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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자기행] 송순의 면앙정을 찾아서 12

林 山 2017. 2. 23. 09:34

담양 면앙정 가는 길


1632년 담양부사 황수(黃瀡)가 지은 '차판상운'의 편액도 걸려 있다. '차판상운'은 '차면앙정운'과 같은 뜻이다. '차판상운' 편액에는 순의 '면앙정원운'에서 차운한 시 3수, 칠언율시 2수, 윤두수의 '차면앙정가운'에서 차운한 오언율시 1수가 판각되어 있다. '차판상운'의 첫 수는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많아서 담양군 윤재득 학예연구사의 도움으로 광주북구문화원역사문화해설사회에서 펴낸 '가사문화권 문화재 소개-제영(題詠)을 중심으로'라는 책을 참고했다.  


황수의 '차판상운' 편액


차판상운(次板上韻)-현판시에서 차운하다(황수)


仙區物色筆摹難(선구물색필모란) 선경의 경치 붓으로 그려내기 어려운데

縹渺危亭聳翠巒(표묘위정용취만) 저 높은 정자는 푸른 산봉우리에 솟았네

雨過前山春漠漠(우과전산춘막막) 비는 앞산을 지나가건만 봄은 아득한데

雲垂平野路漫漫(운수평야로만만) 구름이 들판을 덮으니 길도 아스라하네

梧翁遠訪詩猶在(오옹원방시유재) 오옹은 멀리 찾아와 오히려 시를 남겼고

嶽老新題墨未乾(악로신제묵미건) 동악 선생 제영 먹물은 마르지도 않았네

此庛敎慙卞力退(차자교참변력퇴) 정자에서 조급하게 물러가기가 부끄러워

夕陽空倚此欄干(석양공의선란간) 저물녘 난간에 우두커니 기대어 서 있네


山頭快閣俯長川(산두쾌각부장천) 산마루 시원한 정자에서 긴 내를 굽어보니

地勢遙從古邑前(지세요종고읍전) 지세는 저 먼 고읍으로부터 이어진 거로세

風詠西臨平野闊(풍영서림평야활) 풍영정 서쪽으로 들판 널찍한 데에 임했고

金城東望衆峯連(금성동망중봉련) 금성산 동쪽으로 뭇 봉우리를 바라보는 곳

行人踏過溪橋月(행인답과계교월) 길손들은 시냇가 다리에서 달빛 밟고 가고

棲鳥飛穿岸樹煙(서조비천안수연) 새들은 언덕 저 안개 낀 숲 뚫고 깃드는데

惆悵昔年行樂處(추창석년행락처) 슬프도다 지난 날 선비들 즐겼던 곳이건만

相公遺業屬誰傳(상공유업속수전) 상공의 남기신 업적 누구에게 맡겨 전할까


郊居偏愛一區幽(교거편애일구유) 시골에 사니 그 그윽함 너무 좋아라

務屛來憑曲檻頭(무병래빙곡함두) 일을 물리고 굽은 난간에 몸 기대면

靑鶴歌傳鶯語亂(청학가전앵어란) 청학의 노래에 꾀꼬리까지 재잘대고

蒼髥手植樹陰稠(창염수식수음조) 늙어 심은 나무들 그 그늘도 진하지

雲容羃地濃還淡(운용멱지농환담) 땅 덮은 저 구름은 짙었다 옅어지고

爽氣侵人夏亦秋(상기침입하역추) 서늘함이 엄습해 여름도 가을이건만

昔日歡娛今寂寞(석일환오금적막) 그 옛날 즐기던 곳 지금은 적막하니

老梅疏竹摠含愁(노매소죽총함수) 늙은 매화 성근 대숲도 서글픈 듯해


면앙정과 그 주변의 경치를 묘사한 뒤 세월이 흘러 퇴락한 정자의 모습을 보고 서글픈 소회를 읊고 있다. 황수는 송순이 세상을 떠난 지 49년만인 1632년에 면앙정을 찾아왔으니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였다. 주제는 세월무상, 인생무상이다. 


'오옹(梧翁)'은 윤겸(尹㻩)을 말한 것 같다. 윤겸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렸으며, 20세 전에 이미 시(詩)와 표(表)에 능하여 붓을 들면 저절로 문장을 이루었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여 옳지 않다고 여긴 일은 아무리 고관이라도 타협하지 않았고, 세도가에게 붙어 아부하지도 않았으며, 만년에는 술을 벗삼아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냐다가 일생을 마쳤다. '악노(嶽老)'는 동악(東岳) 이안눌을 가리킨다.  


칠언율시(七言律詩)-황수


歸來南土卜林皐(귀래남토복림고) 남녘으로 돌아와 숲 언덕에 자리 정하고

結搆當年意匠勞(결구당년의장로) 그 당시 정자 지으며 고생 꽤나 했을 터

隔岸暗聞泉響遠(격안암문천향원) 멀리 언덕 너머 샘물소리 어렴풋 들리고

倚天偏覺地形高(의천편각지형고) 알고 보니 하늘에 기댄 듯 지세도 높아라

幽區自是千年祕(유구자시천년비) 오래전부터 숨겨진 깊숙한 지경인데다가

佳標人推一代豪(가표인추일대호) 훌륭한 모습 당대의 으뜸이라 할 만한데

看取壁間留好句(간취벽간류호구) 저 좋은 글귀도 벽 사이에 남은 걸 보니

至今文雅擅風騷(지금문아천풍소) 그 멋스러움 지금껏 최고의 풍류일 거라


면앙정에 걸려 있는 쟁쟁한 시인들이 쓴 시문들의 편액을 바라보면서 주인의 생존시 당대 최고의 풍류를 자랑했을 정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당시 면앙정은 호남 제일 나아가 조선 최고의 가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임고(林皐)'는 장자(莊子)의 '임고행즉(林皐幸卽)'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위가 높아지면 위태로움과 욕됨으로 치욕이 가까우니 '숲이 우거진 언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속세에서 출세하면 위태로움과 욕됨, 그리고 치욕이 가까이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면앙정가운(次俛仰亭歌韻)-면앙정가에서 차운하다(황수)

 

歲久亭猶在(세구정유재) 오랜 세월에도 정자는 오히려 남아

秋深客又來(추심객우래) 가을 깊어지면 길손은 또 찾아오지

菊殘層砌畔(국잔층체반) 층층의 섬돌 가에 국화는 시들었고

荷老小塘隈(하노소당외) 작은 연못 모퉁이 연잎도 쇠했건만

排檻羈襟豁(배함기금활) 난간 기대니 나그네 심정 후련하고

從虛眼力開(종허안력개) 시야는 저 허공까지도 확 트이건만

扶藜人已去(부려인이거) 청려장 짚던 사람은 이미 떠났으니

佳句復誰裁(가구부수재) 아름다운 글귀 누가 다시 지을손가


정자는 유구한데 주인 송순은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이제는 아름다운 시를 지을 사람도 없음을 아쉬워하는 시다. 황수는 이를 서글퍼했음인가! 면왕정에 와서 그는 무려 6수의 시를 지었다.   


칠언율시(七言律詩)-황수


曲檻緗簾面面開(곡함상렴면면개) 굽은 난간 누런 주렴 사면으로 열렸으니

旅遊千里獨登臺(여유천리독등대) 천리 유람하던 길손 홀로 정자 올라본다

人生自是身如寄(인생자시신여기) 인생이란 본디 천지 사이 의탁한 신세요

世事誰知樂極哀(세사수지낙극애) 세상사 즐거움 끝에 슬픔임을 뉘 알리오

擾擾風塵空歲月(요요풍진공세월) 소란스런 풍진 속에 세월만 허비한 채로

茫茫宇宙幾歸來(망망우주기귀래) 아득한 세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던고

深杯取醉歌無等(심배취취가무등) 술 마시고 취한 김에 무등곡을 노래하다

落日還忘馬首廻(낙일환망마수회) 해 지는데 말머리 돌리는 걸 깜빡했구려


崇禎紀元後五年壬申孟秋下澣 本府使 黃瀡(숭정기원후 1632년 음력 7월 하순에 본 부사 황수)


시적 화자는 면앙정에 올라 덧없이 흘러간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그리고, 술에 취해 무등곡을 읊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잊는다. 감상에 젖어 읊은 시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증주인'은 1728년 8월 담양부사로 있던 임광필이 면앙정 주인에게 쓴 헌시이다. 갑신년(1764년) 8월에 편액을 고쳐 달았다고 되어 있다. 이 시는 '면앙집' 7권에 실려 있다. 


임광필의 '증주인' 편액


증주인(贈主人)-주인에게 주다(임광필)


亭號緣何意(정호연하의) 정자 이름은 무슨 인연 뜻할까

浮生俛仰間(부생면앙간) 천지간 떠도는 인생이란 거지

前開萬馬地(전개만마지) 앞에는 너른 땅이 펼쳐져 있고

遙挹幾州山(요읍기주산) 멀리 여러 고을 산을 마주했네

莽闊眞難狀(망활진난상) 넓기는 참 이루 말하기 어렵고

逍遙定不還(소요정불환) 노닐다 돌아가지도 못 했구려

寄言府中老(기언부중노) 들어보소 담양부 노인들이여!

須借片時閑(수차편시한) 조금은 한가해도 되지 않겠소

戊申 八月 本府使 林光弼(1728년 8월 본 부사 임광필) 


시적 화자는 정자 이름의 뜻을 천지간에 떠도는 뜬구름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파에 찌들려 아웅다웅할 필요없이 강호자연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임광필은 사후에 청백리에 천거되었으며, 문학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담양의 구산사(龜山祠)에 배향되었다.


면앙정에는 1737년 윤두수의 고손(高孫) 담양현감 윤세관(尹世觀)이 쓴 '면앙정병서(俛仰亭幷序)' 편액도 있다. 윤세관의 시 2수 가운데 첫 번째 시는 '면앙정원운' 2수의 운자를 차운한 7언율시이고, 두 번째 시는 고조부의 '차면앙정가운'에서 차운해서 지은 오언율시이다. 앞의 시서(詩序)에는 송순과 자신의 고조부인 윤두수와의 인연을 말하면서 면앙정에 오른 소회를 적어두었다. 윤세관은 면앙정에서 고조부의 편액을 발견하고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윤세관의 '면앙정병서' 편액


차면앙정운(次俛仰亭韻)-면앙정원운에서 차운하다(윤세관)


名亭回回好山川(명정회회호산천) 이름난 정자에 주변은 다 좋은 산천이니

吾祖題詩百祀前(오조제시백사전) 내 할아버지 시 읊으신 게 백 년 전인데

漫切人間存沒感(만절인간존몰감) 인간 세상 생사의 감정이 괜히 절절한지

仰瞻楣上珠璣連(앙첨미상주기련) 문미를 바라보니 옥같은 글귀 걸려 있네

荒詞續詠憐花竹(황사속영련화죽) 거친 글이나마 예쁜 꽃대도 이어서 읊고

華搆重新得月煙(화구중신득월연) 멋지게 새 단장하여 달빛과 안개도 얻어

暇日登臨談古事(가일등림담고사) 한가하면 이곳 올라 지난 일 이야기하며

更將餘意後昆傳(갱장여의후곤전) 다시 남은 뜻을 담아 후손에게 전하리라


시적 화자는 면앙정 문미에 걸린 편액들을 바라보면서 100년 전에 이곳에서 시를 읊던 조상을 회상한다. 그리고, 자신도 글을 지어 그 뜻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읊었다.  


'오조(吾祖)'는 윤세관의 고조부 윤두수를 가리킨다. '미(楣)'는 '문미, 처마, 도리, 문 위에 가로 대는 나무'의 뜻이다. 정자의 편액은 대개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가로 댄 나무인 문미에 건다. '주기(珠璣)'는 '주옥(珠玉), 아름다운 문장, 주옥같은 글귀'의 뜻이다.


차면앙정가운(次俛仰亭歌韻)-면앙정가에서 차운하다(윤세관)


吾祖重游地(오조중유지) 우리 선조 자주 노닐던 곳에

遺孫此又來(유손차우래) 후손인 나 여기 또 와보누나

湖山新眼界(호산신안계) 강과 산에 새롭게 눈 떠지고

松竹舊階隈(송죽구계외) 옛 계단 가엔 송죽이 있는데

憑倚華軒豁(빙의화헌활) 화려한 난간 트인 데 기대어

眺望爽氣開(조망상기개) 시원한 기운 열린 곳 보나니

百年流水逝(백년유수서) 인생 백 년이 흘러간 물이라

怊悵短章裁(초창단장재) 울적해 짧막한 시 지어 보네


윤세관은 고조부 윤두수가 자주 노닐던 면앙정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고조부로부터 백 년이란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울적해서 시 한 수 지어본다고 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