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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1] 시마스 씨의 도약(The Jump) - 한 리투아니아인의 '철의 장막' 탈출기

林 山 2021. 8. 26. 18:58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잔혹한 통치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면 비밀경찰을 통한 공포정치, 끊임없는 세뇌, 정보 차단과 격리가 필수적이다. 공산당 통치하의 소련을 '철의 장막',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고 칭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기에드레 지츠키테 감독

리투아니아의 기에드레 지츠키테(Giedrė Žickytė)는 철의 장막을 탈출하려다가 잡혀 감옥에 갇히는 등 모진 고생을 한 시마스 쿠디르카에게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다. 지츠키테 감독이 2020년에 제작한 '시마스 씨의 도약(The Jump)'의 러닝 타임은 92분이다.  

 

시마스의 아버지는 선원이었다. 그는 긴 항해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들에게 열대지방의 야자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야자수가 있는 이국적인 풍경은 시마스에게 파라다이스로 다가왔다. 시마스는 언젠가 낭만적인 야자수 파라다이스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꿈을 갖고 선원이 된다.  

 

시마스는 거의 20년 동안 소련 배에서 일했다. 그러나, 소련 배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비참한 감옥이었다. 그는 늘 자유 세계를 그리며 '철의 장막'을 탈출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뉴욕 시민이 된 시마스 쿠디르카

그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왔다. 1970년, 미국 매서추세츠 주 마서즈 빈야드(Martha's Vineyard) 연해 함상에서 미-소 어업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소련 선박에는 자유 세계를 향해 탈출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시마스가 타고 있었다. 

 

미국 연안경비정이 소련 선박 가까이 다가가자 시마스는 과감하게 뛰어내린다. '철의 장막'에서 '자유 세계'로의 도약이었다. 훗날 시마스는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며 "나는 절박했다. 빌어먹을 감옥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 자체를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마스는 미국 연안경비정 함장에게 서툰 영어로 망명 의사를 밝힌다. 함장은 시마스의 망명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는 상부에 시마스 망명 사건을 보고한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시마스를 돌려보내라고 한다. 시마스의 망명으로 소련과의 어업회담이 결렬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KGB가 작성한 문서

함장은 눈물을 머금고 소련군 장교들에게 시마스를 인계한다. 소련군 장교들은 시마스를 마구 때리고 밧줄로 묶어서 끌고 가 소련 배에 태웠다.

 

미국인들은 시마스를 돌려보낸 것에 대해 자유를 찾아서 망명을 요청한 한 인간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당시 대통령 닉슨까지 나서서 해명해야 했다. 닉슨은 시마스의 망명 요청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말로 피해 갔다. 냉전시대에 벌어진 그런 중대한 일을 참모진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리투아니아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시마스 송환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마스는 격노한 자유 시민의 국제적 상징이 되었다. 

 

시마스는 소련으로 끌려가 KGB의 취조를 받고 감옥에 갇힌다. 이때 리투아니아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 선거구에서 출마한 하원의원 후보는 시마스 송환을 공약으로 내건다. 그는 4만 명에 이르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그는 포드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시마스의 송환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시마스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리투아니아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시마스의 어머니가 미국 시민권자라면 그녀의 아들도 당연히 미국 시민일 터였다. 포드 대통령은 당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미국 시민인 시마스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한다. 포드 대통령의 요청을 중시한 브레즈네프도 시마스의 송환을 약속한다. 

 

소련 선박에서 미국 연안경비정으로 탈출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시마스

10년의 형기 중 4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시마스에게 간수가 찾아와 석방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스는 공포에 빠진다. '철의 장막'에서 형기를 마치기 전에 감옥문을 나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석방되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시마스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리투아니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다. '철의 장막'에서 다시 한번 '자유 세계'로 도약한 것이다. 시마스는 한동안 매스컴에 출연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느라 바빴지만 곧 소시민의 생활로 돌아갔다. 뉴욕에서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미국 생활에서 오는 공허함을 느낀다. 조상들의 묘가 있는 고향 리투아니아가 그리웠다.

 

1991년 '철의 장막' 소련이 붕괴하는 대사건이 일어난다. 소련이 붕괴하자 리투아니아는 자유를 되찾는다. 시마스는 자녀들은 미국에 놔둔 채 아내와 함께 자유 리투아니아로 돌아간다. 그는 현재 집앞 강에서 수영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피 엔딩이다.      

 

2021. 8. 26.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