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진격해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내라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韓國基督敎總聯合會, Christian Council of Korea,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전광훈 목사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사회 각계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한기총 내부에서도 일부 소속 교회 목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총 그들은 누구인가? 한기총은 1989년 설립되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의 여러 종파들 중 일부 종파가 모인 연합 단체였던 한기총은 마치 한국의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활동해 왔다. 하지만 한기총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가 부여한 대표성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 단체의 뿌리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한기총은 독재정권이나 부패정권이 국민들의 저항을 받을 때마다 기도회라는 명목으로 집회를 열어 부패, 독재 정권을 비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기총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재자 박정희는 대통령직을 3번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3선 개헌'을 추진하고 있었다. 1962년까지만 하더라도 제3공화국 헌법은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재자 박정희는 1969년 종신집권을 기도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 했던 것이다. ‘3선 개헌'안은 1972년 한국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라 불리는 '유신체제'와 더불어 박정희의 종신집권 토대가 되는 사건이었다. 한기총은 바로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을 찬성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개신교는 친일행적으로 얼룩진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일본명 하리하라 쥬산, 梁原柱三, 조선성서회 행정총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 목사는 1936년 1월 29일 조선총독부에서 신사 참배에 순응하겠다고 선언하고, 6월에는 신사참배에 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장로회의는 1937년 기독교보에 '기독교인은 여력을 다해 일본 황실을 받들 것이며, 황은(皇恩)을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이며, 국운을 융성하게 하며, 총후(銃後) 만전을 도모하여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하라!'는 사설을 실은 바 있다.
1937년 각도 순회시국강연에 나선 유형기(柳瀅基, 일본명 柳川瀅基,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 윤치호(尹致昊, 일본명 이토지코, 伊東致昊,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 박희도(朴熙道,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받음), 차재명(車載明,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목사 등은 황국신민으로 부일협력할 것을 주장했다.
1938년 2월 9일 평북노회는 '신사 참배는 종교가 아니고 (일본)국가 의식임을 인정한다'고 결의했고, 4월 25일에는 감리교 유형기 목사를 비롯하여 각 교단의 대표들이 모여서 신사참배와 총후 보국주간 행사에 모두 참가할 것을 결의하고 '조선기독교는 일본적 기독교에 입각해 황도(皇道) 정신을 발휘하고 선양하자.'는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6월 8일 제32회 전북노회 회의는 신사 참배를 결의했다. 9월 9일 평양 서문밖예배당에서 개최된 장로교 제27차 총회(총회장 홍택기 목사, 洪澤麒,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도 자발적으로 신사 참배를 결의했다.
10월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일본을 위한 전쟁협력 강도(講道)에는 정춘수(鄭春洙, 조선감리교 총감독,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 차재명, 박연서(朴淵瑞, 일본명 보쿠모토 엔쯔이, 朴本淵瑞,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 이동욱(李東旭, 친일반민족행위로 반민특위에 불구속 수사받음), 홍병선(洪秉琁,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 목사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1939년 열린 장로교 제28차 총회에서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예수교 장로회 연맹'을 조직했다.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도 신사 참배를 결의했다.
1941년 12월 20일 반도호텔에서 박희도 목사의 사회로 열린 '미, 영 타도 좌담회'에는 윤치영(尹致暎, 중앙 기독교 청년회 부총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2010년 건국포장 서훈 취소) 목사, 백낙준(일본명 시라하라 라쿠준, 白原樂濬, 조선야소교서회 편집총무,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에 포함) 목사, 최태용(崔泰瑢, 복음교회 감독,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글 발표) 목사, 윤일선(尹日善, 세브란스의전 교수) 목사, 전필순(全弼淳, 일본명 平康米洲, 조선장로교회 부총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 목사, 정춘수 목사, 양주삼 목사 등 15명이 참석하였다. 1942년 10월 16일 시작된 평양 서문밖교회당에서 모인 조선예수교장로회 제31회 총회에서는 17일 오전 9시 회원 일동이 평양 신사에 참배하고 국방헌금을 했다.
친일 기독교지도자들은 1943년 11월에 징병과 학병의 출정독려차 조선 각도에 유세를 다니고자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을 조직하고, '조선전시종교보국회'를 조직하여 감리교의 갈홍기(葛弘基, 일본명 가츠라기 고우키, 葛城弘基,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 장로교의 채필근(蔡弼近, 일본명 佐川弼近,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 천주교의 김한수 등을 유세에 앞장세웠다. 1943년 12월 5일 백낙준 목사는 미국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매일신보에 기고했다. 백낙준 목사는 해방 후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과 대한소년단 총재, 이승만 독재정권의 문교부 장관, 기독교청년회(YMCA) 재단이사장, 대한교육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944년 3월 3일 감리교 교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애국기 헌납 및 교회 병합 실시에 관한 건'을 통과시켜 교회를 통폐합하여 일본을 위해 전쟁물자를 낼 것을 결의했다.
이랬던 한국의 교회는 해방 이후 신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등 급성장을 거듭했다. 왜일까? 정치꾼들에게 한국 교회는 그야말로 이용 가치가 무한한 곳이었다. 교회는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반공'을 앞세웠고, 정치꾼들은 교회를 이용하기 위해 친일민족반역 행위를 눈감아 주었다. 정치꾼들은 응집력이 강한 표심을 가진 개신교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제를 위한 신사 참배, 징병 징용 독려, 국방헌금 등 친일민족반역 행위에 대해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던 교회의 정치목사들은 박정희의 종신집권 기도에 부응하여 '반공'을 위해 ‘3선개헌’에 힘을 실어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3선 개헌'을 지지한 기독교 종파들이 모여 훗날 한기총이 된 것이다. 정치목사들의 '3선 개헌' 찬성은 한국형 ‘정교유착’(政敎癒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한기총의 어두운 역사를 알면 이들이 왜 지금까지 독재자 박정희와 국정농단자 박근혜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극기를 휘날리는지 알 수 있다.
한기총과 같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성경조차도 잘못 이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오역했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복종을 강요할 때 주로 사용하는 구절은 사도 바울이 쓴 편지인 '로마서' 13장 1~2절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다.
'로마서' 13장 1~2절은 역대 전제왕조정권이나 독재정권들이 자신들의 집권 합리화를 위해 이용되어 왔다. 이 구절은 고대 로마 황제나 중세의 왕권신수설을 위해서 오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 독일의 히틀러나 한국의 박정희도 독재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집권하고 난 뒤 군사독재정권의 정당성을 부여 받고자 한경직, 조향록 목사 등 한국 교회의 대표자들을 종용하여 사용했던 성경 구절도 바로 '로마서' 13장 1~2절이다.
하지만 '로마서' 13장 1~2절은 국가 권력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는 기원 후 5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이 활동하던 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로마 황제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로마 황제의 권세는 황제 스스로가 갖는 권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는 모든 권력의 주체가 로마 황제가 아니라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로마 황제도 하나님의 뜻(백성의 뜻)에 어긋나면 내치거나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로마 제국, 로마 황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로마서' 13장은 권력자들에게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갈한 것이다. 로마 황제든, 히틀러든,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이들이 가진 권력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相對的)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도 '스스로 권세 있는 자로 여기는 지도자의 태도는 신을 조롱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본회퍼가 절대권력자 히틀러와 그를 우상화하려 했던 나치정권 및 독일의 국가교회에 저항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회퍼 등 수많은 신학자들이 불순한 목적을 위해 성경을 오용하고 수단화했던 것과 불합리한 권력에 대한 '저항'에 대해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장기적인 폭정이 계속된다면 폭군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 말했고, 16세기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도 '기독교 강요'에서 '통치자가 폭군 노릇을 하면 국가의 고위 당직자들이 그 폭군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대표적인 영국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도 '국가가 하나님이 명하는 것을 금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로마서' 13장은 권세를 가진 이들이 권력을 사용함에 있어 불합리할 경우 통치의 정당성은 소멸되고 국민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목사들은 의도적으로 '로마서' 13장을 오용했다. 이는 실정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지만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세계가 냉전시대로 들어가자 그 이념대립의 최대피해국은 바로 한반도였다. 해방은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 전쟁이 계속되어 마침내는 한국전쟁까지 발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반도는 불행하게도 국가를 배신한 친일민족반역자들을 청산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친일 세력은 재빨리 미 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에 붙어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적대감에 사로잡힌 군중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활을 걸고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으면서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친일파들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구호를 전파하며 군중몰이를 했다.
이념 대립과 갈등의 신호탄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46년 미국의 위스콘신 주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요셉 메카시(Joseph McCarthy)는 금품 수수 등 각종 부정부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공산주의 혐오 사상이었다. 그는 증거도 없이 소련 첩자들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미국인들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1950년 매카시는 공화당 당대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범죄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교활한 수법으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한 메카시는 1950년부터 약 5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을 주도하면서 수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꾼들과 정치목사들에게 매카시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스승이었다. 이들은 매카시 수법을 그대로 한반도에 도입했다. 부패한 정치꾼들과 정치목사들의 '정교유착'은 극심한 이념 대립의 광풍을 몰아오면서 한반도를 암흑시대로 몰아넣었다. 매카시즘(McCarthyism)은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역대 정권의 부정부패를 덮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승만을 비롯해서 박정희, 전두환 등 불합리하고 부정한 역대 독재정권들은 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대세력을 '공산당'이나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던 것이다. 이들 역대 독재정권 하에서 무고한 많은 이들이 악랄한 한국판 매카시즘 '반공'에 희생되었다.
과거 '빨갱이 몰이', '공산당 몰이'로 벌어졌던 사건들이 대부분 조작으로 밝혀져 무죄 처리가 되었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매카시즘'이 부패한 미국 정치인이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고안한 술수였다면, 한국판 매카시즘 '반공'은 한국의 부패한 정치꾼과 정치목사들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고안한 술수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반공'은 교회의 친일 행적을 덮기 위한 수단이었고, 정치적 비호 아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방패막이였다.
한기총을 비롯하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자칭 보수단체들이 무분별하게 정치적 반대자들을 '종북좌파', '빨갱이', '공산당'으로 군중몰이하는 모습에서 과거 메카시즘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게 21세기 오늘을 사는 대힌민국의 실상이다.
2019. 6. 9
'시사 이슈 화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송인 김제동이 좌파라고? (0) | 2019.06.14 |
---|---|
홍콩 시민들은 왜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 나섰는가! (0) | 2019.06.13 |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그는 누구인가? (0) | 2019.06.07 |
5.18 광주민중항쟁 제39주년을 맞이하여 (0) | 2019.05.18 |
5.16 군사반란 58주년을 맞아 (0) | 2019.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