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씨득성설(林氏得姓說)
吾林得姓之源有二說. 一說唐堯初神人降于冀州太原縣雙木下容狀甚偉才智過人因以賜姓林氏云. 一殷王子比干之子諱堅隱於長林山故林字爲姓云(但扶安譜學士公上有諱蘊字以西河公文集中仲秋會飮序巧之云). 平澤淸州屬縣一名彭城又河八. 鼻祖八及被讒見逐自上國來泊平澤後封平澤伯伯我林之貫自此焉.
우리가 임씨(林氏) 성(姓)을 갖게 된 근원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당요(唐堯) 초에 신인(神人)이 기주(冀州) 태원현(太原縣) 두 그루의 나무(雙木, 林) 아래에 내려오셨는데, 용모가 매우 장대하고 준수하시며, 재주와 슬기가 남보다 뛰어나셨음으로 임씨(林氏) 성을 갖게 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은(殷)나라 왕자 비간(比干)의 아들이신 휘(諱) 견(堅)께서 장림산(長林山)에 은거하셨기에 임자(林字)를 성으로 하셨다는 설이다. 단, 부안보(扶安譜)에 학사공(學士公) 위에 휘(諱) 온(蘊)이 계시는데, 이는 서하공(西河公) 문집 중 중추회음서(仲秋會飮序)를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 평택(平澤)은 청주(淸州)의 속현(屬縣)인데, 일명 팽성(彭城)이라고 하며, 또한 하팔(河八)이라고 하였다. 비조(鼻祖) 팔급(八及)께서 참소를 당해 축출되셔서 중국으로부터 동쪽 바다를 건너 평택에 머무신 후에 평택백(平澤伯)으로 봉작(封爵)되신 바 우리 임씨(林氏) 관향(貫鄕)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 시조(始祖) 임팔급(林八及)
仕於唐朝年十八爲翰林學士. 自唐被讒見逐與同德七賢浮海來泊彭城龍珠坊. 新羅朝官至吏部尙書時賊兵侵邊公奮討. 諡忠節. 配福州金氏父侍御史允福. 墓平澤龍珠坊雲巖洞酉坐或云妙香山雲巖洞酉坐云未知其詳.
당(唐)나라 조정에 벼슬하여 18세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는데, 참소를 입고 축출되시어 동덕칠현(同德七賢)과 함께 바다를 건너 팽성(彭城, 지금의 평택) 용주방(龍珠坊)에 다달아 머무셨다. 신라 왕조에 관작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셨으며, 마침 그때 적병이 변방을 침공함에 공께서 분연히 토벌하셔서 충절(忠節)이란 시호(諡號)를 받으셨다. 배위(配位) 복주김씨(福州金氏)께서는 시어사(侍御史) 윤복(允福)의 따님이시다. 묘는 평택 용주방 운암동(雲巖洞) 유좌(酉坐), 혹은 묘향산(妙香山) 운암동의 유좌에 모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3. 여칠현동도시(與七賢東渡時) 각음절운일구(各吟絶韻一句)
1). 임팔급(林八及) 八人浮海兮 桂棹蘭槳 여덟 사람이 바다를 건너옴이여, 모두가 고귀한 계란(桂蘭)의 돛대로다.
팔현(八賢)의 덕을 칭송한 한 구절이다. 계도난장(桂棹蘭槳)은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말이다. 계수나무로 만든 노(棹)와 난초 대로 만든 삿대(槳)를 말한다. 계란지교(桂蘭之交)는 세간(世间) 최고의 우정을 뜻한다.
2). 설인경(薛仁敬) 仙李運盡兮 賢士被讒 당나라의 운수가 다함이여, 어진 선비가 참소를 입었도다.
선이(仙李)는 당나라 황제의 성이 이씨(李氏)임을 말한 것이다.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건국한 당나라는 애제(哀帝)에 이르러 멸망했다.
3). 허 동(許 董) 吾道東矣兮 可以免禍 우리 가는 동쪽 길이여, 가히 화를 면함이로다.
4). 류 전(劉 筌) 波濤洶湧兮 舟楫利逝 파도가 세차게 솟아오름이여, 배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도다.
5). 송 규(宋 奎) 接淅而去兮 謝暗投命 파도를 저어서 떠남이여, 암흑을 하직하고 광명에 몸 던지고자 함이라.
접석(接淅)은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나오는 말로 부리나케 떠나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제(齊)나라를 떠날 때 바쁘게 떠나느라 밥을 지으려고 쌀을 담가 두었다가 그냥 건져 가지고 떠났던 '接淅而行(접석이행)' 고사에 나온다.
6). 최 호(崔 冱) 二老入海兮 殷道衰亡 기자(箕子)와 미자(微子) 두 어진이가 해외로 떠남이여, 은나라는 곧 망하는도다.
이로(二老)는 은(殷)나라 기자(箕子)와 미자(微子)를 말한다. 비간(比干)과 기자, 미자를 은나라 삼인(三仁)이라고 한다. 비간은 주왕(紂王)에게 죽임을 당하고, 기자와 미자는 나라를 떠나면서 은나라는 멸망했다. 8학사가 떠남으로써 당나라도 망하리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7). 권지기(權之奇) 賢士出東兮 竭誠盡忠 어진 선비가 동쪽으로 나아감이여, 충성을 다할지로다.
8). 공덕부(孔德符) 見機而作兮 疏廣之徒 기틀을 보아 행함이여, 소광(疏廣)과 같은 고사(高士)들이로다.
소광(疏廣)은 한(漢)나라 사람으로 '춘추(春秋)'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어 일찍이 조정에 박사로 초빙되었다. 한선제(漢宣帝) 유순(劉詢)이 재위할 때 소광은 태자 유석(劉奭)을 가르치고 보좌하는 스승인 태부(太傅)를 맡았다. 소광의 조카 소수(疏受)도 소부(少傅)를 맡아 태부를 도와 태자를 지도하고 보좌했다. 태부와 소부의 세심한 지도 아래 태자 유석은 매우 빠른 진보를 보였다. 선제는 이를 매우 기뻐하여 소광의 덕망과 소수의 재능을 더욱 높이 평가했다. 바로 이때 할 일을 다했다고 판단한 소광은 결단을 내려 태부에서 용퇴했다. 조카 소수도 삼촌을 따라 소부에서 용퇴했다. 선제에게 받은 황금 20근, 태자에게 받은 황금 50근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남은 황금도 토지를 사는 데 쓰지 않고 매일 잔치를 열어 고향 친구들을 대접했다. 그리하여 소광과 소수는 행복하게 천수을 누렸다.
'장흥임씨(長興林氏)'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팽성백임공팔급(新羅彭城伯林公八及) 제단비(祭壇碑) - 민병승(閔丙承) (0) | 2021.03.01 |
---|---|
장흥임씨(長興林氏) 구보(舊譜) 참고문헌(參考文獻) 2 (0) | 2021.02.28 |
창린석실(長林石室) 임성발원(林姓發源) 상계보(上系譜) (0) | 2021.02.22 |
임씨(林氏) 발원(發源) 샹(商) 역사 (0) | 2021.02.07 |
임씨(林氏) 기원설(起源說) (0) | 2021.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