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모란(牡丹) '부귀(富貴)'

林 山 2021. 6. 28. 18:28

2018년 12월 하순경 일본 여행 중 시마네현(島根) 야쓰카초(八束町) 다이콘시마(大根島)에 있는 일명 '모란정원(牡丹庭園)'으로 유명한 유시엔(由志園)에 들렀던 적이 있다. 12월이었음에도 유시엔에는 모란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 활짝 핀 모란을 보다니 신기했다. 

 

나카우미호(中海湖) 한가운데에 떠 있는 화산섬 다이콘시마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부터 이어져 온 모란과 고려인삼의 산지로 유명하다. 시마네현의 현화(県花)로 지정된 다이콘시마의 모란은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이콘시마의 모란은 지금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모란(충주시 연수동, 2021. 4. 14)

모란(牡丹)은 물레나물목 작약과 작약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 하여 '모(牡)', 꽃색이 붉기 때문에 '란(丹)'이라 한다. 모란을 목단(牧丹), 부귀화(富貴花), 화중왕(花中王), 목작약(木芍藥), 백화왕(百花王), 천향국색(天香國色), 화사부(花師傅)라고도 한다. 꽃말은 '부귀(富貴)'이다.

 

'牡丹(모단)'을 '모란(牡丹)'으로 발음하게 된 것은 'ㄷ'이 'ㄹ'로 변하는 한글 특유의 속음화(俗音化) 또는 활음조(滑音調) 현상 때문이다. 따라서 '牡丹(모단)'을 '목단', '牧丹(목단)'을 '모란'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牡丹'은 '모란', '牧丹'은 '목단'으로 읽는 것이 올바르다. 모란의 중국명은 무단(牡丹), 일본명은 보탄(ぼたん, 牡丹)인데, 왜 유달리 한글명은 '목단(牧丹)'일까?  중국에서는 '牡丹(무단)'을 '牧丹(무단)'이라고도 불렀다. 이는 아마 발음이 같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송대(宋代) 싀즈위안(释智圆)이 지은 시(诗) 제목에도 '牧丹'이 있다. 한강토에서는 '牡丹'이 아니라 '牧丹'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모란의 학명은 파에오니아 수프루티코사 앤드루스(Paeonia suffruticosa Andrews)이다. 속명 '파에오니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파에온(Paeon)'에서 유래하였다. 영어명은 피어니(peony) 또는 트리 피어니(Tree Paeony)이다. 중국명은 무단(牡丹), 일어명은 보탄(ぼたん, 牡丹)이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였던 탕(唐)나라의 츠티엔우허우(測天武后, 624~705)와 모란에 얽힌 유명한 전설이 있다. 츠티엔우허우는 어느 해 겨울 정원의 꽃나무들에게 당장 꽃을 피우라고 명을 내렸다. 다른 꽃들은 모두 명을 따라 꽃을 피웠으나 모란만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불을 때서라도 억지로 꽃을 피우게 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츠티엔우허우는 모란을 모두 뽑아서 뤄양(洛阳)으로 추방시켰다. 이후 모란은 뤄양화(洛阳花)로 불렸고, 불을 땔 때 연기에 그을린 탓에 지금도 모란 줄기가 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란(충주시 교현동, 2021. 4. 20)

중국인들은 양꾸이페이(楊貴妃)를 모란에 비유했으며, 양꾸이페이처럼 풍만한 육체와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여인을 푸꾸이무단(富貴牡丹)이라고 했다. 탕나라 이후 모란은 시와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모란은 꽃 중의 화왕(花王)으로 자리잡으면서 칭(淸)나라 이후 중국의 국화로 대접받았다. 1929년 짱제스(蔣介石)는 국화를 매화(梅花)로 바꾸었으나 마오쩌뚱(毛澤東)이 이끄는 쭝궈렌민지에팡쥔(中国人民解放军)에 쫓겨 꿔민당(國民黨) 정부가 타이완(臺灣)으로 망명한 뒤 아직 중국 꿍찬당(共産党) 정부는 국화를 정하지 않고 있다.

 

모란(충주시 연수동, 2021. 4. 20)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모란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 ~ 632) 때 신라에 들어왔다. 탕나라 황제는 이때 모란 그림 1폭과 모란 씨 3되를 신라에 보내왔다고 한다. '삼국유사' 선덕여왕(善德女王) 1년(632) 조의 기록에 '진평왕 때 탕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德曼, 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아명)에게 보인 적이 있다. 덕만은 "이 꽃은 곱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웃으면서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기에 이를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고 있으면 남자가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무척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틀림없이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씨앗을 심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은 이와 같았다.'는 내용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덕만공주나 김부식, 일연은 중국의 문화와 모란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란 꽃은 실제로 향이 매우 진한 꽃이다. 향기가 있기에 벌과 나비도 날아든다. 

 

중국에서 그림에 나비를 그리면 축수(祝壽)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모란 꽃 그림에는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어 '나비'를 뜻하는 '蝶(띠에)'는 '70~80세 노인'을 뜻하는 '耋(띠에)'와 발음이 똑같다. 그래서, 부귀화인 모란 꽃 그림에 나비를 함께 그리면 '70~80살까지만 부귀하게 사세요'라는 뜻이 된다. 천년 만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고 싶은데, 70~80년까지만 누리라는 것은 오히려 욕이나 저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란(충주시 연수동, 2021. 4. 20)

모란은 신라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신문왕(神文王, 681~691) 때 설총(薛聰, 655~?)이 지은 우화 '화왕계(花王戒)'에도 모란이 등장한다. 화왕(花王) 모란꽃이 다스리는 꽃나라에 어느 날 아름다운 장미와 구부정하고 볼품없는 할미꽃이 찾아와 서로 자기를 써 달라고 했다. 화왕은 고심 끝에 충신인 할미꽃을 선택했다는 내용이다. 지도자는 총신(寵臣, 장미)과 충신(할미꽃)을 잘 가려서 써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우화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모란은 미인을 상징하고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꽃으로 상류사회의 사랑을 받았다. 12세기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 국보 제98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청자 상감과 여러 생활도구에도 모란 꽃 무늬가 등장한다. 고려 고종(高宗, 1213~1259)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이 지은 경기체가 '한림별곡(翰林別曲)'에도 '홍모란, 백모란, 정홍모란(丁紅牡丹)'이 나온다. 

 

모란(충주시 연수성당, 2021. 4. 24)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모란에 대한 일화는 많이 있다. 1406년(태종 6) 중국 사신은 황후가 쓸 것이라고 하며 황모란를 요구하였다. 이에 조정은 황모란을 세 화분에 나누어 심어서 보냈다. 강희안(姜希顔)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 9등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하면서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조선왕조실록' 1646년(인조 23) 조에는 일본 사신이 와서 모란을 청, 황, 흑, 백, 적모란 등 색깔별로 요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모란이 부귀를 상징함에 따라 신부의 전통 혼례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신방의 병풍에도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은 빠지지 않았다. 선비들의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왕비나 공주 등 귀족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모란은 빠질 수 없었다.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은 활짝 핀 모란꽃에 비유되었다.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민화에도 모란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모란 열매(충주시 연수동, 2021. 4. 27)

모란은 중국 중서부가 원산지이다. 한국에는 약 1,500년 전에 약용식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모란(충주시 연수성당, 2022. 5. 5)
모란(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모란(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모란의 뿌리는 굵고 희며, 잔뿌리가 적다. 줄기는 2m까지 자라며, 직경이 15㎝인 것도 있다. 가지는 굵으며 털이 없다. 잎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2회깃꼴겹잎이다. 소엽은 달걀모양 또는 피침형이고 흔히 3~5개로 갈라진다. 잎 표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잔털이 있으며, 대개 흰빛을 띤다.

 

모란(일본 다이콘시마 유시엔, 2018. 12. 22)

꽃은 4~5월에 암수한꽃으로 피며, 10개 정도의 꽃잎이 있다. 새로 나온 가지끝에 크고 소담한 꽃이 한 송이씩 핀다. 꽃색은 자주색이다. 개량종에는 짙은 빨강, 분홍, 노랑, 흰색, 보라색 등 다양한 꽃이 있다. 홑겹꽃 외에 겹꽃도 있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다. 꽃잎은 8개 이상이고, 크기와 형태가 같지 않다. 꽃잎은 거꿀달걀형으로서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결각이 있다.수술은 많고 암술은 2~6개로서 털이 있다. 꽃턱은 주머니처럼 되어 씨방을 둘러싼다. 열매는 골돌과이다. 골돌과는 가죽질이며 짧은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종자는 8~9월에 익는다. 복봉선에서 둥글고 검은 종자가 터져 나온다.

 

모란(일본 다이콘시마 유시엔, 2018. 12. 22)

모란은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도 불렸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모란을 오래전부터 관상용이나 한약재로 쓰기 위해 많이 심었다. 한중일을 막론하고 정원이 있는 집에는 모란 한두 포기씩 반드시 심어져 있을 정도로 많이 보급되어 있다. 모란은 염료 식물로 이용할 수 있다. 잎을 잘게 자른 후 물에 넣고 끓이면 맑은 황갈색 염액을 얻을 수 있다. 

 

모란(일본 다이콘시마 유시엔, 2018. 12. 22)

모란의 뿌리껍질은 본초명 목단피(牧丹皮), 꽃은 목단화(牧丹花)라 하며, 한약재로 쓴다. 목단피는 3~5년생을 가을에서 초봄 사이에 뿌리를 캐서 수염뿌리와 줄기싹(莖芽)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어 목심(木心)을 빼고 햇볕에 말린다. 본초학에서 목단피는 청열약(淸熱藥) 가운데 청열양혈약(淸熱凉血藥)으로 분류된다. 성질은 약간 차지만 독이 없고, 맛은 쓰고 맵다. 경락은 심경(心經)과 간경(肝經), 신경(腎經)으로 들어간다. 청열양혈(淸熱凉血), 활혈산어(活血散瘀), 항염증, 항균의 효능이 있어 온독발반(溫毒發班), 토혈(吐血), 뉵혈(衄血), 야열조량(夜熱早凉), 무한골증노열(無汗骨蒸勞熱), 경폐통경(經閉痛經). 옹종창독(癰腫瘡毒). 질박상통(跌撲傷痛) 등을 치료한다. 열입혈분증(熱入血分症), 경간(驚癎), 혈변(血便), 징가(癥瘕, 腹中 硬結) 등의 증상에도 응용할 수 있다. 달여서 복용하거나 환산제(丸散劑)로 하여 복용한다. 목단화는 조경활혈(調經活血)의 효능이 있어 월경불순, 경행복통(經行腹痛)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목단피는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많이 쓰는 한약재다.

 

모란(일본 다이콘시마 유시엔, 2018. 12. 22)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목단(牧丹, 모란뿌리)에 대해 '성질은 약간 차며[微寒] 맛은 쓰고 매우며[苦辛] 독이 없다. 뜬뜬한 징가와 어혈(瘀血)을 없애고 여자의 월경이 없는 것과 피가 몰린 것, 요통을 낫게 하며 유산시키고 태반을 나오게 하며 몸푼 뒤의 모든 혈병(血病), 기병(氣病), 옹창(癰瘡)을 낫게 한다. 고름을 빨아내고 타박상의 어혈을 삭게 한다. ○ 즉 모란꽃 뿌리이다. 산에서 자라는데 꽃이 외첩(單葉)인 것이 좋다. 음력 2월, 8월에 뿌리를 캐 구리칼로 쪼개서 심을 버리고 그늘에서 말린다[본초]. ○ 족소음과 수궐음경에 들어간다. 땀이 나지 않는 골증(骨蒸)을 낫게 하고 음(陰) 속의 화(火)를 사한다. 술에 버무려 쪄서 쓴다. 흰 것은 보하고 붉은 것은 잘 나가게 한다[입문].'고 나와 있다. 

 

2021. 6. 28. 林 山. 2022.6.17.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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