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현((福岡縣) 일대를 돌아보고 저녁 때쯤 오이타 현(大分縣) 벳푸 시(別府市)로 들어왔다.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벳푸 만을 둘러싼 언덕과 산, 시내 곳곳에서 하얀 수증기가 치솟는 광경이 이색적이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를 자극하는 유황 냄새가 온천의 도시에 왔음을 실감케 해 준다.
벳푸는 오이타 현 동부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서쪽에는 다카사키야마(高崎山)에서 키비야마(吉備山), 고히라야마(向平山), 후나바루야마(船原山), 츠루미다케(鶴見岳), 가란다케(伽藍岳), 네코가이와야마(猫が岩山)로 이어지는 산맥이 벳푸 시를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다. 이 산맥에서 발원하는 아사미 천, 하루키 천, 사카이 천 등이 동쪽의 벳푸 만으로 흘러든다. 계곡 입구에는 하천에 의해 선상지가 형성되어 있고, 하류부에는 충적평야가 있다. 벳푸 시의 서부에는 오이타 백경의 하나인 유후 강 협곡, 아소쿠주 국립공원(阿蘇くじゅう国立公園) 등이 있다.
벳푸 료치쿠 벳테이
료치쿠 벳테이에서 바라본 벳푸 만
일본에서의 첫날 밤은 벳푸 시 간카이지(観海寺) 3번지 스기노이 호텔(杉乃井ホテル) 근처에 있는 콘도형 료칸(旅館) 료치쿠 벳테이(美湯の宿 両築別邸)에서 묵게 되었다. 료칸은 에도시대(1603~1868)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일본의 숙박 시설이다. 보통 일본식 정원이 어우러져 있으며, 식사는 코스별로 나온다. 료칸에는 다다미가 깔려있는 방, 공동 욕실, 방문객들이 유카타를 입을 수 있는 개인공간 등이 갖춰져 있다.
벳푸 야경
벳푸 야경
료치쿠 벳테이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객실 창문을 통해서 벳푸 시내와 벳푸 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실내 대중탕과 실외 노천탕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중탕에서 노천탕으로 가려면 옷을 입고 한 층을 더 올라가야만 한다. 료치쿠 벳테이에서는 결국 노천탕을 가보지도 못했다. 자유여행으로 온다면 료치쿠 벳테이 같은 콘도형 료칸 말고 전통적인 료칸에서 묵고 싶다.
료치쿠 벳테이 레스토랑의 저녁 화식
료치쿠 벳테이 레스토랑 아침 뷔페
유카타 차림
료치쿠 벳테이 레스토랑에서 일본식 정찬인 와쇼쿠(和食)로 저녁을 먹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음식을 가리켜 일식(日食)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와쇼쿠라고 한다. 4~5세기 경 일본에는 야마토(大和) 정권이 들어섰다. 이때부터 화(和)는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와쇼쿠는 생선과 어묵 요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요즘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낫또((納豆)도 나왔다.
일본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 3가지가 있다. 바로 낫또, 우유, 요거트다. 이 3가지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아침 식사 때는 낫또, 우유, 요거트를 실컷 먹었다. 객실에는 녹차와 다기 세트가 비치되어 있어 느긋하게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유카타(浴衣) 차림으로 벳푸 만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료치쿠 벳테이 안에서는 유카타 차림으로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
벳푸 스기노이 호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벳푸의 밤거리 산책을 나갔다. 산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좁은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만난 스기노이 호텔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스기노이 호텔은 벳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3성급 온천 호텔이다.
벳푸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가이드가 들려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한국인을 제외하고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없단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관심도 없고 나라 이름도 아직 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최근 한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하면서 어글리 코리안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객실에서 김치를 먹다가 적발되면 벌금 100만원을 부과하는 호텔도 있다. 여행지에서는 중국인들만큼이나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일본을 축소지향형의 민족이라고 단정한 사람이 있다. 내가 볼 때 그 사람은 일본의 한 단면만 보고 민족주의에 도취한 나머지 그런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 전국 각지의 해협을 가로지르는 교량, 터널만 보더라도 그런 말은 못할 거다. 일본은 1940년대 이미 항공모함을 보유했던 나라다.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던 나라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맞짱을 떴던 나라다.
일본은 정부, 자본가, 천황가는 부자지만 국민 대부분은 가난한 나라다. 작은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서민들 얘기다. 일본인들이 소형차를 더 좋아한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다. 일본인들도 돈 많은 사람들은 롤스로이스, 벤츠, BMW, 아우디를 탄다. 서민들은 그냥 토요타 탄다. 차고지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타는 차가 바로 큐브 같은 노란 번호판을 단 소형차다.
가이드는 또 '일본인들이 소식을 좋아한다고? 천만에 서민들은 돈이 없어 소식을 할 뿐이다. 돈 있으면 일본인도 배부르게 먹는다. 돈이 없는 서민들은 절약해야 한다. 그래서 소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면서 '일본의 물가가 높다고? 천만에! 한국이 일본의 물가를 앞지른 지 이미 오래다. 지금은 한국 물가가 일본의 1.5배쯤 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이 250만 명,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750만 명이다. 한국 물가가 너무 비싸서 이제 일본인들은 한국에 잘 안 온다.'고 말했다. 한국 물가가 일본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오리지날이나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욘사마(勇さま, 배용준)처럼 필이 꽂히면 빚을 내서라도 찾아가는 것이다. 춘천의 명물 닭갈비의 맛이 변한 것도 욘사마의 흔적을 찾아 오는 일본인들 때문이다. 백제를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부여를 찾아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이드는 이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제주도 잘 안 간다. 왜? 일본 여행이 오히려 더 저렴하니까. 제주도 대신 일본에 와서 스시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하면서 '평창 동계 올림픽이 바가지 요금 때문에 국제적으로 말이 많다. 한 일본인이 동계 올림픽을 직관하려고 평창에 보름 간 방을 빌리는데 천만 원을 부르더란다. 민박도 평소 몇 배의 바가지 요금을 부르는 건 예사라고 한다. 실화다. 평창 올림픽 바가지 올림픽이라고 국제적 소문 다 났다. 일본 방송에까지 보도되었다.'라면서 안타까워했다.
내가 아는 한 일본은에서는 적어도 바가지 요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최근 일본 자본이 부산에 호텔을 열었다. 부산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숙박업소들이 따따블을 부를 때도 이 호텔은 조식을 제공하고도 놀랄만큼 가격이 착하다고 들었다. 팁 문화가 거의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월급만으로도 충분히 노동의 댓가를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퇴실할 때 팁을 두면 분실물 처리를 한다.
벳푸 거리의 생맥주집
골목길을 지나다가 선거 벽보를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확 띄는 벽보가 하나 있었다. 놀랍게도 일본 공산당 후보의 벽보였다. 한국 같으면 빨갱이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과 한국의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다. 일본은 엄연히 공산당이 허용되는 나라다.
대로변으로 나오자 소프트 뱅크 맞은편에 생맥주집이 있었다. 맥주 한 잔 생각이 나서 들어가려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아뿔싸 엔화가 한푼도 없었다. 엔화를 가져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신용 카드라도 사용할까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카드 단말기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포기했다. 쓸쓸히 발길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우측 통행을 하면서 되밟아 올라오는데 갑자기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가 떠올랐다. 일본은 차가 좌측통행이니 사람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도 같다. 그런데 츠키야마 아키히로 정권은 차도 사람도 우측통행이라 사람이 불안을 느끼기 십상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어느 날 느닷없이 우측통행을 실시했는데,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히지 않고 시키는 대로 군소리없이 따르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지금 노예교육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반민주적인 사람은 한국 대통령을 시키면 안된다.
길가에 내놓은 화분에서 홍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지금 일본은 동백꽃이 한창이다. 이제 곧 매화가 활짝 피어날 것이다.
벳푸 거리의 맨홀 뚜껑
벳푸 거리의 맨홀 뚜껑
길을 걸으면서 놀란 것이 또 하나 있다. 도로 한가운데 아름답게 디자인된 맨홀 뚜껑들이 도로면과 수평이 잘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맨홀 뚜껑은 도로면에서 튀어나와 있거나 움푹 들어가 있는 것들이 많아서 교통사고의 위험마저 있다. 맨홀 뚜껑 뿐만 아니다. 오늘 하루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노면이 울퉁불퉁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노면이 그만큼 고르다는 증거다. 지난 번에 일본에 왔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번에도 하루종일 자동차 경적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탄 중형 버스 기사도 경적을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또 정신적 여유일 것이다.
201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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