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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9]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林 山 2019. 8. 30. 12:45

노르웨이의 모르텐 트라비크(Morten Traavik), 라트비아의 우기스 올테(Ugis Olte) 감독이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의 영어 제목은 'Liberation Day'다. 'Liberation Day'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광복절' 또는 '해방일'이다.


노르웨이의 모르텐 트라비크(Morten Traavik) 감독


라트비아의 우기스 올테(Ugis Olte) 감독


전 유고슬라비아 밴드이자 현 슬로베니아 혼성 밴드인 라이바흐(Laibach)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부터 2015년 광복절 공연 초청을 받았다. 그래서 제목이 'Liberation Day'다. 이 다큐는 라이바흐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2015년 8월 평양을 방문해서 공연을 펼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이바흐가 광복절을 기념하여 평양 공연을 초청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라이바흐는 북한에서 공연한 첫 록 밴드로 기록된다. 라이바흐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 락의 불모지였던 사회주의 정권하 유고슬라비아에서 결성된 락 밴드다. 초기에는 정부에 의해 공연이 중단되거나 밴드의 이름을 금지당하는 등 제재를 받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후에는 슬로베니아 밴드가 되었다. 이후 이들은 영국으로 건너가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과 무대연출로 주목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라이바흐 평양 공연의 연출을 맡은 사람이 바로 노르웨이 트라비크예술회사의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이다. 그는 여기서 다큐 영화의 감독이자 문화 외교관으로 변신해 라이바흐의 공연이 차질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쓴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에 '모든 예술은 정치적 조작 대상이다. 여기서 예외는 이와 똑같은 조작의 언어를 구사하는 예술뿐이다 - 라이바흐'라는 문구가 뜬다. 2차 대전, 일본과 독일의 항복, 1945년 8월 15일 미군에 의한 한반도 해방,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관련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슬로베니아(전 유고슬라비아) 쿰 산이다. 2015년 7월 TV에 지구의 플로리다 북한 이야기 나온다. 아나운서가 말한다. 다음 달엔 한국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걸 기념하는 날인 70주년 광복절이 있다. 모든 걸 다 가졌다고 믿는 나라에서는 기념일에 뭘 할지 궁금하다. 7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김정은이 북한 역사상 최초로 해외 록밴드를 초청한다고 한다. 과연 누가 될까? 롤링스톤스? U2? 진짜인 척하는 마이클 잭슨 모창 가수일까? 어차피 북한 주민들은 그가 죽은 것도 모를 거다. 그런데 아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라이바흐라는 슬로베니아의 한 아트록 그룹이다.


드디어 라이바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의 나치당원 복장을 한 멤버가 '라이바흐는 광적인 열의를 요구하는 사절단이다!'라고 선언한다. 그 멤버는 그게 네오파시즘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장난이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왜 네오파시즘이었다고 생각하지? 잠재의식 어딘가에서 행진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속하지도 않은 나라에 자부심을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행진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나? 아니 좋았다. 하지만 그들이 진심인지를 알고 싶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갖는 기대를 충족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의 유일한 임무는 끝까지 무책임하게 구는 거다.


평양 주체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라이바흐 멤버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말한다. 라이바흐가 전하는 기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는 '더 많은 단절을 원한다' 같다. 당시 다른 모든 반체제 운동은 정권을 비판했지만 그 정권의 기본 전제는 받아들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라이바흐의 경우에는 정권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날것의 형태로 되돌려주는 느낌이었다. 어떤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키려면 그 체제의 공식적인 가치 등을 비판할 게 아니라 그 체제의 감춰진 이면을 폭로하면 된다.


감독 모르텐 트라비크는 말한다. 고향에 있을 때는 오랫동안 라이바흐의 팬이었다. 그런데 내가 성인이 되고 아티스트로 활동하자 그쪽에서 내게 연락해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아달라고 했다. 체조선수들이 나오는 뮤직비디오 말이다. 라이바흐와 나는 결과에 무척 만족했고 그 후로도 작업을 같이 하기로 했다. 라이바흐가 북한에서 공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북한 청중에게도 친숙한 요소들이 라이바흐의 형식과 음악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소개팅을 주선하는 느낌이다. 나는 중매장이 역할이다. 두 요소를 한데 결합함으로써 융합이 일어날 수도 있고 핵분열 같은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거대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다시 아나운서다. 라이바흐가 약속한 게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재해석해서 연주하겠다는 것이다. 전에도 그렇게 한 적이 있다. 라이바흐와 리메이크 곡은 특별한 관계다. 이 그룹의 독특한 점이다.


뮤트 레코드 대니얼 밀러 회장은 말한다. 라이바흐는 리메이크 곡을 자신들이 원하는 컨셉트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라이프 이즈 라이프' 리메이크 곡을 오리지널 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곡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게 느껴진다. 새로운 걸 강조하는 곡이 됐다. 오리지널 곡과 전혀 다르다.


다시 아나운서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방문하기도 무서운 곳이다. 하지만 저 사람이 정말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른다면 나도 가보고 싶다.


첫날, 북한의 평양국제공항이다. 라이바흐가 공항에 도착했다. 두건을 쓴 멤버가 명목상 지도자인 밀란(Milan)이다. 홍일전 미나(Mina)는 무대에 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미나는 영부인이다.


이반(Ivan)은 관리자다. 이들의 공연으로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어떤 벽이든지 금은 가 있다. 그 틈새로 정신이 스며드는 거다.


북한 관계자가 라이바흐 공연 백업 영상이 든 디스크 두 개를 가져갔다. 돌아갈 때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디스크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와서 받아가란다. 공연 중에 띄울 영화 같은 게 들어 있는데 말이다.


북한 관계자 리 씨(Mr. Ri)는 조정자다. 디스크 안에 있는 걸 전부 확인하기가 어렵다. 디스크 안에 100편이 넘는 영화가 들어있다. 라이바흐의 평양 공연의 목표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거다. 양측 모두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걸 배우고 그들도 우리에게 새로운 걸 배우는 거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차창에 비치는 북한 풍경, 북한은 무언가 다른 행성 같다. 모르텐은 북한을 15번 정도 다녀갔다. 그는 북한과 다른 나라들 사이를 중재해 네 번이나 주요 문화 협력을 지휘했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라이바흐의 이번 공연이 불가능했을 거다. 노르웨이인은 특유의 탐험정신이 있다. 북극과 남극 탐험도 다 노르웨이인이 했다. 아무도 안가본 나라에 가서 뭔가를 한다는 자아도취적인 것도 있다.


아티스트 발누아는 말한다. 이보다 이국적이고 신기하고 이상한 일도 없잖은가! 모르텐은 말한다. 나는 평화에는 큰 관심이 없는데, 진실에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진실이 언제나 평화를 불러오진 않는다. 진실이 변화나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가치관이나 우리가 과연 누구고 이 세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모르텐이 북한에서 부른 매스게임 전문가가 노르웨이 북부의 한 페스티벌에서 펼쳐질 노르웨이 병사들의 매스게임을 지휘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어났다. 신문에는 북한 매스게임 전문가로부터 노르웨이 병사들이 학대를 당했다는 기사가 났다. 북한처럼 강압적으로 병사들을 지휘했던 모양이다. 인권 선진국 유럽에서 지휘관이 북한 병사 다루듯 그렇게 했다간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하게사테르 진보당 의원은 이번 일을 어떻게 보는가? 이 소식을 듣고 무척 슬펐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시도는 현 북한 정권의 권위를 강화하는 일밖에 안된다.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을 탄압할 명분을 주는 것이다.


김일성 광장의 라이바흐 


라이바흐는 문화교류위원회와 류 위원장이 개최하는 성대한 환영회 겸 저녁 만찬에 참석했다. 류 위원장의 환영사로 만찬은 시작됐다. 라이바흐는 끔찍한 록 그룹이다. 뮤직비디오에는 포르노 영상을 쓴다. 사실 이 그룹은 히틀러 스타일의 배경과 의상을 이용하는 네오나치 그룹으로 여겨지며 여러 종교를 모욕했다고도 한다. 이 밴드는 전세계의 소위 독재정권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이들의 음악은 형편없다. 러시아에서 괜히 금지된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러시아를 조롱하는 짓을 했다. 확고한 반파시스트 국가인 북한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동맹국 제국주의 일본과 맞서 싸웠던 북한이 라이바흐 같은 그룹을 평양에 초대한 것이다. 어떻게 파시스트들이 한국 광복절의 70주년 기념식에 초대될 수 있었을까? 라이바흐가 북한을 방문한다면 우리를 도발하고 사회주의 체제에 해를 끼칠 텐데 말이다. 그러니 그만한 신뢰와 자신감 없이는 라이바흐를 초대할 수 없는 것이다.


류 위원장의 환영사를 들은 모르텐은 기묘한 감정을 느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신문에는 벌써 '역사상 가장 기괴한 콘서트가 될 것인가?', '양측 다 오해를 받고 있다며 북한 공연에 나서', '파시스트로 의심받는 슬로베니아 밴드', '북한 사상 최초 해외 밴드 공연', '파시즘을 다루던 밴드 라이바흐 북한 투어로 바닥을 치다', '북한 사상 최초로 공연하는 해외 밴드는 파시즘으로 유명한 밴드', '파시스트 감각과 예술적 아이디어를 가진 북한 최초 공연 해외 밴드'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고 있었다. 류 위원장은 라이바흐가 도착하기도 전에 공연에 대한 전세계 언론의 기사 제목을 전부 취합한 후 그가 속한 기관 즉 북한 측에서 제기된 모든 부정적인 의견들에 아주 자연스럽게 섞어 놓았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연설문으로 만든 것이었다.


모르텐은 상부에 꼭 전해달라고 위원회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라이바흐는 과거에 파시즘을 옹호하는 사악한 밴드라고 욕을 먹었고, 북한도 서방세계에서 주기적으로 파시스트 국가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서방세계 언론이 어떤지 아는가? 항상 거짓말을 지어낸다. 북한과 라이바흐는 둘다 오해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 -모르텐 트라비크의 미니 가이드 첫 번째 황금률은 '의구심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지 그냥 물어봐라'다. 집단주의/이동의 자유, 예를 들어 호텔에서 멋대로 나오는 건 금지다. 북한이 미국인 한 명을 억류하고 15년 중노동형을 내렸다. 미국인 두 명은 각기 다른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지 두 달여만에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21세의 버지니아대학교 학생은 양강도 국제호텔에 있던 정치선전물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던 분명 절도죄에 해당한다. 56세의 남성은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에 성경을 놔둔 죄로 체포되었다. 성경을 놔둔 것도 죄가 되나?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들을 이용해 거물을 끌어들이고자 했던 전례로 보아 이번에도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라이바흐가 이동하는 버스에서 모르텐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 준다. 공연 장소는 평양 봉화예술극장으로 정해졌다. 북한 최고의 공연장이다. 북한 최고의 예술인들이 공연하는 곳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들도 오는 곳이다. 북한도 라이바흐 공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둘쨋날이다. 라이바흐와 협업하기 위해 금송음악학교 여학생들이 왔다. 프리모쉬는 편곡 담당이라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보리스 벤코는 보컬이라서 여학생들과 노래를 한다. 한국 노래를 준비해왔다. 보리스는 한국말로 '아리랑'을 아주 잘 부른다.


통역 메리 순 김은 말한다. 아리랑은 남북한에서 가장 사랑받는 민요 중 하나다. 라이바흐가 '한국다움'을 가져다가 완전히 응축해서 정수를 만들어내고 그걸 음악으로 만든다면 그게 바로 아리랑일 거다. 아리랑은 이별과 그 이별로 인해 생기는 갈망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라이바흐는 한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노래를 가져다가 '사운드 오브 뮤직'과 맞물리게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와 노래는 북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3일째 날이다. 라이바흐 일행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진 만수대를 참배한다. 모르텐은 말한다. 숭배를 하고 대중 속에서 자아를 상실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적이기 때문에 생긴다. 이러한 욕구는 라이바흐 음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12년까지는 김일성 동상밖에 없었다. 김일성은 북한을 세운 사람이다. 원래는 김일성 동상의 표정이 달랐는데 김정일이 사망한 후에 김일성 동상의 표정을 바꾸고 김정일의 동상을 그 옆에 같이 세운 것이다. 동상의 표정을 바꾼 것은 두 동상이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한다. 참배객들이 엄청나다. 우리 서방세계 혹은 서방문명은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며 자유로워진 덕분에 대중이 숭배하는 분야도 거의 사라졌다. 축구 경기와 록 콘서트 정도만 남았을 거다. 이렇게 몇 안되는 분야에서만 대중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다.


앵커 캐시 노박(Kathy Novak)이다. 이번 주말 북한은 시간을 거스르게 됐다. 정확히는 30분이다.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북한의 표준시간으로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했다. 북한은 도쿄의 시간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역사적인 잘못이니 그걸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도쿄 표준시는 1910~1945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당시 적용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상가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표준시간마저 빼앗아가는 용서 못할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는 5천년의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며 한 민족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정치체제로 인해 철조망과 지뢰로 분단돼 있고 이제 시간마저 달라지게 되었다.


모르텐이다. 7시 정각에 불꽃놀이를 보고 9시에는 기념식 행사를 볼 거다. 불꽃놀이는 촬영이 허용된다. 혼자서 아무데나 멋대로 가면 안된다. 멋대로 호텔을 나가서도 안된다. 이동하는 버스 안, 이반이 안보인다.


이반이다. 그는 운 좋게도 거리에서 북한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무리에서 벗어나 평양을 산책했다. 실제 공산주의를 접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북한의 공산주의는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성공적이라고 본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도 어두운 면을 찾으려 했고 물론 어두운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북한이 제대로 기능하는 유토피아로 보였다.


이반은 또 말한다. 북한은 아주 고립되고 폐쇄된 사회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들 세뇌되어 있다. 우리가 주민들에게 위험한 것을 소개하는 거다. 북한 당국은 여행객들에게 지나친 자유를 줬다가 북한 주민들에게 위험한 것이 전파되는 상황을 꺼린다.


이반은 평양을 잠깐 보고 북한이 성공적인 공산주의 국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접경지대인 비무장지대다. 남한은 정기 순찰 중에 문 근처에서 지뢰 3발이 터졌다고 주장했다. 병사 두 명이 다쳤고 한 명은 두 다리를, 다른 한 명은 오른발을 잃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사건의 책임을 부인했다. 북한은 남한이 이 사건을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남안은 북한이 배후에 있으며 목함지뢰는 북한이 흔히 쓰는 거라고 말했다.


4일째 날이다. 북한은 공연장 시설이 195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라이바흐가 공연하기에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양측은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공연 준비를 해나간다.


라이바흐는 '가리라 백두산으로'를 따로 리메이크해 왔다. 북한에서 크게 히트친 곡이다. 라이바흐의 곡들을 검열하려고 북한 당국자들이 왔다. 공연에서 부를 한국어 곡들을 전부 검열한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공개적인 행사나 공개적인 발언은 사전에 검열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공연에 너무 간섭을 한다.


평양방송이다. 여성 앵커가 말한다. 한반도는 전쟁 일보직전이다.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남한의 꼭두각시들이 끊임없이 정치적 군사적 도발을 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특이한 무기를 사용해왔다. 남한은 확성기로 북한 지도자 김정은 정권을 비판한다. 북한은 확성기 소리를 줄이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걸그룹 여자친구가 부른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최신 남한 가요를 확성기로 방송하기도 한다. 이 걸 그룹은 콘서트 도중에 미끄러운 무대에서 반목해서 넘어져 유명세를 탔다. 북한도 확성기를 틀기 시작한 것 외에는 특이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5일째 날이다. 전세계의 언론들이 라이바흐가 찍은 사진이 전달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라이바흐는 김일성 광장에서 잠깐 촬영을 한다. 사진을 찍을 때 건물 정면에 갈려 있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 사진을 가리면 안된다. 노동당 깃발도 잘리면 안된다. 북한 관계자는 나치처럼 보이니까 선글라스도 벗으라고 권한다. 밀란의 두건도 벗으라고 한다. 나치처럼 보인다는 이유다.


북한 당국의 사전 검열과 제약 속에서 이들의 준비는 곳곳에서 어려움에 봉착한다. 북한 관리들은 라이바흐가 애써 준비한 곡들을 검열을 통해 제외시키기도 하고, 내용을 수정하고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텐은 검열은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 스스로도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라이바흐도 북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인가? 북한의 검열과 라이바흐 스스로의 검열은 다른 문제인 듯하다.


엄격한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차이에 직면한 라이바흐는 그들의 노래가 북한의 엄격한 심의를 통과하여 얼터너티브 록을 접해본 적 없는 북한 관객들 앞에서 연주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프라임 타임 뉴스다. 남북한이 서쪽 접경지대에서 포격을 주고받았다는 소식이다. 북한이 확성기를 목표로 포격을 가하자 한 시간 후 남한도 반격을 했다는 것이다. 남한은 공격 원점을 향해 155mm 포탄 수십 발을 쐈다고 한다. 북한은 남한에 48시간 내에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1983년 라이바흐는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아주 중요한 페스티벌인 '뮤직 비엔날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데 성공했다. 무대 배경으로 거대한 화면을 띄우기로 결정하고 시네마테크에 가서 작품 하나를 빌렸다. 유고슬라비아의 성공을 선전하는 영상이었다. 그걸 영상에 띄웠다. 그리고 슈퍼 8mm 포르노 영상도 반복해서 띄웠다. 포르노 영상이 티토의 얼굴은 물론 스탈린의 얼굴에도 겹쳐졌다. 그러자 경찰과 군인이 들이닥쳐 라이바흐를 끌어내렸다. 그 후 크로아티아 공산당이 슬로베니아 공산당에게 라이바흐를 막던지 감옥에 집어넣든지 죽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유고슬라비아를 파멸로 몬 주요 운동과 그룹 중에 라이바흐가 있다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슬프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나라는 곧바로 망해야 한다. 라이바흐가 정말 파멸시킬 수 있는 나라라면 존재가치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라이바흐는 유고슬라비아가 사라진 후 여러 면에서 고아가 됐다. 정신적인 고아. 라이바흐 자체가 티토의 유고슬라비아가 낳은 아이인 셈이기 때문이다.


라이바흐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곡을 리메이크했다. 원곡과는 다르게 해석해 다른 곡을 만들었다. 북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곡을 가져다가 상당히 많이 바꾼 게 문제였다. '가리라 백두산으로'는 북한에서 '우리의 지도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노래다. 모란봉악단이 지도자를 대변하는 밴드다. 정부가 후원하는 악단이다. 이들의 첫 히트곡이 '가리라 백두산으로'였고, 백두산은 현 지도자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백두산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장군의 혁명 활동과 연관된 영원불멸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김일성 장군은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이끌었다. 백두산은 혁명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장군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북한의 정신과 지략의 상징이다.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가리라 백두산으로' 원곡은 행진곡과 같은 분위기다.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하다. 라이바흐 버전은 원곡과는 좀 다르다. 북한 관계자가 라이바흐의 리메이크 곡을 좀더 강하고 빠르게 하라고 주문한다.


공연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검열을 하러 온 사람들인데, 음악인들도 있었고 일반 관객도 있었다. 북한 관객들에게 라이바흐의 '가리라 백두산으로' 리메이크 곡은 별로란다. 그 곡이 '가리라 백두산으로'라는 곡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특히 밀란이 맡은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불편했다고 한다.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면 다들 경악하고 화를 낼 거라고 한다. 결국 리메이크 곡은 빼기로 했다.


북한 검열 당국자는 배경 화면의 폭발 장면도 마음에 안들고, 독일 표시도 마음에 안든다. 북한에서는 무언가를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안다. 그래서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동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책임도 나눠지지만 잘못됐을 때 비난도 나눠 받는다.


이반 노바크는 말한다. 어떤 벽이든지 금은 가 있다. 그 틈새로 정신이 스며드는 거다. 문제는 그 틈새를 어떻게 넓히느냐다. 북한 주민들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행복해 보인다. 대다수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말이다. 초반부에서도 나왔던 말이다.


검열국 사람들이 요구해서 영상과 곡 수정을 해야 한다. 수정을 해야 할 영상은 '라이프 이즈 라이프'다. 나체인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이유다. '도레미'와 '에델바이스'도 문제다. 북한 관계자가 '도레미'의 경우 영상에는 음표만 보이게 하라고 주문한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아리랑', '휘슬블로어', '사운드 오브 뮤직', '클라임 에브리 마운틴', '에델바이스', '파이널 카운트다운'.....나체인 동상들과 가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안될 것 같다.


'에델바이스'에 쓸 영상을 북한에서 굉장히 유명한 '꽃 파는 처녀'라는 영화의 장면들을 쓰려고 한다. 북한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그 영화는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더라. 그래서 영상을 호텔 복도에 있는 조화를 찍어서 쓰기로 했다. 호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공연 당일이다. 무대에 선 모르텐은 김정일의 어록 중에서 '번영하는 나라는 언제나 노래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오프닝 멘트를 한다. '각하'라는 말이 나온 걸 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연을 보러 온 것일까? 음악을 들으며 모두가 하나가 되자. 공연 시작!

라이바흐의 평양 공연 장면


라이바흐의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낯선 음악이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는 듯하다. 공연팀과 관객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남한은 대북방송을 중단했고, 북한은 준전시상황을 해제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라이바흐의 툭툭 던지는 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우리한테 맞서지 마. 저항해봤자 소용없어. 너도 동화될 거야.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은 2016년 세계적 권위의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가디언 지는 이 다큐에 대해 '가장 기이한 북한 이야기'라고 평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 지는 '명쾌하고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미국의 버라이어티 지는 '웃기고 세심하고 의도적으로 터무니없다'고 평가했다. 


다큐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을 통해서 라이바흐란 밴드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한했다. 북한 실상을 잘 모르는 한국인이 보면 아주 좋을 다큐 영화작품이다.


2019.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