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에서 가끔 틀어주는 외국영화가 있다. 바로 크쥐시토프 루카세비치(Krzysztof Lukaszewicz) 감독의 폴란드와 불가리아 합작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 2015)'이다. 원제는 '카르발라(Karbala)'이다. 처음에는 헐리우드 영화겠거니 하고 봤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폴란드 영화였다. 한국에는 2018년 6월 21일 개봉했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 포스터
폴란드 영화를 감상한 것은 아마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감독도 주연 바르트워미에이 토파(Bartlomiej Topa), 안토니 크롤리코브스키(Antoni Krolikowski), 아테어 아델(Atheer Adel), 흐리스토 쇼포브(Hristo Shopov), 레섹 리코타(Leszek Lichota) 등도 아주 생소한 이름들이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카르발라'도 시아파 무슬림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지만 극동 아시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사전에 공부 좀 해야 한다. 카르발라는 케르벨라(Kerbela)라고도 한다.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성도(聖都)인 카르발라는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메소포타미아 중앙부 유프라테스강 하구에 있다.
카르발라는 지금까지 국내외 지배자들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주민 가운데 약 절반은 이란계이며, 인도인과 파키스탄인도 일부 있다. 주변지역은 평지로 동쪽의 유프라테스 강에서 서쪽의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까지 펼쳐져 있다. 강 주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 포스터
카르발라 시가 종교적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은 680년 10월 10일(이슬람력 61년 1월 10일) 수니파(Sunni) 이슬람교도와 시아파(Shi'ite) 이슬람교도의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680년 봄 옴미아드 왕조의 야지드 1세(Yazīd ibn Mu‘āwiyasil)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칼리프 자리에 오르면서 무슬림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분열되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의 죽은 사위 알리를 추종하던 여러 세력들은 야지드 1세에 반대해 쿠파(Kūfah)에서 봉기했다. 알리 추종 세력은 무함마드의 손자로 알리의 차남인 시아파 제3대 이맘(Imām) 후사인 이븐 알리(Ḥusayn ibn ‘Ali)에게 쿠파로 피신하라고 권하면서 그를 이라크에서 칼리프로 추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야지드 1세는 쿠파에서 일어난 시아파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바스라의 총독 우바이드 알라를 파견했다. 우바이드 알라는 각 부족장들을 소집해 부족민들의 모든 행동에 대해 그들이 책임을 지도록 했다. 후사인은 쿠파의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리라 기대하면서 가족과 추종자 등 약 200명을 데리고 메카(Mecca)를 출발했다. 후사인 일행은 시아파의 본거지인 쿠파로 가는 도중 유프라테스 강 서쪽에 있는 카르발라에서 우바이드 알라 군대에 포위되었다. 이 부대는 쿠파 건설자의 아들인 우마르 이븐 사드가 지휘했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의 한 장면
후사인은 쿠파로부터의 지원 약속을 믿고 전쟁을 벌였지만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680년 10월 10일 후사인은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고 전투를 개시했다. 하지만 그날 후사인은 목이 잘렸고, 그의 가족과 추종자도 모두 그 자리에서 순교하였다. 후사인에게 충성한 쿠파 세력은 자신들의 제의가 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고 통탄했다. 카르발라의 비극을 계기로 시아파는 야지드와 우바이드 알라, 우마르를 살인자로 선포했다. 이들은 이후 시아파 무슬림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헤지라력 무하람(1월) 10일 후사인이 순교한 이 비극의 날을 아슈라(Ashura)라고 한다. 헤지라력은 서기 636년에 제정되어 이슬람권 내에서 쓰는 태음력이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성천(聖遷)한 서기 622년 7월 16일을 기원 원년 1월 1일로 한다. 시아파들은 무하람 10일 아슈라를 전교도 애도의 날로 삼고 있다. 아슈라에는 카르발라뿐만 아니라 특히 이란인들 사이에서 알리 가문의 불운을 그린 수난극들을 상연한다. 또 후사인의 순교를 추모하는 행사도 많이 열린다. 과거 이란의 시아파 최고 지도자들은 주로 카르발라로 옮겨와서 거주하기도 했다.
카르발라에 있는 순교자 후사인의 무덤은 시아파 무슬림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1801년 후사인의 무덤이 파괴되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은 카르발라에 묻히는 것을 천국에 이르는 확실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어 이곳에는 광대한 규모의 공동묘지가 여러 곳 있다. 카르발라는 나자프(Najaf)와 함께 시아파 무슬림들의 중요한 순례지로 되어 있으며, 메카 순례를 위한 출발지이기도 하다.
나자프는 이라크 남부 나자프 주의 주도이다.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과 접한다. 791년 압바스 왕조의 제5대 칼리프이자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주인공 하룬 알라시드가 정통 제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영묘(靈廟)를 건설했으며, 현재는 이라크 시아파의 정치적 중심지이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의 한 장면
수니파와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계승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니파는 역대 칼리프를 계승자로 여긴다. 수니파는 ‘순나-예언자의 관습을 따르는 자’라는 의미로, 무함마드와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이슬람의 통치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이슬람의 통치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시아파는 정통 칼리프 시대에 암살당한 4대 칼리프인 알리만을 계승자로 인정한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다. 시아파는 시아 알리라고도 하는데 알리의 추종자라는 뜻이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세계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면서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다.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는 2004년 이라크에서 벌어진 실제 전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다국적군으로 파견된 폴란드 군과 불가리아 군이 카르발라 시청사를 삼일 간 사수한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제1차 걸프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2003년 3월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을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반대하는 가운데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른바 제2차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아닌 말 잘 듣는 다른 독재정권을 원했다. 후세인은 미국의 중동정책의 희생자였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소수 수니파 후세인 정권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후세인은 그의 고향 근처로 도망했으나 그해 12월에 체포되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수니파 저항세력이 이라크 무장반군 다에시(IS)를 형성하게 된다. 다에시(IS)가 생겨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다. 당시 이라크 점령국들은 조지 부시가 최초에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대량살상무기 은닉설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꾸며낸 사기였음이 드러났다.
다에시(Daesh)는 테러리즘 단체가 국가를 참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미국, 프랑스 등 서구와 러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부르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에 대한 멸칭(蔑稱)이다. 다에시(IS)는 공식 명칭인 이슬람 국가의 약자인 IS로 표기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다른 이슬람 국가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예전 명칭인 ISIS나 ISIL로 칭해 왔다. 그러나 ISIS와 ISIL 모두 이슬람국가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어났다. 납치, 인신매매, 강간, 살해, 역사 유적 파괴, 무차별 테러 등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무장 집단을 ‘국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비판이 대두한 것이다.
다에시(Daesh)는 IS의 과거 명칭 '이라크-알샴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 ISIS)'의 아랍어 표기인 ‘다울라 이슬라미야 이라크 샴(Dawlat al-Islamiyah f'al-Iraq wa al-Sham)’의 약자이다. IS는 '다에시'라는 말이 '짓밟다'는 뜻의 아랍어 '다샤'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이름의 사용을 금지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2004년은 미국이 이라크에 주권을 돌려준 해다. 이에 따라 미군정 루이스 폴 '제리' 브레머 3세(Lewis Paul 'Jerry' Bremer III) 최고 행정관이 물러나고 이라크인 가지 마샬 아질 알야와르가 이라크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알야와르는 미군정에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raqi Governing Council) 의장을 지냈다. 이후 이라크는 시아파와 쿠르드족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의 한 장면
영화는 이라크에 파병된 폴란드 병사들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로 투입된 의무병 카밀 이병(안토니 크롤리코브스키 분)은 순찰 작전 중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당한 아군을 옮기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기소될 위기에 처한다. 당시 수니파 반군의 매복에 걸려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과 선임자에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에 대해 카밀은 납득하지 못한다.
폴란드 군이 리마로 카밀을 이송하던 중 카르발라 시내에서 수니파 반군의 공격을 받아 한 명은 포로가 되고, 카밀 이병은 가까스로 이라크인 정보원 프레이드(아테어 아델 분)에 의해 구조되어 그의 집에 은신하게 된다. 나머지 병력은 희생된다.
여기서 폴란드는 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폴란드는 미국 주도의 평화유지군으로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평화유지군을 파병한 국가에 한해서만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군도 평화유지군을 이라크에 파병한 바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시민사회와 진보단체들이 일관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다가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는 역풍을 겪기도 했다.
10월 10일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의 최대 종교 행사인 아슈라가 시작되면서 이라크 수니파 반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다에시(IS)는 다른 종교보다 오히려 시아파를 더 배척한다. 시아파 무슬림을 이단자, 배교자로 보기 때문이다. 아슈라가 되면 시아파 무슬림들이 성지 순례를 위해 카르발라로 모여든다. 수니파 반군은 이를 노린 것이다.
수니파 반군에 의해 폴란드 군 칼릭키 대위(바르트워미에이 토파 분)가 지휘하는 병력과 불가리아 군은 카르발라 시청사에 포위된다. 이라크 반군은 시청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번번이 실패하자 민간인과 폴란드 군 포로를 인간방패로 삼아 박격포 진지를 구축하여 공격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칼릭키 대위와 불가리아 군 장교는 박격포 진지 공격을 위한 합동작전을 짠다. 마침내 합동작전이 성공하고, 카밀은 인질이 된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수니파 반군에 넘긴 프레이드와 딸까지 구출한다. 카밀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희생적인 휴머니즘을 발휘한다. 이 장면마저 없었다면 영화는 혹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영화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의 한 장면
폴란드 군은 사수 작전으로 카라발라 시청을 수니파 반군으로부터 지켜낸다. 그러나, 미군에 의해 이 전투가 모두 이라크 정부군의 전공으로 발표된다. 이라크 정부군은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도 말이다. 폴란드 군 장군과 칼릭키 대위는 극중 대사를 통해 그것이 강대국의 횡포임을 고발한다. 이 장면은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나오는 숱한 발표들은 진위를 확실히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영화는 폴란드 군이 왜 이라크에 파병됐는지에 대한 관객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전체적인 전황 속에서 카르발라 전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아리송하다. 카르발라 시청에 고립된 불리한 상황 속에서 폴란드 군의 악전고투하는 장면만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전투력 열세로 수니파 반군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폴란드 군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민병대 수준의 반군에게 털리는 부대를 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영화지만 말이다. 불가리아 군의 활약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일까? 이라크를 위해 폴란드 군이 이렇게 희생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일까?
'배틀필드: 카르발라 전투(Karbala)'는 폴란드가 이라크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영화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라크에 파병된 폴란드 군의 활약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힘이다.
2019.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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