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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 - 남아공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 참회록

林 山 2021. 9. 22. 22:56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이 케이블 TV 전파를 탔다. 케이블 TV에서 자주 틀어주는 영화다. 이 영화가 방영될 때마다 다시 정독하곤 한다. 남아공을 여행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자연환경을 직접 경험한 인연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 담겨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과 흑백 인종을 초월한 감동적인 휴머니즘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 포스터

미국 출신의 고 존 G. 아빌드센(John G. Avildsen) 감독이 1992년에 찍은 '파워 오브 원'은 호주와 미국, 프랑스 합작영화다. 남아공 배우들도 나오지 않고, 할리우드 영화문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 전용 표지판

시대적 배경은 1930년 남아프리카 연방 시절이다. 남아공의 한 농장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어린 영국계 아프리카너(Afrikaner) PK(게이 위쳐 분)는 어머니와 원주민들 속에서 함께 어울려 지낸다. 그러다가 PK는 농장을 떠나 아프리카너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주로 독일계 백인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PK가 유일한 영국인이다. 영국인의 무자비한 통치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계 아이들은 어린 PK를 학대한다. PK는 독일계 아이들의 괴롭힘과 횡포를 견디다 못해 오줌싸개가 되지만 줄루족(Zulu) 주술사에게 용기를 배운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병약하던 어머니마져 쓰러지자 PK는 모잠비크와 가까운 국경 도시 바버톤(Barberton)의 할아버지에게 돌아와 늘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지낸다. 그러다가 영국인들의 학교로 다시 옮긴 PK는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음악가인 독일계 닥(아민 뮬러 스탈 분)을 만나 자연의 신비와 음악, 머리와 가슴을 쓰는 삶의 지혜 등을 배우게 된다. 

 

1939년  9월 1일 독일군 150만 명이 비스툴라 강의 폴란드군을 공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닥은 남아프리카 연방의 적성국가인 독일계여서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러나 닥의 훌륭한 인품과 경력을 존경하는 교도소장은 그에게 개인 피아노를 설치해주고, PK에게도 감옥에서 닥과 함께 지내면서 통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어린 PK가 학교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의욕이 없어 보이자 닥은 교도소에서 권투를 배워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교도소 권투 코치는 아이에게까지 권투를 가르쳐 줄 시간이 없다며 거절한다. 그는 대신 흑인 원주민 죄수 기엘 피트(모건 프리먼 분)에게 권투를 배우라고 제안한다. 

 

어느덧 12살이 된 PK(사이먼 펜튼 분)의 권투 실력은 일취월장으로 발전한다. 그는 문맹인 죄수들의 편지를 써주고 레인메이커(Rainmaker,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기적의 사람)라는 별명을 얻는다. 간수들은 모두 백인, 죄수들은 흑인인 교도소에서 온갖 차별과 학대에 시달리던 죄수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음악회를 열게 된다. 교도소장의 부탁과 기엘 피트의 요청으로 죄수들의 음악회는 준비된다. 피트는 백인들을 우롱하는 원주민 말로 가사를 쓴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닥의 피아노 연주와 PK의 지휘, 죄수들의 합창으로 음악회는 시작된다. 항상 피트를 괴롭히던 백인 간수는 그에게 가사 내용을 묻는다. 피트는 가사 내용을 간수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피트는 간수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피트는 PK에게 음악을 통해서 아프리카인들이 하나가 됐다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PK는 죽어가는 그에게 '이제 자유인이 되었다'고 말해 준다.  

 

무대는 다시 백인 정권이 아파르트헤이트를 법률로 공식화한 1948년의 요하네스버그(조벅)로 옮겨 간다. 18살이 된 PK(스티븐 도프 분)는 조벅에서 공립학교에 다닌다. 그는 세인트 존(존 길거드 분) 교장의 추천으로 남아공에서는 들어가기 힘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입학 허가서를 받는다. 그런 희소식과 함께 공립학교배 권투 경기를 치루던 중 여학생 마리아(패이 매스터슨 분)를 만난다. PK는 첫눈에 마리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때 PK를 레인메이커라고 지칭하며 부르던 노래를 흑인들이 불러준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PK는 강 펀치 연타를 날리며 내기가 걸린 시합에서 승리한다. 그는 내기에서 딴 돈을 들고 헤비급 챔피언을 키워 낸 체육관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고 가르치는 체육관 관장을 만나 승리의 기쁨을 전한다. 

 

PK는 마리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키워 나가는 한편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야학 교실을 연다. 배움을 통해서 인종차별을 극복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야학은 백인 경찰의 집요한 방해에 시달린다. 이런 과정 속에서 PK와 마리아는 국적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차별하는 남아공의 현실에 분노한다. 결국 PK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저항 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그러던 어느 날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 야피 보타(다니엘 크레이그 분)가 이끄는 백인 경찰대가 야학 현장을 급습한다. 현장에서 백인 경찰에 의해 마리아는 죽고 PK는 가까스로 탈출한다. PK는 원주민 동지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숨어든다. 원주민 마을에 들이닥친 백인 경찰대는 PK의 행방을 대라면서 흑인들을 마구 때리고 학살한다. 그럼에도 흑인들은 PK를 끝까지 보호하고 남아공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보타는 여기서 PK의 흑인 친구에게 죽임을 당한다. 보타는 남아공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PK의 흑인 친구에 의해 보타가 처형되는 장면은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암시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운명이 보타처럼 몰락할 것이라는 선언적인 장면이다.   

 

영화는 PK가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PK는 어떤 역정을 걷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는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와 반 아파르트헤이트 흑인해방운동 조직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해서 저항 운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상상은 자유지만 분명 PK는 그런 삶을 선택했을 것 같다.  

 

영화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한 장면

아빌드센 감독이 의도했을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그래서 남아공 백인들의 악명 높은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백인 정권의 비인도적인 인종차별 정책과 백인 경찰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만행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파르트헤이트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백인들에게 억압과 착취, 구타와 학살을 당한 흑인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인 것이다. 

 

영화 제목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의 뜻은 '하나 됨의 힘' 정도의 뜻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단결해야만 자신들을 구속하고 옥죄는 것들을 타파하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다는 선언이자 구호다. 

 

2021. 9. 22.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