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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44) 과장 왜곡으로 무궁화를 일본 불교의 꽃으로 만들다 - 조현래

林 山 2020. 12. 23. 16:42

때아닌 무궁화(無窮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궁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徽章)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강효백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엎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래(필명)는 강효백의 주장에 대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효백만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56년 당시 일간지에 화훼연구가 조동화와 식물학자 이민재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도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와 국화를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국가는 작곡자가 친일파이고, 가사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화도 무궁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래-강효백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林 山>

<사진1> 무궁화(경기도 안산)

​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44) 과장과 왜곡으로 무궁화를 일본 불교의 꽃(神花)으로 만들다.

 

 

[두 얼굴의 무궁화] 일본 불교의 무궁화 신앙 '무궁화 지장보살'

 

​신토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무궁화 사랑은 각별하다. 또한 나라(奈良, 710~794) 시대에 이미 무궁화가 일본 각지에 만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교토 시내에 위치한 일본 천태종 사찰 사이린사(西林寺)의 무궁화 지장(木槿地藏)이 바로 그것이다. 781년 사이린사 주지에 임명된 케이슌(慶俊)은 어느 날 아침 사찰 경내의 무궁화 꽃 숲에서 갑자기 지장보살을 감득했다. 케이슌 주지는 승려들에게 무궁화 숲 한 편의 소나무 밑둥에서 서광이 서린 바윗돌을 캐내게 했다. 그 바윗돌에다 지장보살상을 새겨 무궁화지장존으로 모셨다.(p.111)

사이린사 무궁화지장본존 외에도 48존의 무궁화 나한을 모셔놓고 있다. 이 무궁화지장존과 나한은 교토의 1500여 개 사찰에 모셔진 수많은 지장보살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사이린사의 무궁화지장 열성신도들은 '무궁화 회'를 결성하여 1월과 11월을 제외한 매월 23일 무궁화 지장보살에 특별한 제례를 올리고 있다.*미주64)

사이린사 외에도 무궁화로 유명한 불교 사찰로는 도쿄 근교의 하세데라사(長谷寺), 교토의 히가시온간사(東本願寺), 니시혼간사(西本願寺), 큐호사(久法寺), 붓꼬사(仏光寺) 등과 가마쿠라(鎌倉)의 도우케이사(東慶寺), 주이센사(端泉寺) 등을 들고 있다.*미주65)(p.112)

 

*미주64) http://kyotofukoh.jp/report1279.html

*미주65) http://www.kyotonikanpai.com/spot/01_03_kyoto_gosho/mukuge_jizo_sairinji.shtml (p.396)

 

 

 

《fact check(1)》 사이린사(西林寺)는?

 

​▶ 사이린사(西林寺)는?

​- 사이린사는 일본 쿄토시 카미교쿠에 위치한 천태종에 속하는 사찰로, 나라·헤이한 시대인 781~806년 사이에  게이슌(慶俊, (けいしゅん)에 의해 교토에서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 사이린사에서는 지장보살(地蔵菩薩)을 본존(本尊)으로 하고 이를 목근지장(木槿地藏, もくげ地藏)으로 일컫고 있다.

▶ 그런데 사이린사(西林寺)는?

- 그런데 사이린사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에 발생한 오닌·분메이의 난(応仁・文明の乱, 1467~1477)으로 불에 타 전소되었다.

- 에도시대에 복건되어 관문연간(寛文年間, 1661~1673)에 48개 사찰에 모셔진 지장보살을 일컫는 '낙양48원소순례'(洛陽四十八願所めぐり) 중의 하나가 되었다.

​- 그러나 1788년에 있었던 덴메이노다이카(天明の大火)라는 큰 화재시에 다시 소실되었고, 그 이후 현재의 본당 건물 하나만 복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 사이린사는 본당 건물 하나만 남아 있고, 그 외 창건과 변천의 구체적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kyotofukoh.jp/report1279.html 참조)

<사진2> 강효백, 『두 얼굴의 무궁화』, 이담북스(2020), p.111 참조

《fact check(2)》 사이린사에는 목근지장본존외에도 48존의 목근나한을 모시고 있다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진3> 쿄토의 사이린사(西林寺)의 외부 모습과 본당 내부의 모습

▶ 현재 사이린사(西林寺)는?

- 현재 사이린사는 모든 것이 전소되고 다시 복건된 것은 아주 작은 본당 건물 하나가 전부이다.

-『두 얼굴의 무궁화』, p.111은 본당 건물의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담아 꽤나 웅장한 모습인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몇 사람이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작은 건물 하나가 전부인 곳이다.   

​- 천태종에 속하는 사찰이라는 명판은 검고 작아 잘 보이지도 않지만, 불교와 관련이 없는 점을 보아 주는 사주추명(四柱推命)이라는 간판이 오히려 더 크게 보인다(불교의 사찰이면서 점집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사이린사(西林寺)에 48존의 목근나한이 있다고?

 

- 사이린사 본당 내부는 좁아 48나한이 들어갈 자리도 없는 실정이다[<사진3> 오른쪽 참조].

-『두 얼굴의 무궁화』, p.396에 기재된 미주64)와 미주65)로 링크된 곳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과거 에도시대에 48개 사찰에 모셔진 지장보살을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순례하는 '낙양48원소지장순례'(洛陽四十八願所めぐり) 중에서 19번째 사찰이었다는 언급은 있어도 현재 48나한 그것도 무궁화나한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아래 내용 참조).

《fact check(3)》 사이린사의 무궁화지장존과 나한은 교토의 1500여 개 사찰에 모셔진 수많은 지장보살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진4>『두 얼굴의 무궁화』, p.396 *미주65)에 소개된 교토지역 관광안내 블로그

 

本尊の木槿地藏尊は, 京都でも知られる名地藏尊の一つに數えられ, 江戶中期には六地藏以外で48ケ寺の地藏を順番に回って拝んだという 「洛陽48願所地藏めぐり」の第19番に敎えられていたといいます。

また天狗との関わりが伝えるように修驗道との関わりも深く,  例年11月23日に本堂前にて探燈大護摩供(さいとうおおごまく)が厳修され, 当日は參拝客に無料で「幸セ善哉」が振舞われます。

そしてその他にも每月23日(1月と11月除く)には真言念誦行(しんごんねんじゅきょう)(もくげ会), 2月3日には節分会, 12月31日には內護摩供が行われています。

본존인 목근지장존(木槿地藏尊)은 교토에서도 알려진 이름있는 지장존의 하나로, 에도시대 중기에는 6지장 이외에서 48개 사찰의 지장을 차례로 돌았다는 '낙양 48원소지장 순례'(洛陽48願所地藏めぐり)의 제19번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천구(天狗)*1)와의 관계가 전하듯이 수험도*2)와의 관계도 깊고, 예년 11월 23일에 본당 앞에서 탐등대호마공(探燈大護摩供)이 엄수되며, 당일은 참배객에게 무료로 '행운 나누기'(幸セ善哉)를 행하여 드립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매달 23일(1월과 11월 제외)에는 진언염송행(真言念誦行)(목근회)*3), 2월 3일에는 절분회(節分会)*4), 12월 31일에는 내호마공(內護摩供))*5),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 천구(天狗) : 상상속의 괴물의 이름이다. 교토에 위치한 애암산(愛宕山)의 천구(天狗)가 사이린사 경내에 있었던 소나무에 내려와 쉬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소나무를 천구소나무(天狗の松)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소나무는 고사하였다(이에 대해서는 http://kyotofukoh.jp/report1279.html 참조).

*2) 수험도(修驗道) 산에 틀어박혀 혹독한 수행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고래의 산악 신앙이 불교에 도입된 독특한 종교를 말한다.

*3) 진언염송행(真言念誦行) : 인도 초기 밀교(密敎) 경전에 나오는 진언(mantra)을 암송하는 불교의 수련법의 하나로 천태종과 진언종에서 흔히 행해진다.

*4) 절분회​(節分会) : 춘분 등 절기 직전에 귀신을 몰아내고 행운을 맞이하는 일본 불교의 행사를 말한다.

*5) 내호마공(內護摩拱)​ : 호마(護摩)란 '제물'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도계 종교에서 행해지는 불을 사용하는 의식을 말하는데, 불교에서 탐등 등의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사이린사의 목근지장존과 나한은 교토의 1500여 개 사찰에 모셔진 수많은 지장보살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이 타당한지 근거로 인용한 p.396의 미주64)와 미주65)를 찾아 보았다.

- 사이린사의 목근지장에 대해 "本尊の木槿地藏尊は, 京都でも知られる名地藏尊の一つに數えられ"(지장존과 교토에서도 알려진 이름있는 지장존의 하나)라는 언급이 있지만 교토의 1500여 개의 지장보살중 가장 유명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 사이린사의 목근지장이 교토에서 알려진 이름있는 지장존 중의 하나로 본 이유도 에도시대 중기에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48개 사찰을 순번으로 돌았다는 '낙양 48원소지장 순례'(洛陽48願所地藏めぐり)의 제19번째 사찰이었다는 것이었을 뿐, 본존으로 모시는 지장보살이 목근지장이라는 것이 이유는 아니었다.

- 게다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이린사는 1788년에 있었던 덴메이노다이카(天明の大火)라는 큰 화재시에 전체가 다시 소실되었고, 현재에는 새로 건설된 본당 건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fact check(4)》 사이린사의 목근지장이 나라시대에 이미 무궁화가 일본 각지에 만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두 얼굴의 무궁화』, p.111에 따르면 사이린사의 목근지장(木槿地藏)이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무궁화가 일본 각지에 만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두 얼굴의 무궁화』, p.396에 인용된 미주64)와 미주65)를 살펴보면, 나라시대에 사이린사를 창건한 게이슌(慶俊)이 무궁화(木槿)에서 발견한 돌로 지장보살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미주64)에 소개된 곳은 '京都風光'(Kyotofukoh)이라는 제목 아래 쿄토 지역에 있는 사찰을 안내하는 관광 안내 사이트로 일종의 블로그 성격의 글을 기재하고 있는 곳이고. 미주65)에 소개된 곳은 '京都に乾杯'(Kyotonikanpa)라는 제목으로 교토 지역의 관광 명소를 소개하는 목적의 개인이 운영하는 곳임을 명시하고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 p.396에 인용된 미주64)와 미주65)를 살펴보면 목근지장(木槿地藏)에 관한 유래가 달리 옛 문헌에 근거하거나 달리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설명은 보이지 않으며, 일종의 전승되는 민간의 구전 설화의 일종으로 이해된다.

- 한편 그 즈음 일본의 옛 문헌은 목근(木槿)에 대해  9세기에 저술된『新撰字鏡』(신찬자경, 892)에서 '保己'(ほこ, 호코)로, 10세기에 저술된『和名類聚鈔』(화명유취초, 931~938; 달리 '화명초'라고도 함)에서 그 이름을 '木皮知須'(きはちす, 키하지스)로 기록하고 있어 木槿(모우케)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8세기경의『万葉集』(8세기)에서 '朝顔'(あさかほ, 아사가호)라고 했는데 그나마도 이는 무궁화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도라지로 보는 것이 현재 일반적인 견해이다[이에 대해서는  塚本洋太郞,『茶花大事典(下)』, 淡交社(2014), p.6 참조]

- 즉, 목근지장(木槿地藏)이라는 이름은 이후 木槿(모우케)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보편화된 이후에 형성된 구전 설화일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두 얼굴의 무궁화』, p.62.는 우리의 옛 자료에 대해서 한국 7대 사서가 아닌 경우에는 제대로 된 기록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으면서 일본의 무궁화에 대한 옛 분포에 대해서는 개인 블로그의 글을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5> 『두 얼굴의 무궁화』, p.396 *미주65)에 소개된 교토지역 관광안내 블로그

 

芙蓉の中間で散ってはまた咲く生命力の强さから韓国では国花に

… ​(중략)…

中国およびインド原産, シリアからインドや東南アジアまで自生, 日本に朝鮮半島を経由して平安時代に渡来し, 北海道南部から沖繩までほぼ日本全国に分布。

​… ​(중략)…

名前の由來は漢字名は中国名の 「木槿(モクキン)」から。

​「ムクゲ」は中国名 「モクキン」が転訛したとする說, 韓国名の 「ムグンフア」が転訛したとする說など諸說あり。

부용의 중간에 지고 또 피어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국화에

​… ​(중략)…

중국 및 인도 원산, 시리아에서 인트나 동남아시아까지 자생, 일본에는 한반도를 경유해 헤이안시대에 도래했으며, 홋카이도 남부에서 오키나와까지 거의 일본 전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 ​(중략)…

​ 

식물명의 유래는 한자 이름이 중국명인 '木槿(모쿠킨)'으로
'무쿠게'(무궁화)는 중국명 '모쿠킨'이 변화한 것이라는 설, 한국명 '무궁화'가 변화한 것이라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다.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두 얼굴의 무궁화』, p.396 *미주65)에 소개된 블로그의 다른 글을 읽어 보면 일본의 무궁화는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가 아닌 헤이안시대(794~1185)에 그것도 한반도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일본명 무쿠게(ムクゲ)의 어원이 한국명 '무궁화'에서 유래하였다는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얼굴의 무궁화』가 제시한 자체의 근거에 의하더라도 사이린사의 목근지장(木槿地藏)의 존재가 나라시대에 이미 무궁화가 일본 각지에 만발하고 있다는 증거는 결코 아닌 것이다.

《fact check(5)》  사이린사의 목근지장 열성신도들은 '무궁화회'를 결성하여 매월 목근지장보살에 특별한 제례를 올리고 있다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사이린사의 木槿会(목근회)는?

 

-『두 얼굴의 무궁화』, p.396에서 미주65)로 소개된 교토지역 관광안내 블로그에 따르면 사이린사에서는 인도 초기 밀교(密敎) 경전에 나오는 진언(mantra)을 암송하는 불교의 수련법인 진언염송행(真言念誦行)을 매월 23일에 개최하고 그것을 木槿会(목근회)라고 한다고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 따라서 木槿会(목근회)는 열성신도의 모임도 목근지장에 대한 특별한 제례 행사도 아닌 것이다.

《fact check(6)》  하세데라사(長谷寺)가 무궁화가 유명한 사찰이라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진6> (좌) 블로거가 찍은 하세데라사 무궁화, (우) 하세대라사 누리집에 소개된 경내의 꽃

-『두 얼굴의 무궁화』, p112는 일본 곳곳에 무궁화로 유명한 사찰이 있다며 여러 사찰 이름을 나열하고, p.111의 하단부에서는 "무궁화로 유명한 도쿄 근교의 하세데라사(長谷寺)"의 사진이라며  위 <사진2>의 오른쪽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말하는 도쿄 근교의 하세데라사(長谷寺)가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해당 사진을 일본 검색사이트(YAHOO JAPAN)에서 검색을 해 보면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의 카마쿠라시(​鎌倉市)에 위치한 하세데라사에서 담은 무궁화 사진을 소개하는 개인 블로거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다[<사진7>의 왼쪽 사진 참조. 이에 대해서는 http://omoideno.kenkenpa.net/yamawotanosimuzo/gallery/013-1gallery.html 참조]

- 흥미롭게도 하세데라사(長谷寺)에서 무궁화 사진을 담았다는 일본의 한 블로거는 2008년 8월 9일 오전 9시 34분~10시40분 사이에 이사진을 담았다는 것을 표시하면서 중국·인도 원산으로 '대한민국의 국화'라고 기록하고 있었는데,『두 얼굴의 무궁화』, p111은 아래부분의 기록 내용은 삭제를 해버리고 그 윗부분만을 도려내어 사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정말로 카라쿠라시에 위치한 하세데라사가 무궁화로 유명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카마쿠라 하세데레사(鎌倉 長谷寺)의 누리집을 찾아 검색을 했더니, 하세데레사 누리집에에는 경내 정원에 핀 대표적인 꽃 사진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무궁화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9월에 피는 대표적 경내 정원의 식물로 부용(芙蓉, FUYO)만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얼굴의 무궁화』, p.112에서 무궁화로 유명한(?) 대표적 사찰로 언급된 하세데라사에 대한 내용이 이러한 과장과 왜곡에 근거할 것일진대, 굳이 다른 사찰들은 살펴보지 않기로 하였다.

《참조》부용(芙蓉, ふよう)은 아욱과 무궁화속 식물로 학명은 Hibiscus mutabilis L.(1753)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분포한다. 『두 얼굴의 무궁화』, p97은 하와이무궁화<扶桑, Hibiscus rosa-sinensis L.(1753)>가 무궁화<Hibiscus syriacus L.(1753)>와 같은 속이라는 이유로 같은 식물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부용도 무궁화의 일종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런 식물학에서 종(種, species)의 개념을 모르는 그러한 논법에 따르자면, 매화<Prunus mume (Siebold) Siebold & Zucc.(1836)>, 복숭아<Prunus persica (L.) Stokes(1812)> 및 앵두나무<Prunus tomentosa Thunb.(1784)>가 모두 벚나무속(Prunus)에 속하므로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해야 할 판이다.

 

《결론》 과장과 왜곡 그리고 숨겨진 논리

 

▶ 무궁화와 일본의 사찰

- 일본에서는 화훼식물(꽃식물)에 대한 원예화가 16세기경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었고, 에도시대(1603년~1867)에는 무궁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들에 대한 원예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그렇게 원예화된 식물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찰이나 신사 등에 식재되었으므로 일본의 사찰에서 무궁화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일본의 사찰에 원예화된 수국, 동백꽃이나 꽃창포 등 다양한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일본 불교의 신화(神花)라고 할 수는 없다,

- 꽃을 가꾸고 식재하는 독특한 방식의 문화이며, 그런 이유로 일본을 '칼과 꽃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 사이린사와 무궁화

- 일본 교토의 사이린사는 본당 건물만 남은 조그만한 사찰로 점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고, 본존을 목근지장이라 칭하고 있으며, 그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관광 안내 사이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사이린사가 48존의 목근나한을 비치하고 있다거나, 쿄토의 지장보살을 모신 사찰 중에 가장 유명하다거나, 목근회라는 열성신도의 무궁화 숭배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있다거나 목근지장이 곧 나라시대부터 무궁화가 일본 각지에서 분포한 증거라는 등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 과장과 왜곡 그리고 친일 논리

 

-『두 얼굴의 무궁화』, p.62에 따르면 한국 7대 대표사서가 아닌 우리의 무궁화에 대한 기록은 극소수 유설류나 중국 문헌을 차운, 이용한 것 또는 의도적 오역, 위변조, 상호 표절, 후대 가필되거나 견강부회식 해석으로 치부된다. 

- 반면에 일본의 문헌에 근거하지 않아도 개인들이 남긴 관광 사이트의 블로그 글들은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되며, 그것에 더하여 일본 고대국가에서도 무궁화가 각지에 만발한 증거로 과장되고 왜곡된다.

 

​- 우리의 문화는 비하 그리고 폄훼되면서 일본의 것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숭상받는다면, 이것이 친일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친일이라고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