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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1] 표류하는 마을 - 미얀마 난민의 고달픈 태국살이

林 山 2021. 8. 23. 21:31

2021 EIDF(EBS 국제 다큐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8월 23일 EBS에서는 태국의 프리차 스리수완(Preecha Srisuwan) 감독의 '표류하는 마을(Floating Village Asylum)'이 방영됐다. 2020년 제작된 이 다큐 영화의 러닝 타임은 88분이다. 

 

프리차 스리수완(Preecha Srisuwan) 감독

'어느 뗏목촌 이야기(A story of floatir, large community)'라는 부제가 붙은 이 다큐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펼쳐지는 두 난민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대 밀림의 원시적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얀마 소수민족 난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달픈 삶의 이야기는 슬프기만 하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에는 대나무 수상 가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미얀마 소수민족인 몬족보다도 더 소수민족이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태국의 뗏목촌에서 서러운 난민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을 이해하려면 미얀마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62년 3월 2일 네윈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이후 2011년까지 미얀마인들은 군부의 잔혹한 통치를 받았다. 군부 정권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경제권력까지도 장악했다. 공무원들도 부패해서 뇌물을 강요하면서 국민들을 수탈하고 착취했다. 

 

뗏목촌에서 뛰노는 미얀마 난민 아이들

무소불위의 군부독재정권 통치하에서도 미얀마인들의 정치 의식은 점차 성장했다. 마침내 2015년 실시된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부는 총선 결과에 반발하여 2021년 2월 1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문민정부를 전복했다. 민주주의가 짓밟힌 미얀마는 다시 암흑시대로 회귀했다. 

 

미얀마에는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족만 해도 135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버마족이 68%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의 정치, 경제는 버마족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 샨족 9%, 카렌족 7%, 중국계 3%, 인도계 2%, 몬족 2%, 기타 5%이다. 카렌족은 현재 미얀마 정권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 

 

태국의 수상마을 뗏목촌에 사는 미얀마 난민들은 버마족은 말할 것도 없이 카렌족이나 몬족으로부터도 탄압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얀마에 살 때 공무원들에게 상시적으로 뇌물을 바쳐야만 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온갖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카렌족이나 몬족은 이들에게 수시로 강도짓을 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카렌족이 무서워 밤에는 문을 걸어잠그고 밖에 나다니지도 못했다.   

 

결국 이들은 미얀마를 탈출하여 태국 국경의 뗏목촌에서 난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미얀마를 탈출한 수많은 난민들의 거주지가 되어온 이곳은 태국 정부의 관할이지만 주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태국 시민권을 얻는 것도 매우 어렵다. 조건도 까다롭거니와 태국 공무원들이 신분증 발급을 조건으로 뇌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소수민족 난민들은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한 채 착취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물고기잡이로 지난한 삶을 이어나간다. 물고기잡이도 쉽지 않다. 산란기에는 태국정부가 전면적으로 어로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금어기에 물고기를 잡다가 적발되면 1만~10만 바트(35만원~3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난민들이 벌금을 맞으면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태국 정부는 미얀마 뗏목촌 난민들을 육지로 내보내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난민은 "부시장이 우리를 육지로 내보려 했지만 싫다고 했다. 여기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살 땅이나 주면서 내보내든가 안 줄 거면 여기서 살게 해 줘야지."라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은 태국의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비슷한 것을 제창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는 '태국은 국민의 피와 살 위에 세워졌다. 모든 국민은 국왕을 존경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난민 어린이들의 조국은 이제 미얀마가 아니라 태국으로 바뀐 것이다. 

 

뗏목촌 난민들의 주업인 고기잡이

수상 마을 난민들의 가장 큰 소망은 태국 시민권을 얻는 것이다. 고기잡이를 하는 한 난민 여성은 "솔직히 공무원한테 달렸다. 우린 시민권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취직해야 하니까. 아이들의 미래가 있잖은가? 우린 신분증을 못 받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들은 미래를 온통 아이들에게 걸고 있는 듯하다. 

 

한 난민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다. 그는 "네 얘기 해봤냐고? 당연하지. 우리 애들 이야기도 했고, 애들 신분증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더라. 시장이 너희들 것도 분명히 나올 거래."라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국인 시장이 그 약속을 꼭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태국 시민권을 얻은 미얀마인은 약 4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에 이르는 미얀마인들이 태국에서 무국적자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뗏목촌 미얀마 소수민족 난민들처럼 말이다. 태국 정부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뗏목촌 미얀마 소수민족 난민들을 태국 시민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2021. 8. 23. 林 山