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노루귀 '인내(忍耐), 믿음'

林 山 2021. 3. 8. 17:36

청계산에서 노루귀가 피었다는 소식이 풍문에 들려왔다. 2021년 3월 7일 주말을 맞아 만사 제쳐놓고 노루귀를 만나러 청계산으로 달려갔다. 해마다 늘 가던 그 자리에는 분홍색과 흰색의 앙증맞고 귀여운 노루귀 꽃들이 활짝 피어나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노루귀는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복수초와 함께 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보춘화(報春花) 가운데 하나이다. 노루귀가 피면 비로소 봄이 온 것이다.   

 

노루귀(청계산, 2021. 3. 7)

 

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비목(Ranunculales)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노루귀속(Hepatica)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노루귀는 꽃이 피고 나서 나오는 새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뾰족노루귀, 흰노루귀 등의 국명(國名)이 등재되어 있다. 추천 북한명은 노루귀풀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는 뾰족노루귀가 비추천명으로 실려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국생관)에는 장이세신(獐耳細辛), 설할초(雪割草), 파설초(破雪草) 등의 이명이 등재되어 있다. 설할초(雪割草), 파설초(破雪草)는 눈을 헤치고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귀의 꽃말은 '인내(忍耐), 믿음'이다.

 

노루귀(청계산, 2021. 3. 7)

 

국표, 국생정 등재 노루귀의 학명은 헤파티카 아시아티카 나카이(Hepatica asiatica Nakai)다. Hepatica nobilis Mill. var. asiatica (Nakai) H.Hara는 이명으로 실려 있다. 큐사이언스(Kewscience)에서는 Hepatica asiatica Nakai를 채용하고 var. japonica 등 변종, 품종을 포함하여 일본, 한강토, 중국, 러시아를 분포역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lobal Biodiversity Information Facility, GBIF)에서는 Hepatica nobilis Schreb. var. asiatica (Nakai) H.Hara를 채용하고, Hepatica nobilis Schreb. var. japonica를 유사종(synonym)으로 분류했다. 중국 식물지(Flora of China)에서는 중국만을 분포역으로 하고 있다.

 

노루귀(청계산, 2021. 3. 7)

 

노루귀의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肝)의, 간과 관련된(of or pertaining to the liver), 간색의(liver-colored)'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형용사 '헤파티쿠스(hēpaticus)'의 어미 변화형이다. '헤파티쿠스(hēpaticus)'는 '간(liver)'이란 뜻의 고대 그리스어 '헤파르(hêpar)' 기원의 '헤파티코스(hēpatikós)'에서 유래했다. 잎이 간을 닮은 것을 표현한 이름이다.

종소명 '아시아티카(asiatica)'는 '아시아의(Asiatic)'라는 뜻의 '아시아티쿠스(āsiāticus)'의 라틴어 형용사다. '아시아티쿠스(āsiāticus)'는 '아시아(Asía)'란 뜻의 이오니아 그리스어 '아시에(Asíē)' 기원 고대 그리스어 '아시아티코스(Asiatikós)'에서 유래한 라틴어 형용사다. 최초 발견지 또는 자생지를 나타낸 이름이다.

'나카이(Nakai)'는 일본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다. 그는 제국주의 일본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며 한강토(조선반도)의 식물을 정리하고 소개하였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발견된 한강토 자생 식물의 학명에는 대부분 그의 성 'Nakai(中井, 나카이)'가 명명자로 등재되어 있다. 그는 특히 물푸레나무과(Oleaceae)에 속하는 세계 1속 1종의 한강토 특산식물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속(Abeliophyllum)을 최초로 학계에 보고한 인물이다.

 

노루귀(의왕 청계산, 2023. 3. 18)

 

국표, 국생정 등재 노루귀의 영문명은 에이션 리버리프(Asian liverleaf)다. '아시아 노루귀'라는 뜻이다.

일본어판 Flora of Mikawa(三河の植物観察, FOM) 등재 일문명은 만센스하마소우(マンセンスハマソウ, 満鮮洲浜草)다. '만주(満)와 한강토(鮮)에 나는 노루귀(洲浜草)'라는 뜻이다. FOM은 Hepatica nobilis Schreb. var. asiatica (Nakai) H.Hara를 만센스하마소우(満鮮洲浜草)로 명명하고, Hepatica asiatica Nakai(Kewscience)와 Anemone hepatica var. japonica (Nakai) Ohwi(The Plant List)를 동종으로 분류했다.

FOM, 중국어판 바이두백과(百度百科), 위키백과(維基百科) 등재 노루귀의 중문명은 짱얼시신(獐耳細辛)이다. '노루귀 족두리풀'이라는 뜻이다. 百度百科는 Hepatica nobilis Schreb. var.asiatica (Nakai) Hara, 維基百科는 Hepatica nobilis var. asiatica (Nakai) H. Hara를 짱얼시신(獐耳細辛)으로 명명했다. 百度百科에는 여우페이싼치(幼肺三七, 天目山药用植物志), 후디에차오(蝴蝶草), 예링쟈오차이(野菱角菜, 安徽中草药) 등의 이명이 등재되어 있다.

 

노루귀(남양주 천마산, 2023. 3. 19)

 

노루귀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먼 옛날 나무를 해서 팔아 겨우 살아가는 착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노루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목숨을 구한 노루는 나무꾼의 옷소매를 물더니 따라오라는 표정을 했다. 나무꾼은 노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노루는 아늑하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곳에 멈추더니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나무꾼은 순간 그곳이 명당임을 깨달았다. 나무꾼이 조상의 묘를 그곳으로 이장하였더니 후손들이 모두 크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후 사람들은 그 고개를 노루고개라 불렀고, 무덤 주위에 피어난 꽃을 노루귀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노루귀(청계산, 2016. 3. 20)

 

노루귀는 한강토 전국 각지에서 자란다. 제주, 서울(북한산), 전남, 전북(덕유산), 경남, 충남(계룡산), 충북, 강원, 경기(광릉, 가평, 와야산, 천마산), 평북 함남에 야생한다(국생정).

만센스하마소우(満鮮洲浜草)의 원산지는 중국이다(FOM). 짱얼시신(獐耳細辛)은 중국 랴오닝(辽宁), 안후이(安徽), 쩌쟝(浙江), 허난(河南) 등지에 분포한다(百度百科).

 

노루귀(청계산, 2016. 3. 20)

 

노루귀의 근경(根莖)은 비스듬히 자라고, 많은 마디에서 잔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키는 10cm 정도다. 잎은 길이 5cm 정도로 모두 뿌리에서 돋고, 긴 엽병(葉柄)이 있어 사방으로 퍼진다. 잎 모양은 심장형(心臟形)이고, 가장자리가 3개로 갈라지며 밋밋하다. 중앙열편(中央裂片)은 삼각형이며, 양쪽 열편과 더불어 끝이 뾰족하다. 이른 봄 잎이 나올 때는 말려서 나오며, 뒷면에 털이 돋은 모습이 마치 노루귀를 닮았다.

 

노루귀(청계산, 2017. 3. 26)

 

꽃은 3~4월에 아직 잎이 나오기 전에 흰색 또는 분홍색, 연분홍색, 보라색, 청자색으로 핀다. 꽃대는 긴 털이 있고, 끝에 1개의 꽃이 위를 향해 달린다. 총포(總苞)는 3개이고 달걀 모양이며, 녹색이고 흰색 털이 밀생(密生)한다. 꽃받침조각은 6~8개이고, 긴 타원형(長楕圓形)이며 꽃잎 같다. 꽃잎은 없다. 수술과 암술은 많으며 황색이다. 씨방에는 털이 있다. 열매는 수과(瘦果)다. 수과는 많으며 퍼진 털이 있고, 밑에 총포가 있다.

 

노루귀(천마산, 2013. 4. 1)

 

노루귀는 꽃이 아름답고 개화 시기가 매우 이른 식물이어서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거나 초물분재(草物盆栽)로 만들어도 좋다. 낙엽성 교목(落葉性喬木) 아래 심어도 좋다.

 

노루귀(천마산, 2013. 4. 1)

 

노루귀는 봄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독성(毒性)이 있는 뿌리 부분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다소 쓴맛이 나기 때문에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쓴 맛을 우려낸 뒤 요리해야 한다. 충북 북부 지방에서는 노루귀 나물을 모른다.

 

노루귀(남양주 천마산 팔현계곡, 2022. 4. 9)

 

노루귀와 새끼노루귀, 섬노루귀의 전초(全草)를 본초명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고 한다. 뿌리가 달린 전초를 여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진통(鎭痛), 진해(鎭咳), 소종(消腫)의 효능이 있어 두통(頭痛), 치통(齒痛), 복통(腹痛), 해수(咳嗽), 장염, 하리(下痢)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외용시에는 짓찧어서 환부에 바른다(국생정).

장이세신(獐耳細辛)은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나 동의보감에는 실려 있지 않은 한약재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장이세신을 거의 쓰지 않는다.

 

노루귀(천마산, 2016. 4. 10)

 

국표 등재 노루귀의 유사종 자생식물에는 새끼노루귀(Hepatica insularis Nakai), 섬노루귀[Hepatica maxima (Nakai) Nakai], 유성노루귀[Hepatica asiatica Nakai f. yuseongii (Y.N.Lee) M.Kim] 등 3종이 있다.

 

새끼노루귀(Seaside liverleaf, ヒメスハマソウ)의 원산지는 한강토 서남부 지방이다. 한강토 제주도와 남해안 섬에 분포한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에 흰색 무늬가 있으며, 양면에 털이 있다. 엽병은 길이 3.5~7cm로서 털이 있다. 잎은 심장형이며 길이 1~2cm, 너비 2~4cm로서 가장자리가 3개로 갈라진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에 흰색으로 핀다. 화경은 길이 7cm 정도까지 자라고, 털이 있으며, 끝에 1개의 꽃이 위를 향해 핀다. 포는 3개이고 달걀 모양이며 털이 난다. 개체가 노루귀나 섬노루귀에 비해 작다. 섬노루귀(Ulleungdo liverleaf, オオスハマソウ, 大洲浜草)는 울릉도에 분포한다. 잎은 엽병이 길며 심장형이고 큰 것은 길이 8cm, 너비 15cm 정도이다. 잎 가장자리에 털이 있으며 3개로 갈라진다. 열편은 난상 원형이고 끝이 둥글며 가장자리는 서로 겹쳐지고 뒷면과 더불어 털이 있다. 엽병은 길이 14~28cm, 지름 4~5mm로서 긴 털이 있다. 꽃은 4월에 흰색으로 핀다. 잎이 나오기 전에 긴 화경이 나와 끝에 1송이씩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6~8개이며 긴 타원형으로서 꽃잎 같고 꽃잎은 없다. 유성노루귀(Pungdo liverleaf)는 국표에 정명, 이명, 국명, 영문명만 등재되어 있다. 국생정 미등재종이다. 2007년 경기도 풍도에서 발견되어 보고된 변종이다. 기본종인 노루귀에 비해 꽃이 1.5배 이상 크고, 총포는 긴 타원형 또는 도피침형이며, 꽃받침잎은 도피침형 또는 선형이다.

 

섬노루귀(울릉도 성인봉, 2007. 4. 25)

 

국표 등재 노루귀의 유사종 재배식물에는 노빌리스노루귀(Hepatica nobilis Mill.), 아쿠틸로바노루귀(アメリカミスミソウ, sharp-lobed liverleaf, sharp-lobed hepatica, Hepatica acutiloba DC.), 트란실바니카노루귀(ヘパティカ・トランシルバニカ, large blue hepatica, Hepatica transsilvanica Fuss), 피레네노루귀(Hepatica nobilis var. pyrenaica Mill.) 등 5종이 있다. 설명은 생략한다.

2021. 3. 8. 林 山. 2023.11.24.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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