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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1] 리스본의 노래, 파두(fado) - 알파마의 향수

林 山 2021. 8. 29. 00:47

유디트 클라마르(Judit Klamár), 셀린 코스테 칼라일(Céline Coste Carlisle)이 공동으로 감독한 다큐 영화 '리스본의 노래, 파두(fado)'의 원제는 'Silêncio – Voices of Lisbon'(실렌시우 - 보이시즈 오브 리스본)이다. 포르투갈어 'Silêncio(실렌시우)'는 '침묵(沈黙), 정적(靜寂)'이란 뜻이다. 감독은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클라마르 &  칼라일 감독

'리스본의 노래, 파두'는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알파마(Alfama)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알파마의 가파른 거리에는 전통 공예품 상점과 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유서 깊은 28번 트램에 탑승하면 알파마를 통과하여 11세기 상조르즈 성(Castelo de S. Jorge)까지 갈 수 있다. 그라사 전망대(Miradouro da Graca)에서는 도시에서 타구스강(Tagus river)까지 펼쳐지는 전경을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이 되면 유서 깊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파두 음악이 구슬픈 분위기가 넘쳐나곤 했다.

 

그런데, 알파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고급 주택화)이 상당히 진행되어 옛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알파마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젠 호스텔 천지가 되어버렸다. 카페나 레스토랑을 허물고 호스텔이 들어서다 보니 거리마다 흘러넘치던 리스본의 소리 파두 음악도 사라졌다. 그래서 감독은 다큐 영화 제목을 'Silêncio – Voices of Lisbon'이라고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리스본의 알파마

감독은 포르투갈에서 20년을 보낸 어느 ‘현지 외지인’의 자취를 따라 두 여성 작가 이본 디아스(Ivone Dias)와 마르타 미란다(Marta Miranda)에 이른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세대를 살았지만 모두 자신의 예술과 지역 사회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일상의 투쟁을 노래하는 포르투갈의 전통가요 파두를 통해 둘은 대화를 이어간다. 이들이 알파마의 거리를 걸어갈 때 파두가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Alfama não cheira a fado(Alfama doesn't smell of fado, 알파마에 파두의 내음은 사라지고) Cheira a pessoas, a solidão(It smells of people, of loneliness, 외로운 사람들과) Cheira a silêncio ferido(It smells of wounded silence, 상처받은 침묵의 향기만 남아).....

 

어쩌면 가장 민주적인 장소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거리의 타스카(tasca, 포르투갈어로 술집)도 마찬가지다. 다큐 영화 전체에 걸쳐 파두 가사들은 우리를 리스본의 옛 거리 알파마로 이끌어 간다. 

 

파두를 부르는 가수

Alfama não cheira a fado(Alfama doesn't smell of fado, 알파마에 파두의 내음은 사라지고) Mas não tem outra música(But it has no other song, 다른 노래도 들리지 않아) Eu vou cantar até que minha voz doa(I will sing until my voice hurts,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노래할 거야) para o meu país(to my country, 내 조국과) minha terra e meu povo(my land and my people, 내 조국과 내 이웃들을 위해).....

 

이제 알파마의 옛 모습은 파두 가수들이 부르는 노랫말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알파마도 카페 거리에서 호스텔 천지가 되어버렸다. 파두 가수들도 변화무쌍한 세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알파마 거리에서는 이제 파두는 사라지고 다른 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노래의 주인공은 어쩌면 알파마 거리의 마지막 파두 가수일지도 모른다.  

 

Eu sou uma filha, da velha Alfama(I am a daughter, of the old Alfama, 나는 오래된 알파마의 딸) Era o meu berço e a minha cama.(It was my cradle and my bed, 내게는 요람이자 안식처) E é em Alfama que eu quero morrer(And it is in Alfama that I want to die, 마지막 눈을 감는 곳도 알파마이기를).....

 

마지막 파두 가수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죽을 때까지 지키다가 알파마에 뼈를 묻으려고 한다. 리스본 사람들도 알파마를 소중하게 여기고, 알파마 거리에서 흘러넘치던 파두를 그리워한다. 

 

'리스본의 노래, 파두'의 한 장면

파두(fado)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한 말이며, 운명 또는 숙명을 뜻한다. 파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포르투갈의 옛날 서정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뱃사람들이나 죄수들이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다른 민요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고,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 

 

포르투갈은 과거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암울했던 포르투갈의 역사가 반영된 파두에는 향수와 동경, 슬픔과 외로움 등 민족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다. 파두에는 전반적으로 숙명론적인 인생관이 담겨 있다. 그래서 파두 가수들은 전통 기타인 기타라 반주에 맞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멜리스마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다. 

 

리스본 알파마 거리

파두에는 리스본 뒷골목에서 서민들이 부르는 리스본 파두, 남성 보컬들이 부르는 달콤한 사랑의 세레나데인 코임브라 파두 등 두 가지가 있다. 파두 하면 리스본 파두다. 리스본 파두에는 서민생활의 애환이 짙게 묻어 있기 때문이다. 가사는 애절한 멜로디와 바다의 고된 삶,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을 다루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리스본 파두의 대표적인 가수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ália da Piedade Rebordão Rodrigues)다.

 

현대 파두는 포르투갈에서 인기있는 장르로 안투니우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독재정권 시절에 유행했다가 1968년 정권 붕괴후 금기시되었다. 그러다가 20년이 지난 1990년대 이후 다시 파두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포르투갈 여가수 베빈다(Bevinda)의 앨범 'Em Caminho'(엥 까미뉴, 길 위에서) 수록곡들이 광고의 배경 음악과 드라마 등에 삽입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Em Caminho' 수록곡 중 'Ja Esta'(자 이스타, 이젠 됐어요)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커버한 노래다. 'Ter Outra Vez 20 Anos'(테르 우트라 베스 아누스,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는 광고 원샷 018 투넘버 서비스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O Jardim'(우 자르딤, 화원)은 SBS 드라마 '파도'의 이영애 테마곡이다. 'Amadeu'(아마두)는 이미숙, 류승범 주연의 KBS 월, 화 드라마 '고독'의 이미숙 테마곡이다. 'Maria Vergonha'(마리아 비르고나)는 광고 나뚜르 아이스크림 배경 음악으로 사용됐다. 

 

2021. 8. 29.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