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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Kurd) 비운의 역사 - 이라크의 쿠르드족

林 山 2019. 11. 17. 14:23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주를 남쿠르디스탄이라고 한다. 이라크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체 인구(3,700만 명)의 약 17%인 600만 명이다. 이라크 영토 북부 남쿠르디스탄에는 쿠르드족 자치주가 있다. 


이라크 남쿠르디스탄 지도


남쿠르디스탄 쿠르드 자치주의 주도는 아르빌이다. 아르빌은 이라크에서 바그다드, 바스라, 모술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술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져 있다. 아르빌의 역사는 적어도 기원전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빌은 이라크전 당시 대한민국의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적이 있다. 자이툰 부대는 쿠르드 민병대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 수도 아르빌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집권은 쿠르드족에게는 재앙이었다. 후세인은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을 오랫동안 박해했다. 후세인은 걸프전에서 적국 이란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쿠르드족에 대해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어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많은 쿠르드족이 이라크군의 학살을 피해 국외로 탈출했다. 


쿠르드족이 독가스 학살을 당하면서 이 지역에는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에 의해 비행금지구역이 설치되었고 쿠르드족은 이라크 북서쪽 3개 주에 걸쳐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 쿠르드족 자치주는 민병대 수준이기는 하지만 페쉬메르가(Peshmerga)라는 독자적인 군대도 보유하게 되었다. 


미군에 체포된 사담 후세인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1441호를 근거로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전이 벌어지자 남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은 미국을 도와 이라크군을 공격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쿠르드족 학살을 지휘했던 후세인의 사촌이자 심복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이라크 점령 미군에 체포되어 2010년 할라브자 학살죄로 처형당했다. 


사담 후세인도 미군에 체포되어 2006년 11월 5일 1심 재판에서 시아파 무슬림 학살에 대한 유죄가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후세인은 항소했지만 기각되었고, 2006년 12월 30일 수도 바그다드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남쿠르디스탄 쿠르드 지방정부(KRG) 청사


이라크전을 기회로 삼아 쿠르드족은 이라크 북부 유전 지역에 자치정부인 쿠르드 지방정부(Kurdistan Regional Government, KRG)와 입법부인 의회(Kurdistan National Assembly, KNA)를 수립했다. 이라크 쿠르드 지방정부 수반에는 마수드 바르자니(Masoud Barzani), 총리에는 니제르잔 이드리스 바르자니(Nechirvan Idris Barzani)가 취임했다. 남쿠르디스탄의 유력 가문인 바르자니 가문은 유태인계 쿠르드족이다. 


남쿠르디스탄 쿠르드 지방정부 수반 마수드 바르자니


이라크전, 다에시(IS)와의 전쟁 등으로 이라크가 아수라장이 된 반면에 남쿠르디스탄은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북부 유전지대에서의 막대한 원유 수입으로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원유 수입으로 남쿠르디스탄은 이라크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이는 주로 다에시(IS)와의 전쟁으로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라크 내전의 최대 수혜집단은 남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석유 경제에만 의존하는 아랍인 지역과는 달리 남쿠르디스탄은 자체적인 산업 발전도 활발한 편이다.


미국은 주요 무기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 쿠르드족 거주국인 터키의 반발을 고려해 남쿠르디스탄의 독립국가 수립에는 매우 미온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쿠르드 지방정부(KRG)와 매우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바르자니 가문이 유태인계 쿠르드족이기 때문이다. KRG는 이스라엘로부터 상당한 지지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RG는 터키 정부와도 관계가 나쁘지 않다. KRG가 터키를 통해서 원유 거래를 하면서 서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남쿠르디스탄의 쿠르드족은 터키나 시리아의 다른 쿠르드족과의 관계는 다소 소원한 편이다. 하지만 2014년 코바니 전투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이 다에시(IS)와 터키군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KRG는 지원군과 무기를 보내 도와주기도 했다.


쿠르드 민주당(KDP) 로고


남쿠르디스탄 자치정부에는 행정부인 KRG와 의회가 있다. 정치 형태는 의원내각제이지만 직선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의회는 11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과 의원 임기는 4년이다. KRG 통합 이전에는 남쿠르디스탄에 2개의 자치정부가 존재했다. 아르빌 주와 도훅 주에는 쿠르드 민주당(Partiya Demokrat a Kurdistanê, KDP)이 주도하는 자치정부, 술라마니야 주에는 쿠르드 애국동맹(Yekîtiya Nîştimaniya Kurdistan, PUK)이 주도하는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KDP는 마수드 바르자니 KRG 대통령, PUK는 잘랄 탈라바니가 이끌었다. 


KRG는 KDP와 PUK가 연합하여 운영하는 정부이지만 양당 간의 오래된 갈등과 경쟁이 상존하고 있다. 두 당의 협상 끝에 아르빌 주와 도훅 주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KDP 측이 KRG 대통령과 총리를 맡고, 술라마니야 주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PUK측은 이라크 중앙정부 대통령을 맡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2005년 이라크 과도정부는 PUK 지도자이자 KRG의 부총리 잘랄 탈라바니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부통령은 시아파에서 선출하였다. 탈라바니는 이라크의 첫 쿠르드족 대통령이었다. PUK 출신의 바람 살레는 경제부총리를 맡았다. 탈라바니는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던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의 갈등을 중재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하는 등 이라크 민족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이라크 중앙 연립정부 형성 과정에서 KRG 핵심 현안인 헌법 제140조의 이행, 석유법 제정 및 수익 분배, 쿠르드 지방정부군의 민병대인 페쉬메르가(Peshmerga) 문제, 키르쿠크(Kirkuk) 영토 문제 등과 관련해 쿠르드계 입장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2009년 7월 25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KDP의 마수드 바르자니가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KDP와 PUK의 연합 쿠르드 리스트(Kurdistan List, KL)가 111석 중 59석을 차지하였다. PUK에서 이탈해 결성된 고란-변혁운동(Goran, Movement for Change, GMFC)은 25석을 확보하였다. 집권 여당인 쿠르드 리스트(KL)는 PUK의 바람 살레를 총리로 임명하여 내각을 구성하였다.


2010년 3월 7일 실시된 이라크 총선에서 쿠르드계는 국내 선거 결과에 따른 의석수 56석과 해외 투표에 의한 배정 의석 1석을 합쳐 57석을 차지하였다. KDP와 PUK의 연합 조직인 쿠르드연맹(Kurdistan Alliance, KA)이 42석, 고란-변혁운동(GMFC)이 8석, 쿠르드 이슬람연합(Kurdistan Islamic Union, KIU)이 4석, 쿠르드 이슬람그룹(Kurdistan Islamic Group, KIG)이 2석을 차지하였다. 기독교계인 라피데인 리스트(Rafidain List, RL)는 소수파 배정 의석 3석을 확보하였다. RL까지 합하면 쿠르드계는 59석이었다. 


2013년 9월 21일 KRG 총선에서 GMFC는 PUK를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총선 결과 KDP는 38석, GMFC는 24석, PUK는 18석, 쿠르드 이슬람 연합(KIU)은 10석, 쿠르드 이슬람그룹(KIG) 6석, 쿠르드 이슬람운동(Islamic Movement of Kudistan, IMK) 1석, 쿠르드 사회민주당(Kurdistan Socialist Democratic Party, KSDP) 1석, 쿠르드 공산당(Kurdistan Communist Party, KCP) 1석, 쿠르드 노동자당(Kurdistan Toiler's Party, KTP) 1석을 차지했다. 소수민족은 투르크멘이 5석, 앗시리아가 5석, 아르메니아가 1석을 얻었다. 


2014년부터 적극적으로 이라크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한 KRG는 2015년부터 GMFC와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 KRG 이드리스 바르자니 총리는 2015년 10월 각료 중 GMFC에 배분되었던 재정경제부 장관, 종교부 장관, 페쉬메르가부 장관, 통상산업부 장관을 해임했다. 이후 해당 부처는 장관 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017년 9월 25일 KRG는 자치지역 4개 주,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지만 중앙정부와 관할권 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에서 쿠르드 독립 추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총 유권자 458만 명 중 330만 명(72.1%)이 투표한 결과 92.7%인 286만 명이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지지했다.


미국과 EU 등 서방국가들은 쿠르드 독립 투표가 다에시(IS)와의 전투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터키와 이란 등 주변국들은 쿠르드 독립 추진 자체가 이라크의 일체성 및 중동 지역의 안정을 저해한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 독립 투표를 이라크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로 규정하고, KRG에 투표 결과의 취소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동시에 쿠르드 관할 공항과 국경검문소 통제권 반환, 관할권 분쟁지역에서 페쉬메르가의 철수도 요구했다.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전 대통령


2017년 10월 3일 이라크 민족 갈등의 조정자 탈라바니 대통령이 뇌경색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라크 중앙정부와 KRG의 갈등을 조정해온 탈라바니가 사망하자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PMF)는 10월 중순부터 KRG가 점령하고 있던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탈환하고, 페쉬메르가와 교전하면서 신자르(Sinjar) 등 관할권 분쟁지역을 대부분 회복했다.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


쿠르드 민주당(KDP)은 1946년 8월 16일 결성되었다. 중앙당사는 쿠르드 자치주의 수도 아르빌에 있다. 이념은 쿠르드 민족주의, 민족 자결, 보수주의, 대중주의다. KDP는 친이라크파이다. KDP는 1994년부터 친이란파인 쿠르드 애국동맹(PUK)과 여러 차례 남쿠르디스탄에서 내전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KDP는 이라크, PUK는 이란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는 1946년 8월 16일에 태어난 이라크 쿠르드족의 정치인으로 2005년부터 쿠르드 자치주의 대통령이었다. 마수드 바르자니는 쿠르드 민족주의 세력의 지도자였던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뒤를 이어 형 이드리스 바르자니와 협력하여 일했다. 바르자니가 이끄는 KDP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여러 쿠르드 단체와 이란과 연합하여 싸웠고, 걸프전과 이라크전 당시에는 미국과 연합하기도 했다.


쿠르드 민주당(KDP)과 쿠르드 애국동맹(PUK) 지지 지역 지도


쿠르드 애국동맹(PUK)은 쿠르디스탄 애국당으로도 불린다. 당원은 1만 명으로 추정된다. PUK는 KDP의 간부였던 잘랄 탈라바니가 1975년에 창설했다. PUK는 KDP와 대등한 정당이었다. 쿠르드 자치구의 서쪽은 KDP, 동쪽은 PUK가 쿠르드족의 지지를 받는다. PUK는 창당 이념은 사회민주주의이며, PKK를 지지한다. 


PUK는 이란의 영향력 하에 있고, 이란은 이 당을 지원한다. PUK와 KDP는 이라크에서의 독립이라는 같은 목적이 있어서 1987년부터는 같이 협력했고, 1992년에 쿠르드 민족의회를 만들었지만 1994년부터는 노선이나 터키 무역 등 자금을 둘러싸고 자주 대립했다. 2005년 PUK 의장 잘랄 탈라바니가 이라크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페쉬메르가(Peshmerga)는 KRG의 군사조직이다. 'Peshmerga'는 '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페쉬메르가는 다에시(IS)와의 교전으로 유명해졌다. 이와 비슷한 조직에는 시리아의 쿠르드족 자치기구인 로자바(Rojava)의 무장조직 인민수호군(YPG)이 있다. 


페쉬메르가의 기원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라크 쿠르디스탄 민병대이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민병대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였고, 이라크에 귀속된 이후에도 여러 번 독립을 시도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이들을 소탕하고자 독가스 학살 명령을 내렸다. 독가스 명령은 겨자가스 부족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국군은 바르자니 독립군 소탕을 빌미로 쿠르드인 학살을 자행했다. 이런 이유로 페쉬메르는 영국과 처칠에 대하여 반감이 심하다. 


걸프전과 이라크전 당시 쿠르드족 민병대는 미군을 도와 후세인 정부군을 공격했다. 페쉬메르가는 미군의 이라크 점령기간 동안 남쿠르디스탄의 공인된 군사조직인 쿠르드 보안군으로 재구성됐다. 실제로 현재 페쉬메르가는 이라크 법에 의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인정된 무장단체이다.


페쉬메르가


이라크 내전이 벌어지면서 쿠르드 보안군은 이라크 정부군이 버리고 간 자치주 내의 군사시설과 도시들을 신속하게 접수했다. 이들 장비를 가지고 페쉬메르가는 미군과 함께 체계적인 조직과 높은 사기를 바탕으로 초기 이라크 내전에서 많은 지역을 다에시(IS)로부터 지켜냈다.


다에시(IS)의 야지디족 학살 현장


2014년 신자르에서 다에시(IS)의 야지디족(Yazidis) 대학살과 모술(Mosul) 전투를 전후해 이라크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서방 국가들은 페쉬메르가에 상당한 지원을 했다. 독일은 독일연방군의 퇴역 장비를 제공하는 한편 페쉬메르가의 훈련을 도와서 서방의 신뢰를 받는 이라크 최정예부대인 황금사단과 함께 이라크 내전의 판도를 이라크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페쉬메르가는 서방 등 해외 출신 자원 병사들도 받아들였다. 당시 다에시(IS) 격퇴전에 참가한 한국인 용병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술 전투


2016년 1월 국제 엠네스티의 조사에 따르면 페쉬메르가와 야지디 민병대 측이 다에시(IS)를 지지하던 영역의 수니파 마을을 탈환한 이후 피난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철저히 파괴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17일 페쉬메르가는 모술 탈환작전을 이라크 정부군과 함께 시작했다. 페쉬메르가는 모술 외곽 지역까지 이라크군과 연합하여 진격하였다. 하지만, 종족 분쟁이나 종교 분쟁의 가능성을 염려한 이라크 정부와 서방에 의해 모술 시가지 전투에서 페쉬메르가는 제외되었다. 시아파 민병대도 같은 이유로 제외되었다.


페쉬메르가는 KRG의 군사기관이지만 민병대의 성격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KRG 수반에게 충성하지만 지휘권이 페쉬메르가 부(국방부), KDP, KUP의 셋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휘권이 분산되어 있는 까닭에 소속이 다른 부대 사이에 알력과 다툼이 잠재해 있다. 그동안은 다에시(IS) 격퇴전 때문에 알력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내전이 끝나감에 따라 점차 KDP와 KUP의 노선 차이로 인한 알력이 나타나고 있다.


페쉬메르가 부 직속 부대로는 15 지역근위연대가 있다. 쿠르드 민주당(KDP)의 휘하 부대를 야크레이(Yakray) 80이라고 하고, 쿠르드 애국동맹(KUP)의 휘하 부대를 야크레이(Yakray) 70이라고 한다. 


KDP 휘하 부대에는 굴란 부대(Hezakanî Gulan), 바르잔 부대(Hezakanî Barzan), 제라바니 부대(Zeravani units) 등이 있다. 규모는 10개 여단 20,000여 명의 병력이다. 굴란 부대는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과 대통령관저 경호부대이다. 바르잔 부대는 쿠르드 자치주 대통령의 혈족으로부터 모병된 여단이다. 제라바니 부대는 쿠르드 자치정부 내무부의 지휘을 받는 병력이다.


KUP 휘하 부대로는 대테러 부대(Dizha Tiror), 대통령 경호여단, 부통령 경호여단(Hezekanî Kosrat Rasul) 등이 있다. 규모는 15개 여단이다. 대테러 부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대통령 경호여단은 2개 여단이 있는데, 이라크 대통령의 경호부대이다. 부통령 경호여단은 KRG 부통령을 경호하는 여단이다.


20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