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重報本之禮始有守兆之宮來孫殫肯搆之誠聿新飮餕之社. 山川不革棟宇改觀. 恭惟貴宗南土古家東來右族. 簪纓珪笏訖麗代五百歷年忠孝詩書自長興十數傳世. 商園唱紫芝之曲粤自中葉而來栗里採黃菊之英遂爲始遷之蹟. 爰命蓍龜而卜築仍成衣冠之古藏. 良田美疇人皆認仲長統之墟里荒原脩隴也不替韓魏公之牲牷. 念玆庖廚之數間寔在墳塋之一局. 刱始於黑虎之紀非不善於肇基重建在赤兎之年猶未免乎中圮. 無耐風雨之萃棟樑有不合於葺修或詢陰陽之家體勢要自取其平穩. 幸値中熟之歲欲張久遠之圖. 離舊基地步孔邇非敢求多于前也視古制間架稍廣抑有所不容己乎. 伐木鳩財宗黨之經營蓋久. 授能任役工徒之課程不煩. 幾切嗟惋之懷不日見突兀美. 中爲堂而夾爲室序昭穆而猶容澗有藻而溪有蘋修烝嘗而不匮. 松楸冷節環四山蒼翠入簾霜露終天閱百年香火隨序. 是所謂善繼善述孰不曰有子有孫. 甄氏古亭豈但爲苾芬孝思. 韋家遺事亦宜講花樹懽情. 承前烈而無怠無荒. 詩禮肄業之得所. 視後嗣而不侈不儉歌哭聚族之於斯. 感古人風樹之嘆愼終追遠體盛代菁我之化移孝爲忠. 姑停郢斤試聽魯頌. 抛樑東捲閣微雲鳥信風. 春雨曉來霑老樹枝枝萬紫與千紅. 抛樑西池洞斜陽草色低. 寒食東風奠掃罷不勝孝思黯悽悽. 抛樑南烏次遙山浮翠嵐山下. 源泉第一坎盈科潑潑欲成潭. 抛樑北石牀莎砌苔紋織. 由來介福祈無他. 薦我馨香黍與稷. 抛樑上銀漢昭回天四曠. 一炷香烟颺雲中蒼蒼萬古元無障. 抛樑下極目桑麻滿四野. 簫鼓歲時頌有年千秋繼繼承承者伏願. 上樑之後天長地久本百支千父子親兄弟睦夫婦和敍天倫而愉悅籩豆踐簋簋修牲酒潔格先靈而肅雝.
禮曹正郞行萬頃縣令 平山 申完 撰
성인(聖人)이 근본에 보답하는 예를 중하게 여겨 비로소 묘를 지키는 궁(宮)을 두게 되었고, 후손이 뜻을 받들어 집을 짓는데 성의를 다하니 드디어 음복(飮福, 주1)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도다. 산천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동우(棟宇, 주2)가 경관을 바꾸어 놓았도다.
삼가 생각하건대 귀종(貴宗)은 남토(南土)의 고가(古家)요 동방(東方)의 귀족(貴族)이라. 잠영(簪纓, 주3)과 규홀(珪笏, 주4)이 고려 시대 500년을 연달아 났고, 충효(忠孝)와 시서(詩書)는 장흥(長興)에서 십수세(十數世)를 전하였도다. 상원(商園)에서 자지곡(紫芝曲, 주5)을 부르기는 중세(中世)로부터 그랬고, 율리(栗里, 주6)에서 황국(黃菊)의 꽃을 따던 분이 드디어 처음 이사온 자취를 남겼다.
이에 점괘를 빼보고 자리를 잡아 지었고, 마침내 의관족(衣冠族, 주7)의 묵은 터가 되었도다. 좋은 논밭들은 모두가 중장통(仲長統, 주8)의 옛터인가 의심할 만하고, 거친 언덕 긴 뚝에는 한위공(韓魏公, 주9)의 향사(享祀, 주10)가 변함없이 행해지도다. 이 포주(庖廚, 주11)의 몇 칸(間)이 실로 묘소의 한 국내(局內)에 있도다. 흑호(黑虎)의 해(壬寅年)에 시작을 했는데, 터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건(重建)을 적토(赤兎)의 해(丁卯年)에 했으나 그래도 낡아 헐어짐을 면하지 못했다.
풍우(風雨)가 모진 곳이라 견딜 수가 없어 동량(棟樑, 마룻대와 들보)을 고칠 수도 없으므로 어떤 사람이 음양가(陰陽家, 주 12)에게 물어봤더니 자리를 평온한 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중숙(中熟, 平年作)이 된 해를 당하여 영구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옛곳을 떠났지만 거리가 아주 가까우니 전의 것보다 더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옛 제도에 비해 칸수(間數)를 좀 넓혔으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무를 치고 재정을 모으니 종중(宗中)에서 경영을 한 지 오래되었다. 유능한 자에게 맡겨 역사(役使)를 하니 목수들의 일이 번거롭지 않도다. 몇 년 동안을 한탄만 해오다가 느닷없이 우뚝 솟아오른 미(美)를 보게 되었도다. 중(中)은 당(堂)이 되고, 끼어서 실(室)을 들이고 하였으니 소목(昭穆, 주 13)을 서열(序列)하여 용납할 수 있다. 간(澗)에는 조(藻, 주14)가 있고, 계(溪)에는 빈(蘋, 주15)이 있으니 증(烝, 겨울 제사)과 상(嘗, 가을 제사)에 올리기에 모자람이 없도다.
송추(松楸, 주16)는 차가운 철이 와도 사방 산에 둘러 있어 주렴에 빛이 들어오고,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영원한 철이 흐르는데 100년 동안 향화(香火)가 절서 따라 올려졌도다. 이것이 이른바 잘 계승하고 잘 받든 것이라 누가 좋은 자손 뒀다고 아니하겠는가! 견씨(甄氏, 중국어 발음은 젠싀)의 고정(古亭, 주 17)은 어찌 제사를 지내기 위한 효사(孝思)뿐이리요! 위가(韋家)의 유사(遺事, 주18)는 또한 화수(花樹, 宗族)의 기쁜 정을 나누는도다.
전세(前世)의 공열(功烈)을 이어 게을리 말고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시례(詩禮, 詩經 禮記)를 공부할 자리를 얻었도다. 후손들에게 너무 사치하거나 너무 군속스러움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 이곳에서 기쁜 일 슬픈 일을 나누며 종족을 모이도록 하자. 옛 사람의 풍수지탄(風樹之歎, 樹欲靜而風不止, 주19)을 생각하여 치상(治喪)도 잘 하고 제사도 잘 지내며 성대(盛代)에 인재를 양성한 교화(敎化)를 헤아려 효(孝)를 옮겨 충(忠)을 하라.
아직 영근(郢斤, 주20)을 멈추고 부족한 송사(頌辭)를 들어보라.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면 작은 구름 걷히고 바람 따라 새가 난다. 봄비가 새벽에 와서 늙은 나무 적시니 가지가지 만자천홍(萬紫千紅, 千紫萬紅)이 피었도다.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면 지동(池洞, 못골)의 저녁 날에 풀빛이 깔려 있다. 한식(寒食, 주21) 동풍(東風) 속에 전(奠, 주22)을 올리고 나니 쓸쓸하고 애닯은 효사(孝思)를 견딜 수 없네.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면 먼 데 오차(烏次, 주23)의 먼 산에는 푸른 람기(嵐氣, 주24) 떠 있다. 원천(源泉)에서 제일의 구덩이가 구덩이 채우고 흘러 못을 이루려 하도다.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면 상석과 잔디 뜰이 이끼로 짜여 있다. 본래 큰 복을 비는 방도는 따로 없다. 우리의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는 것이다. 들보를 위로 던지면 은하수가 도는 곳 하늘은 텅 비었다. 한 줄기 향(香)의 연기 구름 속으로 피어오르니 푸르른 하늘은 만고(萬古)에 막힌 데가 없는 것! 들보를 아래로 던지면 사방 들판 상마(桑麻)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세시(歲時, 正月初)면 장고와 북 치고 풍년을 노래하니 천추(千秋, 千年)를 변함없이 이어 내려온 풍습, 엎드려 원하노니 상량(上樑, 주25)을 한 뒤에 천지(天地)의 장구함 속에 본손(本孫)은 백(百), 지손(支孫)은 천(千)으로 번지되, 부자(父子)는 친(親)하고 형제(兄弟)는 화목하며, 부부(夫婦)는 화(和)하여 천륜(天倫)을 펴고 즐거워하며 제기(祭器)들도 정연(整然)하고 제육(祭肉)이나 술도 깨끗하여 선령(先靈)이 엄숙하게 강림(降臨)케 되옵소서.
예조정랑행만경현령(禮曹正郞行萬頃縣令) 평산(平山) 신완(申完) 지음(撰)
*영사재(永思齋)는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에 있다. 삼송(三松) 임귀지(林貴枝)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임귀지는 조선 세종조 문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홍산현감(鴻山縣監)을 지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율현리에 삼송정(三松亭)을 지어 후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주1) 음복(飮福)은 제사를 지내고 나서 제사에 썼던 술을 제관들이 나누어 마시는 것을 말한다. 본래는 제주를 마시는 것만을 가리켰으나 차츰 제사 음식을 나눠먹는 것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조상님께 올렸던 음식을 먹음으로써 조상의 복덕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2) 동우(棟宇)는 집의 마룻대와 추녀 끝, 집, 가옥(家屋) 등의 뜻이 있다.
주3) 잠영(簪纓)은 귀족이나 관리의 관(冠)을 장식하는 물건이다. 벼슬아치가 됨을 가리키기도 한다. 잠(簪)이란 비녀다. 관모(冠帽)와 두발을 연결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머리핀이다. 영(纓)이란 모자 양옆에 달린 끈인데, 턱 아래에서 묶어 관을 고정시킨다.
주4) 규(珪)는 옥으로 만든 홀(笏)이다. 위 끝은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졌다. 옛날 중국에서 천자(天子)가 제후를 봉하거나 신을 모실 때에 썼다. 홀(笏)은 조선 시대에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손에 쥐던 물건이다. 조복(朝服), 제복(祭服), 공복(公服) 따위에 사용하였으며, 일품부터 사품까지는 상아홀, 오품 이하는 목홀(木笏)을 썼다.
주5) 자지곡(紫芝曲)은 옛날 노래의 이름이다. 진(秦) 나라 말엽에 상산사호(商山四皓)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 세상이 어지러워진 것을 보고 물러나 은거(隱居)했다. 한(漢) 고조(高祖)가 초빙하자 사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빛나고 빛난 영지여, 주림을 면할 수 있네. 당우 세상 가버렸으니, 나는 어디로 간단말가(曄曄靈芝 可以療飢 唐虞往矣 吾當安歸).'라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한다. 자지(紫芝)는 영지(靈芝)라고도 한다.
주6) 율리(栗里)는 도연명(陶淵明)이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있다가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힐(折腰) 수는 없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있다. 도연명의 고향이 율리(栗里)이다. 도연명은 벼슬을 던지고 물러나 고향 율리에서 국화꽃을 따 술에 담가 마셨다.
주7) 의관족(衣冠族)은 귀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주8) 중장통(仲長統, 179∼220)은 후한(後漢)시대의 학자이자 고사(高士)다. 그는 환로(宦路)의 길을 마다하고 포의(布衣)로 일생을 마쳤다. 평소 '무릇 제왕(帝王)을 따라 노니는 자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하고자 해서이나, 이름은 항상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한가로이 노닐며 자유롭게 기거하여 진실로 그 뜻을 스스로 즐길 뿐이다'(凡遊帝王者 欲以立身揚名耳 而名不常存 人生易滅 優游偃仰 固以自娛其志)라고 하였다.
주9) 한위공(韓魏公)은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 현상(賢相) 한기(韓琦)다. 자는 치규(稚圭)다.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한기가 일찍이 정자를 짓고 압구정(狎鷗亭)이라 이름했었다.
주10) 향사(享祀)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며 복을 기원하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이다.
주11) 포주(庖廚)는 '푸주'의 원래 말이다. 푸주는 소나 돼지 따위의 짐승을 잡아서 그 고기를 파는 가게다.
주12) 음양가(陰陽家)는 천문, 역수, 풍수지리 등을 연구하여 길흉과 화복을 예언하는 사람이다.
주13) 소목(昭穆)은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왼쪽 줄을 소(昭),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한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제1세를 중앙에 모신다. 천자(天子)의 경우 소에 제2·4·6세, 목에 제3·5·7세를, 제후의 경우 소에 제2·4세, 목에 제3·5세를, 대부의 경우 소에 제2세, 목에 제3세를 각각 봉안하도록 하여 천자 7묘, 제후 5묘, 대부 3묘가 된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 때에는 5묘의 제도가 이미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14) 간조(澗藻)는 시냇가 마름으로 제수(祭需)를 뜻한다. '시경' 〈채빈(采蘋)〉에 '이에 마름 뜯기를 남쪽 산골 물가에서 하도다(于以采蘋, 南澗之濱)'라고 하였다.
주15) 계빈(溪蘋)은 간조(澗藻)와 뜻이 같다. 조(藻)와 빈(蘋)은 연못에 흔하게 자라는 한해살이 물풀인 '마름'이다.
주16) 송추(松楸)는 산소에 심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주17) 고정(古亭)은 중국 송나라 때 견씨(甄氏)의 사정(思亭)을 말한다. 사정(思亭)은 부모를 추모하는 정자란 뜻이다. 진무기(陳無己)가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
주18) 위가유사(韋家遺事)는 위가에서 처음으로 화수회(花樹會)를 만든 것을 가리킨다. 화수위가종회법(花樹韋家宗會法)은 위씨 집안의 종회법이다.
주19) 풍수지탄(風樹之歎)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를 말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과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무는 조용하고 싶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효도를 다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20) 영근(郢斤)은 초나라의 수도 영(郢)땅 사람의 자귀질이란 뜻으로 글을 잘 고침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영땅 사람이 코끝에 파리 날개 같은 것을 붙여 놓고 장인(匠人)을 시켜 깎게 하니 자귀에 바람이 나도록 움직여도 코끝을 상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주21) 한식(寒食)은 전통 4대 명절의 하나다. 동지(冬至)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다. 4월 5일이나 6일이다. 청명절(淸明)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이다. 산에 올라가 불에 타 죽었던 중국 개자추(介子推)의 전설에서 비롯된 명절이다. 한식에는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있다.
주22) 전(奠)은 고인을 생시와 똑같이 섬긴다는 의미에서 상에 술과 과일, 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올리는 것을 조전(朝奠), 저녁에 올리는 것을 석전(夕奠)이라 한다. 전을 올리는 것은 육체를 떠난 혼이 형상이 없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없어서 전을 드려 의지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23) 오차(烏次)는 장흥(長興)의 옛 이름이다. 장흥은 원래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인데 신라 때 오아현(烏兒縣)으로 개칭되어 보성군(寶城郡)에 속했다가 고려 때 다시 정안현(政安縣)이 되어 영암군(靈岩郡)에 소속시켰는데, 인종(仁宗)때 공예태후(恭睿太后) 임비(任妃)가 인종왕비로 책봉되자 왕비(王妃)의 탄생지(誕生地)라 하여 정안현(定安縣)을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로 승격(昇格)시켰다. 이로부터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는 이웃 여러 군·현(郡·縣)을 다스려오다가 그후 도호부제(都護府制)의 폐지로 1895년 장흥군(長興郡)이 되었다.
주24) 람기(嵐氣)는 해 질 무렵에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을 말한다.
주25) 상량(上樑)은 목조 건축물의 가구(架構)에서 최상부의 부재(部材)인 종도리를 올려 놓는 건축절차다. 종도리는 마룻도리, 마룻대라고도 한다. 상량은 서까래를 걸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것이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즉, 집의 골격이 완성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을 마쳤다는 뜻에서 상량식을 갖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상량식을 할 때 마지막으로 올리는 도리는 마룻도리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 즉 어간도리를 이른다. 상량일자 등을 묵서(墨書)할 때는 종도리장여에 직접 쓴다. 상량문을 종이에 별도로 쓸 경우 기름을 먹여서 오동나무로 만든 함에 넣고 밀봉한 다음, 종도리 밑면 종도리장여와 맞물리는 부분에 홈을 파고 그 속에 안치한다. 가신(家神)으로 모시는 성주를 일명 상량신(上樑神)이라 하며, 새로 집을 짓게 되면 성주굿을 하고 대청이나 안방 등의 상부에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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