宋純, 1493~1582)이 41세 되던 해인 1533년(중종 28)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와 세운 정자이다. 면앙정 주위에는 수령이 200년 된 거대한 상수리나무 보호수 네 그루를 비롯해서 굴참나무, 밤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송순은 면앙정을 짓고 나서 그 기념으로 상수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당시 굶주리던 백성들의 구황(救荒)을 위해 도토리를 딸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아름드리 보호수들은 아마도 송순이 심은 상수리나무의 후손들일 것이다.
수령 200년의 참나무 보호수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목조 기와집으로 마루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작은 방을 배치했고, 추녀뿌리를 4개의 활주(活柱)가 받치고 있는 다소 특이한 구조의 정자이다. 최초의 면앙정은 초가지붕을 올린 초라한 정자로 비바람을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1552년 한 차례 증축을 거친 면앙정은 1597년(선조 30) 조일전쟁(朝日戰爭)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정자는 송순의 후손들이 1654년(효종 5)에 중건한 것이다. 1979년에는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였다.
면앙정가단(俛仰亭歌壇)의 창설자이자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인 송순(1493∼1582)은 1493년(성종 24) 11월 14일 전라도 담양부(潭陽府) 기곡면(錡谷面) 두모곡(頭毛谷, 현 담양군 봉산면 상덕리 송진호의 집 뒤 대밭)에서 증 이조판서 효사당(孝思堂) 송태(宋泰)와 조시옹(趙時雍)의 딸인 순창조씨(淳昌趙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新平, 충남 당진), 자는 수초(遂初) 또는 성지(誠之), 호는 기촌(企村) 또는 숙정(肅定), 면앙정(俛仰亭)이다.
송순은 3세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 숙항(叔行)으로 9촌 아저씨뻘인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1459∼1547)에게서 수학했다. 송흠은 1492년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지내고,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날 무렵 남원교수(南原敎授)로 부임했다. 1528년 담양부사(潭陽府使), 1531년에 장흥부사(長興府使)를 지냈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부임한 송흠은 광주목사(光州牧使), 나주목사(羅州牧使)를 거쳐 1534년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다. 1538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이조판서(吏曹判書), 병조판서(兵曹判書),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등을 역임했다. 1534년에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겸 지경연사(知經筵事)에 올랐다.
송흠은 사옹(簑翁) 김굉필(金宏弼, 1454~1504), 최부(崔溥, 1454~1504),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 ~1530),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과 더불어 조선시대 전기 호남 사림의 5대 사문(師門)을 이루었다. 연산군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광으로 돌아온 송흠은 제자를 기르는데 힘써 뛰어난 문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조선유현연원도(朝鮮儒賢淵源圖)'에는 19기원 중 호남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송흠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501년 송순은 9살의 어린 나이에 '곡조문(哭鳥文)'이란 시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 시로 인해 그는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그가 어려서부터 문예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곡조문(哭鳥文)-새의 죽음을 슬퍼하며(송순)
我人也 汝鳥也(아인야 여조야) 나는 엄연히 사람이고 자네는 한갓 새일 뿐이니
鳥死人哭 義爲不可(조사인곡 의위불가) 새의 죽음에 사람의 곡은 이치에 안맞으나
汝由我而死 是以哭之(여유아이사 시이곡지) 네가 나로 인해 죽었으니 그게 슬프다
송순이 기르던 새가 잘못해서 죽었던 모양이다. 정들었던 새가 죽자 어린 마음에도 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하여 이 시를 쓴 것 같다.
1504년(연산군 10)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로 개혁 사림파(士林派)가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연산군(燕山君, 1476∼1506)이 보수 훈구파(勳舊派)까지 제거한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났다. 송순은 1513년 21세 되던 해부터 1514년까지 담양부사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 ~1530)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박상의 아우 육봉(六峰) 박우(朴祐, 1476∼1547)에게서도 배웠다.
박상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년∼1419)-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김굉필-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하여 호남 사림의 종주가 된 학자이다. 그는 1496년(연산군 2) 진사(進士)가 되었고, 1501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서 을과(乙科)로 급제,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와 박사(博士),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차례로 지내고, 1505년 전라도사(全羅都事)로 나갔다. 1506년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에 올랐다가 한산군수(韓山郡守)로 좌천되었다. 이어 종묘서영(宗廟署令), 소격서영(昭格署令)을 지낸 뒤 부모 봉양을 위해 임피현령(臨陂縣令)을 지내고, 1511년(중종 6) 수찬(修撰), 응교(應敎)를 거쳐 담양부사로 나갔다. 1516년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장악첨정(掌樂僉正)을 역임하고, 이듬해 순천부사(順天府使), 1519년 선공감정(繕工監正), 1521년 상주와 충주 목사에 이어 사도시부정(司䆃寺副正)이 되었다. 152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서 장원하고 이듬해 나주목사로 좌천되었으며, 1529년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박상은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 낙봉(駱峰) 신광한(申光漢, 1484∼1555),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 1532∼1607) 등과 함께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이후 4가(四家)로 꼽힌다. 또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1515년 박상의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 복위 상소가 강상(綱常)을 바로잡은 충언이었다고 칭찬하였다. 저서로는 '눌재집(訥齋集)'이 있다.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제향되었고, 1688년(숙종 14)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516년 송순은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518년에는 취은(醉隱) 송세림(宋世琳, 1479∼?)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송세림은 1498년(연산군 4) 진사가 되고, 1502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하지만 급제한 직후 상을 당해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벼슬에 오르지 않아서 갑자사화를 면했기 때문에 호를 스스로 '취은'이라고 지었다. 1516년(중종 11)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재직중 방납(防納) 폐단의 제거, 책 인쇄로 인한 과중한 잡세(雜稅) 폐지, 군액(軍額) 충당을 위한 중(僧)의 환속과 절의 소각, 우전입마(郵傳立馬)의 폐단에 대한 개선 등 지방행정제도 개혁안을 상소하여 시행케 하였다.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로 있을 때 병으로 사직한 송세림은 당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패관서 '어민순(禦民楯)'이 있다. 태인의 무성서원(武成書院)에 제향되었다.
2017.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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