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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의 야크'(Lunana: A Yak in the Classroom) - 담담한 풍경화 같은 부탄 영화

林 山 2022. 6. 18. 16:06

'교실 안의 야크'(Lunana: A Yak in the Classroom)는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한 폭의 담담하고 소박한 풍경화 같은 영화다. 2019년에 개봉된 부탄(Bhutan)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파우 초이닝 도르지(Pawo Choyning Dorji) 감독이 각본까지 맡은 장편 데뷔작이다. 참고로 도르지(Dorji)는 조선의 김이박씨 같은 부탄의 대표적인 성씨다. 'Dorji'는 몽골어로 '태양, 하늘', 티베트어로 '금강저(金剛杵), 번개'라는 뜻이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 포스터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2020년 제5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출품되어 넷팩상과 청소년심사단 특별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제93회 아카데미상 국제영화상 부문에 부탄의 출품 작품으로 선정되었지만 실격을 당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제94회 아카데미상 국제영화상 부문에는 최종 후보에 오름으로써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한 최초의 부탄 영화가 되었다.  

 

부탄 지도

'교실 안의 야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 종카어 འབྲུག་རྒྱལ་ཁབ,  Druk Gyal Khap)에 대해서 어느 정도 좀 알아야 한다. 부탄(종카어 འབྲུག་ཡུལ་, Druk Yul [ɖuɡ̚˩.yː˩])은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을 경계로 중국령 티베트 자치구와 접해 있으며, 동남서쪽은 북동부 인도에 둘러싸여 있는 남아시아의 아주 작은 내륙 산악 국가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있다. 서쪽의 네팔과 남쪽의 방글라데시와도 가깝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다. 

 

부탄은 1950년대에 티베트가 중국, 시킴이 인도에 병합되면서 유일한 티베트계 독립국가가 되었다. 국토 면적은 38,394평방킬로미터로 한강토(조선반도)의 1/10 정도이다.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81만 명으로 충북 청주시 인구보다 적다. 수도는 팀푸(Thimphu)이다. 

 

부탄은 인도의 보호국이며,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주민은 대다수가 티베트계이고, 네팔계 주민도 있다. 국교는 대승불교(75%)이지만 네팔계 주민은 힌두교(22%)를 믿는다. 그밖에 민속종교(2%), 기독교 등 외부 종교(1%)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1990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네팔계 주민들이 강제 축출되면서 네팔계 부탄인들의 인구는 대폭 감소했다. 

 

국명 'Bhutan'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란 뜻의 '보따-안따(भोट-अन्त, Bhoṭa-anta)'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부탄이 티베트 고원의 최남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부탄인들은 자국명을 쭈위(종카어 འབྲུག་ཡུལ་, Druk Yul [ɖuɡ̚˩.yː˩])라고 부른다. 쭈위는 종카어로 '용(龍)의 나라'라는 뜻이다. 부탄의 국기에도 백룡(白龍), 국장에는 황룡(黃龍)이 그려져 있다. 국가 '전룡의 왕국(འབྲུག་ཙན་དན་, Druk Tsedhen)'에도 용이 등장한다. 전룡(Druk, 電龍)은 '번개의 용'이라는 뜻이다. 

 

Lunana: A Yak in The Classroom - Official Trailer

 

부탄은 행복지수 세계 1위 국가라고 알려졌지만, 이는 대표적인 가짜 뉴스다. 부탄은 2010년대 들어서 행복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2019년에는 세계 95위까지 추락했다. 54위 한국보다도 크게 낮은 순위다. 부탄의 행복지수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행복지수 세계 1위라는 부탄의 자살률은 2012년에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22위를 기록했다.

 

주요 산업이 수도 팀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도농 간의 격차도 크게 심화되었다. 팀푸에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부유층이 있는 반면, 농촌에는 정부가 무상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자녀들을 학교에 다 보내지 못하고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극빈층이 허다하다.   

 

최근에는 마약 문제와 함께 청년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고학력자가 늘어났지만, 현재 부탄 경제 규모의 한계로 이들을 전부 취업시키기가 힘들다. 따라서 대학은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절망한 청년들이 자살을 하거나 마약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관객들을 '은둔의 나라' 부탄으로 초대한다. 유겐(셰랍 도르지, Sherab Dorji 분)은 수도 팀푸에서 새내기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다. 부탄에서 선생님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이지만, 유겐은 가르치는 일이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꿈이 가수이기 때문이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겐은 호주로의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유겐은 부탄의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부탄 북서부 가사군(Gasa District) 루나나면(Lunana Gewog) 루나나 마을

차근차근 퇴직과 이민을 준비하던 유겐에게 교육부는 부탄 북서부 루나나(Lunana)에 있는 인구 56명에 불과한 전 세계에서 가장 외딴 마을의 벽지 학교로 발령을 낸다. 오지 마을 주민 미첸(유겐 노르부 렌덥, Ugyen Norbu Lhendup 분)은 촌장 싱예(체링 도르지, Tshering Dorji)의 지시를 받고 당나귀 세 마리를 끌고 유겐을 데리러 온다. 

 

루나나를 향해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길라잡이 미첸과 유겐 일행

미첸의 극진한 안내로 유겐은 7~8일 동안 야영을 하며 루나나를 향해 히말라야를 등반한다.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미첸은 그와 함께 전통적인 야크 몰이 노래를 부르고 싶으냐고 묻자 유겐은 "그런 종류의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겐이 미첸을 따라 힘겹게 찾아간 해발 4,800m의 낯선 오지 마을 루나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화장실에 휴지도 없어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헛간 같은 교실 한 칸이 전부인 학교에는 칠판조차도 없다. 

 

루나나는 부탄 북서부 변경 가사군(Gasa District) 루나나면(Lunana Gewog)의 소재지다. 2014년 기준 인구는 810명이다. 루나나의 주산물은 소, 야크, 동충하초(caterpillar fungus)이다. 밀이나 메밀, 감자, 무, 순무는 소량 재배된다. 루나나의 연간 강우량은 2,000mm, 그러니까 2m나 된다.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루나나 마을 학교의 교실 풍경

수도 팀푸보다 중국령 티베트가 더 가까운 루나나는 겨울이 되면 눈이 쌓여 외부와의 교통이 두절되는 오지 중의 오지다. 밤마다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는 상상을 초월하여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겨울이 오기 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유겐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다. 

 

유겐은 좌절한 나머지 촌장과 미첸에게 "도저히 못 하겠다.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촌장과 미첸은 그런 유겐에게 실망하지만 막무가내로 붙잡을 수는 없기에 그러라고 한다. 대신 촌장과 미첸은 "먼 길을 가야 하니 며칠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유겐을 부르러 온 펨 잠

이튿날. 유겐은 자신을 부르러 온 펨 잠(Pem Zam 분, 실명)이라는 여자아이 때문에 잠에서 깬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생님으로 왔으니 수업을 진행해야만 한다. 첫수업에서 유겐은 너무나 열악한 루나나 아이들의 생활을 목격한다. 촌장으로부터 "선생님은 아이들의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니까요."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 유겐은 며칠 머무르는 동안 제대로 된 수업을 해나간다. 

 

눈밭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때묻지 않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과 순박한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씨, 배움의 열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서 유겐은 서서히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꿈을 가지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는 아이들이 유겐의 마음을 움직였다. 

 

교실에 새로 마련한 칠판에 글씨를 쓰는 펨 잠과 이를 지켜보는 유겐

결국 유겐은 겨울이 오기 전까지 마을에 머무르기로 하고,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부족한 교자재는 촌장과 미첸에게 부탁해 마련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종이가 무엇보다 귀하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쓸 공책이 부족하자 유겐은 바람을 막으려고 창문에 바른 종이를 떼어내 잘라서 나눠주기도 한다. 

 

살돈으로부터 '야크의 노래'를 배우는 유겐

어느 날 유겐은 마을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아름다운 살돈(켈덴 라모 구룽, Kelden Lhamo Gurung 분)으로부터 '야크의 노래'를 배운다. '야크의 노래'는 슬픈 사연이 얽혀 있다. 루나나에서는 올가미를 던져서 무작위로 걸리는 야크를 제물 희생으로 쓰는 것이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불문율이다. 어느 날 제물 희생을 위해 목동이 올가미를 던졌는데 하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야크가 걸렸다. 이를 슬퍼하며 목동이 부른 노래가 바로 '야크의 노래'였던 것이다, 

 

교실 안의 야크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

살돈은 유겐에게 늙은 야크 한 마리를 데려다 준다. 야크의 배설물을 말려 땔감으로 쓰라면서..... 유겐은 야크를 키울 곳이 없어서 교실 안에 둔다. 이 장면이 영화 제목이 되었다. 루나나 사람들에게 야크는 필요한 것을 모두 아낌없이 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야크와 유겐이 오버랩된다. 유겐도 어느덧 야크처럼 마을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유겐을 바라보는 살돈의 눈빛도 점점 깊어만 간다.  

 

유겐이 떠난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펨 잠

​루나나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이 세월은 이러구러 흘러서 겨울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유겐은 결국 루나나를 떠나는 날이 왔다. 유겐은 루나나에 올 때처럼 길라잡이 미첸과 함께 히말라야를 내려간다. 유겐을 떠나보내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마음 속으로 빌 뿐이다. 펨 잠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의 장면은 갑자기 호주로 건너간다. 유겐은 호주의 어느 도시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팝송을 부르다가 문득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본다. 손님들의 의아한 표정과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겐이 바라보고 있던 허공은 부탄의 히말라야 심심 두메산골 루나나의 하늘이었으리라. 

 

유겐이 호주에서 떠올렸을 살돈과 함께 했던 추억

유겐은 이내 다시 기타를 잡고 살돈에게 배운 '야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호주인들에게는 낯설디 낯선..... 그건 부탄에 대한 그리움, 루나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살돈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유겐이 '야크의 노래'를 부르는 엔딩 장면은 그가 부탄으로 돌아가리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면, 호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유겐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픔도 있지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을 되찾은 듯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맑아진다. 

 

2022. 6. 18.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