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라이키피아 국립공원 내 올-페제타(Ol-Pejeta) 보호구역에서 수단(Sudan)이라는 이름을 가진 늙은 북부흰코뿔소, 마지막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가 죽어가고 있다. 1980년 체코 동물원에서 태어난 수단은 멸종 위기에 처한 북부흰코뿔소 개체 수 보존을 위해 2009년 12월 다른 세 마리와 함께 케냐로 옮겨져 보호를 받으며 지내왔다. 그러나 45세 고령에 접어든 수단은 근육과 뼈가 약화되고, 피부에 상처가 발생하는 등 합병증으로 큰 고통을 겪어왔다. 다큐 '마지막 코뿔소'는 바로 수단에 대한 이야기다.
유일한 수컷 북부흰코뿔소였던 수단의 생전 모습
수단은 그동안 올-페제타에서 그의 딸인 나진(Najin), 나진의 딸인 파투(Fatu)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은 죽은 엄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다. 그러나 이들 두 마리의 암컷은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따라 올-페제타 보호구역에서는 수단으로부터 유전물질을 채취해 놓았다. 환경단체 ‘헬핑 라이노스(Helping Rhinos)’에서는 과학자들과 함께 체외 수정(vitro fertilization)을 통해 나진과 파투로부터 새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체외 수정이 실패하면 마지막으로 유전공학을 이용해 북부흰코뿔소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전공학은 동물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과학자들은 유전공학을 이용해 멸종한 동물 복원을 시도해왔다. 무분별한 밀렵으로 에콰도르 칼라파고스 섬에서 멸종한 플로레이나 거북(Floreana tortoise)도 유전공학의 도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1985년 남아프리카 동부에서 100여 마리의 남부흰코뿔소가 발견되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뿔을 채취하기 위한 무분별한 밀렵으로 남부흰코뿔소가 멸종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후 개체 증식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 남부흰코뿔소는 2만여 마리로 늘어났다. 북부흰코뿔소도 밀렵꾼에 의해 멸종 위기에 빠졌다. 과학자들은 유전공학을 통해 북부흰코뿔소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코뿔소는 현재 매우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1900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아시아에 살던 코뿔소는 50만 마리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코뿔소는 5종밖에 없다. 남아 있는 종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자바 코뿔소(Javan rhinos)와 수마트라 코뿔소(Sumatran rhinos)는 멸종 직전이다. 자바 코뿔소의 경우 10마리도 안 남아 있고, 수마트라 코뿔소는 200마리 정도가 남아 있다. 코뿔소만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ldlife Fund)에 따르면 환경 파괴로 인해 매년 1만 종의 지구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고 한다.
코뿔소가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뿔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코뿔소 뿔을 서각(犀角)이라고 한다. 서각은 청열약(淸熱藥) 중에서도 최고의 청열양혈약(淸熱凉血藥)이다. 해열(解熱), 지혈(止血), 해독(解毒), 안신(安神), 항경련(抗痙攣)의 효능이 있어 고열로 인한 혼수, 경련, 출혈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민간에서는 최음(催淫)의 효능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각은 지금도 동아시아에서 초고가의 한약재로 유통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서각의 최대 소비국은 중국이다.
상어처럼 코뿔소의 생존권도 어쩌면 중국의 정책 결정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요리 샥스핀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상어들이 대량 살륙되고 있다. 사람들이 샥스핀을 먹지 않으면 상어의 생존권도 상당히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샥스핀을 먹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샥스핀을 먹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코뿔소의 멸종에 한몫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물론 필자는 서각을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그래도 공범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앞으로도 필자는 서각을 한약에 처방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서각 1kg에 6~7만 달러 정도 호가한다. 북부흰코뿔소 뿔의 무게는 대략 15kg 정도 나간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1억원이 넘는다. 아프리카 빈국에서는 엄청난 거액이다. 그러니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코뿔소를 죽이고 서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올 페제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직원 급여 등 연간 유지비가 650만 달러나 든다고 한다. 경비대 유지비만 100만 달러가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단은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동물보호에는 이런 측면도 있다.
동물의 다양성은 왜 중요한가? 코뿔소 전문가는 말한다. 인간의 식품과 의약품 공급을 위해서라고. 이 전문가의 말은 과연 정당한가? 그래도 수단은 행복한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동물은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도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북부흰코뿔소를 보존해야 하지? 좋은 질문이다. 인공수정 전문가는 즉답을 하지 않는다. 필자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선뜻 할 수 없다. 왜 보존해야 하지? 생명이니까? 모든 생명 가진 존재는 존귀하니까? 우리의 이웃이니까?
올-페제타 측은 수단이 죽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자가 이미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단이 죽어도 유전공학을 이용하면 북부흰코뿔소 번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컷 두 마리다. 코뿔소 번식에는 암컷 두 마리가 절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19일 올 페제타 측은 수단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켰다. 수단의 장례식도 제법 성대하게 치러졌다. 수단의 무덤 주위에는 뿔 때문에 밀렵을 당한 코뿔소들의 무덤이 있다.
수단이 죽고 여러 달이 지났다. 죽은 수단의 유전물질로 암컷 코뿔소의 인공수정에 성공했다. 이게 북부흰코뿔소 나아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 희망의 징조일 수 있을까?
2019.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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