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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9] 비러브드(Beloved)

林 山 2019. 8. 29. 00:48

'비러브드(Beloved)'는 이란의 야세르 탈레비(Yaser Talebi) 감독이 출품한 다큐 영화다. 감독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80세 할머니의 현실적 삶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 다큐는 친절하고 다정한 어머니이자 삶의 힘든 순간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는 용감하고 강인하면서도 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세르 탈레비(Yaser Talebi) 감독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읽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얘길 들려주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감독의 말이다. 내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그녀도 문맹이었다.


그녀는 이란 북부 4,000m가 넘는 알브로즈 산 고산지대에서 소떼를 몬다. 9살 때 최악의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은 것이다. 이후 숲이나 산에서 일했다. 보리도 수확하고 꽃도 따고 남의 방앗간에서도 일했다.


피루저 코르시디


어느 날 엄마는 14살의 그녀를 16살이나 많은 아지즈와 결혼시켰다. 아무도 그녀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그렇게 산에서 숲에서 소를 키우는 소몰이꾼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하고 삶은 더 힘들어졌다. 항상 산이나 숲에서 일해야만 했다. 첫 딸도 산에서 낳았다. 아지즈는 아들을 원했다. 아들은 일을 도울 수 있으니까 소몰이꾼들은 아들을 원한다. 둘째, 셋째도 딸이었다.


아지즈는 화가 나서 그녀를 혼자 내버려뒀다. 다섯째는 아들이었다. 이름은 네짓(구원)이라고 지었다. 네짓이 태어나고 그녀의 인생도 구원받았다. 그녀는 무려 11명의 엄마가 되어 자식들에게 헌신하며 살았다. 가난했지만 부부 사이는 좋았다. 서로 아주 좋아했다.


버터를 만들고 있는 피루저 코르시디


아지즈는 나이가 들고 병들어 걷지도 못하게 됐다. 불구가 된 남편 대신 그녀는 소를 키우며 11명의 아이들을 길렀다. 아지즈도 돌봐야 했다. 이제 남편이 죽은 지 10년 됐다. 그녀는 홀로 남았다. 소몰이꾼은 소를 의지해서 산다. 소 덕분에 우유, 요거트, 버터 등을 얻는다. 일부는 먹고 일부는 판다.


자식들은 자주 오지 않는다. 다들 사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자식들 건강하면 그걸로 됐다. 자식들은 그녀가 소 키우며 일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그러다 밤늦게 혼자 있는데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자식들 뜻대로 살 수는 없다. 소들은 다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고민이나 슬픔을 다 알고 있다. 어떤 사람도 소들만큼 그녀를 이해해주진 않는다. 누가 왜 사냐고 물으면 그녀는 소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돈이나 재산 때문에 사는 게 아니다. 소는 그녀의 동반자다. 그녀와 소들은 서로 익숙하다.


셈난 주 산림청 공무원들이 찾아왔다. 산기슭의 땅 소유주가 누구냐고 묻는다. 주인은 그녀 피루저 코르시디다. 정해진 기한보다 그녀가 10일 더 있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단다. 허가를 받은 기간은 95일이다. 그녀는 아직 5일이 더 남았다고 주장한다. 산림청 직원은 그녀가 허가받은 기간보다 15일이나 더 지났으며, 정해진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방목장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뭘 잘못했느냐고 우긴다. 그리고 곧 떠나겠단다.


피루저 코르시디


가을이 되면 그녀는 파지 미아나 마을로 소를 데려간다. 그런데 소들은 산을 내려가기 싫어한다. 여긴 추워지면 먹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려가야 한다. 80세의 그녀가 소떼를 몰고 험준한 산을 내려간다. 80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녀는 고산지대에서 파지 미아나 마을로 소떼를 몰고 내려왔다. 그녀가 태어난 곳이다. 어린 시절도 여기서 보냈다. 가을 단풍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겨울 대비 화목을 준비하러 그녀는 산으로 들어간다. 나무를 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한다. 나무를 지고 내려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집이다. 이웃 친구는 소를 팔아버리라고 한다. 자식들도 그렇다. 그녀는 팔지 않으려고 한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또 소몰이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60년 넘게 산에서 살아와서 이젠 그렇게 안하면 몸이 아프다. 신이 날 창조할 때 이런 고통을 주신 거다. 자식이 11명이어도 날 봉양하는 자식이 없다. 괘씸하기도 하다. 올해는 날 찾아온 자식도 없었다.


매년 가을이면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떠놓고 아지즈에게 신의 축복을 빈다. 아지즈는 이승에서 평안을 얻지 못했다.


겨울이 닥쳤다. 파지 피이나 마을은 눈속에 파묻혔다. 여긴 겨울에 너무 춥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난다. 그녀가 마을에 있으면 자식들이 걱정을 덜한다. 이제 그녀도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 겨울에 태어났으니 겨울에 죽을 거다.


아지즈의 묘다. 묘비의 눈을 쓸면서 아지즈가 천국에서 평안하길 빈다. 부부는 산에서 들에서 동반자로 살았는데 이젠 그녀 혼자만 남았다. 애들은 찾아오지도 않고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 그녀와 소밖에 없다. 그래서 소를 못 떠난다. 아지즈가 옆에서 지켜주고 돌봐줬으면 좋을 텐데..... 그녀는 남편을 먼저 보내는 아내가 없도록 해달라고 알라에게 빈다.


남편과 문제가 있는 딸이 찾아왔다. 그녀는 딸에게 말한다. 남편이 잘못을 해도 다 잊고 참아야 한다. 언제까지? 남편을 곁에 둘 수 있을 때까지. 남편을 돌보는 게 아내의 의무다. 남편은 집안의 기둥이니까. 아이까지 낳았는데 친절하게 굴어라. 별거는 남자보다 여자한테 골칫거리다. 일터에서도 사람들이 막 수군댈 거다. 최대한 오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야. 사랑하는 딸아 다시 돌아가서 살아라.


소의 눈이 아픈 것 같다. 그녀가 수의사를 불렀다. 수의사는 말한다. 주사를 놔주겠다. 신의 뜻이라면 나을 거다. 신을 믿어보자.


그녀가 마을의 가게에 들렀다. 버터 2kg, 우유 10kg을 팔러 왔다. 그리고 설탕, 차, 토마토 소스를 샀다. 외상값도 다 갚았다.


그녀가 아들 네짓에게 전화를 한다. 잘 지내니? 아이들도 잘 있고? 아들아 엄마 좀 보러와라. 내가 얼마나 기다리는데 안부 전화도 없냐? 사느라 바쁘다는 건 다 핑계야. 전화도 하고 좀 오렴.


딸 파테메에게도 전화를 건다. 파테메, 잘 지내니? 남편도 잘 있고? 3개월이나 됐는데 엄마 보러 안 올래? 모녀지간에 이게 뭐냐? 만지에에게 전화를 한다. 잘 지내니? 애들도 잘 있고? 나 산에서 내려온 지 5개월 됐다. 아프다는 게 핑계냐? 신이 두렵지 않아? 너희도 다 늙는다. 나만 늙는 게 아냐.


후세인에게도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좋구나. 고향에 오면서 엄마한테는 안 와봐? 바쁘다고? 11명의 자식 중에서 전화를 받은 건 4명뿐이다.


그녀가 소를 팔려고 소장수를 불렀다. 그녀는 암소와 송아지를 350만 이란리얄(약 12만7천원)에 내놨다. 소장수는 280만 이란리얄(약 10만2천원)을 불렀다. 흥정을 해서 300만 이란리얄(10만9천원)에 합의했다. 수표는 그녀의 딸 마수메 앞으로 써달라고 한다. 이 소는 팔아서 딸 마수메에게 줄 생각이다. 마수메가 집을 임대하는데 돈이 부족하대서 소를 판 것이다. 그녀는 소장수를 따라 멀어져가는 암소와 송아지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마을버스 기사한테 그 수표를 마수메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새해다. 그녀의 집이다. 친구들이 모였다. 서로 건강과 복을 빌어준다. 차와 음식을 나누면서 우정을 나눈다.


봄이 왔다. 그녀는 말한다. 봄이 오면 모두가 행복해한다. 고민 따위도 잊어버린다. 나무에 꽃이 피면 사람들도 피어난다. 항상 봄이면 좋겠다. 새처럼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신의 권능이 보이는가? 어제는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봄이다. 보랏빛 앵초꽃이 피고 자연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신이시여 제 꿈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녀는 목수를 불러다 교반기를 새로 만들었다. 목수는 그녀에게 올해는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한다. 그녀는 소들과 산에 올라가서 거기서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첫 버터는 교반기 만든 사람한테 줘야 한다.


산에 오를 결심을 했다. 그녀는 말한다. 아니 시를 읊는다. 사랑스런 산이여! 난 너의 공기가 좋다! 산에 오르기 전 불운이 닥치지 않게 길일을 잡는다. 수요일은 불길하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별이 구글리 산과 마주본다. 토요일엔 별이 바다로 간다. 그러니 일요일이 좋다.


드디어 산으로 떠나는 날이다. 그녀는 소떼를 이끌고 가면서 말한다. 난 삶을 원한다. 봄 날씨를 원한다. 산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말할 수 없어 안타깝다. 마음속으론 자식들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고 싶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다. 소들이 있는 한, 나뭇잎이 흔들리는 한,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한 내 맘대로 살고 싶다.


소몰이하는 피루저 코르시디


그녀는 다시 알브로즈 산 고지대로 올라왔다. 그녀는 말한다. 난 항상 슬프다. 내가 죽으면 소들은 어떻게 하지?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그녀: 탈레비 씨, 카메라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카메라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군요. 

탈레비: 두고 가라고요? 왜요?

그녀: 혼자 말하고 싶어요. 마음속 고민을 말할 거거든요.

탈레비: 알겠습니다.

그녀: 섭섭해하지 말아요.

탈레비: 괜찮아요.

그녀: 카메라를 보며 조용히 마음속 고민을 말하고 싶어요. 신은 알고 계시죠. 당신도 알고 있고요.

탈레비: 알겠습니다. 

그녀: 네잣, 내 아들아. 산에 산 지도 60여 년이 됐다. 난 소를 좋아하고 녀석들도 날 좋아해. 하지만 내가 의지할 건 내 아들이다. 내가 가고 나면 네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해. 넌 내 엄마이고 아버지이고 내 모든 것이야. 너 말곤 아무도 없다. 자식이 많아도 다 나 몰라라야. 진짜 힘들 땐 네가 날 도와주지. 그렇지만 하나 부탁하마. 소는 팔지 말아라. 그럼 내 마음이 안 좋을 거야. 내가 가면 네가 대장이야. 그 다음은 네 남동생이고. 잘해주리라 믿는다. 기도도 금식도 아주 열심히 했어. 보상은 바라지 않아. 나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보상해줘라. 네가 내 명예를 이어주길 바란다. 소들을 팔지 말고 지켜달란 것만 부탁할게. 최소한의 수입으로 살아도 여태 소를 팔지 않았어. 산에 산 지도 60년이 됐지. 외롭지만 소를 아끼며 살았다. 지금도 사람들이 사원에 가서 살라고 하지만 소들이 바로 내 사원이야. 신께서 내가 그러길 원한다면 그 길로 인도하실 거다. 신께서는 '일어나라, 나의 종이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은 늘 나와 함께 해. 이게 내 유언이다.


문득 이란 북부 알브로즈 산을 가보고 싶다. 그녀가 알브로즈 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9.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