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전세계는 한 인도 청년의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1986년 5살의 나이에 낯선 기차역에서 홀로 잠이 들었다가 집을 잃어버리게 된 사루 브리얼리가 1987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새로운 가족 곁으로 입양을 간 후 25년 만에 다시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사루 브리얼리가 옛 기억과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도움을 받아 7,600km 떨어진 인도 생모를 찾았다는 데 있다. 이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 가스 데이비스(Garth Davis) 감독의 호주와 미국 합작영화 '라이언(Lion, 2016)'이다.
영화 '라이언' 포스터
인도의 궁벽한 시골에 사는 5살 소년 사루(써니 파와르 분)의 집은 가난하다. 사루의 엄마는 돌 나르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로 인해 인구의 80%가 어려운 생활을 한다. 인도인의 하루 평균 임금은 300루피(5천 원), 소년들의 임금은 성인의 20%밖에 안 된다. 사루는 엄마를 도와 돌을 나르기도 하고, 형 구뚜(아비쉑 바라트 분)와 함께 화물열차에서 석탄을 훔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구뚜와 사루가 목숨을 걸고 훔친 석탄은 겨우 우유 두 봉지를 살 수 있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어느 날 사루는 일을 하러 나가는 형 구뚜를 따라 나선다. 잠시 볼일을 보러 간 형을 기다리던 사루는 추위를 피하려고 잠시 정차한 열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런데, 사루는 그만 열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만다. 사루는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콜카타 역에서 눈을 뜨게 된다. 낯선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사루는 보고 싶은 엄마와 형 구뚜를 애타게 불러보지만 들려오는 것은 빈 메아리뿐이다.
콜카타는 뉴델리, 뭄바이에 이어 인도 제3의 도시로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도시 중 하나다. 사루는 그 넓은 콜카타에서 어딘지도 모른 채 방황한다. 한번은 고아들과 함께하던 지하도에서 불량배들에게 잡힐 뻔했다가 가까스로 도망친다. 인도에서 납치나 인신매매는 너무 흔한 범죄이며, 부패한 경찰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사루는 철길을 걷다가 심상치 않은 사람을 만난다. 낌새를 눈치 챈 사루는 또 한 번 도망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사루는 수 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힘겹게 살아간다.
사루는 거리를 헤매다가 강가에 있는 사원으로 간다. 시바신(Shiva)에게 기도를 올린 뒤 신에게 바쳐진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먹는다. 여기서 '과연 신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신은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타타 그룹(Tata Group) 회장처럼 어떤 사람들은 돈에 파묻혀 죽을 만큼 엄청난 억만장자들이 있다. 반면에 사루네처럼 돌을 나르거나 달리는 열차에서 석탄을 훔쳐 팔아도 5루피(약 83원) 짜리 찹쌀 튀김빵 젤라비(Jellabies Bread) 하나 사먹기 힘든 극빈층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그따위 신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이런 의문들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루는 경찰서로 인도된다. 힌디어만 아는 사루에게 벵골어를 쓰는 콜카타는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루가 아는 것은 형의 이름 구뚜와 정확하지 않은 동네 이름뿐이다. 경찰은 사루의 집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수용소나 다름없는 미아보호소로 넘긴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여기서 '경찰은 왜 사루의 집을 찾아주지 못할까?'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인도를 한국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인도의 국토 면적은 약 328만㎢이다. 한반도보다 무려 약 15배나 더 넓다. 인구는 약 13억5,400만 명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인도의 문맹률은 25% 이상인 주가 수두룩하다. 4명 중 1명은 자신의 이름조차도 쓰지 못한다.
신문을 보는 인도인은 1,300만 명이라고 나온다. 이 수치는 인도 인구의 1%도 안 된다. 인도 헌법에는 정부 기관 내에서 공식적인 의사 소통은 영어와 힌디어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인도에는 적어도 800여 개의 언어와 2,000여 개의 방언이 있으며, 공용어만 20여 가지나 된다. 사루의 엄마도 형 구뚜도 십중팔구 문맹일 것이다. 미아 광고를 내도 사루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이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미이보호소에서 입양 담당 직원은 사루에게 입양을 권한다. 결국 사루는 인도를 떠나 호주까지 날아가 수(니콜 키드먼 분)와 존 브리얼리(데이비드 웬햄 분) 부부에게 입양된다. 어린 사루가 호주에 처음 온 날 수는 그를 씻기며 "여기까지 오느라 길고도 긴 여정이었겠지. 어떤 일들을 지나왔는지 알려줘. 나중에 꼭 다 알려줘. 내가 다 들어줄게. 언제까지나 들어줄 거야."라고 말한다. 사루는 정말 훌륭한 양부모를 만났던 것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니콜 키드먼의 양엄마 연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사루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인도에서 미아가 된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가? 깡패한테 잡혀가면 앵벌이 같은 것을 시킨다.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은 눈을 뽑아서 멀게 한 다음 앵벌이를 시키기도 한다. 또, 아킬레스건을 끊어서 안질뱅이로 만들기도 한다. 도망을 못치게 하기 위해서다. 여자들 같은 경우는 사창가에 팔아버린다. 사루도 낯선이의 친절에 이끌려 인신매매 조직에 몇 번이나 끌려갈 뻔했다. 영화는 인도의 미아 발생 문제와 납치, 인신매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인도가 영혼의 땅이라고 인도팔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범죄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헛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살면서 성장한 사루 브리얼리(데브 파텔 분)는 대학까지 나오고 여자 친구까지 생긴다. 사루는 대학원에서 우연히 인도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을 엄마와 형에 대한 생각에 괴로워하던 사루는 위성 지도 프로그램인 구글 어스로 전세계 어디든 찾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 25년 만에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사루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큰 물탱크가 있는 기차역뿐이었다. 그에게는 그 기차역 플랫폼에서 잠들었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사루는 1986년의 기차 속도와 시간을 바탕으로 오차 범위를 설정하고, 단편적인 기억에 의존해서 그 역 주변을 하나하나 구글 어스가 제공하는 위성 사진으로 확인한다. 2011년 사루는 작업을 시작한지 3년 만에 마침내 인도의 집을 찾아낸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호주에서의 안락하고 행복한 삶에도 불구하고 사루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는 여자 친구 루시(루니 마라 분)에게 '아직도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모를 가족들 생각이 생생해. 그들이 나를 찾으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여기서 두 다리 뻗고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지. 그 생각만 하면 구역질이 나. 더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어.'라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그동안 양부모에게 배신감을 안겨줄까봐 망설이던 이야기였다. 낳아준 엄마를 찾으려고 애쓰면서도 양부모에게는 차마 말을 못 하는 사루에게 루시는 그건 양부모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충고한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루니 마라의 역은 그리 큰 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역이다. 사루에게 낳아준 엄마를 찾으라고 부추기는 역이기 때문이다.
사루는 어느 날 양부모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수와 존 부부가 양부모가 아니라 친부모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는 사루의 말을 부정하면서 "존과 나는 늘 생각했단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고. 그래서 낳지 않기로 한 거야. 그리고 아이들을 거두어 기회를 주는 편이 낫지 않겠니?"라고 말한다. 수와 존 브리얼리 부부는 이상적인 입양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입양을 하려면 이런 열린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화 '라이언'의 한 장면
마침내 사루는 인도로 날아가 친엄마와 누나를 만난다. 5살 때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아들이 25년 만에 돌아와 엄마와 만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엄마는 사루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옛날에 살던 집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루가 형 구뚜에 대해 묻자 엄마는 하늘을 바라보며 '네 형 구뚜는..... 흙.....'이라고 대답한다. 사루를 잃어버린 이후의 구뚜는 자막으로 설명된다. 사루가 실종된 그날 구뚜는 동생을 애타게 찾다가 기차에 치어 죽었다. 사루의 가슴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사루는 자신의 실제 이름이 세루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5살 소년의 발음이 서툴러 사루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세루는 인도어로 사자(lion)라는 뜻이고,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되었다. 사자는 새끼들을 언덕에서 떨어뜨려 올라온 새끼들만 기른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어린 시절 온갖 험난한 일들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낸 세루도 한 마리의 용감한 새끼 사자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절망적인 상황에 떨어진 세상의 수많은 새끼 사자들에게도 용기를 가지고 이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엔딩 크레딧에 인도에서는 세루 같은 미아가 매년 8만 명이나 발생한다는 멘트가 나온다. 인도 정부 나아가 전세계인에게 어린이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메시지다. 매년 8만 명이나 미아가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인도 어린이의 인권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증거다. 이 중에는 납치나 인신매매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5살 사루 역을 맡은 써니 파와르의 눈빛 연기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다. 써니 파와르는 5살 사루를 연기할 인도 소년을 찾기 위해 인도를 직접 찾아간 제작진의 눈에 띄어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 경쟁률은 무려 4,000대 1이었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은 "눈 너머로 이야기를 담을 줄 아는 아이가 필요했는데, 써니 파와르는 그 아름다운 면을 갖고 있었다"며 "촬영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요구하지 않은 감정들을 스스로 연기해내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고 고백했다.
2012년 인도를 떠나온 지 25년 만에 구글 어스로 집을 찾았다는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BBC 등 뉴스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루 브리얼리는 2013년 책 'A Long Way Home(집으로 가는 머나먼 길)'을 출간하고, 세계 곳곳에서 강연을 통해 자신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희망을 나누고 있다.
201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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