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韓國) 임씨(林氏) 장흥관(長興貫) 2008(戊子)년 발보(發譜)에 즈음하야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심정 금할 수 없습니다. 유구한 역사 조선 왕조(朝鮮王朝) 21대 영조(英祖) 41년 을유년(乙酉年, 1765)에 유사이래(有史以来) 영호남(嶺湖南) 장흥후인(長興后人)들이 득관조(得貫祖)이신 분조(蕡祖)를 1세(一世)로 하여 최초로 족보(族譜)를 발간(發刊)한 것은 후손들을 위한 역사적 대사업이라고 아니할 수 없사오며,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연(然)이나 그후 신사년(辛巳年, 1821)에 영남독자(嶺南獨自) 2회 족보를 최초보(最初譜)와 같이 분자조(蕡字祖)를 1세로 발간되었는데, 그로부터 54년 후 을해년(乙亥年, 1875)에 호남단독(湖南單獨)으로 1세조(一世祖)를 언자수자조(彦字脩字祖)로 변경하여 발간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일부 호남 후손들은 당시에 교통통신난 때문이라고 역설(逆說)하지만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언자수자조는 세자은자조(世字殷字祖)와 종몰연대(終歿年代)가 1년 차이(고려 및 조선 왕조 연호 연대표를 열람 참고하였음)라 세자은자조를 언자수자조의 증손자(曾孫子)로 하여 족보를 또 다시 발간한다는 것은 조상에 대한 모욕이요, 자손들의 망발(妄發)이며,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것입니다. 이러하야 착오(錯誤)된 상계(上系)를 차제(此際)에 바로하고자 고증(考證)된 자료(資料)들을 설명과 동시에 제시했지만 애석하게도 일부 족친(族親)들은 이를 부인하고, 종전보(從前譜)와 같이 부당한 상계 언자수자조를 또 1세로 하여 정해년(丁亥年, 20007)에 서둘러 족보를 발간한 것은 족보편찬정신(族譜編纂精神)을 위배(違背)한 것입니다.
장흥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해보(丁亥譜)에 상계를 정정(訂正)하지 못하고 일부 족친들이 분보(分譜)된 한을 남기면서 정해보에 참여하지 않은 종친(宗親)들은 득관조이신 장흥군(長興君) 분자조(蕡字祖)의 선고(先考) 세자은자조를 1세로 무자년(戊子年, 2008)에 장흥임씨세보(長興林氏世譜)를 발간하오니 후손들은 양지(諒知)하시기 바라옵고, 우리 장흥후인들은 화목단결(和睦團結)하여 천년만년(千年萬年) 장흥(長興)하기를 쌍수(雙手)로 기원(祈願)하면서 수보서(修譜序)에 임(臨)합니다.
2008(무자)년 장흥임씨 세은 22세손 오상(伍相) 근서(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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