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의학 건강 이야기

개한테 물려 놀라서 내원한 아주머니

林 山 2020. 7. 24. 18:32

60대 중후반의 아주머니 L씨가 개한테 종아리를 물렸다면서 헐레벌떡 내원했다. L씨를 안정시킨 뒤 개에게 물린 것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L씨는 한의원에 오기 전에 먼저 병원에 가서 상처 부위를 봉합했다고 했다. 그럼 한의원에는 왜 왔느냐고 묻자 개한테 물렸을 때 크게 놀랐는데, 그걸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저으기 마음이 놓였다. 

 

크게 놀란 사람에게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안정케 하는 진심안신(鎭心安神)의 침법을 써야 한다. L씨를 베드에 편안하게 눕게 한 다음 진심안신의 효능을 가진 공손, 내관, 신문, 태계, 단중, 백회 등의 혈에 침을 놓고, 소상과 대돈 은백 혈을 방혈했다. 

 

개한테 물린 사람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자신을 문 개가 미친개인지 아닌지 여부다. 개에게 물렸을 때는 우선 개주인한테 광견병(rabies, 狂犬病) 예방접종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L씨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개주인으로부터 광견병 예방접종을 했다는 확인을 받았다.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은 개한테 물렸더라도 면역력이 약한 당뇨병 환자나 만성질환자,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은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처치를 받이야 한다. 개의 입과 이빨에는 수십 종의 박테리아나 세균,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에게 물리면 광견병 외에도 파상풍(破傷風, tetanus)이나 패혈증(敗血症, sepsis)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패혈증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상처에서 피가 나지 않거나, 예방접종을 받은 개에게 물렸더라도 반드시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는다.

 

광견병 바이러스(rabies virus)는 리사 바이러스(Lyssavirus) 속에 속하는 바이러스다. 광견병은 급성 뇌척수염의 형태로 나타난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개를 비롯해서 고양이, 여우, 너구리, 박쥐, 코요테, 흰족제비의 체내에 주로 존재한다. 원숭이에 물려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광견병을 전파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 동물은 집에서 기르는 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의 침 속에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으며, 광견병에 걸린 동물이 사람을 물었을 때 침 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평균적으로 1~2개월이 지나면 발병한다. 머리에 가까운 부위에 물릴수록, 상처의 정도가 심할수록 증상이 더 빨리 나타난다. 초기에는 발열, 두통, 무기력, 식욕 저하, 구역, 구토, 마른 기침 등이 1~4일 동안 나타난다. 이 시기에 물린 부위에 저린 느낌이 들거나 저절로 씰룩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면 광견병을 의심할 수 있다.

 

감염 초기가 지나면 흥분, 불안이나 우울증이 나타난다. 음식이나 물을 보기만 해도 근육, 특히 목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고 침을 많이 흘린다. 얼굴에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목 부위에 경련이 발생하기도 한다. 환자의 80%가 물을 두려워하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병이 진행되면서 경련, 마비, 혼수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 호흡근이 마비되면서 사망한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면 단기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지만 합병증이 발생하면서 결국은 사망한다. 광견병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평균 7일, 치료를 해도 평균 25일 이내에 거의 100%의 환자가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물을 두려워하는 특징 때문에 공수병(恐水病)이라고도 한다. 

 

개에게 물린 직후 체내에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은 없다. 광견병의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면 감염을 의심할 수 있다. 혈액과 뇌척수액에서의 광견병 바이러스 특이항체검사, 머리털 부분의 피부조직검사, 침에서 광견병 바이러스의 핵산검출검사 등을 통해 진단할 수 있다.

 

광견병을 예방하려면 광견병 유행지역을 여행할 때 개를 비롯한 위험 동물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동물과의 접촉이 예상될 때는 미리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다. 국내 대부분의 일반병원에는 사람용 백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방접종은 지정 병원에서만 할 수 있다. 애완용 고양이와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광견병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광견병에 걸려도 생존하는 사람이나 개도 간혹 있다. 하지만, 아직 광견병은 치명적이다. 때문에 광견병은 가장 중요한 인수공통전염병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 첫 광견병 발생 보고가 있었고, 그후 매년 200∼800두 발생하였다. 이후 강력한 방역 실시로 광견병은 크게 감소하여 1984년에는 1두 발생 후 1992년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야생동물에 의해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산간지방에 발생한 예가 있다.

 

2020.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