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흐루즈 누라니푸르(Behrouz Nouranipour) 감독이 2020년에 찍은 '밤의 아이들(Children of the Night)'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마음을 무겁게 하는 다큐 영화다. 누라니푸르 감독은 ISIS(IS, 이슬람국가)의 세뇌로 무자비한 살인병기로 변한 5명의 소년병에게 카메라의 앵글을 맞춘다.
참수나 화형 등 잔혹함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 무장단체 ISIS는 '이라크-알샴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의 약자이다. 더 간략히 IS라 칭한다. '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의 아랍어 표기는 ‘다울라 이슬라미야 이라크 샴(Dawlat al-Islamiyah f'al-Iraq wa al-Sham)’이다. 약칭은 다에시(Daesh)이다.
IS는 '다에시'라는 말이 '짓밟다'는 뜻의 아랍어 '다샤(daasha)'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이름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서방 국가들은 극단주의 테러리즘 단체가 국가를 참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IS를 다에시라고 부른다. 납치, 인신매매, 강간, 살해, 역사 유적 파괴, 무차별 테러 등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무장 집단을 국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다에시는 곧 IS에 대한 멸칭(蔑稱)이다. 다에시는 자신들의 공식 명칭인 이슬람 국가의 약자인 IS로 표기하기를 원한다.
IS에 의해 30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 대신 전쟁터에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가 포착한 IS 소년병 5명은 모두 파키스탄 출신이다. 파키스탄 출신 소년병들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터키를 거쳐 시리아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IS의 탄생 과정과 시리아 내전을 알아야 한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통치하는 이라크는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지배하는 나라였다. 미국과 영국은 대량 살상 무기 보유를 이유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킨 뒤, 시아파가 지배하고 쿠르드족이 참여하는 과도정부를 세웠다. 시아파가 권력을 독점하자 축출된 후세인 정권의 수니파는 4개의 다른 이라크 반군 세력과 부족들을 합병하여 IS를 결성했다.
IS의 초대 지도자는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Abu Omar al-Baghdadi)였다. 2010년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미군 공습으로 사망하자 그의 제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가 IS의 수장이 되었다.
2011년 4월 탄압을 견디다 못한 소수 수니파의 반발로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이란을 등에 업은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아파 독재정권이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IS는 시리아로 거점을 옮겨 알아사드 시아파 독재정권 타도에 들어갔다.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면서 IS는 데이르에조르 주, 라카 주, 알레포 주의 대부분과 홈스 주의 동부를 점령했다. 2014년에는 이라크에서도 대규모 공세를 펼쳐 이라크 제2의 도시 나나와 주 모술과 인근 유전 지역을 장악하고, 살라딘 주의 행정 중심지인 티크리트를 점령하면서 엄청난 기세로 세력을 확장했다.
IS는 약탈 경제로 재정을 충당했다. 이들은 기업에 폭파 협박을 해서 거액을 받아내거나 은행, 귀금속 상점 등을 약탈했다. 또한, 인신매매나 도굴 문화재 밀매, 석유 밀거래 등 조직폭력단이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2014년 6월 29일 극단주의 무장단체는 이라크 모술에서 새로운 이슬람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국명을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부터 이라크 동부 디얄라 주에 이르는 지역을 이슬람 지도자 칼리프(Caliph, 교주)가 통치하는 영토임을 선언했다.
2014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동맹군과 시리아 북동부 서쿠르디스탄의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호부대(Yekîneyên Parastina Gel, YPG)가 IS 격퇴전에 착수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IS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인질 살해에는 참수, 화형, 폭파, 익사 등 잔인한 방법을 동원했다. IS는 인질 살해 동영상을 선전과 대중의 지지 확보, 대원 모집에 이용했다.
파키스탄에는 IS 조직원들이 대원을 모집하기 위해 설립한 소위 신학교가 있었다. IS 조직원들이 어떻게 파키스탄에 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파키스탄이 투르크메니스탄이나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프간 탈레반이 미국 주도 동맹군의 20년에 걸친 공격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파키스탄 등 이슬람 수니파 벨트를 이루는 나라들의 지원 덕분이었다.
이제 12세 소년을 비롯한 5명의 소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같은 또래인 이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굶주린 채 희망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학교는 신천지였다. 신학교에서는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부모도 해주지 못한 것을 IS가 해줬던 것이다.
한 소년병의 삼촌에 대한 이야기는 끔찍했다. 삼촌은 친형 부부를 눈앞에서 살해하고 조카를 신학교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소년의 삼촌은 친형 부부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골수 IS 조직원이었던 것이다.
소년병들은 스승이라 불리는 자에게 철저한 세뇌 교육을 받는다. 스승이라 불리는 자들은 골수 IS 조직원들이다. 이들은 '신은 알라만이 유일하다. 이교도들은 구원을 받지도 못하는 존재들이기에 마땅히 다 죽여야 한다.'면서 증오심을 불어넣는다. 이들은 또 '알라를 위해 이교도들을 죽이는 것은 지하드(성전)이다. 지하드를 하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된다. 순교자는 천국에 가서 알라의 옆자리에 앉는 등 최고의 보상을 받는다. 천국에는 아름다운 여자도 많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는 식으로 소년병들을 세뇌시킨다.
IS에게 세뇌당한 어린 소년병들은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살인병기로 변한다. IS는 점차 이교도 학살이나 인질 살해, 자폭 테러 등에 소년병들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소년병들은 무기 운반, 경계 근무, 민간인 체포 등에도 동원된다. 한국의 10대 소년 김모 군도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들어가 IS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미국과 요르단 연합군의 라카 공습 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양심이 결여된 조직은 언젠가는 멸망하게 되어 있다. IS도 마찬가지다. 2017년 7월 IS는 3년 동안 주요 거점이었던 이라크의 모술에서 쫓겨났다. 3개월 뒤에는 IS가 수도라고 자처했던 시리아의 라카마저 함락됨으로써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2019년 3월 23일 미국 주도 국제동맹군과 YPG 주도 시리아 민주군(SDF)이 시리아 내 최후 근거지인 바구즈를 탈환하면서 IS는 궤멸됐다.
2019년 10월 26일 IS 초대 칼리프 알바그다디는 서쿠르디스탄 이들리브 바리샤에서 미군이 포위 공격하자 폭탄조끼를 터뜨려 자폭 사망했다. IS 대변인 아부 알사한 알무하지르도 사망했다. 알바그다디가 죽자 IS는 거의 몰락했다. IS는 10월 31일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고,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5명의 소년병들은 포로로 잡혀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가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지낸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 중 하나인 시리아 내전을 뼛속 깊이 경험했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소년병들은 무자비한 폭력에 물들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살인병기로 전락했다. 한 소년병은 식수에 독극물을 타 야지디족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죄의식이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이들의 눈동자는 증오심으로 이글거린다.
소년병들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이들은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다.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살인병기들을 석방하면 세상이 위험해진다. 유일한 해결책은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다. 소년병들에 대한 처리는 이들의 본국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들이 수용소를 나가면 또 이교도들을 죽이기 위해 어느 곳이든 서슴없이 달려갈 것이다.
'밤의 아이들(Children of the Night)'이란 제목은 다소 다의적이다. 소년병들이 주로 밤에 이동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the Night'는 '어둠' 또는 '어둠의 세력'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어둠은 곧 악마를 상징한다. 우리는 이 다큐 영화에서 밤의 아이들 곧 악마의 자식들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밤의 아이들'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감없이 보여준 다큐 영화다. 누라니푸르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1. 8. 29.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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