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드나 세우바 세라(Ariadna Seuba Serra) 감독의 '글로버스 운행기(Operation Globus)'는 제목부터 필자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다큐 영화였다. 왜냐하면 필자는 아직도 세계 일주 여행의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나 세우바 세라 감독
조우는 꼭 이루고 싶은 꿈 하나가 있다. 조우와 친구들이 세계 여행을 떠났을 때 탔던 트럭을 찾는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드디어 그 트럭을 찾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살던 세상 반대편을 향해 떠났던 여행은 자아 발견과 화해의 여정이 된다. '글로버스 운행기'는 모든 문제에 맞서 그의 꿈을 좇는 용기를 가진 한 남자가 그 과정에서 과거를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우가 트럭을 찾아 비행기를 타고 남미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로 날아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던 멤버들이 당시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나가서 세상을 탐험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보는 거의 없었다. 신문 4개가 전부였다. 흑백 TV 채널이 두 개 있었는데 당시 악명 높은 프랑코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속한 국영 채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독재자 치하의 우울한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각자 하고 있는 일도 좋아하지 않았다. 더 많은 걸 알고 싶었다.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너무 좁았다.
처음 계획은 6명이 4륜구동차를 타고 3년 동안 세계 일주를 떠나 183,300km를 가로질러서 113개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우는 페루 아레키파 공항에 내렸다. 1975년의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온다. '오늘날 스페인이 산업적 명성을 얻은 것은 페가소 운송 차량 덕분입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대통령과 산업부는 생상 공장이 달성한 성과를 치하하기 위해 애국심으로 가득찬 수천 명의 인부들이 매년 트럭 7,500대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했습니다.'라는 소식이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하의 한국 방송과 꼭 닮았다. 페가소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의 하나인 메두사의 목을 벨 때 그 피에서 나온 날개 달린 말이다.
조르디와 조우는 페가소 회사에서 일했다. 두 사람은 친구들에게 페가소 트럭을 타고 여행을 하면 그쪽에서 여행에 후원을 해줄 거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경비도 지원해주고, 트럭도 여행용으로 손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나 사진을 찍는데 모두 동의했다.
그러니까 히피 몇 명이 모여서 파시스트 기업의 후원을 받은 것이다. 트럭 회사에서 지원하겠다고 한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돈을 받기 위해 뭐든 다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어찌 보면 신념을 팔아넘긴 셈이지만 어쨌든 돈을 준다니까..... 돈이면 신념도 팔아먹을 수가 있는 걸까?
당시 뉴스 기사들은 엄청났다. 매스컴은 '페가소에게 세계 일주는 식은 죽 먹기다' 같은 기사 제목을 뽑아냈다. 팀원들은 이 기사 제목을 보고 '웃기고 있네'라고 비웃는다.
조우와 함께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던 친구들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 당시 페레 캄프스(22세)는 운전과 언어 담당, 조셉 마리아 카사세스(23세, 애칭 미아)는 카메라와 비디오 담당이었다. 세비 아란스(23세)는 재정과 보건 담당, 조르디 빌라 리에라(26세)는 촬영과 트럭 보수 담당이었다. 호세 마리아 푸이그페레르 카사세스(24세, 조우)는 모험 중 여행에 대한 기사와 여행 일지 담당이었다. 친구들은 헤수스 마리아 산 호세를 산호라고 불렀다. 그는 여행 중에 항상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늘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 .
당시 이들의 세계 일주 여행에 대한 스페인 국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스페인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에 그들은 세계 일주 여행을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현실은 달랐다.
세계 일주를 위해 여섯 명이 바로셀로나를 떠났다. 유럽, 중동, 호주, 북미, 남미를 거쳐서 페루까지 가는 게 계획이었다.
프랑스 부르쥬. 유럽은 예행연습 같은 거였다. 포장된 도로에 여러 도움도 받았고, 주유소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잘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침마다 화장실을 찾는 게 일이었다. 트럭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었다. 6명 모두 트럭에서 자고 밥도 트럭에서 먹었다. 차 안 구석구석에 필요한 게 다 있었다. 3주만에 집처럼 편해졌다.
세계 일주팀은 민주적인 분위기였다. 지도자도 없었고 한 명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었다. 예산은 공동기금이기 때문에 투표로 결정했다. 다들 돈이 없는 처지라 모든 비용 지출은 함께 결정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시절이었다. 이런 우정을 경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여행하면서 제일 좋았던 그런 공동생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상황은 달라졌다.
트럭을 찾으러 가자고 한 건 조우의 생각이었다. 입만 열면 트럭 이야기뿐이었다. 30년이나 됐는데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트럭이 아직도 거기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트럭을 팔지는 않았다. 그래서 28년만에 찾으러 간다. 조우는 왜 페루까지 가서 트럭을 찾고 싶어 할까?
1931년 8월 3일 트럭이 고장났다. 우린 멈출 생각이 없었지만 트럭이 멈추길 바란 것 같았다. 아티스트라고 알려진 정비소를 찾아가 트럭 수리비 견적을 물어봤다.
조우는 다시 아티스트 정비소를 찾아간다. 정비소 사장 빅터는 조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타크나에 왔던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시리아 알레포다. 모든 게 변한 건 중동에 갔을 때다. 그곳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세계 일주 여행 중 아프가니스탄에서 쓴 엽서
1976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이다. 빨리 돌고 떠나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수결에 의해서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정복이나 탐사를 위한 원정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떤 목적도 없었다. 그저 같이 살며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 여행하다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놀라운 장관들을 봤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페루다. 빅터와 조우는 함께 바다를 찾는다. 빅터는 말한다. 세월이 너무 지났고, 트럭도 많이 낡았다. 너무 오래 세워놓고 비도 맞고 하다 보니까 가족들 때문에 팔아야 했다. 그러고보니 트럭을 아티스트 정비소에 맡겨놓고 스페인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1981년 11월 2일. 아직 엔진을 못 고쳤다. 돈이 떨어진 지 한 달째다. 빅터가 자기 차고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 지내도 좋다고 했다.
빅터는 말한다. 트럭은 고물장수가 가져갔다. 고물장수가 트럭을 폐차시켰을 거다. 폐차장에 찾아가보자. 혹시 다른 데 팔았다고 할 수도 있다. 희망은 갖지 않는 게 좋다. 조우가 다시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조우는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집이나 새 차를 사고 싶어 하는데 그는 그냥 이번 목표를 달성해서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 거다. 그래서 트럭을 찾든 못 찾든 노력은 해봐야 한다.
인도 콜카타다. 콜카타에서 호주까지 트럭을 타고 여행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콜카타에서 말레이시아까지 가는 비용이 콜카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용과 맞먹었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을 다 갈 순 없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페가소 사에 편지로 물어봤다. 트럭을 가지고 계속 가야 하느냐고.그런데 답이 없었다. 페가소 사에서 전보를 받았다. 그쪽은 이들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트럭 없이 아시아를 여행할지 여부에 대해 투표로 결정했다. 그래서 트럭을 놔두고 갔다. 원래는 엄격하게 관리하고 계속 굴려야 하는데 모든 걸 남겨두고 배낭을 짊어지고 트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방글라데시에 이어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로 갔다.
다시 페루다. 조우는 빅터와 헤어진다. 타크나의 중심지다. 여기서 복권을 사기도 했다. 엠페라도르 호텔도 기억난다. 엠페라도르 호텔에 묵었다.
1982년 4월 22일 페루의 마지막 도시 타크나에 들렀다. 칠레로 향할 예정이었다. 다른 국경 도시들처럼 타크나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도시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북미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1년을 아시아에서 보내고 나니 이곳에선 매일이 휴일 같았다. 25센트짜리 하드코어 성인영화는 정말 충격이었다. 한 곳에 4개월이나 머물렀지만 여전히 볼 게 많았다.
다시 페가소 사다. 페가소 국제부장의 편지다. '지난번 편지에 대한 답신이 없기에 우리 합의 사항에 있는 여러분의 의무에 대해 일깨워드리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나 영상 자료를 보내지 않았더군요. 계획을 변경한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약 3개월마다 페가소 측에 보고서와 영상 자료를 보내야 했다. 그 회사에서 600만 페세타를 받는 대신에 합의한 조건이었다. 탐험에 보고서에 의무사항이라니! 이들은 합의사항에 대해 잊고 있었다.
페루 타크나다. 조우는 공공차량관리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트럭은 등록되지 않았다. 헛걸음이다.
1982년 6월 24일. 팀원이 점쟁이한테 손금을 봤다. 그가 이곳에 오래 머물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미 오래 머물렀다고 말했다. 점쟁이는 그를 보더니 더 오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느 날 신호가 왔다. 분위기가 안 좋았다. 한 멤버가 여행에 지쳐서 팀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북미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산호는 거기서 머물겠다고 했다. 처음 이탈자가 생긴 것이다. 글로버스 여정에 변화가 생겼다. 자유는 결국 프로젝트의 실패로 이어졌다. 자유를 위해 시작했던 여정은 자유로 인해 끝날 위험에 처했다. 팀원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퍼지기 시작했다. 힘든 일이었다.
다시 트럭에 오르는 건 힘든 일이었다. 팀원들의 생각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여행을 재개할 날짜를 정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다. 트럭이 눈길에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차가 고장났다. 폭설이 내리고 있다. 트럭이 짐이 되었다. 13톤이나 나가는 트럭을 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엔진 출력은 125마력이었다. 힘이 딸려 굴러가질 못했다. 너무 느렸다. 알래스카에서는 일을 했다. 경비가 없어서 잠도 트럭에서 잤다. 돈을 벌려고 식당에서 일도 했다. 어떤 때는 매일 10시간씩 일을 했다.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래서 한 멤버는 친구들에게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조우는 집에 갈 생각을 전혀 안 했다. 남은 네 명이서라도 계속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세비가 그만둘 수 있지? 가치관도 올바르고 융통상도 있는 친구가 말이다.
팀원들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집에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의를 열고 여행 일정을 줄이는데 모두 합의했다. 중앙아메리카로 갔다가 베네수엘라로 가기로 했다. 거기 페가소 영업점이 있었다. 그 다음 스페인으로 돌아가서 스페인 광장에 가면 여행이 끝나는 거였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여행의 전환점이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멕시코에 도착할 날을 고대했다. 다른 외국어는 그만하고 싶었다. 멕시코에서 냄새, 삶의 풍요로움, 멕시코 사람들, 특히 멕시코 여인들에 사로잡혔다. 멕시코에는 온갖 환각 약물이 있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버섯을 먹고 환각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 환각 약물은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멕시코를 떠나지 않으면 영영 눌러살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들은 여기를 떠나 코스타리카로 가서 페가소 판매장에 들렀다. 그리고 파나마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겼다.
파나마 콜론. 콜롬비아로 가는 길이 없었다. 배가 필요했지만 오지 않았다. 한 달 내내 기다렸다.
페가소 측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여러분, 지난 9개월 동안 오퍼레이션 글로버스 팀이 몇 장의 짧은 엽서와 전보 말고는 아무런 연락도 안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에 맞게 의무를 이행하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여행 팀은 할 말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다. 끝이 안 보였고, 돈도 없었다. 남미가 옆에 있는데 다시 트럭을 배에 싣고 돈도 없이 남미를 횡단해서 아프리카까지 가라니 3년이나 지났는데도 끝이 없었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쳤다. 트럭을 타고 매일 같이 떠돌면서 너무오랫동안 같이 붙어 있었다.
한 멤버가 말한다. 계속 여행하고 싶지만 지금은 정체된 기분이다. 그러니 난 떠나겠다. 나머지도 떠나기로 했다. 조우만 빼고 말이다.
페루 타크나 폐차장이다. 조우는 회계사였다. 회사에서 서류 작업이나 행정 업무 같은 걸 담당했다. 폐차장 사무실에는 폐차 등록 서류 더미가 쌓여 있다.
3 대 1이었다. 다들 트럭을 바로셀로나로 보내자고 했다. 조우만 싫다고 했다. 민주주의 원칙이라면 조우는 팀원들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조우는 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조우는 운전도 할 줄 몰랐고 정비는 더욱 몰랐다. 그러면서 고집을 부렸다. 결국 팀원들도 손을 들고 조우 뜻대로 하라고 했다.
조우는 페루 타크나 폐차장을 다시 찾았다. 이곳의 고철은 아시아로 보내기도 하고 남미로 보내기도 한다. 주로 철강업계에 보낸다. 폐차장 관계자는 트럭은 아마 고철로 분해해서 팔았을 거라고 한다.
1982년 11월 4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꿈을 꿨다. 다 같이 환각버섯을 먹고 몇 명은 싸우기 시작했다. 조우는 4마리의 아름다운 흑마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른다. 옆에선 코끼리 2마리가 시가를 피운다.
페루 타크나다. 조우는 페루 평원이었나 볼리비아였나 그쯤 어딘가에서 발이 묶였다. 한 달 간 꼼짝도 못 해서 페가소 측에 새 부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부품이 도착하지 않아서 결국 페루에서 구했다. 거기서 여자를 만나 둘은 페루에 정착했다. 오토바이도 팔아버리고 발전기도 팔아버리고 그러면서 먹고 살았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먹을 게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여행 일지 기록이 거의 없다. 매일 방문한 곳은 기록했지만 나머지는 텅 비었다. 조우는 왜 일기를 안 썼을까?
1983년 9월 14일 팀원들 모두 트럭을 타고 돌아오는 꿈을 꿨다. 날은 화창했고 많은 사람들이 팀원들을 반겼다. 부모들은 그들을 반겼고 다들 행복하게 끌어안고 노래했다.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세계 일주를 해냈다. 꿈이었다.
페루에서 여행 트럭과 똑같은 트럭을 만난 조우
페루에서 페가소 트럭을 만났다. 일주 팀이 몰던 트럭과 같았다. 조우는 반가운 마음에 운전석에 올라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1983년 10월 3일.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조우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제정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들 조우보고 돌아오라고 했다. 조우는 혼란스웠다. 집에 돌아가서 아픈 아버지를 뵈어야 할지 세계 일주 임무를 완수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조우가 여행을 계속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기 싫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 말로는 조우가 아버지께 떠난고 말했을 때 조우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우가 돌아오기 싫었던 건 아버지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행하고 있었을 거다. 모두 조우가 집으로 돌아올 비행기 푯값을 모았다. 조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핑계로 말이다. 조우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우도 마침내 현실로 돌아왔다.
왜 조우가 페루까지 가서 트럭을 찾고 싶어했을까? 마침표를 찍으려던 거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여정을 끝내려고 말이다. 그런데 다른 팀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남는 건 고철이 된 트럭뿐이니까.
트럭이 마지막 있던 곳을 찾았다. 보관을 맡았던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고 생활 공간이 필요해서 트럭을 팔았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은 거기서 8년 4개월을 살았다. 조우는 여기서 2년 조금 넘게 지냈다. 보관자의 아들은 트럭에서 거의 3년 동안 아내와 같이 살았고 아들도 여기서 태어났다. 사진도 갖고 있었다. 사진을 본 팀원들은 감개무량했다. 팀원들은 조우가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조우는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이곳은 '잃어버린 도시'라고 불린다고 알려준다. 고물상에 들렀다. 직원은 트럭을 채석장으로 끌고갔다고 했다. 직원은 그 트럭을 집으로 삼아 가족들과 거기서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판이 부식되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6년 정도 됐다. 전부 주조 공장에 넘겼다. 한때는 신혼집으로 써서 안에서 아이도 키웠다. 그 트럭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아서 철거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웃들이 트럭을 방치하지 말라고 해서 소형 발염 장치로 차체를 분해해서 아레키파에 있는 주조 공장으로 가져갔다.
조우는 이제 그 트럭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한 여인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갔다. 그 여인은 트럭의 엠블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조우에게 내주었다. 페가소 엠블럼 장식이었다. 여인은 조우가 혹시라도 돌아올까 봐 이 엠블럼을 남겨두었다고 했다. 돌아오면 주려고..... 이 장식품은 운전석 있는 곳에 걸려 있던 거다. 원래는 두 개가 걸려 있었다.
조우는 여행 가방에 장식품을 넣은 다음 스페인 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니 트럭이 눈에 선하다. 그동안 세계 일주를 하면서 보았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스페인 공항이다.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조우가 국내 상황을 물으니 변한 게 없다고 한다. 부정부패도 똑같다. 친구들이 다시 만났다.
1984년 10월 26일에 조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100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말이다. 처음 한 주 동안은 조우가 돌아와서 들떠있다가 이젠 모두 예전으로 돌아갔다. 다들 여전히 일자리 걱정하고 축구나 정치 걱정을 한다.
조우는 친구들과 함께 세계 일주 여행 슬라이드 사진을 보면서 마드리드에 가서 페가소 국장을 만났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망했다며 단단히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로버스 이후에 그들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조우는 여행 때 찍은 친구들 사진 옆에 페가소 장식품을 걸어둔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다큐 영화다. 조우와 친구들은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서 조건을 건 후원은 받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종반부에 나온 여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트럭의 상징인 페가소 장식품을 28년 동안이나 고이 간직했다가 조우에게 돌려준 여인 말이다. 조우가 페루 타크나에서 만났다던 그 여인인가?
여행에 마침표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네 인생 자체가 여행길 아니던가! 사람이 죽는 날 비로소 여행은 끝나는 것이다. 멋진 여행! 멋진 인생!
2019.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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