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 지역을 동쿠르디스탄이라고 한다. 이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이란 전체 인구(8천100만 명)의 약 10%인 8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란은 동쿠르디스탄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은 이란 정부의 동화정책과 탄압에 시달려 왔으며, 이란의 다수파 이슬람교인 시아파 교도들에 의해 종교적 박해를 받기도 했다.
동쿠르디스탄 지도
이란의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인 마하바드 쿠르드 공화국을 세웠으나, 소련군이 철수하자 이란군의 공격으로 1947년 멸망하고 말았다. 쿠르드족은 1969년과 1971년 독립을 위해 봉기했지만 이란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그래도 1970년대까지 이란을 지배한 팔레비 왕조는 쿠르드족 인물도 가리지 않고 중용했다.
마하바드 공화국 지도
동쿠르디스탄 마하바드
1979년 이란 민중에 의한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이 일어나 입헌 군주제인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사실상 신정 체제인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들어섰다. 이란 혁명(Iranian Revolution of 1979)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는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와 이슬람 단체,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 서부의 동쿠르디스탄에서 쿠르드 민주당(KDPI)이 결성되었다. 1980년 쿠르드족은 이란 혁명을 기회로 삼아 독립을 위해 봉기했지만 이란군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당했다.
루홀라 호메이니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후세인 정부군이 접경지대에 있는 이란의 서부 유전지대를 침공함으로써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라크는 이란의 유전지대인 후제스탄을 장악하기 위해 호람샤르 시를 점령했다. 하지만 전쟁은 곧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란은 자국 내 좌파와 쿠르드족들을 탄압하면서 정작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원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도적인 아랍 국가들로부터 공공연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미국과 소련에서도 암암리에 후원을 받았다. 반면, 이란을 도운 동맹국은 시리아와 리비아뿐이었다. 군사적 교착상태 장기화되면서 이란의 경제가 악화되고, 이라크에게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이란은 국제연합의 휴전 중재안을 받아들임으로써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끝났다. 쿠르드족은 1989년에도 이란의 군사력 약화를 틈타 봉기했으나 이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
1997년 세계인의 관심 속에 이란 대선이 실시되었다. 쿠르드족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선에서 개혁파의 기수 모하마드 하타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타미는 연임에 성공한 뒤 내각에 쿠르드족 출신 장관 2명을 입각시켰다. 이 중에는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전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 같은 쿠르드 출신 유명 정치인들도 있었다.
동쿠르디스탄의 쿠르드족 정치군사 조직에는 이란 쿠르드 민주당(KDPI)과 쿠르드 자유생명당(PJAK), 이란 쿠르디스탄 혁명노동자당 약칭 코말라(Komala),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등이 있다. 이란에도 무장투쟁 조직이 존재하고 분리주의자들의 봉기가 벌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란 쿠르드족의 대부분은 분리독립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 쿠르드 민주당(KDPI) 전투부대 대원들
이란 쿠르드 민주당(KDPI)은 이란 혁명 직후 결성되어 동쿠르디스탄 일대에서 이란군과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KDPI는 2018년 6월 8일 혁명수비대를 공격해서 9명을 사살하고 1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KDPI는 1996년 이후 활동이 잠잠했던 조직이다. 그런데, 전 지도자 사데크 샤라프칸디의 암살 23주기였던 2015년 9월16일 KDPI가 서아제르바이잔 주 시노 지역에 주민들의 환호를 받고 입성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KDPI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장투쟁 활동을 재개하고 나섰다. 최근 KDPI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빈번하게 공격하고 있다.
쿠르드 자유생명당(PJAK)은 2004년에 결성되었으며, 근거지는 이라크 국경지대에 있다. 시아만드 모이니가 이끄는 PJAK는 쿠르드인들의 정치 군사 조직으로 2004년부터 동쿠르디스탄의 문화적, 정치적 권리 및 자치권 확대를 위해 이란 정부에 대항해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란-이라크 국경을 오가며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PJAK가 PKK의 동쿠르디스탄 지부라는 설도 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2006년 11월 뉴요커 기고에서 'PJAK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을 받아왔다'고 폭로한 바 있다.
PJAK는 2011년 이란 정부와 휴전을 맺은 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2016년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했고 최근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2018년 7월 21일 PJAK는 이란 국경의 혁명수비대 기지를 기습공격하여 혁명수비대원 10명을 사살하고 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쿠르드 자유생명당(PJAK)의 군사조직 동쿠르디스탄 수비대(YRK)
PJAK의 군사조직인 동쿠르디스탄 수비대(YRK, Yekîneyên Parastina Rojhilatê Kurdistan) 대원은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터키 등지에서 왔으며 병력은 약 3,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란은 YRK를 불법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터키와 미국도 YRK를 테러 집단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유럽 연합과 국제 연합, 러시아는 YRK를 테러 집단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여성수비대(HPJ, Hêzên Parastina Jin)는 YRK 내 여성으로만 구성된 군사조직이다.
동쿠르디스탄 수비대(YRK)의 여성부대인 여성수비대(HPJ)
이란 쿠르디스탄 혁명노동자당 약칭 코말라(Komala)는 사회주의자인 샤리프자데(Sharifzadeh), 술레이만(Sulayman), 압둘라 모이니(Abdullah Moini) 등이 동쿠르디스탄의 하층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결성했다. 여기에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테헤란과 타브리즈의 쿠르드 대학생들이 대거 가담하면서 코말라는 1969년 쿠르드와 이란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지하조직이 되었다.
남쿠르디스탄에 근거지를 둔 코말라 지도자 압둘라 모흐타디(색안경 쓴 이)
코말라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 통해서 계급의식 및 게릴라전 원리를 가르쳐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했다. 코말라 결성 초기에는 쿠르드 소수민족 문제를 넘어서서 초민족적 기구로 발전하는 가운데 당원수의 확장을 위한 노력에 성공했다. 하지만 동쿠르디스탄 전체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는 할 수 없었다. 코말라는 자체 내분과 다른 투쟁 단체와의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동쿠르디스탄의 자치권과 민족주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향후 이란에 대한 무장투쟁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쿠르디스탄 자유당(PAK)의 군사조직 쿠르디스탄 자유독수리-로젤라트(HAK-R)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Partî Azadî Kurdistan)은 1991년에 결성됐다. PAK는 남쿠르디스탄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PAK의 군사조직에는 쿠르디스탄 자유 독수리-로젤라트(HAK-R)가 있다. HAK-R은 이란-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이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또, 이라크의 쿠르드족 무장단체와 함께 남쿠르디스탄에서도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201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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