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ICN)에서 비행기를 타면 일본(日本)의 기타큐슈(北九州) 공항까지 약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기타큐슈 공항은 후쿠오카 현(福岡県) 동쪽, 세토 내해(瀬戸内海, せとないかい)의 서쪽 끝 스오나다(周防灘) 해안에서 3km 떨어진 인공섬에 있다.
일본 지도(출처 네이버 hara1234567)
규슈(九州)는 서쪽으로 동중국해, 북서쪽으로 한반도와의 사이에 대한 해협, 북쪽으로 간몬 해협(関門海峡), 동쪽과 남쪽으로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다. 간몬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혼슈(本州)와 마주하고 있다. 해협을 가로지르는 간몬 교(関門橋)와 2개의 산요 신칸센(山陽新幹線), 2개의 간몬 터널은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北九州市)와 혼슈의 야마구치 현(山口県) 시모노세키 시(下關市)를 연결한다. '9개의 지방'을 뜻하는 규슈라는 지명은 봉건시대의 토지분할에서 유래된 말이다.
규슈 지도(출처 네이버 hara1234567)
규슈는 열대식물과 석탄으로 유명하며 남쪽 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를 띤다. 규슈에는 세계 최대의 분화구가 있는 활화산 아소 산(阿蘇山)을 비롯해 아소, 기리시마야쿠(霧島屋久), 운젠아마쿠사(雲仙天草) 국립공원이 있다. 벳푸(別府)는 온천휴양지로 유명하다.
규슈는 후쿠오카, 가고시마(鹿兒島),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사가(佐賀), 오키나와(沖縄) 등 8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도시로는 종합 공업도시인 기타큐슈 시와 상업도시인 후쿠오카 시, 나가사키 시 등이 있다.
인천 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에서 기타큐슈 공항 간 대한민국 국적기 진에어(Jin Air)가 취항하고 있다.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출자한 저가 항공사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자마자 한잠 푹 자고 일어나면 기타큐슈 공항에 도착해 있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다.
기타큐슈는 1963년 와카마쓰(若松), 야와타(八幡), 도바타(戶畑), 고쿠라(小倉), 모지(門司) 등의 도시들이 합병되어 생겨났다. 기타큐슈는 일본의 제조업 중심지 중 하나로 특히 중공업이 발전하였다. 공업 중심지인 야와타에서는 주로 철강, 중화학 제품, 시멘트, 유리 등을 생산한다. 와카마쓰는 금속 제품, 기계, 선박, 화학 제품 등을 생산하며, 규슈 북부 지방에서 소비하는 석탄의 주요 수입항이기도 하다.
북부 규슈 지도(출처 네이버 hara1234567)
고쿠라 지도(출처 다음백과)
도바타는 일본 서부의 주요 원양어업기지 중 하나이며, 면직물의 대량 생산지일 뿐만 아니라 금속공장도 많이 있다. 예전에 군수산업이 발전하였던 고쿠라는 철강 제품과 기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주요 항만시설이 있는 모지는 석탄 수송항이자 어업항으로 석유 저장시설도 갖추고 있다. 공업지역 한복판에는 와카토(若戶) 대교가 놓여 있다.
고쿠라 성 천수각
고쿠라 성(小倉城)은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 고쿠라키타 구(小倉北區) 무라사키 강(紫川江) 하구 서안의 언덕에 축성된 제곽식(梯郭式) 평성(平城)이다. 혼마루(本丸)를 중심으로 남쪽에 마쓰노마루(松の丸), 북쪽에 기타노마루(北の丸)를 두었으며, 그 주위를 니노마루(二の丸)와 산노마루(三の丸)가 둘러싼 성이다. 건물은 대천수각(大天守閣)과 소천수각(小天守閣) 각 1기, 단층 망루(望樓) 117기, 2층 망루 16기를 두었고, 성문 12곳과 총안(銃眼)인 사마(さま)가 3271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성의 동쪽으로 흐르는 무라사키 강을 천연의 해자(垓字)로 삼았다. 현재 석벽의 일부와 해자가 남아 있으며, 천수각과 망루, 정원과 무가저택(武家屋敷, ぶけやしき)이 재건되어 있다.
고쿠라 성은 에도(江戶, 東京 의 옛 이름) 시대에 고쿠라 번(小倉藩)의 번청(藩廳)으로 사용되었다. 고쿠라 성을 가쓰야마 성(勝山城), 시즈키 성(指月城), 유킨 성(湧金城), 고이노 성(鯉ノ城)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연간(1264년 ~ 1274년)에 오가타 다이젠노스케(緒方大膳亮)가 이 지역의 영주로 있을 때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스오(周防), 나가토(長門)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한 오우치(大内) 가문의 소유가 되었고, 히젠(肥前)의 쇼니(少弐) 가문과 분고(豊後)의 오토모(大友) 가문의 삼파전이 벌어져 영주가 차례로 바뀌었다.
고쿠라 성 천수각
1569년 주고쿠(中国) 지방의 패권을 장악한 모리(毛利) 가문이 규슈 북부로 진출해 지금의 고쿠라 성을 쌓아 지배했다. 규슈에서 모리 가문이 물러가자, 오토모 가문의 가신 다카하시 아키타네(高橋鑑種)가 성주로 부임해 지배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가 규슈를 평정하자, 그의 가신 모리 가쓰노부(毛利勝信, ?~1611)가 부젠 국(豊前国) 고쿠라를 영지로 받아 입성했다. 모리 가쓰노부는 영지 일부를 아들 모리 가쓰나가(毛利勝永)에게 주었다.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關ケ原戰鬪)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지막 충신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3~1600)를 지지하는 서군에 가담한 모리 가문은 영지를 몰수당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를 지지하는 동군에 가담해 공을 세운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 1563~1645)가 부젠 국 고쿠라 번 40만 석을 영지로 받아 나카쓰 성(中津城)에 입성하지만, 1602년부터 7년에 걸쳐 고쿠라 성을 개축한 뒤 거처를 옮겼다. 이 시기 성하(城下) 마을도 정비하였고, 무라사키 강을 양분해 서쪽에는 사찰, 동쪽에는 상공업자와 무사마을을 조성했다.
고쿠라 성 천수각 입구
1632년 2대 번주 호소카와 다다토시(細川忠利)가 히고 국(肥後国) 구마모토 번(熊本藩)으로 옮겨 가자, 하리마 국(播磨國) 아카시 번(明石藩)에서 오가사와라 다다자네(小笠原忠真, 1596~1667)가 15만 석을 영지로 받아 들어왔다. 이후 메이지 유신기(明治維新期)까지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오사가와라 가문 10대의 거성이었다.
고쿠라 성 해자
오가사와라 가문이 번주였을 때 고쿠라 지역은 규슈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의 기점이 되었고, 5대 오가사와라 다다미쓰(小笠原忠苗)가 번주였을 때에는 성 주변에 다이묘 정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1837년 화재로 성이 전소되어 2년 뒤인 1839년에 다시 세웠지만, 천수각은 복원되지 않았다.
고쿠라 성 서문
1866년 제2차 조슈 정벌(長州征討)에서 고쿠라 번은 막부측에 가담해 조슈 번(長州藩)과 싸웠으나 조슈 번의 공세로 고쿠라 성으로 퇴각했다. 음력 8월 1일에는 고쿠라 성에 불을 지른 뒤, 번주는 구마모토 성(熊本城)으로 피신했다. 1867년 고쿠라 번은 조슈 번과의 화친이 성립되자 가와라(香春)로 번청을 옮겨 갔다.
고쿠라 성 모형도
고쿠라 성 모형도
1873년(메이지 6년) 구마모토 진다이(熊本鎮台) 산하 고쿠라 분영소가 설치되자 성터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넘어간 고쿠라 성은 1957년(쇼와 32년) 일본에 귀속되었다. 1959년(쇼와 34년)에는 천수각을 복원했고, 1990년(헤이세이 2년)에는 천수각 내부를 전면 개수하였다. 1998년(헤세 10년)에는 고쿠라 성 정원과 추리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 1909~1992) 기념관이 개관했다. 2004년(헤이세이 16년) 외측 해자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우네보리(畝堀)와 쇼지보리(障子堀)가 발견되었고, 2007년(헤세 19년)에는 지붕의 기와 약 9만 장을 교체하였다.
사진 속의 장면은 호소카와 다다오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인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를 위해 성대한 미사를 열었을 때의 광경을 재현한 것이다. 그녀는 세키가하라 전투 때 자결했다. 사실은 교리상 자결할 수 없어 가신의 손에 죽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 초상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는 나가오카 다다오키(長岡忠興)라고도 부른다. 센고쿠 시대(戰國時代)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大名)이다. 단고 국(丹後国) 미야즈 성주(宮津城主)를 거쳤으며 부젠 고쿠라 번(豊前小倉藩)의 초대 번주였다. 그는 조정 문화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무가 문화의 전통을 집대성한 부친 호소카와 유사이(細川幽齋)만큼이나 뛰어난 학식으로 유명하며, 차를 수행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의 일곱 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도의 유파인 산사이류(三斎流)의 개조(開祖)이다. 산사이(三斎)는 다다오키의 호다.
친부(親父)는 호소카와 유사이(후지타카, 藤孝), 양부(養父)는 오슈 호소카와 가문(奥州細川家)의 호소카와 데루쓰네(細川輝経)이며, 정실은 호소카와 가라샤로 알려진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 다마코(玉子 또는 珠子)였다. 통칭은 요이치로(与一郎)이다. 다다오키(忠興)의 '다다(忠)'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의 적자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의 이름 글자 중 하나인 '다다'(忠)를 물려받은 것이다. 쇼군(將軍)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1537~1579)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추방 당한 후에는 나가오카 씨(長岡氏)를 칭하였으며,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은 하시바 씨(羽柴氏)를 칭하기도 하였지만, 오사카 전투(大坂の陣) 이후에는 호소카와 씨로 돌아왔다.
아시카가 요시아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당대의 실력자를 섬기며 현대까지 이어지는 히고 호소카와 가문(肥後細川家)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 바로 호소카와 다다오키다.
무카에토라(迎え虎, welcoming tiger) 일명 '맞이하는 호랑이'
천수각 안에는 무카에토라(迎え虎, welcoming tiger) 일명 '맞이하는 호랑이' 암수 그림 두 장이 걸려 있다. 고쿠라 성이 두 번째로 불에 탄 1866년(丙寅年)이 호랑이 해였다는 이유로 1959년 성을 재건할 때 암수 호랑이 그림을 그려서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쿠라 성 마스코트도 '토랏챠'이다.
고쿠라 성 북쪽 전망
고쿠라 성 맨 꼭대기 층은 전망이 매우 좋다. 성 북쪽으로 보이는 노란색 벽, 빨간색 지붕의 건물은 쇼핑몰 '리버워크 기타큐슈(River Walk Kitakyushu)'다. 노란색 건물 바로 앞 기와지붕 건물은 야사카 신사(八板神社)다.
고쿠라 성 남쪽 전망
사진 왼쪽의 전봇대 좌측에 산봉우리인 듯 아닌 듯한 밋밋한 봉우리가 히라오다이(平尾台), 정면 건물의 지붕 위로 살짝 머리만 내민 산이 후쿠치 산(福智山), 오른쪽의 타워 건물 우측에 있는 산이 사라쿠라 산(皿倉山)이다. 천수각에서 하늘색 지붕의 기타큐슈 시립 중앙도서관(北九州市中央図書館), 문학관에 이르는 길이 '역사의 길'이다. 기타큐슈 중앙도서관은 사토 신스케(佐藤信介) 감독의 '도서관 전쟁(図書館戦争, Library Wars, 2013)'을 촬영한 현장이다.
'역사의 길' 바로 옆에 지붕만 보이는 건물은 기타큐슈 시청, 그 앞 잔디광장(가쓰야마 공원, 勝山公園) 건너편 건물, 그러니까 전봇대 바로 왼쪽 건물이 고쿠라기타구 청사다. 정면 오른쪽으로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清張) 기념관이 지붕만 보인다. 가쓰야마 공원 동쪽으로는 무라사키 강이 흐른다.
고쿠라 성 서쪽 전망
맨 뒤로 보이는 산은 이시미네 산(石峰山)과 다카토 산(高塔山)이다. 사진상으로는 두 산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바로 왼쪽 고층 건물이 후쿠오카 현 고쿠라기타 경찰서다. 정면에는 기타큐슈 시립 시에이 중학교(思永中学校)가 있다.
고쿠라 성 동쪽 전망
고풍스런 고쿠라 성 정원 뒤로 무라사키 강이 흐른다. 정원 바로 오른쪽 고층 건물은 기타큐슈 시청사, 무라사키 강 건너편 고층 건물은 크라운 팰리스 고쿠라 호텔이다. 정원 정면 뒤, 강 건너편 고동색 건물은 이즈츠야 백화점(井筒屋百貨店)이고, 그 오른쪽 살색 건물이 무라사키 쇼핑몰이다. 이즈츠야 백화점 뒤로 보이는 산이 도노우에 산(戶之上山), 무라사키 쇼핑몰과 크라운 팰리스 고쿠라 호텔 사이로 보이는 산이 고몬지산(古文字山), 크라운 팰리스 고쿠라 호텔이 가리고 있는 산이 아다치(足立山)이다.
201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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