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林禧(임희)
高麗壁上三韓三重大匡領三司事或云太師公六代孫. 中和宗人世系以平澤伯書之云.
고려조(高麗朝)에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과 영삼사사(領三司事)의 벼슬을 하셨고, 혹은 태사공(太師公) 휘(諱) 임양저(林良貯)의 6대손이라고 한다. 중화종인(中和宗人)의 세계보(世系譜)에는 평택백(平澤伯)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은 고려 시대 문산계(文散階)의 정일품(正一品) 품계다. 삼중대광(三重大匡)이나 벽상삼한(壁上三韓)이라고 하다가 1362(공민왕 11)년에 둘을 합하여 벽상삼한삼중대광으로 하였다.
영삼사사(領三司事)는 재신(宰臣)이 겸임하는 관직으로 우왕(禑王) 때 처음 설치되었다. 조선 초기 삼사(三司)가 그대로 이어져 영삼사사도 존속되었으나 1405년(태종 5) 삼사가 호조(戶曹)로 개편될 때 없어졌다. 재신은 고려시대 재부(宰府)에 속한 2품 이상의 재상(宰相)들이다. 삼사는 고려시대 국가 전곡(錢穀)의 출납과 회계를 관장하던 기구다.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중추원(中樞院, 추밀원으로 개칭)과 함께 재상 관서(宰相官署)로 중요한 권력기구를 이루었다.
2. 林冕(임면)
門下侍中平章事諸派皆以爲先而昭穆未系以俟後考.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모든 파가 선조로 모셨으나 소목(昭穆)과 계통을 상세히 대지 못하니 후에 상고하기 바란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은 고려시대의 최고 정무기관(政務機關)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장관으로, 정원은 1인이었다. 같은 종1품직인 상서령(尙書令)과 중서령(中書令)이 종친이나 원로 재상에게 주는 영예직 또는 치사직(致仕職), 증직(贈職)이었으므로 명실상부한 고려의 최고관직으로서 수상이 되었다.
평장사(平章事)는 고려 문종(文宗) 때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정2품),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정2품), 문하평장사(종2품), 중서평장사(정2품)가 있었으며, 정원은 각 1인이었다. 실제 문하평장사와 중서평장사는 두어져 있지 않았고, 대신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정2품),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정2품)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정원도 1인으로 고정되지 않고, 대체로 중서시랑과 문하시랑이 복수인 경우가 많았다. 평장사 내의 서열은 문하시랑이 중서시랑보다 위이고, 평장사보다 동중서문하평장사가 상위가 되었다. 따라서 평장사 중에서는 중서시랑평장사가 초직(初職)이고,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가 최상위직이었다. 이와 같이 평장사 사이에는 명칭상으로 중서, 문하의 구별이 있었으나, 그 반차(班次)는 상하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소목(昭穆)은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한다. 예기(禮記)에 나온 말로 종묘(宗廟)의 제도이다. 중앙은 태조(太祖), 소목은 좌우에 배열한다. 부(父)는 소(昭), 자(子)는 목(穆) 선후상계(先後相繼)한다.
3. 林得雨(임득우)
官至禁侍衛. 配王氏父倫. 墓在龍仁大峙云.
벼슬은 금시위(禁侍衛)에 이르셨다. 배위(配位)는 왕씨(王氏)이며, 아버님은 륜(倫)이시다. 묘는 용인 대치(大峙)에 있다고 한다.
4. 林良貯(임양저)
仕於新羅官至太師或云上將軍中郞將. 爲敬順王子貞顯之婿之輔相君德有譽諤之節. 敬順之歸于麗朝也. 公諫曰繼累世之緖而絶之不可爲子也. 千乘之業而棄之不可爲君也. 言甚切至敬順王怒謫善山終焉. 後麗朝聞之分其九子投于緖邑云. 墓在善山野城或云在平城語在一善誌.
신라조(新羅朝)에 출사(出仕)하여 벼슬이 태사(太師) 혹은 상장군(上將軍) 중랑장(中郞將)에 이르렀다. 경순왕자(敬順王子) 정현(貞顯)의 사위이며, 덕이 있는 재상으로 충직의 절개가 높았다.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조(高麗祖)에 귀순하려고 하자 공이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계통을 자기대에 단절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직간(直諫)하셨다. 또, 나라를 버리는 것은 군왕의 도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심히 준열하므로 경순왕의 노여움을 사 선산(善山)에 유배되어 생애를 마치셨다고 한다. 후에 고려조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9명의 아들을 각 읍에 배치하였다는 말이 있다. 묘는 선산(善山) 야성(野城) 혹은 평성(平城)에 있다는 말이 일선지(一善誌)에 있다고 한다.
5. 林碔(임무)
太師公良貯之子而官至上將軍後以功受封爲平城伯云.
태사공(太師公) 휘(諱) 양저(良貯)의 아들이시며, 벼슬이 상장군(上將軍)에 이른 후에 공이 있어 평성백(平城伯)의 봉작(封爵)을 받으셨다고 한다.
6. 林夢周(임몽주)
官至評察品事. 有弟夢程夢商. 參考諸派譜牒則有子監軍使自美秀美見美斗美箕美允美伯美仲美季美. 皆以封君之地爲各派貫鄕云.
벼슬이 평찰품사(評察品事)에 이르셨다. 아우에 몽정(夢程), 몽상(夢商) 두 분이 계셨다. 여러 파의 족보를 참고하여 보니 감군사(監軍使)인 자미(自美)를 비롯해서 수미(秀美), 견미(見美), 두미(斗美), 기미(箕美), 윤미(允美), 백미(伯美), 중미(仲美), 계미(季美) 등 모두 9명의 아들을 두셨다. 이들은 모두 군(君)으로 봉해진 땅으로 각파의 관향을 삼았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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