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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29) 동아일보 무궁화 문양을 왜곡하다 - 조현래

林 山 2020. 10. 17. 12:07

때아닌 무궁화(無窮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궁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徽章)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강효백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엎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래(필명)는 강효백의 주장에 대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효백만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56년 당시 일간지에 화훼연구가 조동화와 식물학자 이민재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도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와 국화를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국가는 작곡자가 친일파이고, 가사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화도 무궁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래-강효백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林 山>

 

<사진1> 무궁화(경기도 안산)

​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29)] 동아일보의 무궁화 문양을 왜곡하다

 

 

[두 얼굴의 무궁화]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무궁화로 변장한 욱일기이자 일제 팽창주의의 화신, '트로이 왜꽃'을 숭배하고 찬송할 것인가?

● 동아일보 창간호(1920년 4월 2일)의 창간사에서 조선을 무궁화동산이라 하였다. 동아일보 제호 도안도 무궁화 띠로 하였다. 그 후 1930년 1월 1일~1938년 2월 9일까지 제호를 한국 지도와 무궁화 도안으로 채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트닷컴』, 무궁화와 동아일보​ (p.212)

 

 

 

 

《fact check(1) : 『문화콘텐츠닷컴』의 '동아일보와 무궁화'가 일제의 팽창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하는 내용이라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문화콘텐츠닷컴』의 '동아일보와 무궁화'는 일제강점기에 '수난받은 무궁화 이야기'의 하나로 소개된 것이다.

 

-『문화콘텐츠닷컴』의 '동아일보와 무궁화'라는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수난받은 무궁화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소개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4&cp_code=cp0613&index_id=cp06130060&content_id=cp061300600001&search_left_menu=  참조.

-『두 얼굴의 무궁화』는 중간과 끝부분의 내용을 자르고 중간의 표현 일부에 변경을 가해 느닷없이 일제의 팽챙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진2>동아일보와무궁화,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국가문화상징 무궁화), 한국콘텐츠진흥원(2006)

《fact check(2) : 동아일보 창간호 창간사의 내용이 일제의 팽창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하는 내용이라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도 시기별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동아일보의 창간은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으며 1920년 중반까지 초기 기사들은 일제의 검열에 맞서기도 하면서 민족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유지하였다.

▶동아일보 창간사(1920년 4월 1일)의 '무궁화동산'에 대한 언급은 조선을 뜻하는 것으로 힘에 기반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에 평화주의와 인도주의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글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 참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4010020920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4-01&officeId=00020&pageNo=1&printNo=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창간사 어디에 일제의 팽창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하는 내용이 있단 말인가?

 

 

  ■ 동아일보의 창간사

 

"동방아세아 무궁화동산 속에 이천만 조선 민중은 일대광명을 보았도다.…(중략)…강력(强力)에 기본한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를 근본한 인도주의로 전환하고자 하는도다"(『동아일보』1920.4.1.자 창간사 중에서; 한자는 한글로 변환함).

 

 

《fact check(3) :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문양이 일제의 팽창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하는 내용이라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창간된 동아일보는 민족지로서의 역할을 표방하였다.

 

-1920년 4월1일자 동아일보 창간사는 '조선 민족의 표현 기관을 자임한다'고 함으로써 민족지로서의 역할을 표방하였다.

-1920년 4월 2일부터 정식으로 발간된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표현의 일환으로 당시에도 나라꽃으로 인식되던 무궁화를 제호(題號)의 띠에 문양으로 새겼고, 1930년 1월 1일부터는 내부의 문양으로 한반도 지도와 함께 무궁화를 새겨 넣은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38년 2월 10일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문양을 강제로 삭제하였다.

 

-1937년 중국을 침략함으로써 더 한층 흉폭한 제국주의로 변화한 일제는 1919년의 3·1운동으로 촉발된 문화정책 외피를 완전히 벗고 전시 폭압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38년 2월 10일 동아일보의 제호에 표시된 한반도 지도와 무궁화 문양이 민족주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삭제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1940년 8월 10일에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조선인이 운영하는 신문을 폐간조치하였다.

 

<사진3>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 제호. (<좌>: 1920.4.2.부터 1929.12.31.까지 사용 <중>: 1930.1.1.~1938.2.9.까지 사용. <우>: 1938.2.10.부터 1940.8.9.까지 사용)

《결론》 : 일제의 시각에 선『두 얼굴의 무궁화』 

 

▶동아일보의 제호에 새겨진 무궁화 문양을 삭제한 것은 중국침략으로 시발로 한층 더 광폭해진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의한 강제적 조치였다.  

 

-무궁화가 일본 제국주의 팽창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것이었다면 왜 조선총독부는 1938년 2월 10일에 이르러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문양을 고무하고 지지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문양을 강제적으로 삭제했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에 따르면 1938년 2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조치는?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에 따르면 무궁화는 일제 팽창주의의 화신이다.

-따라서 조선총독부가 1938년 2월 10일 동아일보에 대해 행한 조치는 조선 민중을 배려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숭배하고 찬양한 동아일보를 응징한 것이 된다?!

-우리는 모두는 조선총독부의 1938년 2월 10일의 조치를 민족적 거사로서 숭배하고 찬송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정상적인 한국인의 시각인가? 아니면 꽃 문양의 사용조차 강제적으로 삭제조치한 일본 제국주의자의 시각인가?

 

 

『두 얼굴의 무궁화』의 저자는 알고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저자는『문화콘텐츠닷컴』의 '동아일보와 무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올 때 일부를 덜어내고 표현을 변경하여 내용을 왜곡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문양이 일제의 탄압에 의해 삭제되었음을 알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아일보의 제호에 새겨진 무궁화 문양을 일본 팽창주의를 숭배하고 찬송한 것으로 왜곡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도대체 『두 얼굴의 무궁화』저자의 위와 같은 행위가 무궁화 문양을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상징물로 보고 탄압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