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謹弔]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며

林 山 2019. 1. 31. 11:47

제국주의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니가 2019년 1월 28일 한많은 이승의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 여행을 떠났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현재 생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1372차 수요집회장에 놓인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출처 뉴시스)


김복동 할머니는 1940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잡혀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지로 끌려다니다가 22살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평화인권운동에 투신한 김 할머니는 1992년 일본이 성노예 강제 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용감하게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1993년 UN 인권위원회에 참석하여 세계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고,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도 참석해 일본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을 알리는데 힘썼다. 2018년 9월에는 휠체어를 탄 채 국정농단의 주범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졸속 합의로 만든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에만 그치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전세계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김 할머니의 이러한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도록 이끌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서 김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도 2015년 12월 10일 김 할머니에게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끝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한많은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 요구는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충분한 배상을 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들먹이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철저하게 무시했던 정치인들은 머리 숙이고 반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성노예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할 것이다.


2019.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