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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1] 안네 프랑크를 찾아서 - 동시대 생존자들의 증언

林 山 2021. 8. 31. 18:34

2021 EBS 다큐 영화제에는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작품이 한 편 올라왔다. 바로 이탈리아의 사비나 페델리(Sabina Fedeli, 1956~ )와 안나 미고토(Anna Migotto)가 공동으로 감독한 다큐멘터리 '안네 프랑크를 찾아서(#Anne Frank: Parallel Stories, 2019)'다. 이 다큐 영화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안네 프랑크 기금과의 협업으로 제작되었고, 이탈리아 작곡가 렐레 마치텔리(Lele Marchitelli)가 음악을 담당했다. 러닝 타임은 95분이다. 

 

사비나 페델리 감독 
안나 미고토 감독

'안네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가 없었다면 아넬리스 마리 '안네' 프랑크(nnelies Marie 'Anne' Frank, 1929년 6월 12일~1945년 3월 12일)라는 이름은 당시 그녀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이들 150만 명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일기로 인해 안네는 부활하여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정점으로 한 나치스(Nazis) 도당의 독일이 자행한 600만 유태인 홀로코스트(Holocaust, 집단학살)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 말은 입에서 뱉는 순간 사라지지만, 글자로 쓴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는 격언을 '안네의 일기'만큼 웅변적으로 증명한 것도 없다.  

 

2007년 영화 'The Queen(더 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헬렌 미렌(Helen Mirren)이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낭송하며 관객들을 나치스 비밀 경찰에게 언제 체포될지도 모르는 긴박하고 암울한 그녀의 삶으로 초대한다. 무대는 밀라노(Milano) 피콜로(Piccolo) 극장의 무대 감독이 꼼꼼하고 세심하게 재현한 암스테르담(Amsterdam)의 비밀 거처 안네의 방이다.

 

안네 프랑크는 1929년 6월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나치스 독일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나치스 독일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 색출에 나섰다. 나치스의 네덜란드 점령으로 미국 대사관이 폐쇄되어 미국으로 망명할 수 없게 되자,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Otto Frank)는 암스테르담 프린센흐라흐트(Prinsengracht) 263번지에 있는 펙틴 공장 사무실의 창고를 책장으로 위장해서 교묘하게 막고 가족을 피신시켰다. 안네는 이 비밀 거처에서 숨어 살며 1942년 6월 12일부터 게슈타포에게 잡혀가기 전인 1944년 8월 1일까지 일기를 쓴다. 

 

안네가 비밀 거처에서 생일을 맞았다면 아흔 살(다큐 제작년도 2019년 기준)이었을 것이다. 안네의 이야기에는 당시 그녀와 같이 10대였던 다섯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안네와 같은 이상을 가졌으며, 살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까지 똑 닮은 아리아나, 사라, 헬가, 그리고 안드라와 타티아나 자매가 바로 그들이다. 나치스 박해의 희생자들인 이들의 생생한 증언에 자식과 손주들도 함께 나와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래서 부제가 '비슷한 이야기들(Parallel Stories)'이다. 

 

안네에 대한 추모 여행을 안내하는 마르티나 

비밀 거처 밖에서는 한 소녀 마르티나(Martina)가 비극적인 안네의 짧은 삶, 그리고 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이 묻어 있는 장소로 관객을 안내한다. 이는 또한 안네에 대한 추모의 여행이기도 하다. 마르티나는 이 추모 여행을 통해 안네와 관련된 역사적 현장을 찾아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림으로써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마르티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안네가 공포에 질려 끌려갔을 독일의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강제수용소를 찾아간다. 베르겐 벨젠 또는 벨젠(Belsen)은 1943년 독일 나치스가 전쟁 포로와 유대인을 가두기 위하여 설치한 수용 인원 4만 1000명 규모의 수용소였다. 이곳에서 3만 7000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굶주림과 중노동,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벨젠 강제수용소에는 5대 악마라 불리는 나치스가 있었다. 5대 악마 중 으뜸은 요제프 크라머(Josef Kramer)였다. 1940년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수용소에서 루돌프 헤스(Rudolf Walter Richard Heß) 소장의 부관으로 임명된 크라머는 1941년 4월 나츠바일러 슈트루트호프(Natzwiler-Struthof) 강제수용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크라머는 1942년 나치스 친위대 대위로 승진하여 1944년 5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관리자로 일했다. 그는 강제수용소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수많은 유대인과 롬인(Rom, 복수형은 Roma, Roms, 집시)들을 독가스로 죽인 전력이 있었다. 그는 인종 연구를 위해 해골과 뼈를 수집하는 나치스 해부학 연구원 아우구스트 히르트(August Hirt)에게 시신을 제공하기도 했다. 1944년 12월부 크라머는 벨젠 강제수용소장으로 임명되었다. 크라머의 악행은 벨젠 수용소에서 극에 달했다. 그가 수용소 식비를 빼돌려 착복함으로써 수용자들은 굶주림과 추위, 병으로 죽어가야만 했다. 이렇게 죽은 시체들은 미처 처리를 하지 못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크라머는 이런 악행으로 '벨젠의 야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두 번째 악마는 프리츠 클라인(Fritz Kein)이다. 클라인은 벨젠 수용소의 2인자이자 유일한 친위대 소속 의사였다. 그는 수용자들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으며, 수없이 많은 학살에 동참했다. 세 번째 악마는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Irma Ida Ilse Grese)였다. 17세의 최연소 여성 친위대 대원으로 '나치스의 악녀', '나치스의 색마'로 불렸던 그레제는 여간수 중에서 가장 악랄했다. 그녀는 권총을 차고 채찍을 든 채 사나운 개를 데리고 다니며 여성 수용자들을 채찍질하고 개에게 물려 죽게 했다. 네 번째 악마는 엘리자벳 폴켄라트(Elizabeth Volkenrath)였다. 그녀는 여러 수용소에서 가스실 운용과 학살에 관여했다. 다섯 번째 악마는 조하나 보르만(Johanna Bormann)이다. 그녀는 항상 여러 마리의 개들을 끌고 다니면서 수용자들을 물어 죽이게 했다. 

 

일기의 사진

벨젠 강제수용소는 1945년 4월 15일 영국군에 의해 나치스 포로수용소 중 가장 먼저 해방되었다. 벨젠의 5대 악마는 종전 후 영국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안네의 언니 마르고트는 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언니의 죽음에 상심한 안네도 영양실조와 장티푸스에 걸려 1945년 3월 16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벨젠 수용소가 해방되기 2달 전이었다.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Edith Frank)는 정신이상으로 죽었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던 아버지 오토 프랑크만 구 소련군의 해방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했다.  

 

마르티나는 벨젠 강제수용소에 이어 파리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간다. 파리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정식명칭은 쇼아 기념관(Memorial de la Shoah)이다. 프랑스어 '쇼아(Shoah)'는 영어 '홀로코스트(Holocaust)'와 같은 말이다. 쇼아 기념관은 나치스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으로 7만 6000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이름의 벽과 홀로코스트 관련 사진, 문서 등이 전시돼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손자, 손녀들과 함께 쇼아 기념관을 찾아와 몸서리치도록 끔찍했던 강제수용소 시절을 회상한다. 손자, 손녀들은 나치스 독일이 자행한 인류 역사상 그 전례가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고 잔인한 홀로코스트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자각한다.   

 

안네 프랑크

마르티나는 이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의 비밀 거처를 찾아간다. 헬렌 미렌은 '안네의 일기'를 덮고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이는 구세대가 직접 겪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이제 신세대가 이어받아야 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제 주인공은 자라나는 세대를 대표하는 마르티나이다. 마르티나는 안네가 되어 비밀 거처를 돌아본다. 마르티나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큐 영화를 통해 우리는 또한 유대인 연구자이자 미국 대학교수, 역사가이자 랍비이기도 한 마이클 베렌바움(Michael Berenbaum)의 목소리도 듣는다. 그는 최근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 유대인 운동에 대해 우려한다. 그는 반 유대인 운동이 유대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베렌바움의 이러한 진단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전 세계의 반 유대인 운동은 편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초한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원주민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내쫓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점령, 봉쇄, 학살은 제2의 홀로코스트, 제2의 쇼아인 것이다. 반 유대인 운동은 팔레스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 세계 양심적인 사람들의 항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가려 나치스에 의한 롬인의 대학살은 정확히 규명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치스 독일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약 40만 명에 이르는 롬인들을 위험 세력으로 몰아 학살했다. 이는 유럽에 거주하던 롬인의 약 67%에 해당하는 숫자다. 롬인의 목숨도 유대인만큼 소중하다. 우리는 롬인 홀로코스트도 기억해야만 한다. 

 

2021. 8. 31.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