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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1]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 - 분노 주의

林 山 2021. 8. 27. 18:28

2021 EBS 다큐 영화제(EIDF 2021)에는 묵직하면서도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한 편이 올라왔다. 일본의 사카하라 아쓰시(阪原淳, Sakahara Atsushi, 55) 감독의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과 나(Me and the Cult Leader)'란 제목의 다큐 영화였다. 영어 제목 'Me and the Cult Leader'에서 'Cult Leader'는 '사교(邪敎) 집단의 교주' 또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뜻한다.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

다큐 영화 'Me and the Cult Leader'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 オウムしんりきょう, Aum Shinrikyo)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카하라 감독은 옴진리교가 자행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東京地下鉄サリン事件, 地下鉄サリン事件, Tokyo Sarin Attack)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린 테러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지금도 눈을제대로 못 뜨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옴진리교는 마츠모토 치즈오(松本智津夫, 가명 아사하라 쇼코, 麻原彰晃)를 교주로 한 일본의 신흥종교단체다.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는 젊은 시절, 1960년대~80년대까지 유행한 신흥종교 갓 라이트 어소시에이션(God Light Association)의 교주 타카하시 신지(高橋信次)의 저서를 탐독했다. 이후 그는 히말라야에서 마침내 해탈한 일본 내 유일한 존재로 공중부양도 할 수 있는 초능력자이며, 자신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누구나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주로 젊은 신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교리적으로는 힌두교, 불교, 기독교,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론 등이 뒤섞인 짬뽕탕 종교였다. 

 

옴진리교의 핵심 교리는 포아(ポア, Phowa)였다. 포아는 원래 티베트 불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전화(shift)를 뜻하는 신비주의적인 용어였다. 교주 마츠모토는 이 포아를 왜곡해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바꿔치기했다. 

 

옴진리교의 최종목적은 종(種)의 교체였다. 마츠모토는 인류가 영성 수준을 높여 초인류 또는 신선민족으로 진화할 신적 인간과 물질적 욕망에 빠져 동물화하는 동물적 인간 등 두 종류로 나눴다. 그는 현세는 동물적 인간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소수의 신적 인간들이 학대받고 있다고 보았다. 이 구도를 뒤집어엎는 것이 이들의 최종목적이었다.  

 

처음에는 요가를 가르치는 동호회에 불과했던 옴진리교는 점차 사이비종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출가자들에게는 전재산을 시주하게 하고, 교주 마츠모토의 두발과 혈액, 목욕물 등 괴상품을 고가에 판매하는 등의 수법으로 자산을 축적하면서 교단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괴상품 판매와 과격한 수행에 회의를 품고 탈출한 신자를 잡아다 린치를 가하거나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탈퇴 의사를 밝힌 신자 중 밝혀진 사람만 5명이 살해되고, 실종자는 30명이 넘었다. 옴진리교는 이런 공포와 협박으로 교주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기자들 앞에서 고개 숙인 옴진리교 후신 알레프 대변인  아라키 히로시

애초부터 기괴하고 불온한 행동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옴진리교 교주 및 지도부는 출가나 고액의 시주를 요구해 신자의 가족들과 분쟁이 많았다. 신자들의 부모 등 가족으로 구성된 옴진리교 피해자회(옴진리교 가족회)는 사법부와 행정부, 경찰 등 공권력에 호소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9년 11월 4일 옴진리교 간부 6명이 옴진리교 문제를 조사하고 있던 사카모토 쓰쓰미(坂本堤, 당시 33세) 변호사와  부인, 자녀 등 일가족 4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 배지 등 옴진리교 관련 증거물이 떨어져 있었지만 사건을 담당한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경찰은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이 범행은 1995년 9월 범인 중 한 명인 오카자키 가즈아키(岡崎一明)가 자수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들은 기소되어 살해당한 무라이 히데오(村井秀夫)를 제외한 범인 5명 전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옴진리교는 현세인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포아를 대의명분으로 테러와 살인 등 수많은 반사회적인 범죄를 자행했다. 이들은 자동소총이나 화학무기, 생물무기, 마약, 폭탄류 등 불법 무기와 약물을 교단 내부에서 자체 생산했다. 옴의 가르침과 지도로 신적 인간을 육성하고, 인류의 영성 진화에 방해가 되는 동물적 인간을 제거할 목적으로 이들은 70톤의 사린(Sarin)을 제조하였다. 이들은 일본인들을 사린으로 학살한 후 소위 샴발라(Shambhala) 또는 진리국(真理国)이라는 유토피아를 수립하려고 기도했다. 그게 과연 유토피아일까?

 

사린은 시안화물(청산가리) 보다 독성이 무려 500배 이상 강해 노출되면 수 분 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중독 증상은 매우 빠르게 나타나며 호흡 곤란, 시력 저하, 메스꺼움, 구토, 근육 경련, 두통 등을 동반한다. 처음엔 시력 저하부터 시작되고, 이후 시신경을 마비시키며, 이어 기도 폐쇄와 호흡근 마비로 사망에 이른다. 

 

혼슈 나가노현(長野県) 마쓰모토시(松本市)의 지주들이 옴진리교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자 사교 집단은 판사들을 살해해 자신들에 불리한 판결을 막으려고 1994년 6월 27일~28일 시 일원에 사린을 살포했다. 이 테러로 8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옴진리교의 마쓰모토시 테러는 사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제39회 일본 중의원(衆議院) 총선에서 옴진리교가 만든 진리당(真理黨)이 참패하고, 일본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1995년 3월 20일 교주 마츠모토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신자들에게 가스미가세키역(霞ケ関駅)과 국회의사당, 나가타초(永田町) 등 국가의 핵심 시설에 사린을 살포할 것을 명령했다. 옴진리교 신자들은 교주의 명령에 따라 일본인들을 학살하고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아침 출근 시간대에 혼잡한 도쿄 지하철 노선 일원에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이 테러로 14명이 사망하고 6,300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좌)과 알레프 대변인  아라키 히로시(우)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는 종교단체가 대도시를 겨냥해 강력한 화학무기로 여러 곳을 동시다발 공격한, 일본 역사상 최악의 대량 살인사건이었다. 또,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로 옴진리교는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빗발치는 비난을 받았다. 

 

1996년 일본 정부는 종교법인으로서 옴진리교의 법인격을 박탈했다. 이후 비법인 종교단체로서 활동을 계속하던 옴진리교는 2000년 2월 드디어 파산하고 말았다. 옴진리교라는 명칭 자체도 소멸했다. 사린 테러 사건의 여파로 옴진리교가 파산하자 후신인 알레프(アレフ, Aleph)가 설립되어 교리와 신자 일부가 계승되었다. 알레프에서 빛의 바퀴, 야마다들의 집단, 케로인구락부 등이 분파해 나갔다. 2018년 7월 6일에는 테러를 주모하고 교사한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를 비롯한 옴진리교 간부 7명의 사형이 집행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옴진리교도 결국 종말론과 재산 헌납 강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교 집단임이 증명된 것이다. 

 

종말론을 내세운 옴진리교에 의해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사린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은 아직도 아물지 않는 고통스런 후유증을 남긴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당시 옴진리교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아라키 히로시(荒木浩, Araki Hiroshi)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낸다. 아라키 히로시는 현재 알레프의 수석 대변인이다. 두 사람은 사사롭고도 심오한 여행을 떠난다. 

 

사카하라 감독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광신도 집단 알레프의 현 본부 방문을 시작으로 그들의 고향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서 구원이라는 허황된 믿음에 빠져버린 한 남자, 아라키를 세상으로 끌어내 카메라 앞에 세운다. 그리고 아라키를 통해 옴진리교라는 광신도 집단이 어떻게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했는지 파헤친다.

 

사카하라 감독은 진실과 이해를 위한 탐구 여정에서 아라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린 테러 피해자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마츠모토 치즈오는 사교 집단 교주가 아닌가? 그가 직접 사린 테러를 명령한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아직도 그를 믿고 있는가? 왜 아직도 알레프에 있는가? 

 

사카하라 아쓰시 감독(좌)과  아라키 히로시(우)

아라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를 옹호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세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옴진리교에 들어간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사카하라 감독은 사린 테러 피해자들에 대해 아라키의 사과와 사죄를 요구한다. 하지만 아라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유감'이라는 말 한 마디뿐이다. 그들의 마지막 여정은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하철역 분향소다. 분향을 마치고 아라키는 기자들 앞에 선다. 기자들이 사린 테러 희생자들에게 사죄할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아라키는 '부채감을 안고 살아가겠다'라는 말로 대신한다. 끝까지 사린 테러 희생자들에게 사과나 사죄를 하지 않는 아라키를 바라보는 사카하라 감독의 눈빛이 이글이글 끓는다. 그건 분명 가증스러운 한 인간에 대한 강렬한 분노의 시선이다. 

 

옴진리교 사린 테러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한 종교 집단이나 한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그 끝을 목격했다. 사카하라 감독은 이 다큐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옴진리교나 알레프 같은 사이비 사교 집단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또, 종말론을 내세워 온갖 그럴 듯한 말로 자신만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사이비 교주들에게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다큐 영화는 갑자기 암전(暗轉) 엔딩으로 끝난다. 옴진리교와 그 후신 알레프를 대표하는 아라키가 상식도 통하지 않는 존재임을 웅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카하라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21. 8. 27.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