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임씨(長興林氏)

장흥임씨공조판서공파보(長興林氏工曹判書公派譜) 서문 - 임병룡(林炳龍)

林 山 2021. 1. 10. 01:10

무자보(戊子譜, 2008년)를 발간하며

장흥임씨(長興林氏) 득관조(得貫祖) 세은조(世殷祖)를 일세(一世)로 해야 하는 설명서(說明書)

 

장흥임씨 세보(世譜) 편찬사(編纂史)를 고찰해보면 1회 서기 1765년 을유보(乙酉譜) 영호남합보(嶺湖南合譜) 1세조(一世祖)는 분조(蕡祖)이시고, 2회 1821년 신사보(辛巳譜) 영호각보(嶺湖各譜)는 1세조 분조로 원조(遠祖)에 세은조(世殷祖)를 봉장흥군묘재양주군장산자손지관용장흥자차시(封長興君墓在楊州郡丈山子孫之貫用長興自此始)로 되어 있고, 3회 1904년 갑술보(甲戌譜)는 호남독편(湖南獨編)으로 1세를 분조로, 4회 1934년 갑술보(甲戌譜) 영남독편(嶺南獨編)은 1세조를 팔급조(八及祖)로 하고, 5회 1958년 무술보(戊戌譜)는 영남독편으로 1세조를 언수조(彦修祖), 6회 1976년 병진보(丙辰譜)는 영호합보로 1세조를 언수조, 7회 1989년 기사보(己巳譜) 영호남합보에서는 1세조를 언수조로 하고 있습니다.

 

1700년대 전객령공세춘파(典客令公世春派)에서 발행한 필사본(筆寫本) 가승보(家乘譜) 세춘(世春), 세하(世夏), 세추(世秋), 세창(世昌), 세은(世殷) 조가 모두 형제로 되어 있고, 여기에 세은조의 지문(指文)은 장흥신사보(長興辛巳譜, 1821)와 같이 봉장택군묘재양주군자손지관용장흥자차시언(封長澤君墓在楊州郡子孫之貫用長興自此始焉)이라 되어 있고, 1800년대 전객령공세춘파에서 보관된 상계보(上系譜) 및 초중기 평택임씨분적표(平澤林氏分籍表) 4항의 평택임씨분파표(平澤林氏分派表) 1에 세춘조와 세은조는 각기 득관(得貫)으로 하계(下系)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료를 실펴보면 세춘조는 필사본을 근거로 몽주조(夢周祖) 16세의 아들 견미조(見美祖)의 3대손으로 18세가 되고, 언수조는 몽주조 16세의 아들 두미조(斗美祖)의 6대손으로 4형제 중 셋째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날 족보(族譜)의 편찬사를 살펴보면 팔급조께서 813년경 고려(高麗) 헌덕왕(憲德王) 5년 동도(東渡)하시고, 1700년대에 족보가 편찬되었으나 900여년을 구전으로 전해온 것을 편찬할 때 많은 어려움을 가히 짐작케 합니다. 또한 1300여년 전에는 정보, 통신, 회합, 각파간 의견교환 등의 어려움으로 각종 사료(史料) 부족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문화의 발달로 모든 정보 소통이 원활해지고 있는 이때 모든 사료에 의하여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책무라고 봅니다.  족보의 편찬 목적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만 우선 혈통의 보존과 자손들 간의 친목과 융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흥임씨 상계가 충정공(忠貞公) 언수조로 된 것은 이상의 설명으로 보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장흥관은 1821년 신사보에서 벌써 세은조가 이미 장흥관(長興貫)을 득관(得貫)하셨기 때문에, 또한 장흥보(長興譜) 5회 1958년 무술보부터 언수조를 1세로 하고 있으며. 제미조(齊美祖)와 맹양조(孟陽祖)는 1388년 무진사화(戊辰士禍) 때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참화(斬禍)되었으니 무진사화 실록에 기록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장흥임씨 제종(諸宗) 어른들께서 힘을 합쳐서 상계 바로잡기에 노력하여 주셔서 올바른 무자보(2008)를 편찬하였습니다. 

 

이후 자손들이 해야 할 과제는 언수조의 기록이 있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이 모르고 살아온 역사이자 사실이니 추후 모든 문헌을 고치도록 하고 우소조(雨所祖), 중경조(重敬祖)의 설단지(設壇地)를 확장정지(擴張整地)하여 세은조, 분조, 득이조(得荑祖), 우소조, 중경조 6위(位)의 설단(設壇)과 안내비(案內碑)를 세워 세사(歲祀)를 봉행(奉行)하는 것이 자손들이 해야 할 책무라고 사려되어 이 서문에 기록하는 바입니다.

 

2008(무자)년 5월

장흥임씨공조판서공파보(長興林氏工曹判書公派譜) 편찬위원장(編纂委員長) 23세손 병룡(炳龍) 근지(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