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홍(映山紅)이 피기 시작하면 마을마다 거리마다 온통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든다. 영산홍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가슴을 두근거거리게 했던 그 첫사랑 말이다. 첫사랑의 추억은 영산홍처럼 고우면서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슬프고도 가슴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영산홍처럼 짓붉은 추억으로 말이다. .
영산홍은 진달래목 진달래과 진달래속의 상록 또는 반상록 관목이다. 추운 지방에서는 잎이 지기도 한다. 학명은 로도덴드론 인디쿰 (엘.) 스위트[Rhododendron indicum (L.) Sweet]이다. 영어명은 삿수키 어젤리어(Satsuki Azalea), 일어명은 사츠키(サツキ, 皋月), 중국명은 까오위에두쥐안(皋月杜鹃)이다. 꽃말은 '첫사랑'이다.
영산홍은 일본의 사츠끼철쭉(サツキツツジ, 皋月躑躅)을 기본종으로 하여 개량한 산철쭉 원예품종 전체를 일컬는 말이다. 대표적인 품종에는 기리시마철쭉(きりしまつつじ, 霧島躑躅), 구루메철쭉(くるめつつじ, 久留米躑躅) 등이 있다. 하지만 서로 교배하고 육종한 것만 해도 수백 종이 넘는다.
'만요슈(万葉集, 만엽집)'에도 올라 있는 산철쭉은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심고 가꾸어 온 꽃나무다. 산철쭉과 사츠키철쭉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사츠키철쭉은 '음력 5월에 피는 철쭉'이라는 뜻이다. '사츠키(皋月)'는 음력 5월을 의미한다.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일본철쭉 두어 분을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보았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일본철쭉은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고, 다른 철쭉은 못생긴 여자의 대표인 모모(嫫母)와 같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 조공으로 보내온 일본철쭉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내용이다. 여기서 일본철쭉은 사츠끼철쭉으로 추정된다.
이후 사츠끼철쭉은 일본철쭉, 또는 영산홍이란 이름으로 조선왕조실록과 선비들의 문집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일본철쭉이 영산홍,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왜철쭉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산홍을 가장 좋아한 왕은 연산군(燕山君)이었다. 연산군은 1505년 왕명으로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게 하였다. 겨울에는 움막을 씌워 추위에 얼어죽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살아남은 숫자를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영산홍은 선비는 물론 일번인들도 즐기는 꽃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는 영산홍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전파되었다.
한국의 영산홍은 한반도 자생의 산철쭉과 사츠끼철쭉, 기리시마철쭉, 일본 산철쭉 등 수많은 철쭉 무리들과 교배되어 서로의 형질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영산홍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영산홍의 키는 15~90cm 정도이다. 줄기는 여럿으로 갈라져 기어가듯이 뻗는 성질이 강하다. 잎은 어긋나기로 가지 끝에 모여 난다. 잎은 두껍고 단단하다. 잎 모양은 피침형이고,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다. 어린 가지와 잎에는 갈색 잔털이 돋아 있다.
꽃은 4~5월에 붉은색, 흰색, 분홍색으로 핀다. 노란색 꽃도 있다. 꽃은 한 가지 끝에 한 송이만 핀다. 꽃 모양은 깔때기를 닮은 통꽃이고, 꽃부리의 윗면에 붉은 자주색의 반점이 있다. 꽃 위쪽은 다섯 개로 갈라져 있다. 꽃이 붉은색은 영산홍, 보라색은 자산홍(紫山紅), 흰색은 백영산(白映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잎의 모양은 겹잎, 길게 갈라진 것, 쭈글쭈글한 것 등 아주 다양하다. 열매는 삭과(蒴果)이고 많은 갈색털이 난다.
영산홍은 줄기와 잎, 꽃 등이 한국의 산철쭉과 비슷하다. 하지만 영산홍은 산철쭉보다 키가 작고, 잎도 작다. 가장 큰 차이는 영산홍이 상록 또는 반상록이라면, 산철쭉은 낙엽이 진다는 점이다. 또, 영산홍의 수술은 5개인데, 산철쭉의 수술은 10개이다. 다만, 수술이 7~10개인 영산홍도 있다.
영산홍은 꽃이 아름다워 공원이나 정원의 조경수나 관상수로 인기가 많다. 영산홍은 현재 공원이나 정원에 가장 많이 심는 수종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화분에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다.
'다음백과'에는 '한방에서 영산홍 꽃을 강장, 이뇨, 건위, 구토 등의 약재로 쓴다. 줄기와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탄닌, 정유 등의 성분이 들어 있다. 만성기관지염과 기침에는 영산홍 꽃잎 20~40g 또는 영산홍 가지 40g과 마른 잎 80g을 백주(白酒) 1근에 1주일 이상 우려서 하루 2~3회 한 잔씩 마시면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안 쓴다.
2021. 6. 24. 林 山. 2022.5.13.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