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의학 건강 이야기

심한 자궁출혈증으로 내원한 40대 여성

林 山 2020. 7. 23. 15:25

40대 중반의 여성 H씨가 내원해서 심한 자궁출혈(子宮出血, uterine bleeding)을 호소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생리 주기는 평균 28일(21~35일)이며, 생리 기간은 3~5일(2~7일) 정도 지속된다. 그런데 H씨는 생리 기간이 무려 20일이나 된다고 했다. 

 

H씨는 자신의 자궁출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유명하다는 대학병원과 소문난 한의원을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자신의 자궁출혈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들로부터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말만 들었다. 이는 자궁출혈증의 원인을 스트레스로 본다는 말이다.  

 

먼저 H씨의 맥상(脈象)을 보니 혈맥(血脈)과 기맥(氣脈)이 모두 허세맥(虛細脈)이 잡혔다. 기혈(氣血)이 다 부족하고 허하다는 신호였디. 현기증(眩氣症, vertigo)이 심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는 오랜 자궁출혈에 의한 실혈(失血)로 빈혈(貧血, anemia)을 초래한 것이었다. 빈혈의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 현훈(眩暈, 어지럼증)이다. 피로감이 심하냐고 묻자 피로를 늘 다고 다닌다고 했다. 이는 기허증(氣虛症)에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다. 빈혈은 필연적으로 기허증을 초래한다. 혈(血)은 기(氣)의 물질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H씨는 본래 몸이 찼었는데 인삼(人蔘)을 장기간 복용한 뒤부터 따뜻해졌다고 했다. 인삼은 소음인약이니 H씨는 소음인(小陰人) 체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녹용(鹿茸)이 잘 받으면 태음인(太陰人), 숙지황(熟地黃)이 효과가 좋으면 소양인(少陽人), 오가피(五加皮)로 똑소리 나면 태양인(太陽人)일 가능성이 많다. 

 

H씨는 성격이 예민하고 불면증(不眠症, insomnia)도 있었다. 복부에 가스가 많이 차고, 하복부가 단단하게 뭉친 듯한 느낌도 있다고 했다. 소음인은 성격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경향이 있다. 예민하면 마음이 불안하게 되고, 심적 불안은 나아가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소음인은 성격뿐만 아니라 위장도 예민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면 소화가 잘 안되거나 배에 가스가 차고, 복직근 경직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비정상적 자궁, 질 출혈(Abnormal uterine and vaginal bleeding)을 한의학에서는 붕루(崩漏)라고 한다. 의학사전에는 경구 피임제의 복용, 인삼이나 한약의 복용은 에스트로겐의 활성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비정상 자궁, 질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또, 스트레스, 갑상선 기능 항진증 및 저하증, 당뇨병 등의 내분비 질환에 의해서도 자궁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다년간의 임상 경험에서 인삼이나 한약의 복용이 자궁출혈증을 유발하는 예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인삼이나 한약의 복용은 비정상 자궁, 질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어떤 연구 결과를 통해서 나왔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이런 황당한 설이 의학사전에 버젓이 실려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H씨의 경우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부인과 의사들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원인을 알면 치료도 가능한 것아 아닌가?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부인과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한 H씨의 자궁출혈증은 결국 필자가 숙제를 떠맡게 되었다. 

 

H씨에게 어떻게 임종헌한의원까지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H씨는 직장 상사로부터 '충주의 임종헌 원장이라면 자궁출혈증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H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것이다.

 

자궁출혈증은 한의학이나 양의학이나 난치에 속하는 질환이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자궁출혈증은 피가 나가는 증상, 피가 새는 현상이다. 피가 나가고, 피가 새는 증상을 어떻게 다스릴까?

 

한의학에서는 심주혈(心主血), 비통혈(脾統血)이라고 본다. 즉 심장(心臟)은 혈을 주관하고, 비장(脾)은 혈을 통솔(統率)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각종 출혈증을 심과 비에 주안점을 두고 치료하게 된다. '동의처방대전(東醫處方大全)'에 수록된 교애사물탕(膠艾四物湯), 양혈지황탕(凉血地黃湯), 복원양영탕(復元養榮湯), 개울사물탕(開鬱四物湯), 전생활혈탕(全生活血湯), 수비전(壽脾煎) 등은 붕루를 치료하는 명방들이다. 

 

H씨의 병증과 체질을 염두에 두고 잠시 명상에 들었다. 잠시 후 문득 H씨에게는 복원양영탕 가감방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염감이 떠올랐다. 복원양영탕은 기혈부족으로 자궁출혈과 어지럼증이 심하고, 여러 가지 출혈증으로 인한 빈혈증에 쓰는 처방이다. 또, 비기허(脾氣虛)로 배가 트직하면서 부정자궁출혈이 오래 끌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이 잘 오지 않고 머리가 아픈 증상에도 쓴다.

 

H씨를 위해 복원양영탕을 기본방으로 하고, 보혈방(補血方)인 사물탕(四物湯), 지혈 효능을 가진 아교주(阿膠珠)와 애엽(艾葉)을 가미한 회심의 처방전을 날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