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11월 어느 금요일 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곡차례

林 山 2020. 11. 21. 10:13

11월 하고도 세 번째 금요일 밤 연수성당 신부님 두 분을 모시고 행복한 우동가게에서 곡차례를 가졌다. 주임신부님이 그동안 낮은 자리에서 낮은 곳을 향해 온몸으로 살아온 인생역정(人生歷程)을 들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貧者), 힘없는 사람(弱者)들과 함께 한 참으로 감동적인 인생사였다. 굴곡진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선지자, 선한 양떼를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참된 목자의 삶이었다. 

 

간만에 김태곤이 부른 '송학사(松鶴寺)' 한 곡조를 뽑았다. 신부님이 인생역정 이야기를 들려준 데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곡차는 하동 화개장터에서 공수한 막걸리였고, 안주는 새콤달콤상큼한 오징어 초무침이었다. 

 

교직에서 해직되고 난 뒤 백수 시절 행복한 우동가게에 들르면 소설 쓰는 안주인 강순희 여사는 빈 주머니를 눈치채고 종종 막걸리를 공짜로 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송학사'를 불러주었다.  

 

'송학사'란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산 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마음은 언제나 깊은 산, 산모롱이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송학사'를 불렀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나..... 어차피 인생길은 헤매다가 가는 것 아니겠는가!

 

강 여사는 또 주대를 받지 않았다. 벽에는 손님들이 쓴 글귀들이 수없이 붙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도종환 선배가 쓴 '虛而往實而歸'(허이왕실이귀)라고 쓴 '쫭쯔(庄子)'의 한 구절이 특히 가슴에 와닿았다. 지혜와 덕이 없는 사람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받아 공허(空虛)한 것이 충실(充實)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공술을 마셨으니 빈 주머니로 왔다가 배를 채워서 간다고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달이 떴으면 좋았을 밤이었다. 하지만 달이 뜨지 않아도 좋은 밤이었다. 행복한 우동가게 천장에는 내가 쓴 '中原之月夜(중원지월야)'라는 글귀가 쟁반 같은 둥근 달 한가운데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한 11월 어느 금요일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2020. 11. 20. 금요일.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