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 깊어가면 남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불타는 듯 짓붉은 색으로 피어난 꽃무릇의 장관을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기도 하거니와 일이 바빠 그동안 남도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 17일 마침내 남도 여행을 떠나 전남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꽃무릇 군락지를 볼 수 있었다. 불갑사 꽃무릇은 그야말로 짓붉은 꽃바다의 장관이었다.
그런데, 꽃무릇은 가까운 곳에도 있었다. 2020년 9월 16일 우연히 현재 살고 있는 아이파크 아파트 화단을 바라보다가 활짝 피어난 꽃무릇을 발견했다. 몹시 반가왔다. 전에 못 보던 꽃무릇이었다. 아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새로 심은 듯했다. 앞으로 더 많은 꽃무릇이 피어나 장관을 이루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산은 백합목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라이코리스 레이디아타 (엘'허) 허브[Lycoris radiata (L'Her.) Herb.]이다. 영어명은 클러스터 애머릴리스(Cluster amaryllis)이다. 중국명은 싀솬(石蒜) 또는 라오야솬(老鸦蒜), 솬터우차오(蒜头草), 수이마(水麻)이다. 일본명은 세키산(せきさん, 石蒜) 또는 히간바나(ヒガンバナ, 彼岸花), 만쥬샤게(まんじゅしゃげ, 曼珠沙華)이다.
석산의 이명에는 꽃무릇, 가을가재무릇, 바퀴잎상사화, 조산(鳥蒜), 촉산 등이 있다. 한국명 석산은 중국명과 일본명의 한자 발음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석산보다는 꽃무릇이라는 이름이 어감이 훨씬 더 좋다. 피처럼 붉은 꽃과 비늘줄기의 독성 때문에 죽음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지옥의 꽃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무릇의 꽃말은 '참사랑'이다.
꽃무릇은 중국 양쯔쟝(扬子江) 유역이 원산지인 관상식물이다. 한국에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주로 서남부 지방의 습한 들에 분포한다. 사찰이나 정원에 많이 심으며,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꽃무릇의 뿌리는 비늘줄기다.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이며, 겉껍질은 흑갈색이다. 꽃대는 높이 30~50cm까지 자란다. 잎은 광택이 나는 짙은 녹색이고, 넓은 선상이다. 꽃이 진 뒤에 잎이 돋아나 상록으로 겨울을 지내고, 6월이면 완전히 말라 죽는다.
꽃은 9~10월에 잎이 없어진 비늘줄기에서 꽃대가 나와 큰 꽃이 산형으로 달린다. 총포는 넓은 선형 또는 피침형이고, 막질이다. 꽃은 짙은 빨강색이다. 화피열편은 6개로서 거꿀피침모양이고 뒤로 말리며, 가장자리에 주름이 진다. 수술은 6개이고 꽃밖으로 훨씬 나오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암술은 1개이다. 꽃술의 길이가 꽃잎의 2배쯤 된다. 꽃이 진 다음 짙은 녹색 잎이 나온다.
꽃무릇의 유사종에는 상사화(개가재무릇, 학명 Lycoris squamigera Maxim), 백양꽃(학명 Lycoris sanguinea var. koreana (Nakai) T.Koyama), 분홍상사화(학명 Lycoris erythroflora), 흰상사화(학명 Lycoris albiflora Koidz.), 붉노랑상사화(개상사화, 학명 Lycoris flavescens M.Y.Kim & S.T.Lee) 등이 있다.
상사화는 6~7월 꽃대 끝에 우산모양꽃차례로 4~8개의 연한 홍자색 꽃이 달린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특징이 꽃무릇과 닮았다. 하지만 상사화는 여름꽃, 꽃무릇은 가을꽃이며, 꽃 모양도 완전히 다르다. 백양꽃은 백양산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특산식물이다. 봄에 돋아난 잎은 여름이면 시들어 죽고, 초가을 꽃대가 돋아나 끝에서 주황색 꽃이 여러 송이 뭉쳐서 핀다. 환경부와 산림청의 멸종 위기식물 목록에 들어 있는 희귀식물이다. 분홍상사화는 분홍 꽃잎이 뒤로 말리고 긴 꽃술이 밖으로 빠져 나온다. 꽃잎 안쪽에 짙은 붉은색 줄무늬가 들어 있다. 흰상사화는 백양꽃과 개상사화의 자연 교잡종으로 보이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붉노랑상사화는 제주도와 나로도, 불갑산, 내장산에서 자생한다. 9~10월 꽃대 끝에서 10여 개의 노란색 꽃이 방사형으로 하나씩 달려 옆을 향해 핀다.
꽃무릇은 절이나 민가에서 흔히 관상용으로 심는다. 비늘줄기는 매운맛이 있어 김치를 담글 때 파, 마늘 대용으로 넣기도 한다. 또, 전을 부치거나 쪄서 먹기도 하지만 독성이 있어 삶아서 우려내고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토, 설사, 경련 등이 일어난다. 비늘줄기에서 독성만 제거하면 좋은 녹말을 얻을 수 있다. 사찰 근처에 꽃무릇을 많이 심은 이유는 비늘줄기에서 추출한 녹말로 불경을 제본하고, 탱화(幀畵)를 만들 때나 고승(高僧)들의 진영(眞影)을 붙일 때도 썼기 때문이다. 한국의 꽃무릇 3대 군락지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禪雲寺), 전남 함평의 용천사(龍泉寺), 영광의 불갑사다. 경기도 분당의 중앙공원에도 꽃무릇 군락지를 조성해 놓았다.
꽃무릇의 비늘줄기를 본초명 석산(石蒜)이라고 하며, 민간에서 약재로 쓰기도 한다. 비늘줄기에는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며 항암작용이 있는 라이코리시디올(lycoricidiol)과 라이코리시딘(lycoricidine)이 들어 있다. 석산은 꽃이 진 뒤 늦은 가을에 채취하여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말린다. 거담(祛痰), 이뇨, 해독, 최토(催吐)의 효능이 있어 후풍(候風(마비풍의 경증, 인후카다르), 수종(水腫), 옹저종독(癰疽腫毒), 정창(疔瘡), 누력(漏癧)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외용시에는 짓찧어 바르거나 즙으로 훈세(熏洗)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안 쓴다.
2021. 1. 21.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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