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3일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케이블 TV에서 볼 만한, 아니 꼭 보아야 할 영화 한 편을 내보냈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찍은 와드 알카팁(Waad Al-Khateab), 에드워드 왓츠(Edward Watts)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아랍어 برای سماء, 영어 For Sama, 2019)'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다큐 영화 '사마에게'의 무대는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아랍어 ﺣﻠﺐ, 'ħalab, 영어 Aleppo)이다. 내전 이전에 알레포는 시리아는 물론 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레반트 하면 일반적으로 시리아와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을 일컫는다.
시리아인 시민기자 와드 알카팁은 5년 동안의 내전 기간 중 알레포에서 벌어진 참상을 현장에서 촬영하여 생생하게 기록했다. 따라서 다큐 영화 '사마에게'는 연출이 없다. 와드는 친구이자 의사인 함자 알카팁과 결혼하여 딸 사마를 두었다. 부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딸 사마 알카팁을 참혹한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키운다.
알레포는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 Assad, Bashar Hafez al Assad)에 충성하는 정부군과 이들을 지원하는 러시아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포격과 공습을 받는다. 시리아 정부군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염소 가스 등 화학무기까지 동원하여 공격한다. 아사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군 거점 알레포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포탄을 맞고 죽을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알레포를 탈출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시리아 정부군이 경계선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투기들은 병원 건물들을 집중적으로 공습한다. 함자는 포격과 공습으로 구멍이 뻥뻥 뚫린 병원에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한다. 포탄이나 총알은 어린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사마의 어린 동무들도 포탄에 맞아 여러 명 저세상으로 떠났다. 와드는 포탄이 작렬하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를 누비면서 피가 흥건한 전장을 기록한다.
UN은 시리아 정부와 협상을 통해서 알레포 시민들의 탈출로를 잠시 열어 놓는다. 도시 함락 직전 함자와 와드, 그리고 사마는 무사히 알레포를 빠져나온다. 한 사람 더 있다. 와드의 뱃속에 든 아기다. 알레포에서 5년 동안 찍은 필름도 무사하다. 알레포를 탈출한 와드는 아들을 순산한다.
와드가 목숨을 걸고 찍은 필름에는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이 알레포에서 자행한 비인도적인 학살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와드는 딸 사마와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알아주길 바란다. 시리아의 참상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와드의 필름은 '사마에게'라는 제목으로 2019년 3월 SXSW에서 공개되었다. 2019년 '사마에게'는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또, 이 다큐 영화는 2019년 제11회 한국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말이다. 와드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알레포 시민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저항한 것일까? 그리고, 알레포가 상징하는 시리아의 참상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왜 현재진행형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리아의 역사와 정치, 사회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북한이 부자상속으로 정권을 이어받은 것처럼, 시리아의 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도 부친인 하페즈 알아사드(Ḥāfiẓ al-Asad)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았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1년부터 2000년까지 거의 30년 동안이나 시리아를 통치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권좌에 앉아 있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와 국무부 자료에 의하면 시리아 종파는 수니파(Sunni) 75%, 시아파(Shiah) 15%, 기독교(Christian) 10%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를 정점으로 한 집권 세력은 시아파, 시아파 중에서도 알라위파(Alawites) 무슬림으로 시리아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뿐만 아니라 군대와 경찰 등 사회 전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통치 하의 이라크는 시리아와는 반대로 소수 종파인 수니파가 다수 종파인 시아파를 지배하고 있었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전통적으로 서로 원수라는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아일랜드인의 잉글랜드에 대한 적대적 감정 그 이상이다.
15%에 불과한 소수 시아파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75%의 수니파 무슬림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알레포는 특히 수니파 무슬림이 많았다. 내전 이전의 알레포 시민 80%가 수니파 무슬림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 3월 알레포 소재 학교 담벼락에 시리아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낙서를 적은 10대 청소년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시리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수니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요구 시위는 점차 무장 투쟁으로 발전했다.
2011년 7월 정부군 출신 수니파 인사들이 알아사드 독재정권 타도를 목표로 반군 단체를 설립하면서 시리아는 내전에 돌입했다. 시리아 반정부 무장 투쟁의 중심지가 바로 알레포였다. 알레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반군은 파스타킴이었다. 알레포 주변에는 알누스라 전선, 이슬라믹 프론트, 쿠르드인민방위대(YPG) 등의 반군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 몰락 후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 결성한 다에시(이슬람국가의 폄칭, IS)도 시리아에 들어와 있었다.
시리아 내전은 발발부터 복잡한 국제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2012년 시아파 맹주 이란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레바논의 이슬람 지하드 헤즈볼라(Hizbollah)를 파견해 수니파 반군을 공격케 했다. 러시아는 전투기와 폭격기를 보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은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사우디의 동맹국 미국도 군대를 파견해 다에시 격퇴전을 벌였다. 내전은 어느덧 미국-러시아의 대리전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YPG와 합동작전으로 다에시 격퇴전을 벌이던 미군들에게 돌연 트럼프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이는 YPG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미군이 철수하자 반군을 지원하던 터키는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의 배후 근거지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시리아에 들어왔다. 터키는 시리아 국경에서 폭 30km의 안전지대 설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리아 내전은 와드가 말한 대로 10년째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시리아 반군은 북서부에 마지막 거점만을 남겨 둔 상태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의 최후 거점인 이들리브에 공습과 포격을 감행하며 진격해 왔고, 40여 개에 달하는 마을을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252명이 숨졌으며, 2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인 약 650만 명이 해외로 떠났고, 약 610만 명은 시리아 내 다른 지역으로 피란을 떠났다. 하지만 알레포와 이들리브에는 아직도 300백만 명의 시리아인이 남아 있다. 이들은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과 러시아군의 폭격기 공습에 떨면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3년 전, 와드 가족도 알레포에 있었다. 와드 가족은 운이 좋아서 죽음의 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 남은 300만 명은 지금도 여전히 죽음의 공포와 추위,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마에게'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와드는 알레포 시민들이 시리아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서 무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독재정권과 독재자는 인류 공공의 적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양립할 수 없다.
와드는 '이제 사람들이 행동해야 할 때가 왔다.'고 호소한다. 무엇을 위한 행동일까? 그것은 바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알레포에서, 이들리브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것이다. 와드의 호소에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이다.'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와드는 다큐 영화 '사마에게'에 대해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만약 세계 여러 나라의 양심적인 사람들, 또는 정부가 영화 '사마에게'를 볼 수 있다면, 지금 알레포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서 와드는 그 희망을 붙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총 대신 카메라를 잡은 와드 알카팁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전 세계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과 함께.....
2021. 1. 24.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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