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TV AsiaM에서 멈췄다. 왕징(王晶) 감독, 저우싱츠(周星驰) 주연의 '도학위룡 3: 용과계년(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Fight Back To School III, 1993)'을 방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우싱츠 영화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보는 편이다. 저우싱츠의 영화 문법과 내 코드가 잘 맞기 때문이다. 황당무계한 스토리에 코믹한 연기, 기상천외하면서도 엉성한 캐릭터, 무성의한 패러디에 썰렁한 개그, 웃음 속에 눈물도 약간 있는 그런 B급 영화 말이다.
제목의 '타오쉬에(逃學)'는 '학업을 게을리 하다. 학교를 무단결석하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학교를 땡땡이친다는 말이다. 1편을 봐야 이해가 된다. 국장이 자신의 총을 찾아달라는 명령으로 저우싱싱(周星星, 저우싱츠 분)은 어쩔 수 없이 교복을 입고, 가방에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넣고 아침마다 학교에 가야 하는 처량한 고등학생이 된다. 공부라면 질색인 저우싱싱에게는 날마다 끔직한 학교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졸다가 얻어맞고, 장난치다가 두들겨 맞고, 숙제를 안해와서 벌을 서고..... 이러니 저우싱싱이 얼마나 학교를 땡땡이치고 싶었겠는가!
'타오쉬에웨이룽 산즈 룽궈지니엔(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포스터
3편에서도 저우싱싱과 주디(茱迪 - 梅艳芳, 메이옌팡 분)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코스프레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교복 코스프레 장면은 왜 집어넣었을까? 아마도 영화 제목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복 코스프레 장면이 없으면 '타오쉬에(逃學)'가 뜬금없는 제목이 될 테니까 말이다.
'웨이룽(威龍)'은 '위엄이 있는 용'이니까 학교로 말하자면 '짱'이다. 1편에서 저우싱싱은 좋아하는 호 선생(張敏, 짱민 분)의 특별지도로 성적이 쑥쑥 오른다. 학생들에게는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하는 정의의 두목으로 추앙받아 저우싱싱의 인기는 날로 급상승한다. 그래서 '웨이룽(威龍)'이다. '싱싱(星星)'도 '스타'란 뜻이다. '룽궈지니엔(龍過鷄年)'은 '용이 닭의 해를 보내다'의 뜻이다.
이하는 3편의 스포일러다. 비밀경찰 저우싱싱(저우싱츠 1인2역)은 미녀 약혼녀 아민(짱민 분)에게 다시는 비밀경찰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아민 역시 교사직을 포기하고 꽃가게를 차린다. 극중에서도 미녀 약혼자를 둔 저우싱싱은 복도 참 많다. 짱민은 크레딧에 주연으로 나왔지만 사실 그리 큰 배역은 아니다.
갑부 왕백만(저우싱츠 1인2역)은 신비의 여인과 밀회 중 양손을 침대에 묶인 채 얼음 송곳에 잔인하게 찔려 시체로 발견된다. 강력계 여 반장(梁家仁, 량쟈렌 분)은 저우싱싱의 외모가 왕백만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 가지 꾀를 낸다. 여 반장은 저우싱싱을 왕백만 행세를 하게 해 갑부의 죽음을 은폐한다. 수사 결과 혐의자는 왕백만의 부인 주디(메이옌팡 분)와 왕백만의 친구인 임대악(黃秋生, 황치우셩 분)으로 좁혀진다. 아민은 저우싱싱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도 바람을 피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저우싱싱은 왕백만 행세를 하려고 주디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리는 등 온갖 소동이 벌어진다. 주디도 저우싱싱이 자기 남편이 아닌 걸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출동한 여 반장은 주디의 신경과민 탓으로 돌린다. 저우싱싱은 주디가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임재악은 저우싱싱의 정체를 밝히려 혈안이 된다.
이때 아민에게 신비의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고..... 저우싱싱은 범인 검거에 힘쓰면서 다른 한편으론 아민을 사랑한다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려 애쓴다. 저우싱싱은 여직원 성문정(周海媚, 저우하이메이 분)의 도움으로 왕백만과 임대악의 원한관계를 알게 된다. 임대악은 주디의 동성연애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요구하는데..... 임대악은 신비의 킬러에게 여러 번 습격을 받고 주디를 의심한다.
그런데 아민에게 사랑을 고백한 신비의 남자가 주디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우싱싱과 주디 그리고 아민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 어느 날 주디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저우싱싱은 성문정을 살해하려는 신비의 킬러를 붙잡는다. 그 신비의 킬러는 바로 주디였고, 주디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체포당한다.
사건을 해결한 저우싱싱은 아민에게 용서를 받으러 집에 간다. 그러나 진짜 범인이 아민을 붙잡고, 아민 대신 저우싱싱을 유혹하여 침대에 양손을 묶는다. 뒤늦게 아민이 아님을 알아차린 저우싱싱은 범인과 사투를 벌여 진범을 검거한다. 범인은 뜻밖에도.....
'도학위룡 3 - 용과계년(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포스터
왕징 감독은 주인공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극중 주인공의 이름을 저우싱츠의 끝자 '츠(驰)'만 '싱(星)으로 바꿨다. 왕징 감독은 1991년에도 저우싱츠, 꽁리(巩俐), 뤼량웨이(呂良偉) 주연의 '두샤 II: 상하이탄두셩(賭俠 II 之上海灘賭聖, 1991)'에서도 주인공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극중 주인공 이름이 저우싱초였다. 저우싱츠의 이름 끝자만 '초'로 바꿔 자우싱초라고 한 것이다.
왕징 감독, 저우싱츠에 메이옌팡, 짱민 두 미녀가 나오지만 왠지 이 영화는 허전하다. 우멍다(吴孟达)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왕징 감독, 저우싱츠 주연의 영화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우멍다가 나와야 비로소 쓰리 콤보가 완성된다. 황이페이(黃一飛)까지 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1, 2편에서는 우멍다가 나와 쓰리 콤보를 달성했다. 3편에서는 우멍다 대신 홍콩 코미디물 영화의 단골 배우 첸보샹(陳伯祥)이 저우싱싱을 도와주는 역을 맡았다. 원래 이 캐릭터는 우멍다가 늘 맡던 역이었다.
3편은 허술한 꺼벙이 우멍다를 볼 수 없는 대신 메이옌팡의 매력을 120%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섀런 스톤(Sharon Stone) 주연의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을 패러디했다고 한다. 메이옌팡은 특이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 역을 아주 잘 연기했다. 3편에서 메이옌팡은 대역불가의 배우다.
이 영화에는 1997년 홍콩 반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극중 경찰의 대사에 '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 내가 너보다 상급자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종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은 민주주의가 후퇴했고, 자유가 제한되었다. 홍콩 영화도 죽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홍콩 느와르는 이제 과거의 전설이 되어 버렸다.
쥐화웨이즈(橘化为枳)라는 말이 있다. 화이난(淮南)의 귤을 화이베이(淮北)로 옮기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귤은 화이수이(淮水)를 건너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어쩌랴! 운명인 것을.....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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