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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 규슈(九州) 여행 - 기타큐슈(北九州) 모지코(門司港)

林 山 2018. 3. 6. 15:08

큐슈(九州) 후쿠오카 현(福岡県) 기타큐슈 시(北九州市) 모지 구(門司) 모지코(門司港)을 찾았다. 모지(門司)는 규슈 최북단 키쿠 반도 북서부에 있는 항만 도시다. 칸몬 해협(関門海峡)을 사이에 두고 모지 건너편에는 혼슈(本州) 야마구치 현(山口県) 시모노세키 시(下関市)가 자리잡고 있다. 간몬 해협을 가로질러 칸몬 대교(関門大橋), 칸몬 터널(関門トンネル), 신칸몬 터널(新関門トンネル)이 모지와 시모노세키를 연결한다. 간몬(関門)은 혼슈 시모노세키 시(下関市)의 두 번째 글자인 '간(関)'과 규슈 기타큐슈 시 모지 구(門司区)의 첫 글자인 '몬()'을 합친 것이다.


모지는 1900년대 초반 석탄의 출하와 무역 중계 기지 역할을 하는 항만 도시로서 번창했다. 하지만 1940년대 본토와 규슈를 연결하는 간몬 터널의 개통과 무역항으로의 지위가 저하되면서 점차 쇠퇴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기타큐슈 시와 주민들이 협력을 통해 모지코의 예스러운 모습을 테마로 정해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관광지 조성 사업명이 바로 모지코 레토로(門司港 レトロ)이다.


모지코 지도(출처 네이버 장동현 블로그)


모지코 레토로는 모지 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레토로(レトロ)는 일본식 영어 표현이다. '회고적인, 복고적인' 뜻의 영어 ‘retrospective’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해서 복고풍이다. 모지코 레토로는 혼슈의 시모노세키와 가까워서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모지코 레토로의 주요 볼거리는 모지코 레토로 전망대, 블루 윙 모지(Blue Wing Moji, ブルーウィングもじ), 구 모지 세관, 기타큐슈 시립 국제우호기념도서관(北九州市立国際友好記念図書館), 철도기념관, 모지코 역, 이데미츠 미술관(出光美術館), 맥주공방, 해협 플라자(海峡プラザ), 오르골 박물관 등이 있다.


모지코에서 바라본 간몬 해협 


모지코 앞에는 푸르른 간몬 해협이 펼쳐져 있다. 간몬 해협은 혼슈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시와 규슈의 후쿠오카현 기타큐슈 시 사이의 해협으로 동해(東海)와 세토 내해(瀬戸内海)를 잇는다. 세토 내해는 혼슈와 시코쿠(四國), 규슈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한다.


모지코에서 바라본 혼슈 시모노세키


간몬 해협 건너편 혼슈의 시모노세키 시는 야마구치 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아카마가세키(赤間關), 바칸(馬關繭)으로도 불렸던 시모노세키는 예로부터 간몬 해협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전기에는 시모노세키에 조선 상인들이 거주할 정도로 양국 간의 교역이 활발했다.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시모노세키는 전쟁 물자를 조선으로 실어 나르는 일본의 병참가지 역할을 했다. 조일전쟁 이후에는 포로로 잡혀와 혼슈와 규슈에 흩어져 있던 조선인들을 모아 귀국시키는 거점 역할도 했다. 


1905년 시모노세키는 모지를 잇는 철도와 연락선이 개통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 침략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 항로를 개설했다. 일제시대에는 부관연락선을 관부연락선이라고 했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군인, 노동자, 성노예로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 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일제시대 시모노세키는 조선 침략의 관문이었다. 이후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5년 3월 미군 비행기의 항로 폭격으로 연락선 운항은 중단되었다. 한일 간의 여객선 운항은 해방 이후 국교 수립 때까지 없다가 1964년 1월 아리랑호가 첫 취항한 데 이어 1970년 6월 17일부터 5,000t급인 부관 페리호가 2일에 1번씩 오가고 있다. 시모노세키는 요즘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다.


1940년 모지 항, 고쿠라 항(小倉港), 시모노세키 항(下關港)이 합쳐져 간몬 항(關門港)이 되었다.1942년 모지와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철도용 해저 터널에 이어 1958년에는 자동차와 보행자를 위한 해저 터널이 개통되었다. 1970년대에는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를 잇는 신칸센(新幹線)이 시모노세키를 거쳐 간몬 해협의 해저 터널을 통해 기타큐슈까지 연결되었다. 


간몬 해협 건너편 정면으로 보이는 금색 지붕 건물은 1895년 4월 청(淸)나라 북양대신(北洋大臣) 리훙장(李鴻章, 1823~1901)과 일본 제국 초대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이자 조선통감부(朝鮮統監府)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林利助, 1841~1909)가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 馬關條約)을 체결했던 슌반로(春帆樓)다. 1894~1895년 조선의 지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패한 청나라는 리훙장을 변방의 나라 일본의 시모노세키로 보내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청군은 조직 체계의 전근대성과 지휘관들의 무능으로 인해 국력과 무기 성능면에서 뒤떨어진 일본군에게 치욕적인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강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일본에 온 리훙장은 일본 극우파 고야마 로쿠노스케(小山六之助, 1869~1947)에게 저격을 당해 총알이 얼굴에 박히는 수모를 당했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협상에 나선 리훙장은 일본과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하며, 조선의 자주 독립 체제를 훼손하는 일체의 것, 예를 들면 조선이 청에 납부하는 공헌, 전례 등은 이 이후에 모두 폐지하는 것으로 한다. 청이 관리하고 있는 지방의 주권 및 해당 지방에 있는 모든 성루, 무기 공장 및 관청이 소유한 일체의 물건을 영원히 일본 제국에 양도한다. 청은 군비 배상금으로 순은 2억 냥을 일본 제국에 지불할 것을 약속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1871년 받아내지 못했던 최혜국 대우 조항도 삽입했다. 


리훙장의 저격으로 국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일본은 3억 냥의 배상금을 2억 냥으로 줄여 주었다. 하지만 이 액수는 중국 세수의 2년치 수입, 4년치 일본 예산에 해당하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일본으로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청으로부터 뜯어낸 셈이었다. 일본은 애초에 요구했던 톈진(天津) 할양도 타이완(臺灣) 할양으로 대신하는 합의를 해주었다. 일본이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약소국 조선은 청에서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얻은 막대한 이득을 비밀에 부치고 싶었다. 하지만, 리훙장이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한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불평등 조약임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일본의 세력 확대에 불안해진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의 외교적 압력으로 일본은 랴오둥 반도(遼東半島)를 청에 반환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1904~1905년의 러일전쟁(露日戰爭)에서 승리하자 랴오둥 반도의 뤼순(旅順) 등을 도로 뺏어왔다. 


슌반로 바로 옆 하늘색 지붕 건물이 아카마 신궁이다. 조선 국왕의 명으로 일본의 바쿠후 쇼군(幕府將軍)에게 보낸 공식 외교사절인 통신사(通信使)가 상륙한 곳이 바로 아카마 신궁 앞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통신사는 시모노세키에 모두 16번 들렀다. 조선통신사가 탄 배가 간몬 해협으로 들어오면 일본은 청색, 황색, 홍색 깃발을 단 안내선 100여 척을 보내 호위했다고 한다. 


시모노세키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바칸 마츠리(場間祭り)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도 함께 열린다고 한다.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赤間神宮)에서는 매년 4월 12세기에 이 도시에서 패했던 다이라 씨(平氏) 집안을 추모하는 축제가 열린다. 시모노세키 수족관은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족관으로 유명하다. 


모지코에서 바라본 간몬 대교


모지코에서는 간몬 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1973년에 개통된 간몬 대교는 시모노세키와 기타규슈를 연결하는 길이 1,068m, 폭 26m의 현수교다. 세계에서 34번째로 긴 현수교인 이 다리는 중앙 지간이 712m이다. 1983년 인노시마 대교(因島大橋)가 개통되기 전에는 간몬 대교가 일본 최장의 다리였고, 간몬 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와카토 대교(若戸大橋)가 일본 최장의 다리였다. 간몬 해협은 대형선박이 오가는 중요한 항로이기 때문에 다리에서 해면까지 61m의 높이를 확보하고 있다. 간몬 대교는 간몬 해협을 횡단하는 해저 터널의 산요 본선(山陽本線)과 국도 2호선, 산요 신칸센(山陽新幹線)과 함께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간몬 터널은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해저 터널이다. 1936년에 착공하여 1944년에 개통했으며, 길이는 약 3.5km이다. 1950년대에 원래 있던 철도용 터널 동쪽에 차도 및 인도용 터널이 건설되었다. 신칸몬 터널은 혼슈의 신시모노세키 역(新下関駅)과 규슈의 고쿠라키타 구(小倉北区)에 있는 고쿠라 역(小倉)을 연결하는 산요 신칸센 터널이다. 전체 길이는 18,713m, 해저 구간은 880m이다. 


모지코 제1 정박소와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좌), 블루 윙 모지(중), 구 모지코 세관(우)


모지코 레토로는 모지코 제1 정박소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모지코 레토로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블루 윙 모지다. 블루 윙 모지는 보행자 전용의 아담한 도개교(跳開橋)다. 도개(跳開) 시간은 10:00~10:20, 11:00~11:20, 13:00~13:20, 14:00~14:20, 15:00~15:20, 16:00~16:20 등 하루에 여섯 번 열리고 닫힌다. 도개 각도는 약 60도까지 열린다.


블루 윙 모지 주변은 검푸른 바다와 파란색 다리, 고풍스런 빨간색 건물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다리가 열렸다 닫힌 직후 가장 먼저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는 연인은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는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있어 '연인의 성지(恋人の聖地)'라 불리고 있다.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좌)와 구 모지 세관, 모지코 레토로 전망대, 국제우호기념도서관(우)


모지코 레토로의 랜드마크는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Premier Hotel Mojiko, プレミアホテル門司港)라고 할 수 있다.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를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은 이탈리아 건축계의 거장 알도 로지(Aldo Rossi)라고 한다. 이 호텔은 간몬 해협, 모지코 레토로의 역사적 건축물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블루 윙 모지를 중심으로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 맞은편에 있는 고풍스런 붉은색 두 건물은 구 모지 세관과 국제우호기념도서관이다. 옛날 모지코 번영기 때 세관 청사로 사용됐던 구 모지 세관 건물에는 지금 전시실,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국제우호기념도서관은 모지코 레토로 중앙광장(Mojiko Retro Central Square, 門司港レトロ中央広場)을 사이에 두고 구 모지 세관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   


국제우호기념도서관 바로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모지코 레토로 전망대는 또 하나의 모지코 랜드 마크이다. 전망대에서는 모지코는 물론 간몬 해협과 그 건너편의 시모노세키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주거용 건물이기 때문에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건물 입구 옆에 마련된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은 300엔, 이용 시간은 10:00~22:00시까지다. 


JR모지코 역은 일본 최초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철도역사(鐵道驛舍) 건물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목조 2층 건물인 이 역은 이탈리아에 있는 테르미네 역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1891년 문을 열 당시의 이름은 모지 역이었고, 1901년부터 칸몬연락선이 이곳을 경유해 규슈와 혼슈를 오가며 화물과 여객을 실어날랐다. 지금의 역사는 191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1942년 4월 1일 칸몬 터널을 통해 혼슈와 철로가 직접 연결되는 다이리(大里) 역이 모지 역으로 바뀌면서 이 역은 모지코 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모지코 레토로 안쪽에는 복합 상업 시설인 모지코 해협 플라자가 있다. 해협 플라자 1층에는 모지코 토산품과 해산물, 공예품,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2층에는 오르골 상점과 오르골 박물관을 비롯해서 공예품 상점, 레스토랑 등이 있다.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와 블루 윙 모지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와 블루 윙 모지를 배경으로 필자


모지코 레토로를 한바퀴 돌고 오자 때마침 블루 윙 모지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의 모 방송국에서도 나와 '연인의 성지'를 주제로 도개교가 열리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프리미어 호텔 모지코와 블루 윙 모지를 배경으로 필자도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모지코 맥주공방


모지코 맥주공방 레스토랑 전채


모지코 맥주공방 레스토랑 야키카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블루 윙 모지 바로 옆에 있는 모지코 맥주공방을 찾았다. 모지코 맥주공방 1층 징기스칸에서는 양갈비 메뉴를 맛볼 수 있고, 모지코에서 유명한 야키카레(焼きカレー)를 먹으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야 한다. 3층 레스토랑에서는 야키카레와 함께 수제맥주를 마실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모지코와 간몬 해협, 시모노세키 전망도 매우 좋다. 


야키카레는 한국에서 먹던 카레와는 달리 풍미가 상당히 깊었다. 수제맥주로 입가심을 한 다음 야키카레를 먹으면 좋다. 야키카레는 1950년대 한 찻집에서 남은 카레를 우연히 오븐에 구웠더니 맛과 향이 더 좋아져 메뉴에 추가시켜 판매한 것이 그 시초다. 야키카레의 인기가 높아지자 모지코 곳곳에 야키카레 전문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2018.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