族譜開刊序
吾門譜牒之八梓先君宿昔之計也. 時則物力殘弊雖未果焉而修草譜記序文以俟于今日者則今日之事信乎非今而斯今也. 不肖殘劣雖愧於繼述之道而賴我諸宗之合謨同力以遵先父兄未遂之遺志不肖感幸當復如何. 序文之在草譜者與今開刊時辭語有差異. 故追記顚末以付于後不肖子澈敬誌譜牒之作豈偶然哉. 講親疎序遠近乃所以敦睦之誼. 而一源之水分位萬派千枝之木俱是一根則在吾人溯流推本之道其如何耶. 惟我長興之林散居湖嶺之列邑舊有譜牒間多疎漏世代漸遠而不知愈近子孫漸疎而不知愈親豈不慨然. 不佞以垂老之年有志於修譜而餘日不遠齎恨於遷延矣. 何幸醴泉宗人先得我心以完大事吾門徽典有光於嶺海以南焉. 我東方林氏自八君以下至于今爲一代望族而十一代祖縣令公莅于昌平家於靈光靈光之有林氏自此始焉. 第念長興君以上綿遠無譜可記而古牒難稽於兵燹之餘此爲吾宗中普切之恨耳. 遠近子孫未及該錄而觀此譜也一人之後百代之誼瞭然於一卷之中世世相傳繼繼無替則此豈非一門中幸幸也歟
一七六五年 乙酉中秋 一九世孫 溍 謹識
족보(族譜)를 처음 간행(刊行)할 때의 서문(序文)
우리 문중 보첩(譜牒, 족보)의 간행은 선군(先君, 선조)의 계책(計策)이었다. 그때는 경비가 부족하여 비록 수행하지 못했으나 족보의 초안(草案)을 만들고, 서문을 기록하여 금일(今日)을 기다렸으나 금일의 일은 진실로 금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불초(不肖, 자식이 부모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는 말)는 보잘것 없는 인격으로 비록 계술(繼述, 선조의 업적을 이어받아 이를 바탕으로 서술함)의 도리에 부끄러우나 우리 제종(諸宗, 여러 종친들)의 함께 도모하고 힘씀에 힘입어 돌아가신 부형(父兄)들이 수행하지 못한 유지(遺志)를 준수(遵守)하게 되니 불초의 감격스럽고 다행함을 마땅히 다시 어떠하다고 말하리요!
초보(草譜)할 때 있던 서문이 지금 개간(開刊, 신문이나 책 등을 처음으로 간행함)할 때의 말과 차이가 있음으로 전말(顚末,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을 추기(追記, 본문에 추가하여 기입함)하여 뒤에 붙이니 불초자 철경(澈敬)의 기록과 보첩의 작성이 어찌 우연하다 하리요! 친소(親疎)를 강론(講論)하고, 원근(遠近)을 윤서(倫序, 둘 이상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먼저와 나중으로 구분하는 것)함은 이에 돈후(敦厚)하고 화목(和睦)하는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해짐) 때문이다.
한 근원의 물에서 만파(萬派, 여러 갈래)가 되고, 천지(千枝, 많은 가지)의 나무가 모두 한 뿌리이기에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도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근본을 추심(推尋, 찾아내서 가져옴)하는 그 도리가 어떠하리요! 생각하건대 우리 장흥임씨(長興林氏)는 호남과 영남의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아 옛날 보첩에 있어서 간간이 소루(疎漏, 소홀해 빠진 것이나 실수가 있음)함이 많았으나 세대(世代)가 점점 멀어지니 더욱 가까움을 알지 못하고, 자손들이 점점 소홀해짐에 더욱 친함을 알지 못하니 어찌 슬퍼 탄식하지 아니하리요!
불영(不佞, 자신을 겸손하게 부르는 호칭, 재주가 없다는 뜻)이 70에 가까운 나이로 수보(修譜)에 뜻을 두었으나 남은 삶이 멀지 않았는데, 천연(遷延, 일이나 날짜 등을 오래 끌어 미룸)됨이 한스러워 탄식하였다. 다행히도 예천(醴泉)의 종인(宗人, 종중 사람)이 먼저 내 마음을 헤아려 큰일을 완성하니 우리 가문의 휘전(徽典)이 영해이남(嶺海以南)에 빛나게 되었다.
우리 동방의 임씨가 팔군(八君, 林八及) 이하로부터 지금까지 일대(一代)의 망족(望族, 명망이 높은 집안)이 되었으며, 11대조 현령공(縣令公) 리(莅)께서 전라남도 창평(昌平)에서 벼슬하였고, 영광(靈光)에서 거주하여 영광의 임씨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만 생각하건대 장흥군(長興君) 이상의 세대가 오래되었으나 족보에 가히 기록된 것이 없었으며, 고첩(古牒, 옛 문서)도 전쟁으로 일어난 화재로 불에 타 고징(考徵, 상고하여 증명함)하기가 어려우니 이는 우리 종중(宗中, 성과 본이 같은 한 겨레붙이의 집안)의 모두가 간절한 한이 될 뿐이다.
멀고 가까운 자손이 모두 수록되지 못하였으나 이 족보를 보면 한 사람의 뒤로 100대의 정의가 이 한 권 가운데 료연(瞭然, 환하고 똑똑함)하니 대대로 서로 전하여 바뀌어짐이 없다면 이것이 어찌 한 문중의 다행하고 또 다행함이 아니리요!
1765년(영조 41년) 을유 음력 8월 보름에 19세손 진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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