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임씨(長興林氏)

삼송정상량문(三松亭上樑文) - 권상대(權相大)

林 山 2021. 3. 14. 07:44

先䠱理沒於百年雲仍之寓慕如昨名庄改卜於壑輪奐之制度重新. 非敢將多于前功聊以苟完於今日. 恭惟三松亭林公挺生冠山之華閥遹追平章之遺徽. 早擅英聲視萬里於鵬翮薄試下邑夢三刀於鴻山. 作亭而命名盖取後凋之義韜躬而歛釐爰自中葉之昌. 經歷家門抑亦幹蠱而趾美襄陽山水無愧嘉遯而遺安. 何代譆出之災堂室己煨燼某邱藏修之地池臺便蓁蕪. 公羊流傳只憑秋潭直筆擊牲表述昭載新野遺文. 往蹟述茫徒惹行人之指點高風綿邈頻起慈孫之齎咨. 顯晦其奈天也何廢興惟在人而己. 載營載度尙未遑於幾年肯構肯堂盖勉力於諸族. 就荒墟數弓之外詹營室五車之中. 雨露桑麻不出平地佳境泉石雲月無非別天奇. 觀龜筮協從就南面而審位鳩謨倂力趁東作而輸材. 圭臬四平前堂後牅之井井繩墨一正上棟下宇之持持. 工役待時而成經始不日而作. 三峯蹲蹲而舞背負磅礴之精一水琤琤而流前臨澄澈之面. 于以詹桑梓起敬尙挹杖屨遺芬. 于以樂花樹同春宜享本支綿祿. 是足爲繼述之責聊以寓羹墻之思. 矧敬業樂羣於斯堂春宜弦而夏宜誦惟玩物適精於此地山益高而水益淸. 曷不休哉. 是所望也. 敢綴樑欐之曲庸助祁奚忱. 抛樑東蔥籠鶴駕揷晴空. 更看朝日添生白氣象分明與許同. 抛樑南康莊官道迭行驂. 當時五馬歸田日手撫孤松陶逕三. 抛樑西嶺樹重遮日欲低. 此去鴻山幾百里. 五雲京國夢猶述. 抛樑北村閭撲地繞如織. 康成之宅韋家亭講業敦倫爲世則. 抛樑上雲收碧落無纖障. 門戶從今休運回文昌奎曲倂宣朗. 抛樑下淸溪㶁㶁循除瀉. 網花莫遣遂流波. 只栢漁郞向世詑. 伏願上樑之後溪山益勝風雨永除傲雪凌霜瞻彼君子之貞節談詩說禮貽厥後昆之嘉謨. 豈無可必之天. 勖哉世德是述必有重回之運菀然門閥丕興. 永保一區幽棲以啓百代祚胤.

 

赤馬(丙午) 小春節 安東 權相大 謹撰

 

선세(先世)의 자취가 백년 동안 묻혀 있었으나 자손들의 사모함은 어제 일과 같고, 좋은 집을 한 골짜기에 새로 지으니 반듯한 모습이 새로워지도다. 전의 것보다 더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쉬운 대로 오늘의 일을 완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삼송정(三松亭) 임공(林公, 주1)은 관산(冠山, 주2)의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평장사공(平章事公, 주3)의 전통을 계승하였도다.

 

일찍이 영명(英名)을 날려 만리를 날아가는 붕새(鵬鳥, 주4)의 날개로 인정을 받았고, 잠깐 하읍(下邑)에서 재능을 시험하였으니 홍산(鴻山, 주5)에 삼도(三刀, 주6)를 꿈꾸었다. 정(亭)을 짓고 이름을 지은 것은 후조(後凋, 주7)의 뜻을 취한 것이요, 몸을 감추고 복을 아껴 중엽(中葉, 中世)으로부터 번창을 하였도다. 

 

경력(經歷, 주8)의 가문에 가무(家務)를 맡아보며 그 아름다움을 이었고, 양양(襄陽, 예천)의 자연 속에 숨어살며 편안한 가법(家法)을 남겨 주는데 손색이 없었도다. 어느 때던가 잠귀의 재앙이 있어 당실(堂室)은 잿더미로 변하고, 그 언덕 은거(隱居)하시던 땅과 연못, 누대에는 풀이 우거져 버렸도다. 

 

공양(公洋, 주9)이 세상에 유전(流傳)되는 것은 다만 추담(秋潭, 俟考)의 직필(直筆) 때문이요, 비석(碑石)에 기술(記述)이 된 글은 신야(新野, 俟考)의 문집(文集)에 분명하게 실려 있다. 지난날의 자취가 희미하니 길 가는 사람들만이 가리키며 들먹일 따름이요, 높은 풍문(風聞)이 오래도록 퍼져가니 자꾸만 인자(仁慈)한 자손들의 감탄을 일게 하였도다. 드러나고 감춰지고 하는 것도 천명(天命)이니 어찌하리요마는 폐(廢)하고 흥(興)하는 것은 오직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경영을 하고 생각을 한 지 몇 년이 지났건만 미처 하지 못해 오다가 터를 닦고 집을 짓자고 종친(宗親)들에게 노력을 종용했다. 거친 빈터의 수궁(數弓, 주10) 밖에 자리를 잡고 영실(營室), 오거(五車, 주11)가 중천(中天)에 올 때를 보아서 시작했다. 비와 이슬에 젖은 뽕나무(桑)와 삼(麻)은 평지(平地)를 떠나지 않고도 가경(佳景)을 이룩했고, 샘과 들에 구름과 달은 모두가 별천지의 기특한 경관이다. 

 

점괘에 맞춰 남향(南向)의 자리를 살펴서 잡았고,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해 봄철에 임박하여 재목을 가져왔도다. 심말을 사방에 맞게 꽂았으니 앞은 당(堂)이요, 뒤는 봉창이 반듯하게 들어설 것이요, 먹줄이 한번 잡혔으니 위의 들보와 아랫집이 서로 붙잡아 주도다. 목수들의 일은 때를 기다려 이루어지고 계획은 세운 지 하루도 못 되어 시작되도다.  

 

삼봉(三峯)이 춤을 추니 등에 우람한 정기를 짊어졌고, 한 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니 앞에 맑은 장면을 보여 주도다. 여기서 선조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아직도 지팡이와 신발의 남은 향기를 맡는도다. 여기서 화수(花樹, 宗親)가 함께 맞는 봄을 즐김에 본손(本孫, 종가의 후손)과 지손(支孫, 지파의 후손)이 오랜 복록(福祿)을 누릴 것이다. 

 

이것이 족히 계술(繼述, 주12)하는 책(責)이라 할 것이요, 사모하는 마음을 부침도 되리라. 하물며 이 당(堂)에서 공부도 하고 모임도 즐길 것이니, 봄에는 음악을 배우고 여름에는 시를 욀 것이며, 사물(事物)을 구경하고 심정을 편히 하니, 산은 더욱 높고 물은 더욱 맑도다. 이렇게 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감히 상량문을 지어서 기해(祁奚, 주13)의 정성을 돕노라.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면 울창한 학가산(鶴駕山)이 반공중에 꽂혀 있다. 거기에 아침해 떠서 환한 기운 더 생기니 이 기상이 분명 삼송정공(三松亭公, 林貴枝)과 같도다.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면 사방으로 통한 관(官)의 길에 번갈아 달리는 말들이여! 당시에 오마(五馬, 주14)를 몰고 전원(田園)으로 오신 날 도연명(陶淵明, 주15)의 삼경(三逕, 주16) 위에 외로운 소나무를 만졌으리.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면 고개 위의 나무가 해를 가려 볼 수가 없네. 여기서 홍산(鴻山, 장흥)이 몇 백리던가? 오색 구름 떠 있는 서울이 꿈속에 희미하다.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면 땅에 깔린 마을 집들 짜이듯 서 있도다. 정강성(鄭康成, 주17)의 집이요, 위가(韋家, 주18)의 정(亭)이니 학업을 강론하고 윤강(倫綱, 삼강오륜)을 두터이 함으로써 가세(家世)의 법칙(法則)을 삼는도다. 

 

들보를 위로 던지면 구름 걷힌 하늘에 가리운 것 없도다. 문호(門戶)의 앞으로는 좋은 운(運)이 돌아와 규성(奎星, 주19) 자리에 문곡성(文曲星, 주20)이 크게 빛나라. 들보를 아래로 던지면 맑은 시냇물 콸콸 흘러 뜨락가로 쏟아진다. 꽃을 담되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 어랑(漁郞, 주21)이 이곳 풍경 세상에 자랑할까 보다. 

 

엎드려 원하노니 상량(上樑)을 한 뒤에 시냇물과 산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비바람은 집에 들이치지 말며, 눈과 서리를 모르는 저 군자(소나무)의 곧은 절개를 보게 되고, 시(詩)와 예(禮)를 이야기하며, 후손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하노라. 어찌 믿을 수 있는 하늘이 없겠는가! 힘써 조상 대대로 쌓아 내려오는 미덕을 잘 받들어 계승해야 할 것이며, 반드시 돌아올 운이 있어서 문벌(門閥)이 왕성하게 일어나리라. 영원히 한 곳의 그윽한 집을 보전하여 100대 길이 복된 자손의 길을 열게 해 주소서.

 

적마(赤馬) 병오년(丙午年) 소춘절(小春節, 10월) 안동(安東) 권상대(權相大) 삼가 지음(謹撰)

 

삼송정

주1) 삼송정(三松亭) 임공(林公)은 임귀지(林貴枝, 1435~1508)이다. 임귀지는 경상북도 유천면 율현리 출신으로 호는 삼송(三松)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임우소(林雨所)의 손자다.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충남 부여에 있는 홍산현감을 지냈는데, 백성을 사랑하고 정치를 잘하여 그곳 선비와 백성이 선정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不事二君)'고 하면서 벼슬을 그만두고, 율현리로 와 숨어 살면서 삼송정(三松亭)을 지었다.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며 선비들과 사귀었다.

 

주2) 관산(冠山)은 장흥(長興)의 별호이다. 천관산(天冠山, 723m)을 줄여서 관산이라고도 한다. 장흥군에는 관산읍(冠山邑)이 있다. 

 

주3) 평장사공(平章事公)은 고려 시대 평장사를 지낸 선조를 말한다. 평장사를 지낸 장흥임씨(長興林氏) 공조판서공파(工曹判書公派) 선조는 1세조 장흥군(長興君) 임세은(林世殷)이다. 평장사는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속한 정2품의 관직이다. 평장사는 성종 때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에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가 있었다. 문종 때는 중서문하성에 문하시랑평장사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문하평장사, 중서평장사가 각각 1명씩 있었는데, 품계는 모두 정2품이었다. 

 

주4) 붕(鵬)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이름은 곤(鯤)이다. 변화해서 새가 되었는데 이름은 붕(鵬)이다. 붕새의 등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으며 날면 날개가 하늘을 덮는 구름과 같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큰 뜻을 품은 것에 비유한다. 

 

주5) 홍산(鴻山)은 조선 시대 홍산현(鴻山縣)이다. 홍산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대산현(大山縣)이었다. 신라의 삼국 병합 후 757년(경덕왕 16)에 한산현(翰山縣)으로 개칭, 가림군(加林郡, 지금의 충남 부여군 임천면 지역)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홍산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의 속현이 되었다. 1175년(명종 5)에 한산 감무가 본현을 같이 다스렸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을 설치,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홍산군, 1896년에 충청남도 홍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군내면·대야면이 홍산면, 하서면·상서면이 옥산면, 해안면·상동면이 구룡면, 내산면·대야면이 내산면, 남면·상동면이 남면, 외산면·내산면이 외산면으로 통합, 부여군에 병합되고 홍산군은 폐지되었다.

 

주6) 삼도(三刀)는 삼도지몽(三刀之夢)의 고사를 말한다. 삼도지몽은 칼 세 자루의 꿈이라는 뜻으로 영전(榮轉)함을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왕준(王濬)이 칼 세 자루를 들보에 걸어 놓았는데, 또 한 자루를 더 걸은 꿈을 꾸고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의(李毅)가 축하하면서 삼도(三刀), 즉 이는 주(州)를 뜻하니 한 칼을 더하면 익주(益州)의 지방장관이 되리라 했다. 왕준은 과연 다음날 익주자사(益州刺史)에 임명(任命)되었다고 한다.

 

주7) 후조(後凋)는 세한후조(歲寒後凋)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나는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마른다는 것을 알았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하였다. 군자의 굳은 지조는 환난(患難)을 당해야 알 수 있음에 비유한 말이다.

 

주8) 경력(經歷)은 고려 시대 문하부(門下府), 도총도통사(都摠都統使),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부속 기관인 경력사(經歷司) 등에 두었던 3, 4품의 실무 담당 관직이다. 조선 시대에는 도평의사사, 관찰사의 속관(屬官), 충훈부(忠勳府), 의빈부(儀賓府), 의금부(義禁府), 개성부(開城府),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사평부(司評府) 등에 속하여 실무 처리를 맡았던 종4품의 벼슬이다. 관찰사 소속의 경력(經歷)을 군사(郡事)라고도 한다.

 

주9) 공양(公洋)은 '춘치우궁양쫜(春秋公羊傳)'을 말한다. '춘치우궁양쫜'은 '춘치우(春秋)'의 주석서이다. '춘치우쭈어싀쫜(春秋左氏傳)', '춘치우구량쫜(春秋穀梁傳)'과 함께 '춘치우싼쫜(春秋三傳)'이라고 불리고 있다. '궁양쫜'의 저자에 대해서 반구(班固)의 '한수 이원쯰지(漢書芸文志)'에는 저자가 궁양즈(公羊子)라고 기록되어 있어 구체적으로 이름이나 출신등 밝히지 않았다. 허우한(後漢) 시대의 인물인 따이훙(戴宏)에 의하면 콩즈(孔子)의 제자 즈샤(子夏)가 궁양까오(公羊高)에게 전수하여 궁양까오→궁양핑(公羊平)→궁양띠(公羊地)→궁양깐(公羊敢)→궁양셔우(公羊壽)에게 전해져서 한 징띠(漢景帝) 때, 궁양셔우가 지(齊)나라 사람인 후우셩(胡毋生, 胡母生)과 함께 죽간에 정리하여 똥쫑슈(董仲舒)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따이훙은 이 전승을 도참사상(圖讖思想)으로 전해 오고 있어 그대로 신뢰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똥쫑슈와 후우셩이 궁양쫜을 전한 것은 '싀지(史記)'에도 기록되어 있어서 확실한 기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전에 기록된 서적들과 같이 수많은 사람 속에서 글이 더해져 한 징띠 치세에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10) 수궁(數弓)은 거리를 말한다. 일궁(一弓)은 활을 쏘아서 화살이 날아간 거리이다. 

 

주11) 영실(營室), 오거(五車)는 별자리이다. 영실(營室)은 실수(室宿)의 두 별을 말한다. 실수는 천자의 궁인데 현궁(玄宮) 또는 청묘(淸廟)이다. 실수는 제왕의 종묘(宗廟) 또는 제왕의 이궁 (離宮) 복도라고 한다. 정성(定星)이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뜨면 이에 궁실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일컫기를 영실이라 하였다. 오거성(五車星)은 28수 가운데 필수(畢宿)에 속하는 별자리이며 5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에서 필수의 북쪽에 있는데, 서양 별자리의 마차부자리와 황소자리에 걸쳐 있다. 오거성은 오제(五帝)의 수레를 두는 차고이다. 천자의 오병(五兵)을 맡고, 또 오곡(五穀)을 담당하여 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담당한다.

 

주12) 계술(繼述)은 선조의 남긴 뜻과 사업을 잘 받들어 계승하는 것이다.

 

주13) 기해(祁奚)는 춘추 시대 진(晉)의 대부로서 도공(悼公)이 즉위하자 중군위(中軍尉)가 되었다. 기해가 은퇴할 때 도공이 후임을 묻자 자기와 원수지간이었던 해호(解狐)를 추천했으며, 해호가 죽자 자기 아들 기오(祁午)를 적임자라고 천거하였다. 또 진 평공(平公) 때 변란에 연고된 숙향(叔向)을 변호해 사면되도록 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외인(外人)을 추천함에 좋은 사람이라면 원수라도 배제하지 않으며, 집안사람을 추천함에는 육친이라도 좋은 사람이면 꺼리지 않는 공평무사한 판단으로 칭송되었다.

 

주14) 오마(五馬)는 태수(太守)가 타는 마차 또는 태수를 뜻한다. 한(漢) 나라 때 태수가 타는 마차는 다섯 마리의 말이 끌었다. 조선에서는 군수(郡守)나 현감(縣監), 또는 이들이 타는 마차를 뜻한다. 

 

주15) 도연명(陶淵明)의 본명은 잠(潛)이다. 호는 연명(淵明), 자는 원량(元亮)이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육조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한 명이다. 심양 사람이다. 29세에 주(州)의 좨주(祭酒) 참군(參軍)으로서 관직에 임했다. 그 후 13년간 지방 관계에 있었으나 입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팽택현령(彭澤縣令)을 80일간 지낸 후 향리로 돌아가면서 “내 5두미(五斗米,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현령 자리를 팽개치고 전원으로 돌아갈 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후에는 심양에서 은일(隱逸)의 선비로 처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곳에서 논밭을 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전원시인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많이 썼다. 문장도 뛰어나서 이상의 세계를 그린 '도화원기(桃花源記)'는 유명하다. 온화한 성품에 술을 좋아했으며, 국화를 사랑했다. 그는 쉬운 말로 시를 썼으며, 유교와 노장 사상을 흡수하여 인생의 진실을 추구한 시인이었다. 10년 후에는 조정으로부터 좌저작랑(佐著作郞)을 제수받았다. 좌저작랑은 은사(隱士)에게 주는 관직이었다. 

 

주16) 삼경(三逕)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삼경(三逕)은 황무(荒蕪)하여졌으나, 솔과 국화는 오히려 있다.' 하였으며, 한(漢) 나라 은사(隱士) 장허(蔣詡)가 대밭 속에 세 갈래 길을 냈다. 그래서, 은사(隱士)의 집에 삼경(三逕)이란 말을 쓴다. 

 

주17) 정강성(鄭康成)은 동한(東漢) 시대의 대학자 정현(鄭玄)이다. 강성(康成)은 호다. 그는 경전(經傳)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일대를 풍미했으며, 삼경(三經)을 비롯하여 의례(儀禮), 효경(孝經), 논어(論語), 상서대전(尙書大傳) 등 많은 경전의 주서(註書)를 썼다. 또한 천문(天文)과 예설(禮說)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주18) 위가(韋家)는 위원외(韋員外)를 말한다. 위(韋)는 성, 원외(員外)는 관명(官名)이다. 원외(員外)는 상서육부(尙書六部)에 속한 원외랑(員外郞)의 약칭이다. 명청(明淸) 시대에 원외(員外)는 부자가 돈으로 사는 관직 가운데 하나였다. 위원외가 처음으로 화수회(花樹會)를 만들었다.  

 

주19) 규성(奎星)은 이십팔수(二十八宿) 중의 하나이다. 효경(孝經) 원신계(援神契)에 '규성은 문장(文章)을 주관한다.'고 하였다. 

 

주20) 문곡성(文曲星)은 구성(九星) 가운데 넷째 별이다. 과거(科擧)나 문학을 관할하는 성수(星宿)다. 문곡성이 비치면 문장(文章) 재사(才士)가 난다고 한다.  

 

주21) 어랑(漁郞)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도화원(桃花源)을 찾아가 그곳 선경을 보고 와서 세상에 자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