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쯤이었을 것이다. 출퇴근길에 아침 저녁으로 지나다니는 음식점 화단에서 며칠째 꽃망울만 맺혀 이제나 저제나 터질까 가슴 졸이게 하던 홑왕원추리가 드디어 활짝 꽃을 피웠다. 바야흐로 원추리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홑왕원추리에 대해서는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사이트에도 과명과 영어명만 기재되어 있을 뿐 속시원하게 알려주는 곳이 거의 없다. 홑왕원추리에 대해서 알려면 먼저 왕원추리를 알아야 한다. 왕원추리와는 꽃 모양만 다르고 나머지 생태는 거의 같기 때문이다.
왕원추리는 백합목 백합과 원추리속의 여러해살이풀이이다. 학명은 헤메로칼리스 불바 포름 관서 (레겔) 기타무라[Hemerocallis fulva f. kwanso (Regel) Kitam], 또는 헤메로칼리스 풀바 버라이어티 관서(Hemerocallis fulva var. kwanso)이다. 속명 '헤메로칼리스(Hemerocallis)'는 '하루'를 뜻하는 그리스어 '헤메라(hemera)'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lo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꽃이 하루만 피고 시들어버린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종소명 '풀바(fulva)'는 '황갈색'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f.'는 'form'의 약자로서 품종을 말한다. 품종명 '관서(kwanso)'는 왕원추리가 발견된 지역인 '관서 지방'을 가리킨다.
'레겔(Regel)'은 두 사람이 있다. 에두아르드 아우구스트 폰 레겔(Eduard August von Regel, 1815~1892)과 그의 아들 요한 알베르트 폰 레겔(Johann Albert von Regel, 1845~1909)이다. 에두아르드 폰 레겔은 독일 원예가이자 식물학자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제국 식물원 원장을 지냈다. 요한 폰 레겔은 스위스-러시아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이다. '기타무라(Kitam)'는 국화과 식물 연구자로 유명한 일본의 기타무라 시로(北村四郞, 1906~2002)이다.
왕원추리의 영어명은 데이-릴리((day-lily)이다. 아름다운 꽃이 하루만 피고 시들어버린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어명은 야부칸조우(ヤブカンゾウ, やぶかんぞう, 藪萱草)이다. 이명에는 와스레구사(わすれぐさ, 萱草), 와스레나구사(わすれなぐさ, 忘れ名草), 간조우나(カンゾウナ) 등이 있다. 중국명은 창빤쉬안차오(长瓣萱草)이다. 왕원추리를 의남(宜男), 지인삼(地人蔘), 누로과(漏盧果), 겹원추리, 가지원추리, 넘나물, 수넘나물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왕원추리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한강토(조선반도)롤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에는 유사 이전에 중국에서 건너와 사찰을 중심으로 심었다. 지금은 일본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한강토에서는 제주도와 남부, 중부 지방의 산지나 풀밭에서 자란다.
왕원추리의 키는 1m까지 자린다. 덩이뿌리는 황색이며 방추형으로 굵어지는데 때로 땅속줄기를 낸다. 뿌리에서 나온 긴 칼처럼 생긴 잎은 두 줄로 배열되어 마주난다. 넓은 선형의 잎은 위쪽이 활처럼 뒤로 휘었고 끝이 뾰족하다. 표면에 털은 없으며 뒷면은 분처럼 다소 희다.
왕원추리의 꽃은 6~8월에 등황색 또는 등적색으로 핀다. 잎 사이에서 길게 나온 꽃줄기의 위쪽이 갈라지고, 그 끝에 꽃턱잎과 함께 많은 겹꽃이 달린다. 꽃이 원추리보다 크고 빛깔도 짙다. 노란 꽃이 피는 원추리에 비해 왕원추리 꽃은 주황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고 겹꽃으로 피는 점이 다르다. 꽃턱잎은 달걀을 닮은 삼각형이다. 나리꽃처럼 생긴 꽃은 안쪽에 짙은 무늬가 있다. 수술과 암술은 대부분 꽃덮이로 되어 겹꽃이 된다. 수술과 암술이 꽃잎으로 변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왕원추리 중에서 꽃잎이 홑꽃인 유사종을 홑왕원추리 또는 왕원추리 홑꽃이라고 한다. 홑왕원추리의 학명은 헤메로칼리스 풀바 (린네) 린네[Hemerocallis fulva (L.) L.]이다. '린네(L)'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이다. 린네는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그는 속명 다음에 종명 형용사를 붙여서 두 말로 된 학명을 만드는 이명법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변종에 대한 개념도 제시했다.
홑왕원추리의 원산지는 한강토를 비롯해서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지이다. 영어명은 오린지 데이릴리(Orange Daylily) 또는 토니 데이릴리(Tawny Daylily), 타이거 데이릴리(Tiger Daylily), 디취 데이릴리(Ditch Daylily)이다. 오린지(Orange)나 토니(Tawny), 타이거(Tiger)는 홑왕원추리의 등황색 꽃색을 의미한다. 일어명은 와스레구사(ワスレグサ, 忘れ草) 또는 와스루루쿠사(ワスルルクサ, 忘るる草), 간조우(カンゾウ, 萱草)이다. 중국명은 쉬안차오(萱草)이다. 홑왕원추리를 기새, 넓나물, 신달미라고도 한다. 꽃말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왕원추리는 꽃이 아름다워서 공원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많아 심는다. 또 밀원이나 식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꽃은 피기 전에 따서 황화채(黃花菜)의 재료로 쓴다.
황화채는 넘나물을 끓는 물에 데쳐 식초, 소금, 기름에 무친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봄철에는 원추리의 어린 싹, 여름철에는 꽃을 따서 김치를 담가 먹거나 나물로 무쳐 먹었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6~7월경 원추리의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따 버리고 깨끗한 물에 한소끔 끓여내어 초를 쳐서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밍(明)나라 리싀젠(李時珍)이 쓴 '뻰차오강무(本草綱目)'에는 '원추리꽃을 삶아 먹으면 오장육부를 편하게 하고 몸이 가벼워지며 눈을 밝게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을 잊게 하여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원추리의 꽃봉오리를 금침채(金針菜), 의남화(宜男花), 훤초화(萱草花). 천초화(川草花), 황화채(黃花菜), 녹총화(鹿蔥花), 훤악(萱萼) 등으로 부른다. 원추리를 먹을 때 겹꽃인 왕원추리는 독이 있어 먹어서는 안 되고, 홑꽃을 먹되 그 중 노란 원추리가 좋다고 하여 금훤(金萱)이라 불렀다.
원추리, 노랑원추리, 애기원추리, 큰원추리의 뿌리를 한의학에서 훤초근(萱草根)이라 하며 약재로 사용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한다. 훤초근은 심장과 비장 질환을 다스리며, 방광 질환에도 효험이 있다. 대하, 번열, 코피, 사지마비나 경련, 소변불리, 소변불통, 종양, 수종, 어혈, 영류, 유방염, 유즙분비부전, 치루, 황달 등을 치료한다. 옛날 민간에서는 아들 낳는 약으로도 썼다. 한의사들은 거의 안쓰는 한약재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에는 '훤초근의 성질은 서늘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오줌이 빨가면서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몸에 번열이 나는 것, 사림(沙淋)을 낫게 한다. 수기(水氣)를 내리며 주달(酒疸)을 낫게도 한다. 집 근처에 심는데 흔히 만만한 싹을 캐서 끓여서 먹는다. 꽃망울을 따서 생절이를 만들어 먹으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데 아주 좋다고 한다. 일명 녹총(鹿쒢)이라고도 하고 꽃은 의남(宜男)이라고도 하는데 임신부가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나와 있다. '임신부가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게 된다.'는 내용은 과학성이 없는 허황한 것이다. 또, '뻰차오강무'에는 '양셩룬(養生論)'을 인용 '원추리가 왕여우차오(忘忧草)로 불리운 것이 여기서 나왔다'고 하였다.
2020. 6. 26. 林山. 2022.8.9.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